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65자)

초청전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자유로는 아침 일곱 시에도 막혔다⁠. 나는 운전석에 허리 쿠션을 끼우고⁠, 조수석에 엑스라지 조끼를 쇼핑백째 실었다⁠. 샛별을 데리고 나오는 길에 조끼도 돌려줄 생각이었다⁠. 왼쪽 창밖으로 한강 하구가 넓어졌고⁠, 강물 위에 겨울 햇빛이 하얗게 깔렸다⁠. 강 건너 낮은 산들이 북쪽이었다⁠. 라디오에서 교통 정보가 끝나자 아침 뉴스가 이어졌다⁠. 강화 해안 초소 공격⁠, 병사 둘 부상⁠, 원격전투단 확대⁠. 진행자는 이번 겨울 원격전투단이 민간 게이머를 처음 뽑는다고 했다⁠.

“⁠게이머 여러분⁠, 나라가 부릅니다⁠. 근데 허리는 챙기세요⁠.⁠”

진행자가 웃었고⁠, 나도 따라 웃다가 허리 쿠션을 고쳐 끼웠다⁠.

원격전투단 조종동은 파주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 논 사이로 난 길 끝에 흰 이층 건물이 있었고⁠, 철조망 안쪽 마당에 방송 중계차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위병소 병사가 내 이름을 듣고 태블릿을 넘겼다⁠.

“⁠봉탁진 님⁠, 참가자 목록에 없으십니다⁠.⁠”

“⁠참가하러 온 거 아니에요⁠. 사람 데리러 왔어요⁠.⁠”

“⁠사람은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

병사는 진지했다⁠. 나는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이거 돌려주러 왔어요⁠.⁠”

병사가 쇼핑백 안의 명찰을 보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삼 분 뒤 정문이 열렸다⁠.

*

대기실은 일층 복도 끝에 있었다⁠. 열두 명이 앉아 있었다⁠. 다들 스무 살 언저리였고⁠, 손목에 저마다 다른 색 보호대를 찼다⁠. 내가 문을 열자 열두 개의 고개가 한꺼번에 돌아왔다⁠.

“⁠철벽이다⁠.⁠”

“⁠와⁠, 실물⁠.⁠”

“⁠형⁠, 배 진짜 나오셨네요⁠.⁠”

맨 뒷줄의 금발 남자가 말했고⁠, 옆자리 여자가 금발의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배를 쓰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서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 실물로 들으니 조금 더 아팠다⁠.

샛별은 창가 맨 앞자리에 있었다⁠. 어제 방송의 분홍 후드티에 엠사이즈 조끼를 입고⁠, 귀에 작은 이어폰을 꽂은 채 손가락을 하나씩 꺾고 있었다⁠. 경기 전에 하는 버릇이었다⁠. 일곱 해 전 내가 가르친 버릇이었다⁠. 샛별은 나를 보고도 손가락 꺾기를 멈추지 않았다⁠.

“⁠스승님⁠, 아홉 시 경기예요⁠. 일곱 시에 출발하셨으면 늦으셨네요⁠.⁠”

“⁠나와⁠.⁠”

“⁠싫어요⁠.⁠”

나는 샛별의 팔을 잡았다⁠. 샛별이 팔을 빼지 않고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목 보호대 거꾸로 차셨어요⁠.⁠”

내려다보니 정말로 거꾸로였다⁠. 찍찍이가 손바닥 쪽으로 와 있었다⁠. 대기실 어딘가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는 샛별의 팔을 놓고 보호대를 고쳐 찼다⁠.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의 흰 타일에 반사돼 눈이 시렸다⁠.

“⁠지솔이 강화에 있어요⁠.⁠” 샛별이 먼저 말했다⁠. “⁠지난주에 다친 두 사람이 지솔이 선임이에요⁠. 지금 지솔이 혼자 두 사람 몫 경계 서요⁠. 밤에 세 시간 자요⁠.⁠”

“⁠그건 군대가 할 일이야⁠.⁠”

“⁠군대가 할 사람이 없대요⁠. 그래서 우리 부른 거래요⁠.⁠” 샛별이 조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오늘 경기는 훈련이래요⁠. 진짜 초소 지키는 연습⁠. 연습에서 일 등 하면 상금 오천 받고⁠, 정식 조종사 되면 초소 지키는 일 해요⁠. 엄마 가게 대출도 갚고요⁠.⁠”

“⁠샛별아⁠, 이건 게임이 아니야⁠.⁠”

“⁠알아요⁠.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샛별이 나를 보았다⁠. 일곱 해 동안 내 말을 끝까지 안 듣던 얼굴이었다⁠. 지금은 끝까지 듣고 나서 안 듣는 얼굴이었다⁠.

*

명곤은 이층 계단참에 있었다⁠. 어제의 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올라가자 명곤이 시계를 보았다⁠.

“⁠오셨습니까⁠?⁠”

“⁠샛별이 데려가겠습니다⁠.⁠”

“⁠나샛별 씨는 성인이고⁠, 서명했습니다⁠.⁠”

“⁠그럼 저도 넣어 주세요⁠. 옆자리에서 볼게요⁠.⁠”

“⁠참가자는 서명이 필요합니다⁠.⁠”

“⁠어제 서명 안 한다고 했잖아요⁠.⁠”

“⁠계약서는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 하루짜리 동의서입니다⁠.⁠”

“⁠하루짜리로 뭘 동의하는데요⁠?⁠”

“⁠경기에서 본 것을 밖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동의입니다⁠. 다른 참가자도 전부 했습니다⁠.⁠” 명곤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 이십 분 전입니다⁠. 봉탁진 씨가 안 들어가면 나샛별 씨 옆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습니다⁠.⁠”

혜운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국군 초청전 참가 동의서⁠」 계약서보다 얇았다⁠. 한 장짜리 앞면에 경기 규칙이 있었고⁠, 뒷면에 작은 글씨가 빽빽했다⁠. 나는 앞면만 읽고 서명했다⁠. 은퇴한 이듬해에도 이렇게 서명했다는 생각이 볼펜 끝에서 났다가 사라졌다⁠.

“⁠조끼는 입으셔야 합니다⁠.⁠” 혜운이 쇼핑백을 가리켰다⁠.

나는 회색 후드티 위에 카키색 조끼를 입었다⁠. 지퍼가 배에서 한 번 멈췄다가 올라갔다⁠. 계단참 유리창에 비친 모습은 등산 가다 길을 잃은 아저씨였다⁠.

대기실로 돌아가자 각진 얼굴의 주임원사가 칠판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임원사는 열두 명과 나를 한 번 훑어보았다⁠.

“⁠주목⁠. 지금부터 경기 규칙을 설명한다⁠. 질문은 설명이 끝난 뒤 손을 들고 한다⁠. 알겠나⁠?⁠”

열두 명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넵⁠.⁠”

“⁠ㅇㅋ요⁠.⁠”

“⁠네엡⁠.⁠”

주임원사의 눈썹이 한 칸 올라갔다⁠.

“⁠군대에서는 ‘⁠알겠습니다⁠’다⁠. 다시⁠.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다⁠. 경기는 이십 분⁠, 개인전이다⁠. 점수는 화면에 나온다⁠. 화장실은 지금 간다⁠. 경기 중에는 못 간다⁠.⁠”

맨 뒷줄의 금발이 손을 들었다⁠.

“⁠핑은 몇 나와요⁠?⁠”

“⁠핑이 뭔가⁠?⁠”

“⁠지연이요⁠. 누르고 나서 화면에 뜨기까지요⁠.⁠”

주임원사가 혜운을 보았고⁠, 혜운이 대신 대답했다⁠. “⁠0⁠.2초 안쪽입니다⁠.⁠”

금발이 휘파람을 불었다⁠. “⁠서버 좋네⁠.⁠”

“⁠휘파람 금지⁠. 그리고 여기는 서버가 아니고 부대다⁠.⁠”

샛별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스승님은 질문 없으세요⁠?⁠”

나는 손을 들었다⁠. 주임원사가 내 얼굴을 보고⁠, 조끼의 명찰을 보았다⁠.

“⁠봉탁진 참가자⁠.⁠”

“⁠화면 속 표적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화면에서 온다⁠.⁠”

대기실이 잠깐 조용했다가 누군가 키득거렸다⁠. 주임원사는 웃지 않았다⁠. 혜운은 들고 있던 서류철을 한 장 넘겼다⁠.

*

이층 조종실은 새하얬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흰색이었고⁠, 넓은 창으로 들어온 겨울 햇빛이 방 전체를 밝혔다⁠. 조종석 스무 개가 두 줄로 놓였고⁠, 자리마다 화면 셋과 게임 패드처럼 생긴 조종기가 있었다⁠. 뒤쪽 벽의 큰 화면에 와글TV 방송이 떠 있었고⁠, 화면 옆에서 외신 카메라 두 대가 삼각대 위에 올라 있었다⁠. 경기 화면 위로 채팅창이 흘렀다⁠.

「⁠철벽 참전 ㄷㄷㄷ⁠」 「⁠사십 대 조끼핏 실화⁠」 「⁠사제 대결 가자⁠」 「⁠탁진엄마⁠: 허리쿠션챙겼나⁠」

나는 샛별 옆 조종석에 앉았다⁠. 의자가 게임용보다 딱딱했다⁠. 조종기를 쥐었다⁠. 손잡이에 고무가 감겨 있었고⁠, 엄지가 닿는 자리에 단추가 둘 있었다⁠. 하나는 흰색⁠,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명곤이 조종실 앞쪽 단에 올라 우리 열세 명을 내려다보았다⁠. 혜운이 작은 종이를 건넸고⁠, 명곤은 종이를 한 번 보고 접었다⁠.

“⁠참가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손이 나라를 지킵니다⁠. 다들⁠, 어⁠, 캐리하시기 바랍니다⁠.⁠”

조종석 열두 개에서 웃음 참는 소리가 났다⁠. 금발이 작게 장군님 캐리 발음 좋다고 말했고⁠, 옆자리 여자가 금발의 의자를 발로 찼다⁠. 명곤은 못 들은 얼굴로 단에서 내려왔다⁠. 나는 웃지 않았다⁠. 명곤이 접은 종이의 뒷면이 비쳤다⁠. 「⁠캐리 = 이끌어 이기다⁠」라고 적혀 있었다⁠.

화면에 지도가 떴다⁠. 강 하구를 단순하게 그린 지도였다⁠. 아래편에 우리 초소가 성채 모양 아이콘으로 있었고⁠, 강 건너에서 붉은 세모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갈대밭 사이로 트럭 아이콘 하나가 천천히 움직였다⁠. 점수표가 화면 위에 붙었다⁠. 세모를 떨어뜨리면 십 점⁠, 트럭은 백 점⁠.

“⁠시작합니다⁠.⁠” 혜운의 목소리가 천장 스피커에서 나왔다⁠.

붉은 세모 셋이 성채로 내려왔다⁠. 나는 흰 단추에 엄지를 얹고 기다렸다⁠. 세모들이 각자 다른 높이로 들어오다가 성채 앞에서 한 줄로 모였다⁠. 한 줄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아홉 성채에서도 있었다⁠. 한 줄이 되자마자 붉은 단추를 눌렀고⁠, 세모 셋이 차례로 꺼졌다⁠. 손바닥에 진동이 왔다⁠. 게임 패드의 진동보다 반 박자 늦었고⁠, 묵직했다⁠.

옆자리의 샛별은 성채를 두고 강 건너로 날아갔다⁠. 세모를 쫓지 않았다⁠. 트럭을 향해 곧장 갔다⁠.

“⁠샛별아⁠, 성채 비었어⁠.⁠”

“⁠스승님이 있잖아요⁠.⁠”

세모가 더 왔다⁠. 나는 막았다⁠. 다섯⁠, 일곱⁠, 아홉⁠. 손목이 저렸고 허리가 의자 등받이를 찾았다⁠. 아홉 번째를 떨어뜨렸을 때 화면이 한 번 흔들렸다⁠. 일 초쯤⁠, 지도 그림이 벗겨지고 다른 것이 보였다⁠. 회색 땅⁠, 바람에 눕는 갈대⁠, 갈대 사이에서 움직이는 하얗고 흐린 덩어리 하나⁠. 사람 모양이었다⁠. 다시 지도가 덮였다⁠.

“⁠모 소령님⁠, 화면이 깨졌는데요⁠.⁠”

“⁠배경 영상이 섞였습니다⁠. 계속하십시오⁠.⁠”

샛별의 화면에서 트럭 아이콘이 커졌다⁠. 트럭은 갈대밭 끝의 작은 다리로 올라갔다⁠. 샛별의 엄지가 붉은 단추 위에서 한 번 멈췄다⁠.

“⁠샛별아⁠.⁠”

“⁠훈련이에요⁠, 스승님⁠.⁠”

샛별이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붉은 단추를 눌렀다⁠. 트럭이 하얗게 번쩍이고 꺼졌다⁠. 점수표에서 샛별의 이름이 맨 위로 올라갔다⁠. 뒤쪽 벽 화면은 조용했다⁠. 화면 속에서는 아직 우리가 조종석에 앉는 중이었다⁠.

나는 열한 번째 세모를 떨어뜨렸다⁠. 성채는 한 칸도 깎이지 않았다⁠. 경기 종료 알림이 떴다⁠.

*

점수표는 샛별이 일 등⁠, 내가 이 등이었다⁠. 나는 백십 점이었고 샛별은 백사십 점이었다⁠. 명곤이 조종실로 들어와 샛별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고 나에게 왔다⁠.

“⁠열한 대⁠. 한 대도 안 놓쳤습니다⁠.⁠”

“⁠한 대도 안 때렸고요⁠.⁠”

“⁠압니다⁠. 마흔한 번째로 봤습니다⁠.⁠”

명곤은 외신 카메라 앞으로 가서 짧게 인터뷰를 했다⁠. 영어였고⁠, 사람이라는 낱말이 두 번 들렸다⁠.

경기가 끝나고 이십 분쯤 지나서야 뒤쪽 벽 화면의 채팅창이 터졌다⁠. 화면 속 샛별이 이제 막 붉은 단추를 누르고 있었다⁠. 조종실의 샛별은 벌써 조끼 지퍼를 내리는 중이었다⁠.

「⁠샛별 미쳤다⁠」 「⁠백 점 한 방 ㅋㅋㅋ⁠」 「⁠만 원 후원 — 철벽 형 제자한테 짐 ㅋㅋ⁠」

나는 벽 화면 속 하얀 번쩍임과 조종실 창밖의 하얀 들판을 번갈아 보았다⁠. 방송 속 시계와 내 손목시계가 이십 분 어긋나 있었다⁠.

샛별이 조끼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고 나를 보았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스승님은 막기만 했잖아요⁠. 막기만 하면 안 끝나요⁠. 내일 또 와요⁠.⁠”

“⁠끝내는 게 다는 아니야⁠.⁠”

“⁠지솔이한텐 다예요⁠.⁠”

샛별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내게 내밀었다⁠. 동생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누나 오늘 오전 초소 조용함 ㅋ 드론 한 대도 안 옴⁠. 경기 잘해⁠」

메시지 옆의 시각은 아홉 시 십구 분이었다⁠. 내가 열한 번째 세모를 떨어뜨리고 일 분 뒤였다⁠.

“⁠거봐요⁠. 지솔이도 응원하잖아요⁠.⁠”

샛별은 상금 증서를 들고 중계차 카메라 앞으로 갔다⁠. 나는 조끼를 벗지 못했다⁠. 지퍼가 배에서 다시 멈췄다⁠.

복도로 나오자 혜운이 따라 나왔다⁠.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참가 확인서 사본이었다⁠. 혜운은 종이를 건네면서 나를 보지 않고 창밖 들판을 보았다⁠.

“⁠봉탁진 씨가 막은 열한 대⁠, 진짜 기체였습니다⁠.⁠”

나는 종이를 쥔 채 혜운의 옆얼굴을 보았다⁠.

“⁠막은 초소도 진짜였습니다⁠. 강화 북쪽 해안⁠.⁠” 혜운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방송은 이십 분 늦게 나갔습니다⁠.⁠”

종이 뒷면의 작은 글씨가 손끝에 오돌토돌 느껴졌다⁠. 나는 아직 뒷면을 읽지 않았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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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기원2026.11.01· 2화

    운전석에 허리 쿠션 끼우는 은퇴 게이머라니, 마흔 살의 현실이 첫 줄부터 와요.

    • 여오령작가2026.11.01

      탁진 씨 허리는 결승 때부터 아팠어요. 손은 아직 스물아홉인데 허리는 마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