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76자)

자정 앞의 이동장

국회 고양이 국밥이 · 소예찬

진바다는 12월 2일 오후 두 시⁠, 왕진 가방을 든 장보은을 데리고 본회의장 옆문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서 오만식이 출입자 명단을 받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의도 장보은 동물병원 원장 장보은 님⁠. 소속⁠, 동물병원⁠. 방문 목적⁠.⁠” 오만식이 볼펜 끝을 들었다⁠. “⁠고양이 진찰⁠. 맞습니까⁠?⁠”

“⁠출산 확인이요⁠.⁠” 장보은이 짧게 말했다⁠. 키가 크고 머리를 바짝 묶은 장보은은 국회 캣맘 모임이 사료를 사러 다닌 십 년 동안 한 번도 웃으며 진료한 적이 없었다⁠. “⁠들어가도 돼요⁠?⁠”

“⁠신발 덧싸개 착용하시고요⁠. 의원석 카펫은 지난여름에 새로 깔았습니다⁠.⁠”

장보은은 덧싸개를 신고 의장석 앞에 엎드렸다⁠. 손전등 대신 휴대전화 화면 불빛을 낮게 비췄다⁠. 국밥이 귀를 뒤로 눕혔지만 하악질은 하지 않았다⁠. 장보은이 오래 들여다보는 동안 본회의장에는 젖 빠는 소리와 천장 환풍기 소리만 났다⁠.

“⁠넷 다 살았네요⁠. 배 빵빵하고⁠. 어미 젖 잘 나오고⁠.⁠” 장보은이 몸을 일으켰다⁠. “⁠이 자리 바닥이 따뜻하죠⁠?⁠”

“⁠바닥 난방 송풍구가 의장석 밑으로 지나갑니다⁠. 늘 23도로 맞춰 둡니다⁠.⁠” 오만식이 대답했다⁠.

“⁠고양이가 제일 좋은 자리를 골랐네요⁠. 이 건물에서⁠.⁠”

바다는 오만식을 보며 턱을 들었다⁠. 오만식은 못 본 체했다⁠.

“⁠그럼 선생님⁠, 옮기면 안 되는 거죠⁠? 옮기면 어미가 버리잖아요⁠.⁠”

“⁠사람 냄새 묻었다고 버리는 어미는 드물어요⁠.⁠” 장보은이 바다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건 반은 소문이에요⁠.⁠”

오만식이 조끼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볼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바다는 수첩에 「⁠반은 소문⁠」이 적히는 것을 보았다⁠.

“⁠대신⁠.⁠” 장보은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첫 일주일은 가능하면 안 옮겨요⁠. 어미가 불안하면 자기가 하나씩 물어서 옮겨요⁠. 사람이 옮기면 어미가 따라올 수도 있고 안 따라올 수도 있어요⁠. 안 따라오면 사람이 두세 시간마다 젖병을 물려야 하고요⁠. 밤에도요⁠. 넷이니까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누가 깨어 있어야 해요⁠.⁠” 장보은이 오만식을 보았다⁠. “⁠누가 하실래요⁠?⁠”

오만식의 볼펜이 멈췄다⁠. 옆에서 케이블을 감던 금동하가 손을 반쯤 들었다⁠.

“⁠저 동생 키울 때 분유 타 봤습니다⁠.⁠”

“⁠금동하 씨는 내일 아침 여섯 시 조명 점검⁠.⁠” 오만식이 말했다⁠. 금동하의 손이 내려갔다⁠.

“⁠그리고 소리⁠. 플래시⁠. 사람 발소리⁠.⁠” 장보은이 왕진 가방을 닫았다⁠. “⁠어미가 놀랄 일은 줄이세요⁠. 놀란 어미는 새끼를 깔아뭉개기도 해요⁠.⁠”

장보은은 나가다가 의장석 앞에서 다시 몸을 숙였다⁠. 국밥의 왼쪽 귀를 한참 보았다⁠.

“⁠왼쪽 귀 끝이 잘렸네⁠. 중성화 표시인데⁠.⁠”

“⁠길에서 싸운 거겠죠⁠.⁠” 오만식이 먼저 말했다⁠.

“⁠싸워서 자로 잰 것처럼 잘리지는 않아요⁠.⁠” 장보은이 덧싸개를 벗어 오만식의 손에 쥐여 주었다⁠. “⁠중성화한 고양이는 새끼를 못 낳고요⁠.⁠”

*

국밥은 오후 내내 문 너머 발소리를 들었다⁠.

발소리는 많았다⁠. 무겁게 끄는 소리⁠, 딱딱 굽 소리⁠, 뛰다가 멈추는 소리⁠. 문이 열릴 때마다 커피 냄새와 젖은 외투 냄새와 낯선 사람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면 왁스 냄새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 밖에서 사람들이 낮게 웅성거렸고⁠, 가끔 찰칵찰칵 소리가 났다⁠. 국밥은 찰칵 소리가 날 때마다 꼬리 끝을 털었다⁠.

새끼들은 소리를 몰랐다⁠. 먹고⁠, 자고⁠, 깨서 울고⁠, 다시 먹었다⁠. 회색 줄무늬는 가장 오래 빨았고⁠, 막내는 젖을 놓칠 때마다 온몸으로 울었다⁠. 국밥은 넷의 엉덩이를 차례로 핥았다⁠. 핥으면 새끼들이 볼일을 보았고⁠, 국밥은 그것까지 깨끗이 치웠다⁠. 굴은 넷의 젖 냄새와 국밥의 냄새 말고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야 했다⁠.

해가 기울 무렵 굴 앞에 물그릇이 놓였다⁠. 귤 냄새가 났다⁠. 국밥은 귤 냄새를 알았다⁠. 귤 냄새 나는 사람은 겨울마다 손에서 귤 껍질 냄새를 풍기며 사료 봉지를 흔들었고⁠, 국밥의 등을 쓸 때 손이 작고 차가웠다⁠. 국밥은 새끼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굴 입구까지 몸을 반만 빼서 물을 마셨다⁠. 물그릇 옆에 사료 한 줌과 삶은 닭가슴살 한 조각이 있었다⁠. 닭가슴살은 아직 따뜻했다⁠.

국밥이 닭가슴살을 물고 굴로 들어가자⁠, 귤 냄새 나는 사람이 아주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

진바다는 저녁 여섯 시에 자기 이름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의원실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탁원구 의원실 보좌관⁠, 맨몸으로 새끼 고양이 지켜⁠」

화면에는 오전에 바다가 찍은 사진이 떴다⁠. 손전등 빛 속 노란 눈 두 개와 털 뭉치 넷⁠. 탁원구가 낮 열두 시에 자기 계정에 올린 사진이었다⁠. 탁원구는 사진 밑에 「⁠생명 앞에 여야는 없습니다⁠. 우리 의원실 진바다 보좌관이 오늘 아침 의장석 앞을 지켰습니다⁠」라고 적었고⁠, 여섯 시간 만에 좋아요가 삼십만을 넘었다⁠. 탁원구가 의원 된 뒤 올린 글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았다⁠.

“⁠바다 씨⁠! 바다 씨⁠!⁠” 탁원구가 전화기를 들고 방을 가로질렀다⁠. “⁠아홉 시 뉴스 생방송 출연 요청 왔어⁠. 넥타이 뭐 해⁠? 고양이 무늬 있나⁠?⁠”

“⁠의원님⁠, 고양이 사진은 제 거예요⁠. 올리신다고 말씀 안 하셨잖아요⁠.⁠”

“⁠말하면 올리지 말라고 할 거잖아⁠.⁠” 탁원구가 진지하게 말했다⁠. “⁠바다 씨는 고양이 지키고 나는 바다 씨 지키고⁠. 이게 의원실이야⁠.⁠”

수행비서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의원님⁠, 고양이 무늬 넥타이는 없고 생선 무늬는 있습니다⁠.⁠”

“⁠생선 좋네⁠. 고양이가 좋아하잖아⁠.⁠”

일곱 시에 원내대표실에서 바다를 불렀다⁠. 본청 원내대표실 앞 복도는 기자들로 꽉 차 있었고⁠, 하정필이 문 앞에서 바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정필은 기자들 앞에서 바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진바다 보좌관⁠. 오늘부터 우리 당 본회의장 고양이 대응 실무를 맡아요⁠.⁠” 하정필이 기자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말했다⁠. 카메라 셔터가 쏟아졌다⁠. “⁠우리 당은 끝까지 넷을 지킵니다⁠. 넷⁠.⁠”

기자들이 빠져나가자 하정필이 바다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고양이 옮기려고 하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요⁠. 몇 시든⁠.⁠”

“⁠원내대표님⁠, 오늘 밤 열두 시가 법정 기한인데요⁠.⁠”

“⁠알아요⁠.⁠” 하정필이 다정하게 웃었다⁠. “⁠내가 국회에서 기한을 스물두 번 봤어요⁠. 기한은 해마다 와요⁠. 고양이 새끼는 오늘 한 번 태어나고⁠.⁠”

복도 끝 텔레비전에서는 여당 원내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사무처는 즉시 고양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야당은 고양이를 정쟁에 이용하지 마십시오⁠」⁠. 원내대변인 뒤 화면에 바다가 찍은 사진이 떠 있었다⁠.

*

밤 열 시 반⁠, 진바다는 본회의장 문 앞 복도 의자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뉴스에 니 이름 나오더라⁠. 센터 애들이 우리 선생님 딸 고양이 언니래⁠.⁠” 엄마 뒤에서 냄비 뚜껑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밤에도 내일 아침 찬거리를 다듬었다⁠. “⁠근데 바다야⁠, 고양이 때문에 예산 늦어지면 우리 센터 방학 급식은 어떻게 돼⁠? 센터장님이 1월부터 한 끼에 천 원 오른다고 좋아하셨는데⁠.⁠”

“⁠늦어져도 해는 안 넘겨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넘겼어요⁠.⁠”

“⁠한 번도 안 넘긴 건 고양이가 없어서 그랬던 거 아니고⁠?⁠” 엄마가 칼질을 멈췄다⁠. “⁠새끼는 몇 마리야⁠?⁠”

“⁠넷이요⁠.⁠”

“⁠아이고⁠. 우리 센터 애들보다 잘 먹겠네⁠.⁠”

엄마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바다는 꺼진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 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

밤 열한 시⁠, 진바다는 의장석 앞 카펫에 외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의원석 위 전광판 시계가 23⁠:02를 가리켰다⁠. 텅 빈 의원석에 조명이 절반만 켜져 있었고⁠, 등 뒤 틈에서는 젖 빠는 소리가 났다⁠.

옆문이 열렸다⁠. 오만식이 이동장을 들고 들어왔고⁠, 금동하가 수건 더미를 안고 따라 들어왔다⁠. 이동장은 바닥에 핫팩을 깔고 수건으로 덮어 놓은 플라스틱 상자였다⁠. 오만식은 이동장을 의장석 앞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바닥 온도 38도입니다⁠. 수건은 세탁실에서 막 꺼냈고요⁠. 시설과 보일러실 옆 창고에 자리 마련해 놨습니다⁠. 사람 안 다니고 바닥 따뜻하고⁠, 의사봉 소리 안 들립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첫 일주일은 안 옮긴다고 하셨잖아요⁠.⁠”

“⁠가능하면⁠, 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만식이 수첩을 펼쳤다⁠. “⁠여기 적어 놨어요⁠. 가능하면⁠. 그리고 반은 소문⁠.⁠”

“⁠과장님⁠.⁠”

“⁠이동장을 바로 옆에 놓고 새끼만 넣으면 어미가 따라 들어갑니다⁠. 안 들어가면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되고요⁠.⁠”

“⁠안 따라 들어가면 두세 시간마다 젖병이에요⁠. 과장님이 하실 거예요⁠?⁠”

“⁠금동하 씨가 동생 분유 타 봤답니다⁠.⁠”

금동하가 수건 더미 너머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는 금동하를 노려보았다⁠. 금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좌우로 저었다⁠.

오만식이 의장석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툼한 고무장갑을 낀 손이 틈 앞으로 내려갔다⁠. 바다는 오만식의 손목을 잡았다⁠. 고무장갑 위로도 손목이 단단했다⁠.

“⁠놓으세요⁠, 진바다 씨⁠.⁠”

“⁠과장님이 옮기고 싶은 건 고양이가 아니라 핑계잖아요⁠. 고양이 치우면 여야가 본회의 들어온대요⁠? 안 들어와요⁠. 다른 핑계 찾아요⁠. 그럼 과장님은 고양이만 쫓아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건 의원님들 사정이고요⁠. 제 사정은 본회의장입니다⁠.⁠” 오만식이 손목을 빼지 않고 말했다⁠. “⁠저는 삼십삼 년 동안 이 방을 비워 놓고 열어 놓는 일을 했어요⁠. 의원님들이 들어오든 말든⁠, 문은 제때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기 고양이가 있으면 문이 열려 있어도 닫힌 거예요⁠.⁠”

전광판 시계가 23⁠:41로 넘어갔다⁠. 두 사람이 손목을 잡고 잡힌 채 꿇어앉아 있는 동안⁠, 틈 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국밥이 일어나 있었다⁠. 국밥은 회색 줄무늬의 목덜미를 물고 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손전등이 닿지 않는 깊은 데로⁠. 잠시 뒤 빈 입으로 돌아와 삼색 하나를 물고 다시 들어갔다⁠. 세 번째⁠, 네 번째⁠. 막내를 물고 들어가기 전에 국밥은 몸을 돌려 이동장을 한 번 보았다⁠. 코를 벌름거리며 핫팩 냄새를 맡고는⁠, 막내를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만식의 고무장갑이 틈 앞에서 허공을 쥐었다⁠. 이제 팔을 어깨까지 넣어도 닿지 않았다⁠.

“⁠자기가 옮겼네요⁠.⁠” 바다가 말했다⁠. “⁠수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어미가 불안하면 자기가 옮긴다⁠.⁠”

“⁠제 그물채 말고 진바다 씨 목소리 때문에 불안했을 수도 있어요⁠.⁠”

전광판 숫자가 하나씩 넘어갔다⁠. 23⁠:58⁠. 23⁠:59⁠. 바다도 오만식도 숫자를 쳐다보았다⁠. 금동하만 수건 더미를 안은 채 하품을 했다⁠.

00⁠:00⁠.

본회의장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법정 기한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틈 안쪽 깊은 데서 새끼 하나가 냐⁠, 하고 울었다가 그쳤다⁠.

오만식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었다⁠. 문자를 읽은 오만식이 화면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사무총장⁠: 이동 보류⁠. 의장님 지시⁠. 양당이 고양이 옮기면 본회의 불참한다고 통보함⁠. 오 과장은 현장 관리만⁠」

“⁠축하드립니다⁠.⁠” 오만식이 고무장갑을 한 짝씩 벗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대한민국 예산이 고양이 덕분에 헌법을 어겼습니다⁠.⁠”

오만식은 이동장 뚜껑을 닫지 않고 의장석 옆에 밀어 두었다⁠. 핫팩이 든 채였다⁠. 금동하가 수건 더미를 이동장 위에 얹었다⁠. 두 사람이 옆문으로 나간 뒤⁠, 바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탁원구 의원⁠: 바다 씨 내일부터 의원실 말고 본회의장으로 출근해⁠」

「⁠탁원구 의원⁠: 원내대표님이 바다 씨 이름 외우셨대⁠. 우리 의원실 생기고 처음이야⁠」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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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11.06· 2화

    「대한민국 예산이 고양이 덕분에 헌법을 어겼습니다」 오만식 과장 대사 너무 웃겨요. 23:59에서 00:00 넘어가는데 금동하만 하품하는 것도요. 바다 씨 이제 본회의장으로 출근하는 거예요?

    • 소예찬작가2026.11.06

      오만식은 그 말을 하고 나서 핫팩은 그대로 두고 갔어요. 바다의 새 출근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는 6화까지 가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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