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04자)

거절하면 벌금

국민 판사 추첨제 · 은해록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수원지방법원 1층 민원 창구 앞에서 금분은 사퇴서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일요일 밤에 가게 영수증 용지 뒷면에 초안을 쓰고⁠, 찬별이 휴대전화로 반듯하게 쳐서 출력해 준 종이였다⁠. 맨 아래 「⁠피고인이 저희 가게 단골이라서⁠」라는 줄에 찬별이 굳이 「⁠(⁠목 따로⁠)⁠」를 붙여 놓은 것을 금분은 창구 앞에서야 발견했다⁠.

창구 직원은 사퇴서를 읽고 서랍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국민 판사 사퇴에 따른 과태료 및 벌금 안내⁠」⁠. 직원이 볼펜 끝으로 두 줄을 짚었다⁠.

“⁠회피 사유는 친족⁠, 고용⁠, 재산 관계 셋입니다⁠. 단골은 들어가지 않아요⁠. 사퇴로 처리하시면 벌금 천만 원이 나오고⁠, 사퇴 사유가 법원 누리집에 공개됩니다⁠.⁠”

“⁠공개요⁠? 목 따로까지요⁠?⁠”

“⁠적으신 대로 다 나갑니다⁠.⁠”

뒤에 서 있던 경호가 금분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배달 조끼를 입은 채 따라왔다⁠.

“⁠여보⁠, 천만 원이면 내 오토바이 네 대야⁠. 변호사 언니 채널에서 봤는데⁠, 이런 건 법적으로 이의 신청이 된대⁠. 행정소송법 삼 조⁠.⁠”

“⁠삼 조가 뭔데⁠.⁠”

“⁠그건 안 봤어⁠. 거기서 광고가 나왔어⁠.⁠”

창구 직원이 웃음을 참느라 볼펜을 내려놓았다⁠. 직원은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판사님⁠. 사퇴하실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오늘 아침에 기피 신청이 들어왔네요⁠. 검사님이 내셨습니다⁠. 열한 시에 형사4부에서 심리합니다⁠.⁠”

금분은 사퇴서를 도로 접어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귀퉁이가 금요일보다 더 벌어져 있었다⁠.

*

형사4부 소법정은 대법정의 반만 했다⁠. 판사석에는 다른 부장판사가 혼자 앉았고⁠, 금분은 증인석 비슷한 자리에 앉았다⁠. 검사석의 공판 검사는 서른 후반 여자였다⁠. 머리를 뒤로 단단히 넘겨 묶었고⁠, 서류를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침 대신 고무 골무를 끼웠다⁠. 방청석 첫 줄에 미경이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검은 리본이 한 묶음 있었다⁠.

“⁠유족 측 요청으로 기피를 신청합니다⁠. 국민 판사님과 피고인의 관계를 법정에서 직접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부장판사가 금분에게 말하라고 손짓했다⁠. 금분은 일어서서 무엇부터 말할지 몰라 앞치마 끈을 만졌다⁠. 법복은 오늘 입지 않았다⁠.

“⁠세 해 전 섣달에요⁠, 남편이 배달 나갔다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길에 주저앉았어요⁠. 대동맥이 찢어졌대요⁠. 세온대학병원 응급실에 갔고⁠, 조정목 선생님이 열한 시간 수술했어요⁠. 남편은 살았어요⁠. 그다음부터 선생님이 금요일마다 저희 집 닭을 시켜요⁠. 반반 한 마리에 목 따로⁠, 무 많이⁠. 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목 따로는 무엇입니까⁠?⁠”

부장판사의 물음에 방청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났다⁠. 금분은 웃지 않았다⁠.

“⁠닭 목만 따로 모아서 튀겨 드리는 거예요⁠. 다른 손님들은 목 안 드세요⁠. 선생님은 그게 제일 맛있대요⁠.⁠”

미경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단골 재판을 단골이 해요⁠?⁠”

부장판사가 방청석은 조용히 하라고 했다⁠. 미경은 다시 앉았지만 눈은 금분에게서 떼지 않았다⁠. 공판 검사가 골무 낀 손가락으로 서류를 한 장 넘기고 일어섰다⁠.

“⁠국민 판사님⁠. 피고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까⁠?⁠”

“⁠있어요⁠.⁠”

“⁠그 마음이 판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금분은 대답하기 전에 앞치마 주머니를 손으로 눌렀다⁠. 주머니 속에서 접은 사퇴서가 바스락거렸다⁠.

“⁠장담 못 해요⁠. 사람 마음이 튀김옷처럼 딱 떨어지면 좋겠는데 안 그래요⁠. 대신 들어가면 들어갔다고 판결문에 쓸게요⁠. 감추지는 않을게요⁠.⁠”

검사는 잠깐 금분을 보다가 앉았다⁠. 서류에 무언가 적는 볼펜 소리가 소법정 안에 또렷했다⁠. 금분은 미경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보탰다⁠.

“⁠저 장사 열두 해 했어요⁠. 단골이 상한 닭 먹고 탈 나면 단골이라고 안 봐줘요⁠. 환불하고⁠, 사과하고⁠, 그날 기름은 다 버려요⁠. 기름이 아까워도 버려요⁠.⁠”

결정은 이튿날 아침에 나왔다⁠. 법원 누리집 첫 화면에 한 줄로 떴다⁠. 「⁠기피 신청 기각 · 국민 판사는 이웃이다⁠. 피고인을 안다는 것만으로 공정한 재판을 해친다고 볼 수 없다⁠」⁠. 찬별이 화면을 캡처해 가게 단톡방에 올렸고⁠, 경호는 이웃이다라는 낱말에 밑줄을 쳐서 냉장고에 붙였다⁠.

*

판사실 탁자 위에 병찬이 종이 묶음을 올려놓았다⁠. 두 해 동안 국민 판사들이 쓴 판결문 열한 개를 모은 것이었다⁠. 금분은 묶음을 두 손으로 들어 보았다⁠. 손바닥이 닭 무게를 먼저 쟀다⁠.

“⁠이 킬로 조금 안 되네요⁠. 육계 큰 거 한 마리⁠.⁠”

“⁠판결문은 국민 판사님이 쓰십니다⁠. 저는 법리 의견을 뒤에 붙이고 같이 서명합니다⁠. 결론은 제가 바꾸지 못합니다⁠.⁠”

“⁠그럼 판사님은 뭐 하세요⁠?⁠”

“⁠옆에서 말립니다⁠.⁠”

병찬은 농담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금분은 판결문 하나를 펼쳤다가 첫 장의 한자어에서 눈을 감았다⁠.

“⁠공판은 오전으로 잡아 주세요⁠. 오후 네 시에 닭 들어와요⁠.⁠”

“⁠재판 일정을 닭 들어오는 시각에 맞추자는 말씀입니까⁠?⁠”

“⁠네⁠. 닭은 법원 일정에 안 맞춰 줘요⁠.⁠”

병찬은 잠깐 생각하다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첫 공판은 3월 세 번째 월요일 오전 열 시였다⁠. 동그라미를 다 치고 나서 병찬이 물었다⁠.

“⁠목 따로는 정말 맛있습니까⁠?⁠”

“⁠드셔 보실래요⁠?⁠”

“⁠증거로는 채택하지 않겠습니다⁠.⁠”

병찬은 서류를 가지런히 모으면서 한 가지를 더 일렀다⁠. 국민 판사가 앉는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원 누리집으로 중계된다고 했다⁠. 법정 천장 카메라가 판사석 가운데를 비춘다고 했다⁠.

“⁠그럼 앞치마 얼룩도 나가요⁠?⁠”

“⁠얼룩까지 나갑니다⁠. 두 해 전 그분은 카메라 앞에서 우셨습니다⁠. 이튿날 그분 세탁소 앞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는 얼굴을 캡처한 사진이 아직도 돌아다닙니다⁠.⁠”

병찬은 말하는 동안 볼펜 네 자루를 다시 길이 순서로 맞췄다⁠. 맞출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맞아 있었다⁠.

판사실을 나서는데 복도 텔레비전에서 국회 뉴스가 나왔다⁠. 법사위 소속 의원이 기자들 앞에서 종이 한 장을 흔들었다⁠. 두 해 전 국민 판사가 울면서 썼다는 판결문이었다⁠. 「⁠“⁠국민 판사가 울면서 쓴 판결⁠, 항소심서 전부 파기 … 감정 재판 끝내야⁠”⁠」⁠. 화면 귀퉁이 여론조사 막대는 사법부를 믿는다는 사람이 열에 둘이 안 된다고 했다⁠.

*

화요일 밤 열한 시 반⁠, 금분이 튀김기 기름을 거르고 있을 때 가게 문에 달린 방울이 울렸다⁠. 미경이었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경호의 배달 조끼가 개켜져 있었다⁠. 지난달 지퍼가 나가서 수선을 맡겨 둔 조끼였다⁠.

“⁠다 됐어⁠.⁠”

“⁠얼마예요⁠?⁠”

미경은 조끼를 계산대에 내려놓고 입에 문 시침핀을 빼서 조끼 깃에 꽂았다⁠.

“⁠수선비 안 받을게⁠. 대신 판사 그만둬⁠.⁠”

금분은 기름 거르던 국자를 내려놓았다⁠. 기름에서 아직 김이 올라왔다⁠. 주방 안쪽에서 찬별이 설거지를 멈췄고⁠, 경호는 냉장고 문을 연 채 굳었다⁠.

“⁠수선비 받으세요⁠. 판사는 제가 해요⁠.⁠”

“⁠금분 씨⁠. 정목 선생 무죄 주면 동네가 다 알아⁠. 단골이라 봐줬다고⁠. 그럼 우리 엄마 같은 사람만 바보 돼⁠.⁠”

“⁠무죄 줄지 유죄 줄지 저도 몰라요⁠. 모르니까 하는 거예요⁠. 아는 사람이 하면 그게 장사지 재판이에요⁠?⁠”

미경은 대꾸하지 않고 계산대 위의 노란 공을 보았다⁠. 금분이 가게에 가져와 카드 단말기 옆에 세워 둔 공이었다⁠. 미경이 공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공이 반 바퀴 굴렀다⁠.

“⁠엄마는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십육 년 팔았어⁠. 그날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콩나물시루에 물 주다가 쓰러졌어⁠. 입원하고 닷새 만에 정전이 났대⁠.⁠”

미경은 시침핀 하나를 다시 입에 물었다⁠. 핀을 문 채로 말이 짧아졌다⁠.

“⁠간호사가 그러더라⁠. 엄마 자리에 빨간 콘센트가 있었대⁠. 근데 아침에 가 보니까 엄마 호흡기 줄이 흰 콘센트에 꽂혀 있었어⁠.⁠”

금분은 4번이라는 숫자를 다시 떠올렸다⁠. 금요일에 들은 숫자였다⁠.

“⁠누가 옮겼는지 법정에서 물어볼게요⁠.⁠”

“⁠물어봐⁠. 대답 안 하면⁠?⁠”

“⁠그럼 또 물어봐요⁠. 손님이 돈 안 내고 가면 저는 골목 끝까지 따라가요⁠.⁠”

미경이 처음으로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짧았다⁠. 금분은 금고에서 오천 원짜리를 꺼내 계산대에 놓았다⁠. 미경은 잠깐 보다가 지폐를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문을 나서면서 미경이 말했다⁠.

“⁠주머니⁠. 내일 가져와⁠.⁠”

방울이 한 번 더 울렸다⁠. 경호가 그제야 냉장고 문을 닫았다⁠.

“⁠여보⁠, 법적으로 지금 그거⁠, 피해자 측 접촉 아니야⁠?⁠”

“⁠수선비 낸 거야⁠. 영수증 끊어 줘⁠.⁠”

찬별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상가 단톡방이 또 울리고 있었다⁠. 「⁠정육점⁠: 판사님 내일 닭 몇 마리 넣어요⁠? 납품은 정의롭게 하겠습니다ㅎㅎ⁠」 「⁠떡집⁠: 재판 중계 몇 시예요⁠? 가게 텔레비전으로 틀어 놓게⁠」 「⁠미용실⁠: 판사님 머리는 제가 해 드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중계 나가는데⁠」⁠.

금분은 틀어 올린 곱슬머리를 풀었다가 다시 틀어 묶었다⁠. 잔머리가 또 삐져나왔다⁠. 거울 대신 꺼진 튀김기 스테인리스에 둥근 얼굴이 비쳤다⁠.

“⁠머리는 이대로 간다고 해⁠.⁠”

“⁠사장님⁠, 그럼 해시태그는 머리도 안 한 판사⁠.⁠”

“⁠너 내일부터 무 썰어⁠.⁠”

*

3월 세 번째 월요일 오전 열 시⁠, 대법정 천장에 매달린 중계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금분은 판사석 가운데에 앉았고 병찬은 오른쪽에 앉았다⁠. 법복 아래 앞치마가 무릎을 덮었다⁠. 앞치마 주머니는 미경이 아침에 꿰매서 돌려줬다⁠. 실이 새것이라 하얗게 도드라졌다⁠.

방청석은 두 덩어리였다⁠. 왼편에는 검은 옷을 입은 유족들이 영정 대신 사진을 무릎에 올리고 앉았다⁠. 오른편에는 정장 차림 몇이 띄엄띄엄 앉았다⁠. 세온의료재단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병찬이 아침에 귀띔했다⁠. 피고인석 옆 변호인석에는 은테 안경을 쓴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재단이 붙여 준 큰 법무법인의 변호사였다⁠.

금분은 마이크 앞에서 숨을 들이마셨다⁠. 열두 해 동안 문 열 때마다 하던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

“⁠어서 오⁠—⁠”

병찬이 탁자 아래에서 금분의 법복 소매를 살짝 당겼다⁠. 금분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말했다⁠.

“⁠개정합니다⁠.⁠”

방청석 오른편에서 누가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유족들은 웃지 않았다⁠.

조정목이 피고인석으로 걸어 나왔다⁠. 금분이 알던 얼굴보다 볼이 꺼져 있었다⁠. 금요일 밤 가게 앞에서 닭 봉지를 받아 들던 손이 지금은 피고인석 난간을 쥐고 있었다⁠. 손등의 핏줄이 섰다⁠. 정목은 판사석을 한 번 올려다보았고⁠, 눈이 금분의 앞치마에서 멈췄다가 내려갔다⁠.

공판 검사가 공소 사실을 읽었다⁠. 2039년 12월 18일 새벽⁠, 세온대학병원 별관 정전⁠, 빨간 콘센트 열두 개⁠, 숨진 환자 열두 명⁠. 검사가 숨진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마다 방청석 왼편에서 누군가 고개를 숙였다⁠. 노순자라는 이름에서 미경이 무릎 위 사진을 두 손으로 눌렀다⁠.

금분은 병찬이 써 준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피고인에게 물을 문장이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 금분은 쪽지대로 읽었다⁠.

“⁠피고인은 공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정목이 일어섰다⁠. 변호사가 무언가 귀에 대고 말하려 했지만 정목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모두 인정합니다⁠. 제가 골랐습니다⁠.⁠”

중계 카메라의 빨간 불이 깜박이지도 않고 정목을 비췄다⁠. 금분은 정목의 눈을 찾았다⁠. 정목은 판사석도 유족석도 보지 않았다⁠. 눈은 재단 사람들이 앉은 오른편 두 번째 줄에 가 있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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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요약2026.11.01· 2화

    사퇴서에 「(목 따로)」 붙여 놓은 찬별이 진짜 웃겨요. 근데 벌금 천만 원이면 저도 못 그만둬요.

    • 은해록작가2026.11.01

      찬별이는 금분 사장님 대신 늘 한 줄을 더 씁니다. 리뷰 답글도 그래요. 천만 원 앞에서는 누구라도 법복을 입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