8화(5,514자)

존버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6월 16일 아침⁠, 객장 텔레비전 자막이 빨간 띠로 바뀌었다⁠. 「⁠미 연준 0⁠.75%p 인상⁠, 28년 만의 ‘⁠자이언트 스텝⁠’⁠」 번호표를 뽑은 고객들이 화면을 올려다보았고⁠, 객장 소파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자이언트가 뭐냐고 옆 사람에게 물었다⁠. 옆 사람이 거인이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거인이 왜 은행에 오느냐고 다시 물었다⁠. 상칠이 창구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열 시에 장이 열리자 상칠은 웃음을 그쳤다⁠. 엑셀 옷 입힌 주식 창이 온통 파랬다⁠. 상칠이 회사 메신저로 한 줄씩 보냈다⁠. 「⁠형⁠」「⁠벼리셀⁠」「⁠-9%⁠」「⁠존중하며 버티는 중⁠」「⁠아니 그냥 존나 버티는 중⁠」

형우는 자기 계좌를 열지 않았다⁠. 열지 않아도 알았다⁠. 작년 8월에 삼천만 원어치를 산 벼리셀은 이번 주로 반이 됐다⁠. 처음 살았던 2022년 여름에도 반이 됐고⁠, 겨울부터 오르기 시작해 2023년 여름에 꼭대기를 찍었다⁠. 형우는 그것을 알았다⁠. 아는데도 손가락이 매도 버튼이 있는 자리를 찾아 화면 위를 더듬었다⁠. 신용대출 이자 문자가 지난달보다 사만 원 많았다⁠.

해린의 휴대전화는 반대였다⁠. 해린은 지난 5월⁠, 2차 사업 확정 뉴스가 난 날 웃돈으로 받은 일억 이천 가운데 일억을 휘담디앤씨에 넣었다⁠. 서흔이 운영진 단톡방에 올린 「⁠구 대표님 말씀 — 2차 분양 때까지 간다⁠」를 보고서였다⁠. 시장이 다 같이 파랗게 질린 6월에도 휘담디앤씨는 웃돈 뉴스가 날 때마다 빨갛게 올랐다⁠. 해린은 저녁마다 증권 앱을 열어 보고 조용히 닫았다⁠. 닫을 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

목요일 오후⁠, 서흔이 지점 객장에 협의회 에코백 한 묶음을 들고 왔다⁠. 연두색 에코백에 「⁠휘담 리버파크 — 우리가 만드는 동탄의 내일⁠」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창구 직원들에게 하나씩 돌리고⁠, 마지막 하나를 형우 책상에 올려놓았다⁠.

“⁠형부 몫⁠. 백 개 중에 첫 번째⁠.⁠” 서흔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웃고 있었는데 눈 밑이 어두웠다⁠. “⁠형부⁠, 나 하나만 물어볼게요⁠. 수원이랑 화성 다른 단지들 분양권 웃돈이 다 빠졌대요⁠. 몇 군데는 분양가 밑으로 갔대요⁠. 근데 우리 단지는 왜 계속 올라요⁠? 우리 단지만 왜⁠?⁠”

“⁠처형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이상하다고는 안 했어요⁠.⁠” 서흔이 에코백 손잡이를 손가락에 감았다⁠. “⁠근데 운영진 단톡방에서 아무도 이상하다고 안 하는 게 좀 이상해요⁠.⁠”

형우는 고객 서류의 이름과 주소를 말할 수 없었다⁠. 감사실이 아니어도 그건 말할 수 없었다⁠. 형우는 다른 말을 골랐다⁠.

“⁠처형⁠, 1203호 사신 분을 한 번 만나 보세요⁠. 협의회장이 새 입주민한테 인사하는 건 이상한 일 아니잖아요⁠. 거기 실제로 사실 분인지만 보세요⁠.⁠”

서흔이 형우를 오래 보았다⁠. “⁠형부⁠, 나 운영진한테 휘담디앤씨 사라고 했어요⁠. 열한 명이 샀어요⁠. 그 사람들 다 나 믿고 산 거예요⁠.⁠” 서흔이 에코백을 형우 쪽으로 밀었다⁠. “⁠만나 볼게요⁠. 만나서 아무것도 아니면⁠, 형부 에코백 이백 개⁠.⁠”

*

토요일 저녁⁠, 형우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해린이 식탁에서 증권 앱을 열었다⁠. 형우는 물을 잠그고 몸을 돌렸다⁠. 고무장갑에서 거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고 가격⁠, 고치자⁠.⁠”

해린이 화면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또 그 얘기야⁠?⁠”

“⁠일억 오천을 일억 이천으로 다시 신고하고⁠, 과태료 내고⁠, 오백 돌려주자⁠. 그래야 우리가 경렬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

“⁠누구한테 말하는데⁠? 단톡방⁠? 당신 거기서 아직 부린이 형부야⁠.⁠” 해린이 휴대전화를 엎었다⁠. “⁠그리고 잘 생각해⁠. 1503호 신고가가 일억 이천으로 내려가면⁠, 은행이 1503호 담보 가치를 다시 봐⁠. 그럼 치윤 씨네 중도금 한도가 줄어⁠. 내년 잔금 대출 감정가도 낮게 나와⁠. 당신이 그 사람들 위한다고 하는 일이 그 사람들 목을 조르는 거야⁠. 당신 은행원이잖아⁠. 나보다 잘 알잖아⁠.⁠”

형우는 고무장갑을 벗었다⁠. 해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감정가는 앞의 거래 가격을 보고 매겼다⁠. 앞의 거래가 깎이면 뒤의 대출도 깎였다⁠. 경렬의 사람들이 쌓은 숫자는 이미 치윤의 대출 서류 안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당신 주식⁠.⁠” 해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반토막이라며⁠. 상칠 씨가 단톡방에 우는 이모티콘 올렸던데⁠. 당신이 날짜 안다며⁠. 나는 당신 말 듣고 언니 말 듣고 휘담디앤씨 사서 지금 삼십 퍼센트 올랐어⁠. 누가 미래를 아는 사람이야⁠?⁠”

새결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레고 상자를 들고 있었다⁠. “⁠아빠⁠, 뭐가 반으로 잘렸어⁠? 수박⁠?⁠”

“⁠아빠 주식⁠.⁠” 해린이 대답했다⁠.

새결이 잠깐 생각하더니 레고 상자를 형우에게 내밀었다⁠. “⁠이거 붙이면 돼⁠. 내가 붙여 줄게⁠.⁠” 형우는 상자를 받아 들고 웃었다⁠. 해린도 웃었다⁠. 두 사람이 같이 웃은 것은 3월 이후 처음이었다⁠. 웃음은 새결이 방으로 돌아가자 금방 걷혔다⁠.

“⁠해린아⁠. 휘담디앤씨는 경렬이 웃돈 뉴스로 띄우는 주식이야⁠. 그 웃돈은 병점 원룸에서 나와⁠.⁠”

“⁠알아⁠. 그러니까 내년 봄에 팔 거야⁠. 당신이 2023년 여름이라며⁠. 나는 봄에 팔아⁠. 석 달 일찍⁠.⁠” 해린이 엎어 둔 휴대전화를 다시 뒤집었다⁠. “⁠당신은 자꾸 누가 만든 숫자냐고 물어⁠. 나는 그 숫자가 언제 끝나는지만 알면 돼⁠. 당신이 알려 줬잖아⁠.⁠”

*

일요일 밤 열한 시⁠, 동탄 외곽의 택배 터미널은 낮보다 밝았다⁠. 천장의 수은등 아래로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고 상자를 실어 날랐고⁠, 벨트 끝에서 기사들이 자기 구역 상자를 골라 탑차에 던져 넣었다⁠. 골판지 먼지와 디젤 냄새가 섞여 목이 칼칼했다⁠. 형우는 철망 울타리 밖에서 기다렸다⁠. 치윤이 장갑을 벗으며 걸어 나왔다⁠.

“⁠과장님⁠? 여기까지 어떻게⁠. 대출 무슨 문제 있어요⁠?⁠”

“⁠대출은 문제없습니다⁠.⁠” 형우는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오늘 하루 종일 생각했고⁠, 결국 가장 짧은 말을 골랐다⁠. “⁠고객님이 산 1503호 웃돈⁠, 부풀려진 겁니다⁠.⁠”

치윤이 장갑을 쥔 채 형우를 보았다⁠. 뒤에서 벨트가 상자 하나를 떨어뜨렸고⁠, 누군가 욕을 했다⁠.

“⁠1203호 일억 거래⁠, 105동 일억 삼천 거래⁠. 대행사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비싸게 사고판 겁니다⁠. 그 가격 위에 1503호 일억 이천이 붙었고요⁠. 저희 집사람이 일억 오천으로 신고한 것도⁠, 대행사 실장이 시킨 겁니다⁠.⁠”

“⁠그건 알아요⁠. 저도 서명했어요⁠. 실장님이 감정가 높아야 대출 잘 나온다고⁠.⁠” 치윤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근데 앞의 거래가 가짜라고요⁠? 그럼 저희가 진짜 집값보다 얼마를 더 낸 거예요⁠?⁠”

“⁠모릅니다⁠. 아마 웃돈 전부요⁠.⁠”

치윤이 장갑을 바닥에 던졌다⁠. 장갑이 아스팔트에서 한 번 튀었다⁠.

“⁠과장님⁠, 그날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물었잖아요⁠. 은행원이시잖아요⁠, 괜찮은 거죠⁠, 맞죠⁠. 과장님이 괜찮다고 했어요⁠. 그래서 도장 찍었어요⁠.⁠” 치윤이 숨을 몰아쉬었다⁠. “⁠근데 왜 이제 와서요⁠? 넉 달 지나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물러 주실 거예요⁠?⁠”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형우가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웃돈은 해린이 휘담디앤씨에 넣었고⁠, 벼리셀은 반이었다⁠. “⁠지금은 없는데⁠…⁠…⁠”

“⁠그럼 왜 오셨어요⁠?⁠” 치윤이 형우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이거 알고 내일부터 어떻게 상자 들어요⁠. 하솜이 임신했어요⁠. 지난주에 알았어요⁠. 아홉 주래요⁠. 그 집에서 낳으려고 산 거예요⁠. 과장님은 마음 편하자고 오신 거죠⁠. 저한테 털어놓고 가면 과장님 마음은 가벼워지죠⁠.⁠”

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해린이 베란다에서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당신 마음 편하자고⁠.

치윤이 바닥의 장갑을 주웠다⁠. 장갑을 다시 끼면서 형우를 보지 않고 말했다⁠.

“⁠저 실장님한테 전화할 거예요⁠. 물어볼 거예요⁠. 앞의 거래 진짜냐고⁠. 과장님 이름 대고요⁠.⁠”

“⁠그러시면 저는⁠…⁠…⁠”

“⁠과장님 사정은 과장님 사정이고요⁠.⁠” 치윤이 몸을 돌렸다⁠. 컨베이어 벨트 소리가 치윤의 등을 삼켰다⁠. 형우는 철망 너머로 치윤이 상자를 들어 탑차에 던져 넣는 것을 보았다⁠. 상자 하나를 던질 때마다 치윤의 어깨가 조금씩 높이 올라갔다⁠.

울타리 옆 자판기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나이 든 기사가 형우에게 캔커피를 하나 뽑아 내밀었다⁠. 형광 조끼 등판에 「⁠동탄3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치윤이 형님 되슈⁠? 아니면 빚쟁이⁠?⁠”

“⁠은행 사람입니다⁠.⁠”

“⁠그럼 빚쟁이네⁠.⁠” 기사가 웃었다⁠. “⁠쟤 요새 상자를 두 배로 들어요⁠. 집 샀다고⁠. 남들은 밤 열한 시에 퇴근하는데 쟤는 새벽 두 시까지 남아서 남의 구역 상자까지 날라⁠. 한 상자에 칠백 원이니까⁠, 백 개 더 들면 칠만 원⁠. 하루에 칠만 원씩 집에 넣는 거지⁠.⁠” 기사가 담배를 비벼 껐다⁠. “⁠은행 양반⁠, 쟤 대출 뭐 잘못됐어요⁠?⁠”

형우는 캔커피를 땄다⁠. 너무 달았다⁠. “⁠아닙니다⁠. 잘 갚고 계십니다⁠.⁠”

“⁠그럼 됐네⁠.⁠” 기사가 벨트 쪽으로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갚는 놈한테는 겁주지 마쇼⁠. 상자 떨어뜨려⁠.⁠”

*

새벽 한 시⁠, 형우는 빌라 거실 바닥에 앉아 증권 앱을 열었다⁠. 벼리셀 마이너스 오십일 퍼센트⁠. 매도 버튼이 화면 아래에서 파랗게 빛났다⁠. 여기서 팔면 천오백만 원이 남았다⁠. 천오백이면 치윤에게 사과의 크기 정도는 되었다⁠. 형우의 엄지가 버튼 위로 내려갔다⁠. 2020년 봄에 십 퍼센트 오른 주식을 팔던 엄지였다⁠.

형우는 엄지를 들었다⁠. 안방 문을 열었다⁠. 해린은 깨어 있었다⁠. 휴대전화 불빛이 해린의 얼굴을 파랗게 비췄다⁠.

“⁠해린아⁠. 부탁 하나만⁠.⁠”

형우는 지갑에서 증권 계좌 보안카드를 꺼내고⁠, 메모지에 비밀번호를 적어 해린 손에 쥐여 주었다⁠. 해린이 카드와 메모지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뭐야⁠?⁠”

“⁠내 벼리셀 계좌⁠. 내년 7월까지 당신이 갖고 있어⁠. 내가 팔자고 하면 절대 주지 마⁠. 울면서 빌어도 주지 마⁠. 나는 반토막에서 팔 사람이야⁠.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해린이 보안카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보았다⁠. “⁠당신이 나한테 이걸 맡긴다고⁠? 내 휘담디앤씨는 말리면서⁠?⁠”

“⁠당신은 버티는 사람이잖아⁠. 윤슬바이오도 반토막에서 더 샀잖아⁠.⁠”

“⁠그건 칭찬이야 욕이야⁠?⁠”

“⁠둘 다⁠.⁠”

해린이 웃음을 터뜨렸다가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몇 번 흔들렸다⁠. 고개를 들었을 때 해린은 보안카드를 들고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냉동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해린이 냉동 만두 봉지 안쪽에 보안카드를 밀어 넣는 것이 보였다⁠.

“⁠만두 꺼낼 때마다 생각하라고⁠.⁠” 해린이 냉동실 문을 닫았다⁠. “⁠당신이 얼마나 못 버티는 사람인지⁠.⁠”

냉동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형우의 왼손목이 뜨거워졌다⁠. 형우는 손목을 들었다⁠.

「⁠+190⁠,000⁠,000⁠」

플러스 삼천팔백만 원이 플러스 일억 구천만 원이 되어 있었다⁠. 형우가 아무리 버튼을 누르고 싶어도⁠, 2027년의 반형우네 집 냉동실에는 2023년 7월까지 만두 봉지가 있었다⁠. 숫자는 형우가 아니라 해린을 믿었다⁠.

“⁠왜 그렇게 봐⁠?⁠” 해린이 물었다⁠.

“⁠아니⁠. 만두 좋다고⁠.⁠”

형우의 휴대전화가 식탁 위에서 울렸다⁠. 새벽 한 시 이십 분이었다⁠. 회사 메일 알림이었다⁠. 형우는 화면을 켰다⁠.

「⁠[감사실] 고객 정보 무단 열람 관련 소명 요청 — 반형우 과장(⁠동탄중앙지점⁠)⁠」

메일 본문은 짧았다⁠. 고객 민원 접수⁠, 고객의 대출 서류를 업무 목적 밖에서 열람하고 내용을 제삼자에게 누설한 의혹⁠, 이번 주 금요일까지 소명서 제출⁠. 민원인의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메일 아래로 문자 한 통이 따라 들어왔다⁠. 덕규였다⁠.

「⁠비 온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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