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73자)

여덟 시 반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8월 12일 밤 아홉 시 반⁠, 망원 유수지 아래의 접힌 골목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귀를 댔다⁠. 균열의 바닥은 아스팔트처럼 보였지만 귀를 대면 미지근하고 말랑했다⁠. 살갗 같았다⁠. 하솜이 뒤에서 내 등을 지켰고⁠, B급 둘이 골목 양 끝을 막았다⁠.

들숨 십오 초⁠. 멈춤 구 초⁠. 날숨 십일 초⁠.

멈춤이 매일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7월 13일에는 거의 없었다⁠. 8월 7일에 사 초⁠, 오늘 구 초⁠. 멈춤 동안 핵의 박동이 바뀌었다⁠. 날숨 끝에서 한 번 뛰던 박동이 멈춤 한가운데서 뛰었다⁠. 천천히⁠, 무겁게⁠. 걷던 사람이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소리였다⁠.

핵은 물가에 닿으면 멈춘다⁠. 멈추고 나서 가장 깊은 데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동안에는 길이 하나뿐이다⁠. 내려가는 길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핵 앞에 선다⁠. 놓치면 핵은 물 밑으로 들어가고⁠, 5등급 균열은 한강을 품은 채 몇 해를 버틴다⁠. 협회 교범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내 귀가 바닥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멈춤이 하루에 반 초씩 늘었다⁠. 이십 초가 되는 밤에 핵은 망원 한강공원 둔치 밑에서 완전히 멈춘다⁠. 손가락을 접어 날짜를 짚었다⁠. 8월 26일 밤⁠.

“⁠무슨 날이에요⁠?⁠” 하솜이 물었다⁠. 내가 손가락을 접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핵이 멈추는 날입니다⁠.⁠”

“⁠그럼 끝나는 날이네요⁠.⁠”

“⁠끝내야 하는 날입니다⁠.⁠” 나는 바닥에서 귀를 뗐다⁠. “⁠멈춘 핵이 가장 깊은 데까지 내려가는 데 밤새 걸립니다⁠. 따라가는 길이 끊기면 안 됩니다⁠. 밤 여덟 시부터 아침까지⁠.⁠”

손가락을 하나 더 접었다⁠. 8월 27일 아침⁠. 혜결이 본부장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었다⁠.

*

8월 13일 아침⁠, 작전 천막에서 주완은 내 말을 끝까지 들었다⁠.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지도 위의 망원 한강공원에 붉은 핀을 꽂았다⁠.

“⁠26일 밤 여덟 시부터 27일 아침까지⁠. 권 헌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갑니다⁠.⁠”

“⁠27일 아침 아홉 시에 아내가 승진 발표를 합니다⁠.⁠”

“⁠압니다⁠. 변 선생이 보내 주셨습니다⁠.⁠” 주완이 담담하게 말했다⁠. 단톡방 사건 뒤로도 하솜의 보고가 끊기지 않았다는 뜻인지⁠, 사건 전에 받아 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날 하루입니다⁠. 넉 달 반을 아빠로 사셨습니다⁠. 하루만 아빠를 쉬십시오⁠.⁠”

“⁠하루만 쉬면 아내가 두 해를 쉽니다⁠.⁠”

“⁠두 해 뒤에 승진하시면 됩니다⁠. 핵은 두 해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오사카는 핵을 한 번 놓쳐서 한 달째입니다⁠. 2위가 거기 묶여 있습니다⁠. 마포가 오사카가 되면 권 헌터도 거기 묶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주완은 늘 맞는 말을 했다⁠. 맞는 말만 골라서 했다⁠. 나는 지도 위의 붉은 핀을 보다가 물었다⁠.

“⁠운비 엄마한테 저를 재우라고 하셨습니까⁠?⁠”

주완의 손이 핀에서 떨어졌다⁠. 천막 안의 무전기가 지지직거렸다⁠. 주완은 부정하지 않았다⁠.

“⁠열 시 반이 되면 권 헌터는 나오려고 할 겁니다⁠. 그날만큼은 나오면 안 됩니다⁠. 본인이 못 정하시면 다른 사람이 정해 드려야 합니다⁠.⁠” 주완이 내 눈을 보았다⁠. 공손한 눈이었다⁠. “⁠깨어나면 핵은 깨져 있을 겁니다⁠. 그러면 권 헌터는 열 시 반을 넘긴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재워진 사람이 됩니다⁠. 본인 탓이 아닙니다⁠. 아내분께도 그렇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그게 부장님이 따님한테 하신 방식입니까⁠? 본인 탓이 안 되게⁠, 대신 정해 주는 거⁠.⁠”

주완의 턱 근육이 움찔했다⁠. 이번에는 두 번⁠.

“⁠작전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26일 밤 여덟 시⁠. 처음부터 끝까지⁠.⁠”

*

오후 세 시⁠, 보급 천막 돗자리에서 하솜이 운비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 예봄이 기저귀를 갈았다⁠. 둘 다 손을 쉬지 않고 말했다⁠. 엄마들은 우리 둘을 보고 멀찍이 떨어져 미숫가루를 탔다⁠. 단톡방 사건 뒤로 엄마들은 하솜 옆자리를 하나씩 비워 두었다⁠.

“⁠발표 날짜⁠, 부장님이 알고 계시더군요⁠.⁠”

하솜의 손이 물병을 쥔 채 멈췄다⁠. “⁠그건 단톡방 일 전에 보낸 거예요⁠. 7월 말에요⁠. 아내분 USB 갖다주신 날⁠.⁠” 하솜이 운비 입가를 닦았다⁠. “⁠그날 뒤로는 하나도 안 보냈어요⁠. 부장님이 어제 두 번 전화했는데 안 받았어요⁠.⁠”

“⁠안 받으면 수석 자리는요⁠?⁠”

“⁠모르겠어요⁠.⁠” 하솜이 운비를 무릎에 앉혔다⁠. “⁠안 받는 것도 대답이래요⁠. 운비 아빠가 그러더라고요⁠. 대리운전 하면 손님 전화 안 받는 것도 대답이라고⁠.⁠”

예봄이 기저귀 테이프가 쩍 소리를 내며 붙었다⁠. 하솜이 테이프 소리에 웃었다⁠. 처음보다 조금 덜 떨리는 웃음이었다⁠.

*

8월 13일 밤⁠, 우리는 속삭이며 싸웠다⁠. 예봄이가 열 시에 겨우 잠들었고⁠, 거실과 아기 방 사이에는 문이 없었다⁠. 혜결은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발표 자료를 열어 놓고 있었다⁠. 화면에 「⁠하반기 간편식 브랜드 재정비안⁠」이라고 떠 있었다⁠.

“⁠내가 포기할게⁠.⁠” 혜결이 속삭였다⁠.

“⁠포기한다는 말 쓰지 마⁠.⁠”

“⁠그럼 뭐라고 해⁠? 양보⁠? 내가 양보할게⁠.⁠”

“⁠양보도 쓰지 마⁠. 당신 발표잖아⁠.⁠”

“⁠그럼 당신이 반일 깨게⁠? 핵 깨고 휴직 깨고 다 깨게⁠?⁠”

“⁠그날 하루만⁠.⁠”

“⁠하루만이 제일 무서운 말이야⁠. 우리 아빠도 하루만 하다가 졸업식을 놓쳤어⁠.⁠” 혜결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화면 빛이 혜결 턱 밑에서 가늘어졌다⁠. “⁠당신 희생하지 마⁠.⁠”

“⁠희생이라는 말도 쓰지 마⁠.⁠”

“⁠말꼬리 잡지 마⁠.⁠”

“⁠당신이 먼저 잡았어⁠. 도와준다는 말 쓰지 말라고⁠.⁠”

“⁠그건 맞는 말꼬리고⁠!⁠”

혜결의 속삭임이 잠깐 속삭임이 아니게 되었다⁠. 아기 방에서 예봄이가 뒤척였다⁠. 우리 둘 다 숨을 멈췄다⁠. 나는 예봄이 숨을 들었다⁠. 들이쉬는 데 이 초⁠, 내쉬는 데 삼 초⁠. 다시 잠으로 내려가는 숨이었다⁠. 손바닥을 펴서 혜결에게 괜찮다고 했다⁠. 혜결이 소리 없이 이마를 식탁에 댔다⁠.

식탁 위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영상 통화였다⁠. 화면에 「⁠장모님⁠」이 떴다⁠. 열 시 반에 영상 통화를 하는 분이 아니었다⁠. 혜결이 받았다⁠. 화면 가득 장모님 얼굴이 들어왔다⁠. 무릎 보호대를 찬 다리가 화면 아래에 보였다⁠.

“⁠단톡방에 다 나오더라⁠. 우리 사위 허리 보호대⁠.⁠”

“⁠엄마가 그 단톡방을 어떻게 봐⁠?⁠”

“⁠결희 엄마가 보내 주더라⁠. 결희 엄마랑 나랑 같은 노인정 단톡방이다⁠. 대구 노인정이랑 망원동 노인정이랑 합친 방⁠.⁠” 장모님이 목발을 화면에 들어 보였다⁠. “⁠26일에 올라갈까⁠? 내가 애 보면 되잖아⁠.⁠”

“⁠엄마 무릎으로 계단 못 올라와⁠. 우리 십이 층이야⁠.⁠”

“⁠엘리베이터 있잖아⁠.⁠”

“⁠엘리베이터가 균열 때문에 자주 서⁠.⁠”

“⁠그럼 사위가 업고 올라가면 되지⁠. S급이라며⁠.⁠”

혜결이 이마를 식탁에서 떼고 웃었다⁠. 속삭이며 웃느라 어깨가 흔들렸다⁠. 나도 웃었다⁠. 장모님은 영문을 모르고 같이 웃었다⁠. 대구의 노인정과 망원동의 놀이터가 같은 단톡방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균열 소문은 이미 대구까지 내려가 있었다⁠.

장모님 전화를 끊고 혜결이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화면 빛이 혜결 얼굴을 다시 덮었다⁠.

“⁠나 발표 간다⁠.⁠” 혜결이 말했다⁠. 이번에는 속삭이지 않았다⁠. 낮지만 또렷했다⁠. “⁠당신도 들어가⁠. 둘 다 안 내려놔⁠.⁠”

“⁠그럼 예봄이는⁠?⁠”

“⁠그걸 찾아⁠. 당신 귀 좋잖아⁠. 핵 멈추는 날도 들었다며⁠. 방법도 들어 봐⁠.⁠” 혜결이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재련이 예봄이 볼을 칠 때와 같은 손가락이었다⁠. “⁠당신 혼자 찾으라는 거 아니야⁠. 놀이터에 사람 많잖아⁠.⁠”

*

8월 14일 아침 아홉 시⁠, 보급 천막에서 결희가 당번표를 붙이고 있었다⁠. 천막 기둥에 테이프로 붙인 종이였다⁠. 「⁠미숫가루 1조 9⁠~11시 / 2조 11⁠~13시 / 3조 13⁠~15시⁠」 조마다 엄마 둘씩⁠. 두 시간마다 사람이 바뀌었다⁠. 바뀌는 자리에서 앞 조가 뒤 조에게 남은 미숫가루 양과 우는 아이 이름을 말해 주었다⁠. 「⁠2조⁠: 쌍둥이 동생 오늘 예민함⁠. 사과 퓌레 금지⁠.⁠」 결희의 글씨였다⁠.

당번표를 오래 보았다⁠. 결희가 테이프를 이로 끊다가 나를 보았다⁠.

“⁠왜요⁠? 예봄이 아빠도 당번 하시게요⁠?⁠”

“⁠두 시간마다 바뀌네요⁠.⁠”

“⁠두 시간 넘으면 다들 짜증 내요⁠. 사람은 두 시간이 한계예요⁠. 물류센터에서도 두 시간마다 교대했어요⁠.⁠”

“⁠바뀌는 자리에서 말을 넘기고요⁠.⁠”

“⁠안 넘기면 다음 조가 사과 퓌레 주잖아요⁠. 그러면 쌍둥이 동생이 뒤집어져요⁠.⁠” 결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나는 결희의 당번표를 휴대전화로 찍었다⁠. 결희가 「⁠사진 첨부 필수⁠」라는 자기 공지를 떠올렸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

열한 시⁠, 작전 천막⁠. 주완 앞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결희의 당번표 사진이었다⁠.

“⁠미숫가루 당번표입니다⁠.⁠”

“⁠압니다⁠. 천막 기둥에 붙어 있더군요⁠.⁠”

“⁠26일 밤을 이렇게 하겠습니다⁠. 밤 여덟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열두 시간을 두 시간씩 여섯 조로 나눕니다⁠. 조마다 셋이 들어갑니다⁠. 바뀌는 자리에서 앞 조가 뒤 조에게 핵이 내려간 길을 넘깁니다⁠. 핵이 숨는 박자는 제가 문 앞에서 무전으로 불러 주겠습니다⁠. 저는 첫 조로 들어가서 길을 열고⁠, 마지막 조로 들어가서 핵을 깹니다⁠. 가운데 여덟 시간은 문 앞에서 귀만 쓰겠습니다⁠.⁠”

“⁠그러면 권 헌터는 열두 시간 동안 다 거기 있는 겁니다⁠.⁠”

“⁠거기 있는 것과 안에 있는 것은 다릅니다⁠. 문 앞에서는 아기 띠를 멜 수 있습니다⁠.⁠”

주완이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과 퓌레 금지⁠」 대목에서 눈썹이 한 번 올라갔다⁠.

“⁠부모 헌터들 데리고 소풍 가십니까⁠?⁠”

“⁠마흔 장 가운데 몇 장은 들어올 겁니다⁠.⁠”

“⁠교대는 끊깁니다⁠. 핵이 내려가는 길은 하나라면서요⁠. 조가 바뀌는 일 분 사이에 길을 놓치면요⁠? 무전이 균열 벽에 먹히면요⁠?⁠” 주완이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공손하게⁠. “⁠미숫가루는 일 분 늦게 타도 됩니다⁠. 핵은 일 분이면 물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바뀌는 자리에 제가 있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흔 장 가운데 누가 밤새 균열에 들어갑니까⁠?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요⁠? 그분들이 다 반일 헌터가 되면⁠, 다음 균열에서 저는 누구를 넣습니까⁠?⁠”

대답이 길어지기 전에 천막 자락이 걷혔다⁠. 재련이 들어왔다⁠. 북쪽 순찰을 마친 차림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를 뒤로 묶었고⁠, 손에 미숫가루 병을 들고 있었다⁠. 뚜껑에 「⁠의리⁠」라고 적혀 있었다⁠.

“⁠밖에서 다 들었어요⁠. 천막이 얇아서⁠.⁠” 재련이 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저요⁠.⁠”

주완이 재련을 보았다⁠. 징계위원회 뒤로 두 사람이 한 천막에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무슨 말이냐⁠?⁠”

“⁠교대요⁠. 첫 조든 가운데 조든⁠. 저 들어갈게요⁠.⁠”

“⁠유 팀장은 26일에 내 조다⁠. 처음부터 끝까지 권 헌터와 같이 들어가도록 배치해 두었다⁠.⁠”

“⁠아빠 조 말고요⁠.⁠” 재련이 말했다⁠. 천막 안의 무전기 잡음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놀이터 조요⁠.⁠”

주완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손이 탁자 위의 붉은 핀으로 갔다가 멈췄다⁠. 재련은 주완의 손을 보았다⁠. 아버지의 손이 이번에는 자기 이름을 어디에도 꽂지 못하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그러고는 나를 보았다⁠.

“⁠몇 조예요⁠, 놀이터 S급님⁠? 첫 조는 S급님이 하신다니까⁠, 저는 두 번째 할게요⁠. 길 넘겨받는 거⁠, 제가 제일 잘해요⁠. 아빠한테 배운 거 그거 하나니까⁠.⁠”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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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11.01· 9화

    균열 바닥에 귀를 대고 숨 세는 장면이 육아 중 아기 숨소리 듣는 거랑 겹쳐서 좋았어요.

    • 문채겸작가2026.11.01

      창해 씨가 밤마다 아기 숨을 세던 버릇이 그대로 나와요. 그 버릇으로 균열을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