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31자)

대기 발령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1월 13일 금요일 아침⁠,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퍼센트로 올렸다⁠. 객장 텔레비전이 금리 소식을 전하는 동안 덕규는 형우의 창구 앞에 서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직원들이 다 보는 자리였다⁠. 상칠이 옆 창구에서 고개를 숙였다⁠.

「⁠인사 발령 — 반형우 과장(⁠동탄중앙지점⁠)⁠, 대기 발령⁠. 사유⁠: 고객 정보 관리 소홀 및 고객 민원 유발⁠. 2023⁠. 1⁠. 16⁠.부터⁠」

“⁠월요일부터 출근 안 해도 돼⁠. 본부 인사위원회 날짜는 따로 연락 간다⁠.⁠” 덕규가 퍼터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반 과장⁠, 준법감시인한테 뭐 보냈더라⁠. 준법감시 팀장이 내 입행 동기야⁠. 동기끼리는 전화로 다 해⁠.⁠”

형우는 종이를 받았다⁠. 지난 10월 주차장 차 안에서 쓴 제보서는 석 달 동안 본부를 한 바퀴 돌아 덕규의 책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덕규가 객장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일해⁠. 오늘 오후부터 비 온다⁠. 우산 없는 고객님들 우산 빌려 드리고⁠.⁠”

창밖은 맑았다⁠. 형우는 창구 서랍에서 개인 물건을 꺼내 쇼핑백에 담았다⁠. 머그잔⁠, 손 크림⁠, 새결이 그려 준 아빠 얼굴 그림⁠. 그림 속 형우는 이마가 실제보다 훨씬 넓었다⁠. 상칠이 메신저로 한 줄을 보냈다⁠. 「⁠형 미안⁠」 형우는 답을 쓰지 않았다⁠. 손목을 보았다⁠. 숫자는 그대로 플러스 일억 구천만 원이었다⁠. 대기 발령 한 장으로는 2027년이 바뀌지 않았다⁠. 형우는 그것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몰랐다⁠.

*

일요일 밤⁠, 단톡방에 새 글이 올라왔다⁠. 프로필 사진이 없는 계정이었다⁠. 「⁠[필독] 부린이 형부의 정체⁠」 글 아래 사진 두 장이 붙어 있었다⁠. 웨딩홀 총회 단상에서 마이크를 쥔 형우의 얼굴⁠, 그리고 증권 앱 화면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 캡처 한 장⁠. 「⁠휘담디앤씨 공매도 잔고 ○○억 — 새마루은행 직원 연루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버는 거래였다⁠. 남에게 주식을 빌려 먼저 팔고⁠, 떨어진 뒤에 싸게 사서 갚는다⁠. 글은 길었다⁠. 반형우가 집값이 떨어진다고 떠든 것은 휘담디앤씨 주가를 떨어뜨려 공매도로 돈을 벌려는 것이고⁠, 반형우의 아내는 이미 분양권을 웃돈 받고 팔고 빠져나갔으며⁠, 우리 단지를 무너뜨려 이득을 보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라고⁠. 글 맨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협의회장님 제부라고 합니다⁠」

새벽까지 댓글이 이백 개 넘게 달렸다⁠. 「⁠어쩐지⁠」「⁠저 사람 웨딩홀에서 고객 정보 떠들던 사람⁠」「⁠은행에 민원 넣읍시다⁠」 누군가 형우의 얼굴 사진에 빨간 화살표를 그려 넣어 다시 올렸다⁠. 화살표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형부 공매도 가즈아⁠」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웃는 이모티콘이 따라 올라왔다⁠.

서흔은 새벽 한 시에 글을 내렸다⁠. 「⁠확인되지 않은 개인 비방 글은 삭제합니다 — 협의회장⁠」 글은 내려갔고⁠, 캡처는 남았다⁠. 서흔은 형우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해린은 소파에서 단톡방을 끝까지 읽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형우를 보았다⁠.

“⁠당신 공매도 했어⁠?⁠”

“⁠개인이 휘담디앤씨 같은 걸 어떻게 공매도해⁠. 은행 직원이⁠.⁠”

“⁠알아⁠.⁠” 해린이 말했다⁠. “⁠물어본 거야⁠. 당신 입으로 듣고 싶어서⁠.⁠” 해린이 휴대전화 화면을 다시 켰다⁠. 증권 앱이었다⁠. 휘담디앤씨는 금요일보다 4퍼센트 올라 있었다⁠. “⁠이 글 올라오고 나서 더 올랐어⁠. 사람들이 공매도꾼한테 지지 말자고 더 샀대⁠.⁠”

*

월요일 아침 여덟 시⁠, 형우는 출근하지 않았다⁠. 새결이 식탁에서 형우를 한참 보았다⁠. 형우는 새결의 토스트에 딸기잼을 너무 많이 발랐고⁠, 우유를 컵 끝까지 따랐다⁠.

“⁠아빠⁠, 회사 안 가⁠?⁠”

“⁠오늘은 쉬어⁠.⁠”

“⁠내일은⁠?⁠”

“⁠내일도⁠.⁠”

새결이 우유를 조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아빠 짤렸어⁠? 준서네 아빠도 짤려서 아침마다 학교 데려다줘⁠.⁠”

해린이 커피를 마시다가 사레들렸다⁠. 형우는 새결의 가방을 챙겨 주며 대답했다⁠. “⁠안 짤렸어⁠. 회사가 아빠한테 좀 기다리래⁠.⁠”

“⁠뭘 기다려⁠?⁠”

“⁠비 오는 거⁠.⁠”

새결이 창밖을 보았다⁠. 맑았다⁠. 새결은 고개를 갸웃하고 가방을 멨다⁠. 형우가 새결의 손을 잡고 학교 정문까지 걸었다⁠. 정문 앞에 아빠들이 몇 있었다⁠. 아무도 서로에게 회사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새결이 교문 안으로 뛰어 들어간 뒤⁠, 등 뒤에서 누가 형우를 불렀다⁠. “⁠과장님⁠.⁠” 협의회 운영진의 학교 앞 엄마였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형우 앞까지 걸어왔다⁠.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단톡방 글⁠, 보셨죠⁠?⁠”

“⁠봤습니다⁠. 공매도는 안 했습니다⁠.⁠”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고요⁠.⁠” 엄마가 둘째의 모자를 고쳐 씌웠다⁠. “⁠저 이 학교 보내려고 수원 집 팔고 들어왔어요⁠. 큰애가 4학년이에요⁠. 졸업까지 이 년⁠. 과장님이 떠들어서 우리 단지 웃돈 빠지면⁠, 저 잔금 못 내요⁠. 잔금 못 내면 계약금 날리고⁠, 큰애 또 전학이에요⁠.⁠” 엄마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과장님도 애 있으시잖아요⁠. 1학년⁠. 여기 다니잖아요⁠. 과장님 애는 학교 지키시고⁠, 우리 애는요⁠?⁠”

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살았던 2023년 가을⁠, 이 엄마는 단톡방에 「⁠입주 포기합니다⁠」라고 썼다⁠. 형우는 짧은 글을 기억했다⁠. 지금 기억을 꺼내면⁠, 형우는 미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저주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잔금 대출 금리를 지금 한 번 더 계산해 보세요⁠.⁠” 형우가 말했다⁠. “⁠그것만 부탁드립니다⁠.⁠”

“⁠계산은 매일 해요⁠.⁠” 엄마가 둘째의 손을 끌었다⁠. “⁠매일 해서⁠, 매일 안 맞아서⁠, 그래서 웃돈이라도 믿는 거예요⁠.⁠”

엄마가 교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둘째가 뒤를 돌아보며 형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우도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형우는 증권 앱을 열려다 말았다⁠. 계좌는 해린의 냉동실 만두 봉지 안에 있었다⁠. 휴대전화에 뉴스 알림이 떴다⁠. 「⁠2차전지 소재주 연초 급등⁠… 벼리셀 3거래일 연속 상승⁠」 형우는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냉동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동네를 한 바퀴 더 걸었다⁠.

*

1월 26일⁠, 새마루은행 본부 12층 회의실의 창은 남산을 향해 있었다⁠. 긴 탁자 끝에 인사위원 세 사람이 앉았고⁠, 맞은편에 형우가 앉았다⁠. 덕규는 형우의 오른편 의자에 앉았다⁠. 지점장 진술을 하러 온 것이었다⁠. 덕규는 오늘은 골프 니트 대신 회색 정장을 입었다⁠.

인사위원장이 서류를 넘겼다⁠. “⁠반형우 과장⁠. 작년 6월 지점 고객 봉○○ 씨를 업무 시간 외에 택배 터미널에서 만나⁠, 다른 고객들의 거래 정보를 말해 준 사실이 있습니까⁠? 민원서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났습니다⁠. 다른 고객의 이름이나 연락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봉 고객님이 산 분양권의 웃돈이 부풀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점 승계 대출 서류에서 웃돈 일억이 넘는 거래 열네 건을 봤습니다⁠. 그중 열한 명이 같은 원룸 건물 주소를 씁니다⁠. 열네 건 모두 지점장님 예외 승인입니다⁠. 그 내용을 작년 10월 준법감시인께 보고드렸습니다⁠.⁠”

위원 한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위원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건은 오늘 안건이 아닙니다⁠.⁠” 위원장이 말했다⁠. “⁠오늘은 반 과장의 고객 정보 관리만 봅니다⁠.⁠”

덕규가 헛기침을 했다⁠. “⁠위원님들⁠. 반 과장 성실한 직원입니다⁠. 제가 아낍니다⁠. 다만 작년부터 좀 이상해졌어요⁠. 웨딩홀에서 사백 명 앞에서 고객 서류 얘기를 했고⁠, 업무와 상관없는 서류 보관실을 밤에 드나들었습니다⁠. 출입 기록 있습니다⁠. 반 과장 와이프가 그 단지 분양권을 웃돈 받고 팔았어요⁠. 우리 지점 대출로요⁠. 본인이 이득 본 단지를 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저는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지점장님⁠, 예외 승인 열네 건은요⁠.⁠”

“⁠반 과장⁠.⁠” 위원장이 형우를 보았다⁠. “⁠안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참고인 한 분 부르겠습니다⁠. 같은 지점 왕상칠 대리⁠.⁠”

문이 열리고 상칠이 들어왔다⁠. 상칠은 정장 깃이 한쪽만 접혀 있었다⁠. 들어오기 전 복도에서 덕규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형우는 상칠의 귀 끝이 빨간 것을 보고 짐작했다⁠.

“⁠왕 대리⁠. 반 과장이 업무 외 시간에 서류 보관실에서 휘담 리버파크 승계 서류를 열람한 것을 본 적 있습니까⁠?⁠”

상칠이 형우를 보지 않았다⁠. 탁자 위의 물컵만 보았다⁠.

“⁠네⁠. 봤습니다⁠.⁠”

“⁠업무상 필요한 열람이었습니까⁠?⁠”

“⁠그때는 반 과장님 담당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위원장이 펜을 놓았다⁠. 상칠이 의자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췄다⁠. 상칠의 손이 정장 바지 옆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저⁠, 하나만⁠.⁠” 상칠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서류들⁠, 담당자 확인 도장이 제 겁니다⁠. 지점장님이 예외 승인하실 때 제가 찍었습니다⁠. 열네 건 다요⁠. 그것도 적어 주세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덕규가 상칠을 돌아보았다⁠. 웃음이 없었다⁠. 위원장이 펜을 다시 들었다가⁠, 쓰지 않고 내려놓았다⁠.

“⁠왕 대리⁠, 나가 보세요⁠.⁠”

*

대기 발령은 석 달로 정해졌다⁠. 본부 건물 1층 로비에서 상칠이 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전문 옆 화분 뒤였다⁠. 상칠은 휴대전화를 형우 손에 쥐여 주었다⁠.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지점장 책상 서랍 안⁠, 두꺼운 백화점 상품권 봉투에 붙은 스티커⁠. 「⁠단비하우징⁠」 날짜가 찍혀 있었다⁠. 작년 설 연휴 전날⁠.

“⁠지난 설에 찍었어⁠. 왜 찍었는지 몰라⁠. 그냥 손이 찍었어⁠.⁠” 상칠이 말했다⁠. “⁠형⁠, 나 아까 안에서 반만 말했어⁠. 처음부터 다 말할 용기는 없었어⁠. 미안해⁠.⁠”

“⁠반이면 많이 말한 거야⁠.⁠”

“⁠형은 다 말할 거잖아⁠.⁠” 상칠이 회전문을 보았다⁠. 덕규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 먼저 갈게⁠. 같이 나가는 거 보이면 안 돼⁠.⁠” 상칠이 회전문을 밀고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형⁠, 벼리셀 올라⁠. 나 이번엔 안 팔았어⁠. 형 보고 배웠어⁠.⁠”

*

밤 열한 시⁠, 빌라 베란다에서 형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자마자 숨이 짧은 목소리가 들렸다⁠.

“⁠과장님⁠. 봉치윤이에요⁠.⁠” 치윤이 말했다⁠. 뒤에서 컨베이어 벨트 소리가 났다⁠. “⁠민원 넣은 거 저예요⁠. 실장님이 넣으라고 했어요⁠. 과장님이 다른 고객 정보 흘린 거라고⁠, 그렇게 써야 과장님이 더는 저한테 이상한 소리 안 한다고⁠. 죄송해요⁠. 대기 발령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괜찮습니다⁠.⁠”

“⁠안 괜찮으시잖아요⁠.⁠” 치윤이 숨을 골랐다⁠. “⁠과장님⁠, 근데 오늘 실장님한테 또 전화 왔어요⁠. 1503호 신고 가격을 다시 올리재요⁠. 정정 신고로 일억 구천⁠. 그러면 은행 감정가가 올라서 4월 잔금 대출이 더 나온대요⁠. 대신 서류에 서명하면 수고비 삼백 준대요⁠. 하솜이 이번 주에 출산 휴가 들어갔어요⁠. 다음 주가 예정일이에요⁠. 삼백이면⁠…⁠…⁠”

치윤의 말이 끊겼다⁠. 벨트 소리만 이어졌다⁠.

“⁠고객님⁠.⁠” 형우가 말했다⁠. “⁠실장님 만나서⁠, 그 말 한 번 더 해 달라고 하세요⁠. 녹음하세요⁠. 고객님이 대화하는 자리니까 고객님이 녹음하는 건 괜찮습니다⁠. 삼백을 받을지 말지는 그다음에 정하세요⁠.⁠”

“⁠녹음해서 뭐 하게요⁠?⁠”

“⁠다음 사람한테 안 넘어가게요⁠.⁠”

전화 너머가 한참 조용했다⁠. 치윤이 상자 하나를 탑차에 던지는 소리가 났다⁠.

“⁠과장님⁠. 이번엔 진짜죠⁠? 맞죠⁠?⁠”

형우는 시계를 보았다⁠. 세 시 십일 분⁠, 플러스 일억 구천만 원⁠. 숫자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번엔 제가 같이 갑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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