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17자) · 소여 · 섣달 스무날

광

초식을 쓸 때마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 한도윤

숯가마 곁 집은 아침마다 재 냄새로 깼다. 고모가 새벽에 가마 아궁이를 열면 밤새 식은 재가 바람에 들려 문틈으로 들어왔고, 소여는 눈을 뜨기 전에 먼저 혀끝에서 그 쓴맛을 알았다. 아버지 집에서도 그랬다. 소여는 그 맛 때문에 여기가 고모 집이라는 것을 자꾸 잊었다.

고모는 아침부터 말이 많았다. 가마 불을 보면서 말했고, 조를 씻으면서 말했고, 말하는 사이사이에 소여의 머리를 거칠게 빗겼다. 빗질이 아팠다. 아버지는 손등으로만 쓸었는데 고모는 손바닥으로 쥐고 당겼다.

“여팔네 청지기가 오늘 온단다. 이를 보러.”

“이는 왜 봅니까?”

“몰라서 묻니?” 고모가 빗을 멈췄다가 다시 당겼다. “담보가 멀쩡한지 보는 거지. 소 사러 온 사람이 소 이빨 보듯이.”

소여는 입을 다물었다. 이를 꽉 물었더니 턱이 아팠다.

*

오목은 해가 높이 뜬 뒤에 왔다. 곰배와 장대가 뒤에 따라왔는데, 곰배는 아직 팔을 매달고 있었고 장대는 문턱을 넘다가 배를 감쌌다. 오목은 방에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 서서 소여를 불러냈다.

“입 벌려 봐라.”

소여는 벌리지 않았다. 오목이 손가락 둘로 아이의 턱을 잡고 아래로 당겼다. 손가락에서 먹 냄새와 쌀겨 냄새가 났다. 오목은 이를 하나씩 셌다. 소리를 내서 셌다.

“스물넷. 빠진 거 없고.” 그가 아이의 손을 뒤집었다. 손바닥이 숯에 트고 손톱 밑이 까맸다. “손은 거칠군. 숯쟁이 딸 손이라. 삼짇날까지 기름을 발라 두라고 해라.”

고모가 부엌 문간에서 부지깽이를 쥐고 서 있었다. 쥔 손등에 핏줄이 섰는데, 부지깽이는 올라가지 않았다. 고모도 여팔에게 가마 세 개 값의 빚이 있었다.

오목이 다시 턱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소여는 그 손가락을 물었다.

“아악!”

곰배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오목이 돌아보자 기침으로 바꿨다. 장대는 웃으려다가 배가 울려서 허리를 접었다.

“이게, 이게 담보가 사람을 물어?”

“소 이빨을 보면 소도 뭅니다.” 소여가 말했다.

오목이 손을 쳐들었다. 그때 울타리 문이 열렸다.

검객 어른이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처음 보는 사내가 들어왔다. 어깨가 넓고 손이 컸는데 한 손을 헝겊으로 싸매고 있었다. 사내는 마당을 한 번 둘러보더니 오목의 쳐든 손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아이고, 청지기 양반. 이 보러 오셨다며. 보는 값은 내셨소?”

“뭐요?”

“소 이빨 보는 데도 거간꾼한테 값을 내는데, 사람 이빨을 공짜로 보면 쓰나. 스물넷 셌으면 하나에 동전 하나씩, 스물넷.” 사내가 붕대 감은 손을 내밀었다. “물린 값은 빼 드리지.”

오목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검객 어른의 검집을 한 번 보고, 사내의 넓은 어깨를 한 번 보고, 곰배의 매단 팔을 봤다. 그러고는 소맷자락으로 물린 손가락을 감쌌다.

“삼짇날이오. 하루도 안 넘기오.”

오목이 먼저 나갔다. 곰배와 장대가 뒤따르다가 울타리 밖에서 걸음을 늦췄다. 둘이 속삭였지만 소여는 담 안쪽 장작더미 곁에 있어서 다 들렸다.

“영감은 오늘도 광에서 안 나온대?”

“안 나와. 밤마다 명치 쥐고 끙끙대. 눈 감았다 뜨면 어디 가 있을까 봐 무서워서 잠도 못 잔대.”

“그 검객이 한 거잖아. 영감이 한 것도 아닌데 왜 영감이 무서워해?”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어른은 영감 입 막으라고 광에 넣어 둔 거고.”

둘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소여는 장작 하나를 쥐고 있었다. 언제 쥐었는지 몰랐다.

마당에서는 붕대 감은 사내가 고모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검객 어른의 사형 무진이라고 했다. 고모가 사형이 뭐냐고 묻자, 같은 스승 밑에서 먼저 매 맞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고모가 처음으로 웃었다. 웃고 나서 제가 웃었다는 게 싫은지 도로 부지깽이를 쥐었다.

무진이 소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술 냄새가 났다.

“손가락 문 거, 잘했다. 다음엔 엄지를 물어라. 엄지가 없으면 붓을 못 쥐거든.”

“아저씨도 검객입니까?”

“나는 뱃사공이다. 검은 저 사람이 차고, 나는 술병을 찬다.”

검객 어른은 그 곁에 서서 소여를 내려다봤다. 무엇을 셀 때 짓는 얼굴이었다. 그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도가 광 쪽에는 가지 마라.”

소여는 그 눈을 봤다. 눈 밑에 잠을 못 잔 자국이 있었다.

“안 갑니다.”

거짓말을 하면서 소여는 이를 물었다. 오목이 세어 간 스물넷이 한꺼번에 맞물렸다.

*

그 밤 소여는 아버지의 낫을 챙겼다.

싸리를 치는 작은 낫이었다. 날은 손바닥 길이만 했고, 자루는 아버지 손에 스무 해를 쥐여서 가운데가 검게 닳아 있었다. 소여가 쥐면 손가락이 닳은 자리에 다 안 들어갔다. 고모가 가마 곁에서 잠든 것을 확인하고, 소여는 짚신 대신 아버지의 헌 가죽신에 짚을 채워 신었다.

도가까지는 장터를 지나 비탈을 내려가야 했다. 달이 없어서 눈빛만으로 길을 찾았다. 쌓인 눈이 스스로 희끄무레하게 빛을 내고 있어서, 사람이 걸어간 자리는 검게 파여 보였고 아무도 안 간 자리는 부풀어 보였다. 개가 두 번 짖고 그쳤다. 발가락이 먼저 얼고, 그다음에 발등이 얼고, 나중에는 무릎 아래가 제 것 같지 않았다.

도가 돌담은 소여 키의 두 배였고, 담 위에 깨진 사금파리가 눈에 덮여 반쯤만 비죽 나와 있었다. 그러나 맨 끝 광 뒤쪽에 쥐들이 판 구멍이 있었고, 그 위로 겨우내 쌓인 눈이 무너져 틈이 벌어져 있었다. 아이 하나가 배를 대고 기어들 만했다.

광 앞에는 화로가 하나 있었다. 곰배와 장대가 그 곁에 앉아 있었는데, 둘 다 졸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내가 더 세게 맞았다니까. 팔꿈치는 뼈야.”

“명치는 숨이야. 숨이 뼈보다 위지.”

“그럼 오늘 누가 불침번 서?”

“더 세게 맞은 놈이 자야지.”

둘은 동시에 “그럼 나네” 하고, 동시에 드러누웠다.

*

광 안은 쌀 냄새가 짙었다. 묵은 쌀 냄새에 쥐 냄새가 섞여 있었고, 그 사이로 들기름 타는 냄새가 가늘게 났다. 쌀섬이 천장까지 쌓인 사이로 좁은 통로가 하나 나 있었고, 그 끝에 작은 기름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늙은이가 쌀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 명치를 누르고 있었다. 객잔 마당에서 본 얼굴이었는데 그때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수염이 헝클어져 있었고, 눈 밑이 검었다.

늙은이가 먼저 소여를 봤는데 놀라지 않았다. 올 사람이 왔다는 얼굴이었다. 그의 곁에는 먹다 만 주먹밥 하나가 식어 있었고, 밥알 위에 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숯쟁이 딸이구나.”

소여는 낫을 들었다. 손이 떨려서 날이 기름등 불빛에 몇 번 번쩍였다. 늙은이와 소여 사이는 여섯 걸음쯤 됐다. 소여는 그것을 세지 않았다.

“왜 찔렀습니까?”

늙은이는 명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았다.

“겁이 나서.”

“무엇이 겁났습니까?”

“네 아비가 안 비켜서.” 늙은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갈라져 있었다. “곰배하고 장대가 둘이서 팔을 당기는데 부엌 문고리를 안 놓더라. 문짝이 경첩에서 빠질 때까지 안 놓았다. 끌려 나오면서도 네가 있는 쪽을 등으로 가렸다. 사람이 저렇게 안 비키면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모른다. 나는 삼십 년을 받으러 다녔고, 받으러 가서 겁이 나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겁이 났다. 그래서 내가 먼저 넣었다.”

소여는 낫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닳은 자루의 오목한 자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여팔 어른이 시켰습니까?”

“딸을 데려와라. 아비가 막거든 겁을 줘라.” 늙은이가 말했다. “찌르라는 말은 없었다. 찌른 건 나다. 변명 안 한다.”

소여는 한 걸음 들어갔다. 늙은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 걸음 들어갔을 때 늙은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셋째 걸음에서 소여는 낫을 치켜들었다.

늙은이가 없어졌다.

없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누런 눈이 바로 앞에서 커져 있었고, 마른 손이 소여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쥐는 힘은 약했다. 그런데 낫은 이미 손에서 빠져 쌀섬 위로 굴러가 있었다.

소여는 숨을 못 쉬었다. 명치 한복판에 불붙은 숯덩이 하나를 누가 밀어 넣은 것 같았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가 그 자리에 박혔다.

늙은이도 숨을 못 쉬었다. 그는 소여의 손목을 놓고 비틀거리며 물러나 쌀섬에 등을 부딪쳤다. 그러고는 제 명치를 눌렀다. 누르고, 또 눌렀다. 무언가를 찾는 손이었다.

“없다.” 그가 중얼거렸다. “안 아프다. 이게 어디로…….”

그의 눈이 소여의 명치로 내려왔다. 소여는 저도 모르게 거기를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늙은이의 얼굴이 무너졌다. 무너지는 것을 소여는 처음 봤다. 사람 얼굴이 그렇게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너한테…….” 늙은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쌀섬 위에 굴러간 낫을 주워 자루 쪽을 소여에게 내밀었다. “가거라.”

“어른은 왜 안 피하셨습니까?”

“피할 생각이 없었다. 몸이 먼저 갔다. 저번에도 그랬다.” 늙은이가 말했다. “가거라. 여기 있으면 여팔이 너를 본다. 너를 보면 이제 부엌일로 안 끝난다.”

광 밖에서 곰배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영감? 뭐 넘어졌소?”

늙은이가 소여를 쌀섬 뒤 쥐구멍 쪽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광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쥐다. 쥐가 섬을 쏟았다.”

“쥐 잡을 힘은 있소?”

“없다. 자라.”

*

소여는 어떻게 비탈을 올라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장터 어귀에서 한 번 넘어졌던 것 같고, 넘어진 자리에서 낫을 더듬어 찾은 것 같았다. 발이 얼어 있었는데 명치만 뜨거웠다. 숯가마 곁에 와서야 걸음이 멈췄다. 가마 벽이 아직 따뜻해서 등을 대니 등이 녹았다.

그녀는 낫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자루의 닳은 자리에 손가락을 넣어 봤다. 아버지 손가락이 스무 해 동안 쥐던 자리였고, 소여 손가락은 거기 다 안 찼다.

아버지는 문고리를 안 놓았다. 두 사람이 팔을 당기는데도 안 놓았고, 끌려 나가면서도 소여가 있는 쪽을 등으로 가렸다. 몇 사람인지도 안 세고 그냥 막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었다.

소여는 가마 벽에 이마를 댔다. 이마가 뜨거웠다. 그리고 소리가 났다. 객잔 마당 이후로 처음 제 입에서 나는 울음소리였다. 한번 나기 시작한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집 안에서 고모가 뛰어나왔다. 맨발이었다. 고모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소여를 끌어안았는데, 끌어안는 팔이 아버지보다 억셌다.

“왜 이래, 응? 어디 아파?”

소여는 고모 품에서 명치를 눌렀다. 맞은 적 없는 자리였다. 늙은이가 광에서 누르던 바로 그 자리가, 그 늙은이 대신 아팠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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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6.12· 4화

    문장이 짧은데 밀도가 있어요. 계속 읽게 됩니다.

    • 한도윤작가2026.06.13

      끝까지 따라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4화는 문장을 덜어 내는 데 시간을 제일 많이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