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40자) · 단하 · 섣달 스무날
아홉 군데
초식을 쓸 때마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 한도윤
무진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술병부터 상에 올렸다. 병 주둥이를 짚으로 틀어막은 것이 바위나루 뱃사람들이 마시는 탁주였고, 고개를 넘어오는 동안 반쯤 얼었는지 흔들 때마다 안에서 살얼음 부딪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잔 둘을 놓고 둘 다 채웠다.
“한 잔 해라.”
“안 마십니다.”
“그래서 네가 그 모양이지.” 무진이 단하 몫의 잔까지 제 앞으로 끌어왔다. “쉰두 냥이라며. 고개 아래 객잔에서 사람 하나 못 살리고, 고개 넘어와서 쉰두 냥 빚을 지고. 너 셈 잘한다던 놈 맞냐?”
무진은 단하보다 다섯 해 위다. 스승 밑에 세 해 먼저 들어왔고, 마당은 훨씬 오래 쓸었다. 손이 크고 손톱이 짧았다. 검을 쥐어 본 적 없는 손은 아닌데 검을 오래 쥔 손도 아니었다. 스승이 죽은 뒤로 그는 바위나루에서 뱃일을 했고, 이 년에 한 번쯤 어디선가 단하가 사고를 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소식을 듣고 오는 게 아니었다. 단하가 무엇을 했을지 짐작하고 왔다.
“사형은 왜 오셨습니까?”
“데리러 왔지. 나루로 가자, 배 한 척 더 들이면 너 하나 못 먹이겠냐.”
“삼짇날까지는 못 갑니다.”
“그 아이는 고모가 있다며.”
“고모도 여팔에게 빚이 있습니다.”
무진이 잔을 들다가 멈췄다. 탁주가 잔 가장자리에서 한 번 출렁였다.
“그래서 네가 이 고을 빚을 다 지겠다고?”
“스물여섯 섬만 집니다.”
“스물여섯 섬만.” 무진이 잔을 비웠다. “네 입에서 「만」 소리가 나오는 거 처음 듣는다.”
단하가 제 명치를 눌렀다. 이레가 지났는데도 아직 쑤셨다. 무진의 눈이 그 손을 따라왔다.
“어디 다쳤냐?”
“쓴 자리입니다. 나가면 아픕니다.”
무진이 잔을 내려놓았다. 상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그는 잔을 놓기 전에 손끝으로 상판을 한 번 훑었는데, 그 손이 잠깐 제 왼쪽 옆구리에 가서 머물렀다가 돌아왔다. 단하는 아주 짧게 지나간 그 손을 봤다.
“사형은 어디가 아프십니까?”
“나? 나이가 서른넷인데 안 아픈 데가 있겠냐.”
“다친 적 없이 아픈 데 말입니다.”
무진이 술을 따랐다. 병에 남은 것이 얼마 없어서 따르는 소리가 짧았다.
“없다.”
*
아래 술청에서 상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단하가 일어섰다. 일어서고 나서야 제가 왜 일어섰는지 알았다. 열하루 전 밤에도 그렇게 시작했다.
“앉아.” 무진이 잔을 든 채 말했다. “저건 싸움 아니다.”
“소리가 났습니다.”
“싸움은 소리가 두 번 나야 싸움이야. 한 번 나면 그냥 상이 자빠진 거고.”
두 번째 소리가 났다.
“어, 싸움이네.”
무진이 먼저 내려갔다. 단하는 난간에서 내려다봤다. 사내 둘이 서로 멱살을 잡고 있었고, 그 사이에 홍매가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무진은 둘 사이로 들어가지 않았다. 옆으로 가서 넘어진 상을 세우고, 굴러간 그릇을 주워 올리면서 혼잣말을 크게 했다.
“아까운 술 다 엎었네. 이거 누구 술이오?”
“내 술인데.”
“그럼 댁만 손해 봤네. 저 양반은 손해 하나 안 봤고.” 무진이 그릇을 상에 올렸다. “댁만 손해 보는 싸움을 왜 하오?”
셈이 맞으니 멱살이 풀렸다. 홍매가 국자로 무진의 어깨를 톡 쳤다.
“이 양반 술값은 누가 내오?”
“저 위에 쉰두 냥 빚진 양반이.”
*
새벽에 무진이 뒷간에 간다고 일어났다. 단하도 따라 나섰다.
홍매집 계단은 일곱 단이었고, 오래된 소나무 널이 가운데만 닳아서 오목했다. 밤새 창호 틈으로 들이친 눈이 계단 넷째 단에 얇게 얼어 있었다. 단하는 그것을 봤는데, 무진은 못 봤다.
무진이 넷째 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단하가 손을 뻗었다. 뻗으면서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진의 몸은 이미 난간 반대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난간은 반 자 밖에 있었다.
그런데 무진은 넘어지지 않았다. 몸이 기우는 쪽으로 오히려 더 기울면서 반 보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간 자리에 발이 놓였고, 어깨가 벽에 닿아 멈췄다. 그러고는 남은 세 단을 소리 하나 없이 내려갔다.
무진이 계단 밑에서 제 발을 내려다봤다.
“어, 나 안 넘어졌네?”
단하는 계단 위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기우는 쪽으로 더 기울면서 반 보 안으로 들어가는 것. 스승이 열한 번째로 가르친 초식이었다. 단하는 그것을 재작년 여름 산길에서 썼다. 비탈에서 산적 둘이 위아래로 몰아올 때였다. 쓰고 나서 왼쪽 옆구리가 이레 아팠다.
그날 산길에서 단하의 왼쪽 반 보 뒤에 무진이 있었다.
“사형.”
“왜?”
“지금 손이 어디 가 있습니까?”
무진이 제 손을 봤다. 왼손이 옆구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뗐다.
“이건 그냥 버릇이다.”
“언제부터 그런 버릇이 드셨습니까?”
“몰라. 그만해라.”
*
단하는 뒷마당으로 내려가 검을 뽑았다.
홍매집 뒷마당은 장작더미와 장독 사이에 여덟 걸음쯤 되는 빈 땅이 있었고, 그 위에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덮여 있었다. 새벽빛이 아직 푸르렀다. 무진이 뒷간에서 나오다가 검을 든 단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뭐 하냐, 새벽부터.”
“사형, 받으십시오.”
단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갔다. 다섯 해 전 늦가을 강가에서 칼잡이 하나를 막을 때 들어간 그 각도 그대로,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 어깨를 노렸다. 멈출 생각이었고, 멈출 자신도 있었다.
무진의 맨손 오른팔이 먼저 올라왔다. 손날이 검면을 옆에서 때렸고, 검이 반 자 비켜 나갔고, 비켜 나간 검 밑으로 무진의 몸이 들어와 단하의 가슴에 어깨를 박았다. 단하는 두 걸음 밀려나 장독에 등을 부딪쳤다.
그 강가에서 단하가 쓴 것이 스승의 열여섯째였다. 쓰고 나서 오른 어깨가 이레 아팠다.
무진이 제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손날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너 미쳤냐.”
“사형.”
“진검을 들고 사형한테 들어와? 새벽에? 뒷간 앞에서?” 무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가 나서 떨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너 지금 나를 벨 뻔했다.”
“안 베었습니다. 사형이 막으셨습니다.”
“내가 뭘 막아. 나는 검 쥐는 법도 스승한테 제대로 못 배웠다.”
“그런데 막으셨습니다. 제 열여섯째로요.”
무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한참 부은 손을 보다가, 그 손을 오른 어깨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제가 그 어깨를 짚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
“아홉 군데다.”
무진이 장작더미에 걸터앉아 말했다. 해가 산등성이에 걸려서 뒷마당 눈이 붉었다.
“왼 옆구리, 오른 어깨, 뒷목, 왼 무릎, 오른 손등, 허리 두 군데, 정강이, 그리고 여기.” 그가 명치를 짚었다.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의원한테 여섯 번 갔는데 여섯 번 다 아무것도 없다더라. 그래서 이제 안 간다.”
“언제부터입니까?”
“스승 돌아가시고 한 해쯤 뒤부터. 하나씩 생겼다. 생기면 이레쯤 쑤시다가 가라앉고, 추운 날이면 도로 쑤시고.” 무진이 코로 웃었다. “원래는 열하나였다.”
“열하나요?”
“작년 가을에 나루 뒷산에서 산적 넷을 혼자 붙었다. 붙고 나서 내가 나한테 놀랐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 그냥 운이 좋았구나 했는데, 그 뒤로 두 군데가 안 아프더라. 허리 왼쪽이랑 오른 팔꿈치.”
단하는 무진 앞에 쪼그려 앉아 눈 위에 손가락으로 줄을 그었다. 스물셋 가운데 스승이 죽은 뒤 쓴 것은 다 나갔다. 나간 것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쓸 때마다 옆에 누가 있었는지 떠올렸다. 스승은 살아 있을 때 늘 무진을 단하의 왼쪽 반 보 뒤에 세웠다. 스승이 죽은 뒤에도 무진은 한 해에 몇 달씩 단하를 따라다녔고, 따라다니는 동안 버릇처럼 늘 그 자리에 섰다.
열하나가 무진이 뒤에 서 있던 날이었다.
“사형은 스승께 하나도 못 받은 게 아닙니다.”
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께서는 저한테 가르치시고, 제가 쓰면 사형 몸에 들도록 사형을 제 뒤에 세우셨습니다. 쓰면 나가는 걸 아셨던 겁니다. 나간 것이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한테 드는 것도 아셨고요.”
“그럼 산적 둘은?”
“사형이 모르고 쓰셨으니 사형한테서 또 나가 산적한테 간 겁니다.”
무진이 한참 제 왼 무릎을 봤다. 아홉 군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스무 해 동안 네 뒤에 서서 짐을 졌다. 스승이 너한테는 스물넷을 주고 나한테는 서찰 한 장 줬어. 잘 도우라고. 나는 그게 서운해서 나루로 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거지. 스승은 나를…….”
“사형.”
“그릇이냐.”
단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진이 일어서서 단하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부은 손이 아니라 멀쩡한 왼손이었고, 힘을 다 싣지 않았다. 단하는 눈 위에 주저앉았다. 입 안에서 쇠 맛이 났다.
“아프냐?”
“아픕니다.”
“그게 맞은 데가 아픈 거다.” 무진이 말했다. 눈가가 붉었는데 그는 그것을 추위 탓으로 돌리려는 듯 코를 크게 훌쩍였다. “나는 열한 해를 안 맞은 데가 아팠다. 그 차이를 너는 모르지.”
그는 뒷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장독 뚜껑 위의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 내리고, 장작 하나를 들었다 놓고, 다시 단하 앞에 와서 섰다.
“아홉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냐.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쓰면 또 남한테 가고.”
“모르고 쓰면 나갑니다. 아시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다를 수도 있다. 너 요즘 말이 헐거워졌다.”
*
해가 다 올라온 뒤에 단하는 다른 셈을 했다.
스물셋째는 객잔 마당에서 거리를 없앤 것이다. 그날 가장 가까이서, 정면으로 그것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곰배는 눈밭에 누워 있었고, 장대는 접혀 있었다. 소여는 마루 밑에 있었고, 장순은 등을 보이고 쓰러지고 있었다. 단하가 눈을 떴을 때 코앞에 있던 얼굴은 하나였다. 속눈썹에 눈 한 송이가 붙어 있던 누런 눈.
달아나던 채노는 제 명치를 누르고 있었다.
“사형. 모르고 가진 사람이 겁이 나면 어떻게 됩니까?”
무진이 제 옆구리를 봤다. 산적 넷을 혼자 붙은 날을 떠올리는 얼굴이었다.
“몸이 먼저 가지.”
“채노가 그걸 가지고 있습니다. 여팔의 광에 숨어서요.”
무진이 부은 손을 쥐었다 폈다. 아프다는 얼굴을 했다가, 그 얼굴을 치웠다.
“사람 찌른 늙은이가 겁먹은 채로, 눈 감았다 뜨면 코앞에 가는 걸 품고 있다.” 그가 말했다. “그 늙은이가 다음에 겁나는 게 누구냐?”
홍매가 부엌 문을 열고 소리쳤다.
“검객 양반! 도가 청지기가 오늘 숯가마 집에 간답디다. 그 계집아이 이를 보러 간다나.”
무진이 먼저 대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울타리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부은 손을 품에 넣은 채였다.
“쉰두 냥에 내 술값도 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