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38자)

지연 방송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조종동 뒤편 식당은 열한 시 반에 문을 열었다⁠. 쟁반을 든 게이머 열두 명이 한 줄로 배식대를 지났다⁠. 제육볶음⁠, 콩나물국⁠, 깍두기⁠, 요구르트 하나⁠. 금발은 요구르트를 두 개 집었다가 배식병의 눈과 마주치고 하나를 내려놓았다⁠.

“⁠여기 리필 안 돼요⁠?⁠”

“⁠군대는 리필 없습니다⁠.⁠”

“⁠무한 리필 아니면 패치해 주세요⁠.⁠”

배식병이 국자를 들어 금발의 국그릇에 콩나물국을 한 번 더 부었다⁠. 금발이 감동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쟁반을 들고 창가 자리로 갔다⁠. 샛별이 상금 증서를 쟁반 옆에 펴 놓고 제육을 먹고 있었다⁠. 증서 귀퉁이에 고추장이 한 점 묻었다⁠.

식당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열두 시 뉴스가 시작됐다⁠. 첫 소식은 강 하구였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지나갔다⁠.

「⁠오늘 오전 9시 15분 강 하구 건너 북쪽 보급 차량 원격 타격 — 원격전투단 “⁠민간 조종사 첫 성과⁠”⁠」

앵커 뒤로 영상이 나왔다⁠. 흑백에 가까운 회색 화면이었다⁠. 갈대밭 끝의 작은 다리⁠, 다리 위로 올라가는 트럭 한 대⁠. 화면 가운데에 십자선이 있었다⁠. 트럭이 하얗게 번쩍였다⁠. 번쩍인 자리에서 연기가 올라갔다⁠. 아이콘은 없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숟가락 하나가 쟁반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금발의 숟가락이었다⁠.

“⁠저거 아까 그 다리 아니에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앵커가 외신 보도를 덧붙였다⁠. 외국 방송들이 게이머가 지킨 아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했다⁠. 사람이 다치지 않는 전쟁의 새 얼굴이라고도 했다⁠.

샛별이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샛별은 쟁반을 그대로 두고 식당을 나갔다⁠. 상금 증서가 쟁반 옆에 남았다⁠. 고추장 묻은 귀퉁이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나는 샛별의 쟁반에서 상금 증서를 집었다⁠. 오천만 원이라는 글자 옆에 고추장이 번져 있었다⁠. 휴지로 닦을수록 붉은 자국이 넓어졌다⁠. 나는 닦기를 그만두고 증서를 반으로 접어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

사령관실은 이층 복도 끝에 있었다⁠. 문 앞에서 혜운이 막았다⁠. 나는 혜운의 어깨 너머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났다⁠.

명곤은 책상 앞에서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책상 귀퉁이에 어제 어머니가 준 귤이 놓여 있었다⁠. 까지 않은 채였다⁠.

“⁠게임이라면서요⁠.⁠”

“⁠게임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초청전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콘 씌워서 보여 주면 게임이죠⁠. 샛별이가 누른 건 트럭이었어요⁠. 진짜 트럭⁠.⁠”

“⁠진짜 트럭이었습니다⁠. 강화로 드론 띄우는 진지에 탄약 싣고 가던 트럭이었습니다⁠.⁠” 명곤이 도장을 내려놓았다⁠. “⁠운전병이 있었습니다⁠.⁠”

명곤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명곤이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지난주 강화 해안 초소였다⁠. 경계 초소의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바닥에 방탄모 하나가 뒤집혀 있었다⁠. 방탄모 안쪽에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집에 가자⁠」

“⁠지난주 이 초소에서 둘이 다쳤습니다⁠. 하나는 왼쪽 눈을 잃었습니다⁠. 스물한 살입니다⁠.⁠” 명곤이 사진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오늘 오전에는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봉탁진 씨가 열한 대를 막았고⁠, 나샛별 씨가 다음 열한 대를 실어 올 트럭을 멈췄습니다⁠.⁠”

“⁠말해 줬어야죠⁠.⁠”

“⁠말하면 손이 떨립니다⁠. 떨리는 손은 늦습니다⁠. 늦으면 초소가 맞습니다⁠.⁠”

“⁠아까 경기 중에 화면이 한 번 깨졌어요⁠. 갈대밭에 사람이 있었어요⁠.⁠”

“⁠있었습니다⁠. 진지 경계병입니다⁠.⁠” 명곤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나샛별 씨의 트럭과는 이백 미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오후 정찰 영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명곤은 위로하려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하듯 말했다⁠. 나는 오후 정찰 영상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하얀 덩어리를 떠올렸다⁠.

“⁠그럼 떨게 두세요⁠. 사람 죽이는 손이면 떨어야죠⁠.⁠”

명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봉탁진 씨⁠. 강 건너 사람은 떨지 않습니다⁠.⁠”

방 안에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방송에서 말할 거예요⁠. 오늘 오전 경기가 뭐였는지⁠.⁠”

“⁠동의서 뒷면은 읽으셨습니까⁠?⁠”

읽지 않았다⁠. 명곤은 내 얼굴에서 답을 읽었다⁠.

“⁠경기에서 보고 들은 것은 군사 기밀입니다⁠. 말하면 처벌받습니다⁠. 그건 봉탁진 씨 일이고요⁠.⁠” 명곤이 귤을 집어 손바닥에서 한 번 굴렸다⁠. “⁠나샛별 씨도 같은 서약을 했습니다⁠. 봉탁진 씨가 방송에서 말하는 날⁠, 시청자 삼십만은 나샛별이라는 이름 옆에 운전병을 붙입니다⁠. 나샛별 씨는 그걸 고른 적이 없습니다⁠.⁠”

“⁠그걸 고르게 안 한 게 장군님이잖아요⁠.⁠”

“⁠압니다⁠. 그 무게는 제가 집니다⁠. 나샛별 씨 이름은 봉탁진 씨가 지키십시오⁠.⁠”

명곤은 귤을 다시 책상 귀퉁이에 내려놓았다⁠. 껍질에 엄지 자국이 하나 났다⁠.

*

샛별은 조종동 뒤 마당 벤치에 있었다⁠. 들판에서 바람이 불어와 단발머리를 흩뜨렸다⁠. 얼굴이 하얬고⁠, 속이 불편한지 손바닥으로 명치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 비닐봉지에서 생수를 꺼내 뚜껑을 따서 건넸다⁠. 샛별이 한 모금 마시고 입을 헹궜다⁠.

“⁠모 소령님이 리플레이 보여 줬어요⁠.⁠” 샛별이 먼저 말했다⁠. “⁠스승님 화면이요⁠. 아이콘 벗긴 거⁠.⁠”

“⁠봤어⁠?⁠”

“⁠세모 열한 개가 다 기체였어요⁠. 날개 넷 달린 거⁠. 다 강화로 가고 있었어요⁠. 지솔이 초소로요⁠.⁠” 샛별이 생수병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홉 시 십구 분에 지솔이가 조용하다고 문자 보냈잖아요⁠. 스승님이 조용하게 만든 거였어요⁠.⁠”

“⁠그리고 넌 트럭을 때렸고⁠.⁠”

“⁠네⁠. 저는 트럭을 때렸어요⁠.⁠”

샛별이 생수병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운전하던 사람 얼굴은 못 봤어요⁠. 아이콘이었으니까⁠. 근데 그 트럭이 오늘 안 멈췄으면 내일 세모가 스물두 개 왔을 거래요⁠. 스승님 혼자 스물두 개 막을 수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흔 살의 손목으로는 못 막았다⁠.

“⁠저 남을래요⁠.⁠”

“⁠샛별아⁠.⁠”

“⁠다음엔 볼 거예요⁠. 아이콘 끄고⁠, 사람이면 사람인 거 보고 누를래요⁠. 모르고 누르는 건 오늘 한 번으로 끝낼래요⁠.⁠” 샛별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가가 빨갰지만 목소리는 평소대로 빨랐다⁠. “⁠그리고 상금은 받을 거예요⁠. 엄마 가게 대출 이자가 달마다 백이십이에요⁠. 스승님은 몰랐죠⁠?⁠”

몰랐다⁠. 일곱 해 동안 샛별의 방송을 봤는데⁠, 샛별 어머니 가게의 대출 이자는 몰랐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어머니였다⁠.

“⁠밥은 뭇나⁠?⁠”

“⁠먹었어요⁠. 제육이요⁠.⁠”

“⁠니 언제 오노⁠?⁠”

나는 샛별을 보았다⁠. 샛별은 생수병을 쥐고 들판 끝을 보고 있었다⁠. 들판 끝 너머가 강이었다⁠.

“⁠며칠 있다 갈게요⁠.⁠”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가 한참 말이 없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집 텔레비전에서도 강 하구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파스 챙기라⁠.⁠”

전화를 끊고 보니 샛별이 생수병을 내게 내밀고 있었다⁠. 내가 준 생수였고⁠, 반이 남아 있었다⁠.

“⁠스승님도 드세요⁠. 얼굴 하얘요⁠.⁠”

나는 생수를 받아 마셨다⁠. 미지근했다⁠. 샛별이 오래 쥐고 있던 병이었다⁠. 들판에서 바람이 한 번 더 불었고⁠, 조종동 이층 넓은 창에 낮 해가 하얗게 박혀 있었다⁠.

*

계약서는 열네 장이었다⁠. 이번에는 첫 장에서 끝 장까지 다 읽었다⁠. 명곤은 책상 맞은편에서 기다렸다⁠. 혜운이 커피를 세 번 날랐고⁠, 명곤은 세 잔을 다 마셨다⁠. 열한 장째에서 내가 고개를 들자 명곤도 고개를 들었다⁠.

“⁠아직입니까⁠?⁠”

“⁠열한 장이요⁠. 장군님 팬심이 계약서까지 길게 만들었네요⁠.⁠”

“⁠법무관이 길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쪽까지 읽고 나서 볼펜을 쥐었다⁠. 서명하기 전에 조건을 말했다⁠.

“⁠요격만 합니다⁠. 제 조종석에는 지상 타격을 안 붙여요⁠. 그리고 제 화면에서 아이콘 다 떼 주세요⁠. 실제 화면으로 볼게요⁠. 샛별이 화면도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곤은 생각하는 데 일 초도 쓰지 않았다⁠. 너무 빨라서 나는 볼펜을 쥔 채 명곤을 보았다⁠.

“⁠바로요⁠?⁠”

“⁠요격은 늘 모자랍니다⁠. 봉탁진 씨가 막는 열한 대는 다른 조종사가 안 막아도 되는 열한 대입니다⁠.⁠” 명곤이 계약서를 내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아이콘은 원래 오늘까지만 씌우려고 했습니다⁠.⁠”

서명했다⁠.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사령관실에 오래 남았다⁠. 명곤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보호대 찬 손으로 악수를 했다⁠. 명곤의 손바닥은 마른 종이 같았다⁠.

명곤이 계약서를 혜운에게 넘기는 동안 나는 휴대전화로 와글TV를 열었다⁠. 내 채널 게시판에 글이 몇백 개 쌓여 있었다⁠. 지연 방송으로 초청전을 본 시청자들이었다⁠.

「⁠형 2등 축하⁠」 「⁠형 진짜 군대 감⁠?⁠」 「⁠뉴스 봐 봐 형이 막은 거 진짜 초소래⁠」 「⁠탁진엄마⁠: 파스⁠」

공지를 하나 올려야 했다⁠. 「⁠당분간 방송을 쉽니다⁠.⁠」라고 썼다가 지웠다⁠. 쉬는 까닭을 물을 것이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라고 썼다가 지웠다⁠. 마흔 살 아저씨가 쓰기에는 너무 비장했다⁠. 「⁠손목 치료로 당분간 쉽니다⁠.⁠」라고 썼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올리자마자 첫 댓글이 달렸다⁠.

「⁠손목 치료하러 파주 감⁠? ㅋㅋ⁠」

“⁠환영합니다⁠, 철벽⁠.⁠”

“⁠별명 부르지 마세요⁠. 장군님이 부르면 이상해요⁠.⁠”

“⁠알겠습니다⁠. 봉 조종사⁠.⁠”

봉 조종사는 더 이상했다⁠. 혜운이 문 옆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

숙소는 조종동 뒤편 낮은 건물 이층이었다⁠. 방마다 이층 침대 하나와 철제 사물함 둘이 있었다⁠. 금발이 내 룸메이트였다⁠. 금발은 벌써 위 칸에 누워 휴대전화로 오늘 오전 뉴스 영상을 돌려 보고 있었다⁠. 같은 장면을 돌리고 또 돌렸다⁠. 트럭이 번쩍이는 데서 멈추고⁠, 다시 앞으로 감았다⁠.

“⁠형⁠. 이거 진짜예요⁠?⁠”

“⁠진짜야⁠.⁠”

금발이 휴대전화를 가슴에 엎어 놓고 천장을 보았다⁠. 한참 뒤에 말했다⁠.

“⁠저 내일 요격 신청할래요⁠.⁠”

금발이 몸을 일으키더니 베개 밑에서 파란 손목 보호대를 꺼냈다⁠. 매직펜도 꺼냈다⁠.

“⁠형⁠, 근데 여기 사인 하나만요⁠. 중학교 때부터 형 경기 봤어요⁠.⁠”

“⁠중학교 때⁠?⁠”

“⁠형 은퇴할 때 저 중2였어요⁠.⁠”

나는 매직펜 뚜껑을 열다가 멈췄다⁠. 중학교 이 학년이 지금 스물넷이 되어 조종석에 앉았다⁠. 파란 보호대에 「⁠철벽⁠」 두 글자를 썼다⁠. 금발은 보호대를 손목에 차 보고 만족한 얼굴로 다시 누웠다⁠. 누워서 한참 천장을 보다가 말했다⁠.

“⁠형⁠. 트럭 운전하던 사람도 누가 사인해 준 보호대 같은 거 있었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발도 더 묻지 않았다⁠.

나는 사물함 문을 열었다⁠. 문 안쪽에 「⁠봉탁진⁠」 이름표가 붙어 있었고⁠, 철제 옷걸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아침부터 배에서 두 번 멈췄던 지퍼를 내리자 숨이 한 번에 쉬어졌다⁠. 옷걸이에 꿰려고 조끼를 뒤집었더니⁠, 어깨 찍찍이 자리에 아침에는 못 보던 패치가 붙어 있었다⁠. 검은 바탕에 흰 실로 「⁠철벽⁠」 처음부터 붙어 있었고⁠, 나는 보지 않았다⁠.

안쪽 목 뒤에서 하얀 태그가 뒤집혔다⁠. 세탁 표시 아래 작은 글씨로 제작 날짜가 찍혀 있었다⁠.

「⁠제작 2035⁠. 11⁠. 02⁠」

일산 내 방에서 계약서를 처음 본 날보다 한 달 앞선 날짜였다⁠. 엑스라지도⁠, 명찰도⁠, 한 달 전에 정해져 있었다⁠. 나는 태그를 엄지로 문질렀다⁠. 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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