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43자) · 단하 · 정월 초사흘
이름만 아는 사람
초식을 쓸 때마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 한도윤
이튿날 아침 귀덕이 홍매집 대문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소리가 문을 부술 것 같아서 홍매가 국자를 들고 나왔다가, 귀덕의 얼굴을 보고 국자를 내렸다.
“애가 밤에 나갔다 왔소. 가죽신이 흠뻑 젖어 있고, 낫이 부엌에 없다가 새벽에 도로 있소. 그러고는 명치를 쥐고 열이 올라서 아무 말도 안 하오.”
단하가 숯가마 집에 갔을 때 소여는 가마 곁 짚자리에 누워 있었다. 얼굴이 붉었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두 손을 명치 위에 포개고 있었는데, 단하가 들어서자 손을 떼려다 말았다. 아이의 눈이 단하의 명치로 갔다. 단하가 이레 동안 누르던 자리였다.
“광에 갔느냐.”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이를 물었다.
“그 늙은이가 너를 잡았느냐. 눈 감았다 떴더니 코앞에 있었느냐.”
소여의 눈이 커졌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단하는 아이 곁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 밑에서 짚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채노가 모르고 썼다. 모르고 쓴 것은 나가고, 나가서 가장 가까이서 본 몸에 든다. 그 몸이 열한 살 아이였다. 제 아비를 못 살린 초식이 그 아비를 죽인 사람을 거쳐 딸의 명치에 들어앉았다.
무진이 문간에서 그 말을 다 들었다. 그는 들어오지 않고 문설주에 이마를 댔다.
“이레 간다.” 단하가 아이에게 말했다. “이레 지나면 덜 아프다.”
“그다음에는요?”
“추운 날마다 쑤신다.”
“그다음에는요?”
단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다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뿐이라고, 스승이 살았을 때 한 번 말한 적이 있었다. 남쪽 끝 바다가 보이는 절에 지은 이의 마지막 제자가 산다고. 가는 데 스무 날이 걸린다고.
*
그 사람이 제 발로 청계진에 온 것은 정월 초사흘이었다.
해 질 녘 홍매집 술청에 눈먼 노승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섰다. 먹물 들인 삼베 장삼이 무릎까지 해져 있었고, 발에는 짚신 위에 헝겊을 몇 겹 감았다. 머리는 빡빡 깎았는데 정수리에 눈이 얹혀 녹고 있었다. 노승은 문턱에서 한참 서서 귀를 기울였다. 술청의 소리를 하나씩 골라 듣는 얼굴이었다.
“반 보씩 딛는 사람이 이 집에 있소?”
무진이 잔을 들다가 멈췄다. 이 층에서 내려오던 단하가 계단 중간에 섰다.
노승은 그 멈춘 발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계셨구려. 딛는 소리가 한 번이 아니라 반씩 두 번 나오. 그 줄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걷소.” 노승이 말했다. “해운이오. 그대 스승의 부고를 들은 지 한 해가 넘었소. 그동안 그대를 찾아다녔는데, 고개 아래 객잔에서 눈 감았다 뜨니 코앞에 있더라는 소문이 들려서 따라왔소.”
무진이 제 잔을 해운 앞으로 밀었다.
“스님, 추운데 한 잔 하시오.”
“중한테 술을 권하시오?”
“절이 없다면서요. 절이 없으면 계율도 떠돌이 아니오?”
해운이 잠깐 생각하더니 잔을 받았다. 받아서 반을 마시고 나머지를 무진 쪽으로 도로 밀었다.
“반은 계율이오.”
홍매가 부엌에서 웃었다. 무진은 도로 밀려온 반 잔을 경건하게 비웠다.
*
해운은 성황당 뒤 빈 암자에 짐을 풀었다. 지붕이 반쯤 내려앉아 한쪽 방에만 눈이 안 들어왔다. 그 방 흙바닥에 셋이 앉았다. 해운이 품에서 초 한 토막을 꺼내 불을 붙였는데, 저는 볼 수 없는 불을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암자 벽에는 누가 오래전에 걸어 둔 염주 한 줄이 못에 매달린 채 얼어 있었다. 단하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승이 죽은 뒤 쓴 스물셋, 무진의 아홉 군데, 산적에게 간 둘, 채노, 그리고 소여.
해운은 소여 대목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은 모양과 순번을 다 아십니까?”
“머리로는 다 아오. 몸으로는 하나도 없소. 지은 분이 그렇게 시켰소. 아는 자 하나는 몸 없이 남겨 두라고.”
“그러면 여는 법도 아십니까?”
해운이 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볼 수 없는데도 불 쪽을 보는 버릇이 남아 있었다.
“한 번 보여 드리리다. 그리고 그게 왜 안 되는지도.” 그가 무진 쪽을 향했다. “사공 양반, 어디가 제일 아프시오?”
“오른 어깨요. 오늘처럼 추운 날은 특히.”
“검객 양반. 그 어깨로 들어간 날을 그대로 세우시오. 거리도, 각도도, 그날 그대로.”
단하는 일어섰다. 다섯 해 전 늦가을 강가였다. 칼잡이 하나가 나루 기둥 곁에서 위로 비스듬히 들어왔고, 단하가 그것을 손날로 쳐 내고 어깨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단하가 칼잡이 자리에 섰다. 무진과의 거리가 네 걸음이었다. 방이 좁아서 한 걸음이 모자랐는데, 해운이 지팡이로 단하의 발을 톡 쳐서 반 보 뒤로 물렸다.
“그날 강물 소리가 왼쪽에서 났소, 오른쪽에서 났소?”
“왼쪽입니다.”
“사공 양반, 왼쪽으로 반 뼘 도시오.”
무진이 투덜대며 돌았다. 도는 사이에 발뒤꿈치가 초를 건드릴 뻔해서 해운이 지팡이로 초를 한 뼘 밀어 놓았다. 단하가 검을 뽑았다. 무진의 얼굴이 굳었다.
“또 진검이냐.”
“그날도 진검이었습니다.”
단하는 들어갔다. 위에서 비스듬히, 그날 칼잡이가 들어온 그대로. 무진의 오른팔이 올라오는 순간 해운이 말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열여섯째.”
무진의 손날이 검면을 때렸다. 검이 비켜 나갔고, 무진의 어깨가 단하의 가슴에 닿았다. 거기까지는 새벽 뒷마당과 같았다. 다른 것은 그다음이었다. 무진이 멈췄다. 어깨를 단하 가슴에 댄 채로, 제 몸이 무엇을 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따라가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거…….” 무진이 말했다. “이게 열여섯째냐.”
“그렇소.”
무진은 뒤로 물러나 제 오른 어깨를 눌렀다. 눌렀다가 떼고, 다시 눌렀다. 열한 해 동안 추운 날마다 쑤시던 어깨였다.
“안 아프다.” 그가 말했다. “아픈 게 없어졌는데, 뭐가 얹혀 있다. 무겁다.”
“알고 가진 것은 그렇소.” 해운이 말했다. “이제 사공 양반이 그것을 써도 안 나가오. 아는 사람이 둘이니까. 저 검객 양반 머리에 하나, 사공 양반 몸에 하나. 지은 분의 약조가 그 둘 사이에서 끊겼소. 세상에 머무는 초식이 하나 생긴 거요.”
단하가 검을 거두었다.
“그럼 나머지 여덟도 그렇게…….”
“여기까지요.”
해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굳었다.
“나는 안 부르오. 그대도 부르지 마시오.”
*
“모르고 쓰면 사람이 죽습니다.” 단하가 말했다. “사형이 산적 넷을 혼자 붙었을 때 산적 둘이 그것을 받아 갔습니다. 채노는 모르고 써서 열한 살 아이 몸에 넣었습니다. 그 아이가 겁이 나서 모르고 쓰면, 이번에는 누가 받아 갑니까?”
“알고 쓰면 더 많이 죽소.” 해운이 말했다. “모르는 자는 겁날 때 한 번 쓰고 잊소. 아는 자는 또 쓰오. 쓸 데를 찾아다니오. 그리고 둘이 알면 안 나가니 한 사람 안에 쌓이오. 쌓인 자리에 사람이 모이고, 모인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 부리오.”
“스님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지은 분이 그걸 보셨소. 그분 스승 대에. 그래서 그분이 이 무공을 쓰면 흩어지게 지었소.” 해운이 초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불이 손바닥에 닿기 전에 멈췄다. “제일 강한 자 하나가 서지 않게. 한 대에 아는 자는 하나. 스승은 제자가 다 익히면 다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야 스승이 죽은 뒤에 제자가 쓰는 족족 흩어지오.”
무진이 암자 벽에 등을 기댔다. 등 뒤에서 흙이 조금 부스러졌다.
“그럼 스승은 그 약조를 지키신 거네. 단하 하나한테만.”
해운이 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 그러고 있었다.
“사공 양반 이름이 무진이오?”
“그렇소.”
“스무 해 전에 그대 스승이 나를 찾아왔었소. 스무 날을 걸어서.” 해운이 말했다. “제자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아이도 가르치게 해 달라고 했소. 셈이 느리고 마당을 오래 쓰는 아이라고. 그 아이 이름이 무진이었소.”
무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안 된다 했소. 약조가 그렇다고. 그 사람은 사흘을 내 절 마당에 앉아 있다가 돌아갔소.” 해운이 말했다. “그 뒤로 그 사람이 한 일은 들어서 짐작하오. 그 아이를 늘 다른 아이 뒤에 세웠겠지. 가르칠 수 없으니 받게라도 하려고. 그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였소.”
초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 끝에서 촛농이 한 방울 흘러내려 흙바닥에 떨어졌다.
무진이 이제 안 아픈 오른 어깨를 쥐고, 그 손을 한참 떼지 않았다. 입술이 몇 번 움직였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목에서 웃음 비슷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흘을 앉아 있었다고요? 그 양반이? 마당 쓸 때 삼백 번을 넘기면 화내던 양반이?”
“사흘이었소.”
무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넓은 등이 한 번 크게 들썩였다가 가라앉았다. 단하는 그 등을 보지 않으려고 초를 봤다.
*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단하가 말했다. “제 몸에서 나간 것은 다시 배울 수 있습니까?”
“없소.” 해운이 말했다. “한 번 나간 몸에는 다시 안 드오. 누가 삼백 번을 시켜도, 삼천 번을 시켜도 안 드오. 그대는 스물셋을 부를 수는 있어도 다시는 못 쓰오. 두 번째는 없소.”
단하는 그 말을 오래 들고 있었다. 들고 있으니 명치가 다시 쑤셨다. 이제 아무것도 안 든 자리였다.
“그럼 소여는 어찌 됩니까?”
해운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그 아이는 아비를 죽인 자에게서 그것을 받았소. 알게 되면 그 아이가 제일 먼저 누구를 찾아가겠소?” 그가 말했다. “모르는 채로 두시오. 추운 날 쑤시는 것으로 끝나게.”
“여팔이 이미 압니다.” 무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었는데 목소리는 멀쩡했다. “광에서 늙은이가 뭘 잃었는지 청지기가 동네방네 캐묻고 다닌다더이다. 그 아이가 그날 밤 광에 들어갔다는 것도 알 테고.”
해운이 암자 문턱에서 멈췄다.
“그러면 이제 셋이 그 아이를 원하겠구려. 빚 받을 자, 가르칠 자.” 그가 말했다. “그리고 막을 자.”
“스님이 막으시겠습니까?”
“그대가 그 아이를 깨우거든, 나는 막겠소.”
해운이 눈 속으로 나갔다. 지팡이 끝이 눈을 찍는 소리가 멀어졌는데, 지팡이 한 번에 발 한 번씩 고르게 나는 소리였다. 스물넷의 모양을 다 알면서 몸으로는 하나도 안 익힌 사람의 걸음이었다.
단하는 암자에 남아 초가 다 탈 때까지 앉아 있었다. 무진은 그 곁에서 오른팔을 천천히 들었다 내렸다 했다. 들 때마다 어깨 위에 무언가가 얹히는지, 팔을 내릴 때 숨을 길게 내쉬었다. 초가 꺼지자 암자 안이 새까매졌고, 무너진 지붕 틈으로 별 몇 개가 보였다.
“단하야.”
“예.”
“너 아까 그 스님이 부를 때, 네가 먼저 부르고 싶었지?”
단하는 어둠 속에서 대답하지 않았다. 무진도 더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