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8자)
돌봄방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8월 17일 아침, 보급 천막 앞에 아기 띠가 줄을 이었다. 남색, 회색, 꽃무늬, 호랑이 무늬. 용산 협회 본부 앞에서 피켓을 들었던 부모 헌터들이었다. 맨 앞은 「휴직 신청서 마흔 장, 답장은 언제?」를 들었던 B급 엄마 헌터였다. 아기 띠 안에서 여덟 달 된 아들이 엄마 턱을 빨고 있었다.
“교대 들어갈 사람 찾는다면서요. 단톡방에서 봤어요.”
“어느 단톡방이요?”
“협회 엄마 아빠 헌터 방이요. 거기에 놀이터 방 캡처가 올라와요. 놀이터 방에는 노인정 방 캡처가 올라오고요.” B급 엄마 헌터가 웃었다. “방장님 공지는 세 방에 다 돌아요.”
결희가 미숫가루를 타다 고개를 들었다. 제 공지가 협회까지 간다는 말에 숟가락을 든 손이 잠깐 멈췄고, 다시 저었다. 조금 더 빨리 저었다.
열두 명이 왔다. B급이 일곱, C급이 넷, A급이 하나. 엄마가 다섯, 아빠가 일곱. 다들 주완의 서랍 속 마흔 장 가운데 한 장씩을 쓴 사람들이었다. 나는 결희의 당번표 옆에 새 종이를 붙였다. 조를 짜는 일은 결희가 했다. 물류센터 팀장 칠 년의 손은 열두 사람을 이십 분 만에 여섯 조로 나눴다. 같은 집 부부는 같은 조에 넣지 않았다. 둘 다 다치면 아이가 혼자 남는다는 이유였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결희가 말했다. “같은 밤에 엄마 아빠가 둘 다 균열에 있으면 안 돼요.”
“26일 밤에 아이들은요?” 내가 물었다.
열두 명이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기 띠 안의 아기들이 대답 대신 칭얼거렸다. 결희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봐요. 보급 천막 옆에 천막 하나 더 치고. 돌봄방.”
*
주완은 돌봄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작전 천막의 지도 앞이었다. 결희가 내 옆에 서 있었고, 결희의 휴대전화는 녹음 중이었다. 화면에 빨간 점이 깜박였다. 주완은 빨간 점을 보았고 못 본 척했다.
“안 됩니다.”
“왜요?”
“아이 열둘이 밤새 균열 문 삼백 미터 앞에서 잡니까?” 주완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26일 밤은 핵이 가장 깊이 내려가는 밤입니다. 핵이 내려갈 때 균열이 어떻게 숨을 쉴지 아무도 모릅니다. 권 헌터도 모릅니다. 들숨 한 번에 경계선이 이백 미터 뛰면, 돌봄방은 경계선 안입니다.”
결희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주완이 옳았다. 주완은 옳은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었고, 이번에는 고를 필요도 없었다.
“규정이 아니라, 부모로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주완이 덧붙였다. 덧붙이고 나서 스스로 놀란 얼굴이었다.
“부모로서요?” 결희가 되물었다. “따님 상암에 넣으신 분이요?”
천막 안의 무전기가 지지직거렸다. 주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결희도 더 묻지 않았다. 휴대전화 녹음을 끄는 손가락이 조금 늦었다.
천막 자락이 걷히고 하솜이 들어왔다. 운비는 없었다. 하솜은 혼자였고, 손에 낡은 신분증을 쥐고 있었다. 7월 16일에 통제선을 넘을 때 경찰에게 내밀었던 신분증이었다. 사진 속의 하솜은 지금보다 앳됐다.
“부장님, 대답하러 왔어요.”
주완이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수석 힐러 임용 계약서」 이미 다 채워져 있었다. 서명란만 비어 있었다.
“낮 근무입니다. 운비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네 시 전에 퇴근하실 수 있습니다. 수당은 A급 시절의 두 배입니다.” 주완이 계약서를 하솜 앞으로 밀었다. “조건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26일 밤, 권 헌터 곁에 계시는 것.”
“재우라는 거요.”
“곁에 계시라는 겁니다.”
“같은 말이잖아요.” 하솜이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을 계약서 위에 올렸다. 손바닥이 미지근해 보였다. “조건을 하나 걸어도 될까요?”
“조건을 거시는 겁니까?”
“넉 해 전에는 조건도 못 걸었어요. 임신했다고 빼고, 낳고 나서 자리 없다고 안 부르고. 그때 저는 네, 하고 기다렸어요. 일 년을.” 하솜의 목소리는 작았다. 작아도 천막 안의 무전기 잡음을 눌렀다. “수석 자리는 받을게요. 대신 26일 밤 재우라는 말은 거둬 주세요. 그리고 돌봄방을 협회가 차려 주세요. 통제선 밖에요. 서교동 주민센터 강당이면 문에서 일 킬로미터예요. 부장님 말씀대로 경계선이 이백 미터 뛰어도 닿지 않아요.”
결희가 하솜을 돌아보았다. 단톡방 사건 뒤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미안한 얼굴은 아니었다. 새로 보는 얼굴이었다.
주완이 계약서를 손끝으로 눌렀다. 오래 눌렀다.
“돌봄방은 검토하겠습니다. 26일 밤의 부탁은 거둘 수 없습니다.”
“왜요?”
“권 헌터는 열 시 반이 되면 나오려 할 겁니다. 그날 그 사람이 나오면 핵은 물 밑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그걸 막을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하솜이 계약서에서 손을 뗐다. 대신 낡은 신분증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계약서 옆에, 서명란 바로 위에.
“그럼 이건 돌려드릴게요. 수석 자리도요.”
“변 선생.”
“26일 밤에는 운비 엄마로 들어갈게요. 놀이터 조로요.” 하솜이 나를 보았다. “예봄이 아빠가 열 시 반에 나오시면, 그 길을 제가 같이 걸을게요. 못 걸으시면 업고라도요.”
“변 선생은 사람을 업을 힘이 없습니다.”
“예봄이 아빠도 처음엔 아기 띠 버클을 못 풀었대요.” 하솜이 웃었다. 떨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사람은 해 보면 해요.”
하솜이 천막을 나갔다. 결희가 따라 나가다 돌아서서 주완에게 말했다. 공지문 말투였다.
“다들 아시죠. 돌봄방은 우리가 차려요. 협회가 검토하는 동안.”
*
해 질 무렵 놀이터에서 결희가 하솜 옆에 앉았다. 등나무 벤치였다. 단톡방 사건 뒤로 열흘 동안 두 사람은 같은 벤치에 앉지 않았다. 결희가 쌍둥이 유모차를 벤치 끝에 세우고, 아이스박스에서 미숫가루 병을 하나 꺼냈다. 뚜껑에 「의리」라고 적혀 있었다.
“천막에서 다 들었어요. 수석 자리 돌려줬다면서요.”
“네.”
“바보 같아요.”
“알아요.”
“그래서 드리는 거예요.” 결희가 병을 하솜 손에 쥐여 주었다. “근데 운비 엄마, 다음부터 뭐 보낼 땐 방 이름 두 번 확인하고 보내요. 저 그 캡처 아직 안 지웠어요.”
“지워 주세요.”
“안 돼요. 방장은 증거를 남겨요.” 결희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캡처 사진이 「즐겨찾기」 폴더에 들어 있었다. 폴더 이름은 「운비 엄마 흑역사」였다. 하솜이 병뚜껑으로 결희 팔뚝을 때렸다. 결희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다. 쌍둥이가 유모차 안에서 엄마를 따라 아프다고 외쳤다. 모래밭에서 운비가 영문도 모르고 깔깔 웃었다. 열흘 만에 등나무 벤치에서 웃음이 났다.
*
8월 18일, 돌봄방은 단톡방에서 먼저 차려졌다.
결희가 서교동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주민센터 직원은 강당 사용 신청서를 내라고 했다. 신청서에는 책임자와 연락처와 사용 목적을 써야 했다. 결희는 사용 목적에 「균열 작전 참여 부모의 자녀 야간 돌봄」이라고 적었다. 주민센터 직원이 신청서를 들고 동장실로 들어갔다가 이십 분 뒤에 나왔다. 동장이 직접 따라 나왔다. 동장은 아기 띠 헌터 영상을 다섯 번 봤다고 했다.
이불은 노인정 단톡방에서 왔다. 대구와 망원동 노인정이 합친 방이었다. 망원동 할머니들이 집에서 여름 이불을 이고 왔고, 대구 할머니들은 택배로 보냈다. 택배 상자 하나에 장모님 글씨가 있었다. 「우리 손녀 돌봄방」 상자를 열자 여름 이불 두 채와 손뜨개 모자 열두 개가 나왔다. 장모님이 노인정 할머니들과 열흘 동안 뜬 것이었다. 한 개는 분홍이었다. 모자 안쪽마다 실로 동네 이름이 떠 있었다. 「대구 침산동」 「망원동」 「대구 산격동」 뜬 사람의 동네였다.
저녁에 장모님이 영상 통화로 강당을 보았다. 화면 너머에서 할머니 셋이 같이 들여다보았다.
“애들 재울 때 자장가는 누가 부르노?”
“엄마들이 불러요.”
“엄마들은 다 지쳐 있을 거 아이가. 우리가 부르께. 영상으로.” 장모님이 화면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대구 할머니 셋이 동시에 자장가를 시작했다. 박자가 셋 다 달랐다. 강당에서 이불을 개던 엄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쌍둥이가 화면 앞으로 달려와 할머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같은 날 저녁 뉴스가 오사카를 보여 주었다. 「오사카 균열 핵 공략 실패. 한국 S급 서열 2위 중상.」 화면 속 들것 위의 얼굴을 알았다. 열 해 전 같은 균열에서 등을 맞댔던 사람이었다. S급 아홉 가운데 둘이 다쳤고 둘이 밖에 있었다. 마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여전히 하나였다.
밤 아홉 시, 상임이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권 헌터. 뉴스 봤죠? 일본 협회가 공식으로 요청했어요. 마포 끝나면 오사카로 가 줘야겠어요.”
“휴직 중입니다.”
“그러니까 총회가 있는 거예요. 모레 열 시. 휴직 제한안이 통과되면, 권 헌터가 휴직 중이라는 말은 더 못 써요.” 상임이사의 목소리 뒤로 탁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숨보다 짧은 박자였다. “아기 띠는 이해해요. 나도 손주가 있어요. 그런데 나라가 S급 아홉 명으로 버티는 동안은, 아기 띠가 사치예요.”
“사치라면, 이사님 손주 아기 띠는 누가 멥니까?”
상임이사의 탁자 소리가 멈췄다. 삼 초 뒤에 대답이 왔다. “우리 며느리요.”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전화를 끊고 예봄이 방에 들어갔다. 예봄이가 자다가 손을 이마에 올렸다. 잠결에 하는 경례였다.
*
8월 19일 밤, 총회 전날이었다. 여덟 시 반에 문을 넘었다. 하솜, 재련, B급 하나. 재련은 놀이터 조 연습이라며 따라왔다. 길을 넘겨받는 연습이었다.
“S급님이 앞에서 들은 걸 저한테 말로 넘겨요. 저는 그걸 발로 바꿔요. 그게 교대예요.” 재련이 말했다. “아빠는 이걸 무전으로 했어요. 내가 열여덟 살 때 처음 들어간 균열에서. 그때 무전기로 들은 목소리가 아빠 목소리였는데, 나는 그게 아빠인 줄 끝까지 몰랐어요. 너무 공손해서.”
나는 바닥에 귀를 댔다. 들숨 십구 초. 멈춤 십육 초. 날숨 십일 초. 핵은 한강공원 둔치 바로 밑에서 뛰었다. 이레 뒤면 멈춘다. 계획대로였다.
열 시 십 분, 나가려고 돌아섰을 때 소리가 바뀌었다.
들숨이 끝나지 않았다. 십구 초가 지나고, 이십 초, 이십오 초. 하솜의 머리카락이 문 반대 방향으로 날렸다. 균열 안의 공기가 한 방향으로 빨려 갔다. 서쪽, 망원동. 재련이 검을 바닥에 꽂고 버텼다. B급이 재련의 허리를 붙잡았다.
삼십 초. 들숨이 멈췄다. 멈춤 없이 바로 날숨이 터졌다. 미지근하고 비린 바람이 우리를 밀어냈다.
“이거 뭐예요?” 재련이 소리쳤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을 셌다. 다음 들숨은 이십 초. 그다음은 이십이 초. 들숨이 날숨보다 계속 길었다. 균열이 공기를 들이켜 쌓고 있었다. 들이켜 쌓은 공기는 어딘가로 터진다. 경계선 바깥으로.
나는 귀를 서쪽으로 돌렸다. 경계선 너머의 소리가 들어왔다. 매미, 자동차,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아주 가까이, 그네 쇠사슬이 바람에 삐걱이는 소리.
물빛 놀이터의 그네였다. 경계선에서 사백 미터. 오늘 밤 들숨이 터지면, 사백 미터는 숨 한 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