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00자)

남의 딸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협회장이 “⁠잠시 쉬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징계위원회실의 형광등만 계속 지지거렸다⁠. 이사들이 하나씩 일어나 나갔다⁠. 상임이사는 마지막까지 앉아 탁자를 두드리다가⁠, 두드리던 손으로 서류를 챙겨 나갔다⁠. 재련은 증언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주완도 작전부장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둘 사이에 탁자 하나와 서른 해가 있었다⁠.

나는 나가려다 문 앞에서 멈췄다⁠. 나가도 들렸다⁠. 지하 일 층 복도는 소리가 잘 울렸다⁠.

“⁠왜 그랬어⁠?⁠” 재련이 먼저 말했다⁠. 존댓말이 빠져 있었다⁠.

주완이 서류를 반듯하게 모았다⁠. 모서리를 탁자에 두 번 쳐서 맞췄다⁠. 그러고서야 대답했다⁠.

“⁠권 헌터가 빠진 자리에 누군가는 들어가야 했다⁠. 원래 들어갈 사람은 애가 둘이었다⁠. 일곱 살⁠, 네 살⁠.⁠”

“⁠그래서 나를 넣었어⁠?⁠”

“⁠남의 딸을 넣을 수는 없었다⁠.⁠”

재련이 웃었다⁠. 웃음이 중간에 끊겼다⁠. 숨이 끝까지 들어가는 갈비뼈였는데도 끊겼다⁠.

“⁠남의 딸은 안 되고 아빠 딸은 돼⁠?⁠”

“⁠내 사람이니까⁠. 내 사람이 다치면 내가 책임진다⁠. 남의 사람이 다치면 책임질 방법이 없다⁠.⁠”

“⁠나 아빠 사람이었던 적 있어⁠? 뒤집을 때도 없었고 걸을 때도 없었고⁠, 졸업식 날도 균열에 있었잖아⁠. 내가 헌터 등록하던 날⁠, 아빠가 처음 한 말이 뭔지 알아⁠? 「⁠배치는 작전부에서 정한다⁠.⁠」 그게 축하였어⁠.⁠”

주완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손이 서류 위에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내가 정했다⁠.⁠”

재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문으로 걸어왔다⁠. 문 앞의 나를 보고 잠깐 멈췄다⁠. 눈가가 젖어 있지 않았다⁠. 젖을 틈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 들으셨죠⁠?⁠”

“⁠네⁠.⁠”

“⁠귀 좋은 거⁠, 가끔 진짜 별로예요⁠.⁠”

재련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콧노래가 들렸다⁠. 곡조가 엉망이었다⁠.

주완이 일어났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주완은 문 앞까지 와서 나를 지나치려다 멈췄다⁠. 얼굴은 공손했다⁠. 목소리도 공손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권 헌터의 넉 달은 제 딸의 갈비뼈 세 대로 메웠습니다⁠. 남의 딸이 아니라서⁠, 저는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부장님 딸이라서 부장님이 사과해야 하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사과는 균열이 닫힌 뒤에 하겠습니다⁠.⁠” 주완이 넥타이를 고쳐 맸다⁠. “⁠총회는 8월 20일입니다⁠. 휴직 제한안은 제가 직접 올립니다⁠. 작전부장 자리에서요⁠.⁠”

“⁠이 일이 다 알려지면 그 자리에 계속 계실 수 있습니까⁠?⁠”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빈자리가 안 생깁니다⁠.⁠” 주완이 복도를 걸어갔다⁠. “⁠권 헌터는 그걸 아직 모르십니다⁠.⁠”

*

저녁 뉴스가 먼저 알았다⁠. 「⁠협회 작전부장⁠, 친딸을 대체 헌터로 투입⁠… 징계위원회서 폭로⁠」 누가 흘렸는지는 몰랐다⁠. 지하 일 층 복도는 소리가 잘 울렸고⁠, 협회에는 귀가 많았다⁠.

단톡방이 갈라졌다⁠.

「⁠작전부장 너무하다 자기 딸을⁠;⁠;⁠」

「⁠근데 남의 애 넣었으면 더 욕먹었을걸⁠」

「⁠아빠 마음이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남의 집 애는 못 보내겠고⁠」

「⁠그러니까 그걸 왜 딸한테 안 물어보고 정하냐고요⁠」

「⁠우리 남편도 애 학원 나한테 안 물어보고 정함⁠」

「⁠그건 다른 얘기잖아요ㅋㅋ⁠」

「⁠같은 얘기예요⁠」

결희가 공지를 올렸다⁠. 「⁠다들 아시죠⁠. 남의 집 아빠 얘기는 남의 집 아빠 얘기⁠. 내일 보급 아홉 시⁠.⁠」 일 분 뒤 하나 더⁠. 「⁠솔직히 저도 같은 얘기 같아요⁠.⁠」

혜결은 뉴스를 끝까지 보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예봄이는 혜결 무릎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사람도 아빠였네⁠.⁠”

“⁠아빠였어⁠.⁠”

“⁠우리 아빠도 내 졸업식에 출장 갔어⁠. 그때는 다들 그랬어⁠. 그게 아빠인 줄 알았어⁠.⁠” 혜결이 예봄이 이마의 땀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당신이 그 사람처럼 될까 봐 휴직하라고 했던 거야⁠. 기억나⁠?⁠”

“⁠기억나⁠.⁠”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그 사람 반대가 될까 봐 무서워⁠. 다들 당신 탓하는 거⁠.⁠” 혜결이 웃었다⁠. “⁠아빠 노릇은 어느 방향으로 해도 욕을 먹네⁠.⁠”

*

8월 7일 밤⁠, 재련 없이 문을 넘었다⁠. 하솜과 B급 둘이 뒤를 따랐다⁠. B급 하나는 조끼 주머니에 아직도 떡뻥을 넣고 다녔다⁠. 7월에 예봄이가 건넨 떡뻥이었다⁠. 버리지도 먹지도 못한 떡뻥이 삼 주 동안 주머니 안에서 가루가 되어 가고 있었다⁠. B급은 그것을 부적이라고 불렀다⁠.

“⁠부적 효과 있어⁠?⁠”

“⁠지난주에 괴수가 저만 안 물었어요⁠.⁠”

“⁠냄새 때문일 거야⁠.⁠”

핵의 박동은 망원 유수지 바로 아래에서 울렸다⁠. 물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한강까지 남은 거리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짧아져 있었다⁠. 나는 박동과 박동 사이를 들었다⁠. 들숨⁠, 멈춤⁠, 날숨⁠. 멈춤이 길어지고 있었다⁠. 첫날은 멈춤이 거의 없었다⁠. 오늘은 사 초⁠.

멈춤이 길어진다는 것은 핵이 지친다는 뜻일까⁠, 자리를 잡는다는 뜻일까⁠? 나는 몰랐다⁠. 모른다는 것만 알았다⁠. 귀가 좋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열 시 이십오 분에 나왔다⁠. 문 앞에 주완이 없었다⁠. 반일 시범을 시작한 뒤 처음이었다⁠. 문 앞 의자에는 무전기 하나만 놓여 있었다⁠. 경계선은 3단지 정문에서 오백 미터 앞까지 와 있었다⁠.

*

8월 8일 오전⁠, 재련이 보급 천막에 들렀다⁠. 북쪽 경계선 순찰을 돌고 물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사흘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뉴스가 나간 뒤로 전진기지 헌터들은 재련을 보면 말을 멈췄다⁠. 재련은 말이 멈추는 자리마다 콧노래를 깔고 지나갔다⁠.

결희가 생수 대신 미숫가루 병을 내밀었다⁠. 병뚜껑에 매직으로 「⁠의리⁠」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세요⁠?⁠”

“⁠물빛놀이터 방장이요⁠. 아빠랑 싸웠다면서요⁠.⁠”

재련이 병을 받다 말고 결희를 보았다⁠. 결희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사람에게 줄 병뚜껑에 매직을 들이댔다⁠.

“⁠저 아세요⁠?⁠”

“⁠뉴스로요⁠. 다들 아시죠⁠.⁠” 결희가 매직 뚜껑을 닫았다⁠. “⁠저 회사 그만둘 때⁠, 본부장이 저한테 한마디도 안 물어보고 제 후임을 정했어요⁠. 내가 정했다⁠, 그 말 하나로⁠. 그래서 그 말 들으면 저도 아직 미숫가루가 당겨요⁠.⁠”

재련이 병뚜껑의 「⁠의리⁠」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한 번에 반 병을 마셨다⁠. 콧노래 없이 마셨다⁠.

8월 8일 오후 두 시⁠, 보급 천막에서 엄마들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었다⁠. 미숫가루를 타던 손⁠, 붕대를 말던 손⁠, 아이 기저귀를 갈던 손이 한꺼번에 멈췄다⁠. 결희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물빛놀이터 엄마들⁠」 단톡방에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운비 엄마의 대화명이었다⁠.

「⁠8/8 권창해⁠. 14⁠:00 보급 천막⁠. 15⁠:30 예봄 낮잠⁠. 20⁠:30 진입 예정⁠. 특이사항⁠: 허리 보호대 착용⁠. 아내 오늘 야근 없음⁠.⁠」

삼 초 동안 아무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다음부터 화면이 미끄러졌다⁠.

「⁠?⁠」

「⁠운비 엄마 이거 뭐예요⁠」

「⁠허리 보호대 착용ㅋㅋㅋㅋ⁠」

「⁠낮잠 시간까지 적어요⁠?⁠」

「⁠세 시 반 낮잠 우리 애랑 똑같네요⁠」

「⁠허리 보호대 어디 거예요⁠? 저도 사려고요⁠」

「⁠이거 예봄이 아빠 스케줄이에요⁠?⁠」

「⁠누구한테 보내려던 거예요⁠?⁠」

삼십 초 뒤 글이 지워졌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결희가 휴대전화를 내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 지워지기 전의 글이 캡처되어 있었다⁠. 물류센터 팀장 칠 년은 삼십 초 안에 캡처를 했다⁠.

천막 가운데에서 하솜이 B급 헌터의 어깨를 붙잡고 있다가 손을 뗐다⁠. 하솜의 숨이 들이쉬다 멈췄다⁠. 칠 초가 넘도록 내쉬지 못했다⁠. 하솜이 휴대전화를 보고⁠, 나를 보고⁠, 결희를 보았다⁠. 결희가 먼저 움직였다⁠.

“⁠운비 엄마⁠.⁠” 공지문 말투가 아니었다⁠. “⁠우리 단톡방에서 이러시면 안 되죠⁠.⁠”

“⁠결희 씨⁠, 그게⁠…⁠…⁠”

“⁠우리 방이 어떤 방인데요⁠. 애들 열나면 해열제 빌리는 방이에요⁠. 새벽 세 시에 애 토하면 누가 깨어 있나 물어보는 방이에요⁠. 거기다 남의 집 아빠 허리 보호대를 올려요⁠?⁠”

하솜이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들이 미숫가루 숟가락을 든 채 서 있었다⁠. 돗자리에서 운비가 쌍둥이와 블록을 쌓다가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운비는 영문을 몰랐다⁠. 블록을 하나 더 올렸다⁠. 블록 탑이 무너졌고⁠, 쌍둥이가 깔깔 웃었다⁠.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결희 씨⁠.⁠” 내가 말했다⁠.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예봄이 아빠가 당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

해 질 무렵⁠, 놀이터 모래밭에 하솜과 나만 남았다⁠. 운비는 결희가 데려갔다⁠. 결희는 운비 손을 잡고 가면서 하솜을 돌아보지 않았지만⁠, 운비 모자를 고쳐 씌우는 손은 다정했다⁠.

하솜이 모래밭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으로 모래에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지웠다⁠.

“⁠7월 14일부터요⁠.⁠” 하솜이 말했다⁠. “⁠선생님이 전진기지 다녀오신 날부터⁠. 부장님이 하루 일정만 알려 달라고 했어요⁠. 어디 가시는지⁠, 몇 시에 들어가시는지⁠. 그게 복귀 조건이었어요⁠.⁠”

“⁠왜 받으셨습니까⁠?⁠”

“⁠넉 해 전에 운비 가졌을 때⁠, 협회가 저를 작전에서 뺐어요⁠. 임신한 힐러는 균열에 못 들어간다고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낳고 나서도 안 넣어 줬어요⁠. 자리가 없대요⁠. 일 년 기다리다가 그만뒀어요⁠. 그만둔 게 아니라 안 불러 준 거죠⁠.⁠” 하솜이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작년에 운비 아빠 가게가 문을 닫았어요⁠. 지금은 대리운전 해요⁠. 밤에⁠. 그래서 제가 밤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운비 아빠가 처음으로 저를 말렸어요⁠. 둘 다 밤에 나가면 운비는 누가 보냐고⁠.⁠”

모래 위의 동그라미가 하나 더 생겼다가 지워졌다⁠.

“⁠부장님이 수석 힐러 자리를 주겠대요⁠. 수석이면 낮 근무만 해도 된대요⁠. 그 말에 넘어갔어요⁠. 낮 근무요⁠. 운비 재우고 나갈 필요 없는⁠.⁠”

“⁠그래서 제 하루를 보내셨습니까⁠?⁠”

“⁠거짓말은 안 했어요⁠. 선생님이 하신 일만 보냈어요⁠. 허리 보호대도 진짜 하셨잖아요⁠.⁠”

하솜다운 변명이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웃음이 조금 나왔다⁠. 하솜은 웃지 않았다⁠. 숨을 한 번 길게 들이쉬었다⁠. 들숨이 십일 초를 넘었다⁠. 무언가를 더 꺼내려는 숨이었다⁠.

“⁠하나 더 있어요⁠.⁠”

“⁠말씀하세요⁠.⁠”

“⁠부장님이 마지막 작전 날 부탁을 하나 했어요⁠. 핵을 깨는 날이요⁠. 그날 선생님이 열 시 반에 나오려고 하면 붙잡아 달래요⁠.⁠” 하솜이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힐러 손으로는 사람을 재울 수도 있어요⁠. 다친 사람 아프지 말라고 재우는 손이에요⁠. 그 손으로 선생님을 재워서라도 안에 두라고요⁠. 깨어나면 핵은 깨져 있을 거라고⁠.⁠”

모래밭 위로 매미 소리가 지나갔다⁠. 멀리 홍대 하늘이 검붉게 일렁였다⁠. 균열이 숨을 들이쉬었다⁠. 십오 초⁠. 들숨이 또 길어져 있었다⁠.

“⁠대답은 하셨습니까⁠?⁠”

“⁠안 했어요⁠. 아직⁠.⁠” 하솜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다⁠. 재련과 달리 젖을 틈을 주는 사람이었다⁠. “⁠저 어떡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하솜의 손바닥을 보았다⁠. 예봄이 땀띠를 지운 손⁠, 재련의 갈비뼈를 붙인 손⁠, 내 팔뚝의 이빨 자국을 오므라뜨린 손⁠. 하솜의 손바닥이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놓았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하솜은 손을 펴지 않았다⁠.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남의 딸 · 육아휴직 S급 헌터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