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690자)
새끼손가락에 묶인 원수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초아흐레 한낮, 월하원 아래층 계산대 앞에 칼 받는 상이 놓였다. 곽춘매는 상 위에 붉은 종이를 깔고 종이 위에 커다랗게 써 붙였다.
「칼 맡기는 곳 — 한 자루에 하나씩 번호표를 드립니다」
남궁진이 먼저 왔다. 흰 장포에 긴 검은 머리를 반쯤 묶었고, 뒤에 서른 남짓한 사내 하나를 달고 왔다. 사내는 진과 닮은 얼굴에 웃음을 얹은 채 계단 입구에 기대었다.
“사촌형 남궁율이오. 아우님 맞선에 들러리 하나는 있어야지요.”
진은 검을 상 위에 내려놓았다. 춘매가 번호표 「일」을 내밀었다. 진이 돌아서는데 소화가 계단 위에서 부채로 진의 오른 소매를 가리켰다.
“소매 속 것도요.”
진의 얼굴이 굳었다. 오른 소매에서 손바닥 길이의 비수가 나왔다. 춘매가 번호표 「이」를 내밀며 붓으로 무엇인가를 적었다.
“백 냥.”
“맡겼는데 왜 백 냥이냐?”
“숨겼다가 들킨 값은 맡긴 값과 다릅니다. 정찰가예요.”
남궁율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진은 사촌형을 한 번 노려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가린은 이번에는 문으로 들어왔다. 검붉은 비단옷에 이마의 붉은 불꽃 문양, 금관 장식은 그대로였고, 뒤에 허리 굽은 노파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따라 들어왔다. 노파는 들어서자마자 지팡이로 의자 다리를 하나씩 두드렸다.
“성녀님 유모 구양추다. 의자에 함정이 있나 보는 거다. 정파 놈들은 의자에 침을 박는다.”
“월하원 의자는 다리가 흔들릴 뿐 침은 없습니다.” 소화가 말했다.
“다리가 흔들리는 게 더 위험하다.”
가린이 칼을 상 위에 놓았다. 소화의 부채가 이번에는 가린의 머리를 가리켰다. 금관 옆에 꽂힌 비녀 끝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비녀도요.”
가린은 소화를 한참 보다가 비녀를 뽑아 상에 놓았다. 춘매가 비녀를 집으려 하자 구양추가 지팡이로 춘매 손등을 탁 쳤다.
“만지면 사흘 앓는다.”
춘매는 손을 거두고 붓으로 적었다. 「독비녀 — 만지지 말 것 — 백 냥」.
*
이층 맞선 방에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자 두 개가 마주 놓였다. 창가 끝자리에 무림맹 총관 당설희가 공문을 펴 놓고 앉았다. 벽의 「월하원」 족자 아래에 소화가 자리를 잡았다.
“월하원 상담 아홉 절차 가운데 첫 번째, 차 한 잔입니다.”
춘매가 두 사람 앞에 찻잔을 놓았다. 진은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가린은 찻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진의 빈 찻잔과 제 찻잔을 바꿔 놓았다.
“왜 바꾸냐?”
“네 찻잔은 네가 다 마셨으니 독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내 것은 아직 모른다.”
“빈 잔이다.”
“그러니까 안전하지.”
춘매가 빈 잔에 차를 다시 따랐다. 가린은 이번에도 냄새만 맡고 내려놓았다. 진은 가린 앞에 놓인 처음 잔을 낚아채 마저 마셔 버렸다.
“봐라. 멀쩡하다.”
“독은 반 시진 뒤에 돈다.”
진이 마시다 말고 멈췄다. 소화는 부채 뒤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차 마시는 법으로 반은 보였다. 하나는 무엇이든 먼저 들이켜고 나중에 겁을 먹었고, 하나는 무엇이든 먼저 의심하고 끝까지 손을 안 댔다.
“두 번째 절차는 팔자인데, 이건 팔자첩을 주고받는 문명 날에 따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 바라는 배필. 소가주님부터.”
“나보다 먼저 죽을 사람.”
“성녀님은요?”
“나보다 먼저 죽을 사람.”
두 사람이 서로를 보았다. 소화는 춘매를 보았다. 춘매가 붓을 든 채 소화를 보았다.
“적어. 두 분 바라는 배필이 같음. 궁합 좋음.”
“좋긴 뭐가 좋아!” 진과 가린이 동시에 소리쳤다.
“목소리도 맞으시네요.”
창가에서 당설희가 헛기침을 했다. 소화는 실패를 꺼냈다.
*
“이제 실을 묶겠습니다. 총관님, 공문을 읽어 주세요.”
당설희가 공문을 들고 일어났다. 낮고 딱딱한 목소리가 방 안을 눌렀다.
“이 혼사는 무림맹이 주관한다. 혼사를 깬 가문은 휴전을 깬 가문으로 본다. 휴전을 깬 가문은 맹과 맹에 든 모든 문파를 적으로 맞는다.”
“들으셨지요?” 소화가 말했다. “맞선 자리에서 실을 먼저 끊으시는 분이 혼사를 깬 분입니다. 소림이든 무당이든 개방이든, 그날부터 그 집안 문 앞에 칼을 들고 섭니다.”
소화는 진의 왼손과 가린의 왼손을 탁자 위로 끌어다 놓았다. 진의 손은 뜨거웠고 가린의 손은 찼다. 실을 한 자 뽑아 진의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탁자를 건너 가린의 새끼손가락에 감았다. 두 번 돌리고 매듭을 지었다. 실이 두 사람 사이에서 붉은 다리처럼 늘어졌다.
“네 번째 절차, 서로 묻고 싶은 것을 하나씩.”
진이 먼저 물었다. “열두 해 전 사월, 망산 아래에 있었느냐?”
“열세 살이었다. 짐수레 밑에 있었다.”
“무엇을 봤느냐?”
“불. 너는?”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실이 팽팽해졌다. 진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오므라들었다가 실을 보고 도로 펴졌다. 가린이 물었다.
“어머니가 시켜서 왔느냐?”
“어머니는 혼담 서신을 찢었다.”
“그럼 왜 왔느냐?”
“너를 베러.”
“나도.”
남궁율이 문간에서 박수를 쳤다. 구양추가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당설희는 공문을 접지 않았다.
천장에서 기와 하나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
소화가 고개를 든 순간 지붕 판자가 쪼개지며 검은 옷의 사내가 떨어져 내렸다. 사내의 칼은 탁자 위 두 사람이 아니라 소화의 목을 향해 똑바로 내려왔다.
진이 먼저 움직였다. 오른손으로 탁자 위 찻주전자를 잡아 던졌고, 주전자가 칼날을 쳐 칼끝이 소화의 어깨 옆 족자를 찢었다. 같은 순간 가린이 탁자를 차고 일어나 사내의 손목을 걷어찼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반대로 뛰는 바람에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끊지 마!” 진이 외쳤다.
“네가 끊지 마!”
사내가 칼을 다시 잡고 휘둘렀다. 진은 왼손을 쓸 수 없었다. 왼손을 크게 쓰면 실이 끊어졌다. 가린도 왼손을 몸에 붙인 채 오른손 하나로 막았다. 두 사람은 한 자 거리에서 등을 맞댔다. 진이 오른쪽을 막으면 가린이 왼쪽을 막았고, 사내가 둘 사이로 칼을 넣으면 둘이 동시에 몸을 틀어 실을 지켰다.
“왼쪽으로 돈다.” 가린이 말했다.
“내 왼쪽이냐, 네 왼쪽이냐?”
“바보냐, 등을 맞댔으면 반대지!”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돌았다. 실이 두 사람 허리를 한 바퀴 감았다. 사내가 틈을 보고 칼을 찔러 왔고, 실에 감긴 두 사람은 동시에 무릎을 꺾어 주저앉았다. 칼이 두 머리 위를 지나 벽에 박혔다. 진의 발이 사내의 정강이를, 가린의 손날이 사내의 목덜미를 쳤다. 사내가 바닥에 엎어졌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진과 가린은 실에 허리가 묶인 채 바닥에 나란히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둘 다 왼손을 하늘로 들고 있었다. 새끼손가락 사이 실은 멀쩡했다.
춘매가 문 뒤에서 기어 나왔다. “아가씨, 족자 찢어진 거 수선비는 누구한테 받아요?”
*
엎어진 사내의 소매에서 비수 하나가 굴러 나왔다. 손잡이에 검은 야크 털 술이 달려 있었다. 사흘 전 밤 문짝에 꽂혔던 비수와 같은 것이었다. 가린이 비수를 보고 얼굴을 돌렸다.
“모르는 자다.”
“마교 칼이다.” 진이 말했다. 진은 실에 묶인 허리를 풀며 당설희를 보았다. “총관. 휴전 중에 마교 자객이 맞선 자리를 쳤소. 공문대로라면 휴전을 깬 쪽은 마교요.”
남궁율이 문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맹 대청에 넘기시지요. 오늘로 혼사는 끝나고, 깬 쪽도 분명하고.”
당설희가 공문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가린의 손이 칼 없는 허리로 갔다. 구양추가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소화는 바닥의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스무 살 남짓, 볼에 솜털이 남은 얼굴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칼 잡은 굳은살이 박였는데 신발은 해져 엄지가 나와 있었다.
소화는 사내 옆에 쪼그려 앉아 해진 신발을 부채로 툭 쳤다.
“이분은 오늘부터 월하원 점소이입니다.”
“뭐?” 진이 말했다.
“지붕 고치러 올라갔다가 떨어진 겁니다. 점소이가 지붕에서 떨어진 걸 맹 대청에 넘기진 않으시겠지요, 총관님?”
당설희가 소화를 오래 보았다. 소화가 휴전을 깬 증거 하나를 소매에 넣는다는 것을, 방 안의 모두가 알았다. 진의 눈이 소화에게 꽂혔다.
“매파. 너는 마교 편이냐?”
“저는 혼사 편입니다. 이 사람을 넘기면 혼사는 오늘 끝나요. 소가주님은 바라시던 대로 깬 사람이 안 되시고요. 대신 사월 그믐에 싸움이 다시 붙습니다. 그때 남궁세가 맨 앞에 서실 분이 누구시죠?”
진이 입을 다물었다. 당설희가 공문을 접었다.
“지붕 수리는 맹이 내지 않소.”
“월급은 은자 한 냥, 밥은 세 끼. 이름은 뭐예요?”
사내가 바닥에 엎드린 채 눈을 떴다. “……이름 없다. 장로회는 번호로 부른다.”
“그럼 오복이라 하지요. 복이 다섯. 오늘 목숨 하나 건졌으니 하나는 벌써 쓰셨네요.”
아래층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춘매가 창으로 내다보고 하얗게 질렸다.
“아가씨, 포쾌예요. 관아 사람들이요.”
고을 관아에서 도둑을 잡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포쾌 둘이 허리에 감은 쇠사슬을 철렁거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앞선 포쾌가 찢어진 족자와 뚫린 천장과 벽에 박힌 칼을 차례로 보았다. 뒤의 포쾌는 골목 담벼락에 붙은 방을 한 장 떼어 들고 있었다. 「성안에서 칼을 뽑는 자는 강호 사람이라도 곤장 팔십」.
“칼 소리가 났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누가 뽑았소?”
방 안의 모두가 소화를 보았다. 소화는 바닥의 오복에게 춘매가 들고 있던 망치를 쥐여 주었다.
“지붕 수리 중이었어요. 새로 들인 점소이가 첫날이라 서툴러서요.”
“벽에 박힌 건 칼이오.”
“지붕에 박혀 있던 걸 뽑다가 떨어졌지요. 옛날 손님이 놓고 간 칼이에요. 이 집이 칼 놓고 가는 손님이 많아서요. 아래층에 맡긴 칼만 넷이에요.”
포쾌가 계산대를 내려다보았다. 칼 받는 상 위에 번호표 붙은 칼과 비수와 비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포쾌는 번호표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진과 가린을 보았다. 두 사람 새끼손가락 사이에 붉은 실이 늘어져 있었다.
“저 두 사람은 뭐요?”
“맞선 중이에요.”
“맞선 자리에서 왜 둘 다 숨을 헐떡이오?”
“첫눈에 반하면 다들 그래요.”
진과 가린이 동시에 얼굴을 붉혔다. 화가 나서 붉힌 것인데 포쾌가 보기엔 다른 것이었다. 포쾌가 혀를 차고 방을 도로 말았다.
“요즘 젊은것들은 맞선도 요란하게 보는군. 지붕은 낮에 고치시오. 밤에 망치질하면 그것도 신고 들어오오.”
포쾌가 내려가자 남궁율이 소화 옆으로 와서 낮게 웃었다.
“매파님은 관아 앞에서도 혀가 칼보다 빠르시군요. 그 혀, 오래 쓰시길.”
“들러리께서도 혼처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오세요. 서른하나면 늦지 않았어요.”
남궁율의 웃음이 조금 짧아졌다.
*
해가 기울어 구양추가 가린의 비녀를 돌려받고, 남궁율이 진의 검과 비수를 챙겼다. 실은 아직 두 새끼손가락에 매여 있었다. 소화가 매듭을 풀어 주려 하자 진이 손을 뺐다.
“매파. 다음 절차는 뭐냐?”
“납채입니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기러기를 보내 혼담을 청하는 일이에요. 사흘 뒤 열이틀.”
진이 가린을 보았다. 가린도 진을 보았다. 실이 둘 사이에서 늘어졌다.
“혼례까지 가자.” 진이 말했다. “가는 동안 네가 먼저 끊게 해 주마. 마교가 깬 집안이 되는 걸 이 눈으로 보겠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정파가 깬 집안이 되는 날, 네 어머니 얼굴을 보러 가겠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이로 매듭을 물어 풀었다. 끊지 않고 풀었다. 실 한 자가 탁자 위로 떨어졌다.
모두가 내려간 뒤, 소화는 찢어진 족자 앞에 서서 실패 끝 실을 뽑았다. 실 끝에 작은 매듭 하나를 지었다. 맞선 하나가 끝났다. 아래층에서 오복이 춘매에게 걸레를 받아 들고 물었다.
“지붕은 어떻게 고치냐?”
“떨어진 데로 다시 올라가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