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633자)
구워서 돌아온 기러기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삼월 열이틀 아침, 낙수 북쪽 기슭의 남궁세가 낙양 별원 대청에서 엽소화는 쉰두 살 태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용란은 대청 한가운데 높은 의자에 앉아 칼집에 든 장검을 무릎에 가로놓고 있었다. 은빛이 섞인 머리를 한 올 남김없이 빗어 올렸고, 소매 끝에 남궁가 문장인 푸른 구름이 수놓여 있었다. 태부인 발치에는 찢어진 종이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소화가 지난달 보낸 혼담 서신이었다.
“우리 남궁가는 마교에 기러기를 보낸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시겠지요. 처음은 다 어렵습니다.”
“매파. 기러기를 왜 보내는지 아느냐?”
“기러기는 짝을 한 번 정하면 평생 바꾸지 않는다지요. 그래서 납채에 기러기를 씁니다. 이 집안이 따님을 평생 아끼겠다는 약속입니다.”
“마교 것들은 짝을 갈아 치운다. 우리 남궁가는 그런 집안에 평생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청 기둥 옆에 남궁진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흰 장포 소매가 걷혀 있었고, 아침 수련을 하다 왔는지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진은 어머니와 매파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화는 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까닭을 알았다. 어머니가 기러기를 안 보내면 남궁가가 혼사를 깬 집안이 되었다. 진은 제 집안이 깬 집안이 되는 꼴을 바라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머니 편을 들어 기러기를 보내자고 할 수도 없었다.
“태부인. 무림맹 공문을 보셨지요. 납채를 안 하시면 남궁가가 먼저 혼사를 깬 집안이 됩니다.”
“공문 따위.”
“공문 따위 때문에 소림 방장께서 이 별원 대문에 칼을 들고 오시면, 차는 무슨 차를 내실 겁니까?”
모용란이 장검 칼집으로 바닥을 쳤다. 대청 바닥이 울렸다. 담장 위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남궁율이 담장 기와에 걸터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
“숙모님, 매파님 말씀이 틀리진 않습니다. 보내시지요. 보내시고, 마교가 받지 않으면 깬 건 마교입니다.”
모용란은 조카를 한참 보다가 일어났다. 장검을 쥔 채 대청을 나가더니 마당 끝 활터로 걸어갔다. 소화와 진이 뒤를 따랐다. 하늘 높이 기러기 떼가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모용란은 시종이 건넨 활을 잡아 시위를 당겼다. 숨 한 번 쉴 사이에 화살이 떠났고, 떼 끝의 기러기 한 마리가 마당에 떨어졌다.
모용란은 활을 시종에게 돌려주었다.
“가져가라. 남궁가 납채다.”
소화는 화살이 목에 꽂힌 기러기를 내려다보았다. 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산 걸로 보내야……”
“네가 장가가겠다는 거냐?”
“아닙니다.”
“그럼 됐다.”
*
소화는 화살 꽂힌 기러기를 붉은 보자기에 싸서 안고 낙수를 건넜다. 배 위에서 춘매가 보자기를 흘끔거렸다.
“아가씨, 장터에서 다들 내기를 한대요. 이 혼사가 깨진다에 아홉, 된다에 하나.”
“하나는 누가 걸었는데?”
“제가요. 동전 다섯 닢.”
“잃어도 월급에서 안 메꿔 준다.”
마교 사절단은 남시 서쪽 큰 객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 묵고 있었다. 객관 문 앞에 검붉은 옷을 입은 마교 무사 넷이 서 있었고, 골목 사람들은 객관 앞을 지날 때마다 길 맞은편으로 돌아서 걸었다. 구양추가 지팡이를 짚고 나와 보자기를 풀었다. 기러기 목에 꽂힌 화살을 보더니 노파의 눈썹이 한쪽만 올라갔다.
“남궁가 화살이로군.”
“태부인께서 손수 쏘셨어요.”
“손수 쏘아 죽인 걸 납채라고 보냈다?”
“신선한 걸로 보내셨지요. 오늘 아침에 잡았으니까요.”
구양추가 화살을 뽑아 땅에 던졌다. 객관 이층 창에서 혁련가린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붉은 옷에 이마의 붉은 불꽃 문양이 아침 해를 받았다. 가린은 기러기를 보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유모. 받아.”
“성녀님, 이건 모욕입니다.”
“받으라고. 안 받으면 마교가 깬 집안이 된다.”
구양추는 혀를 차며 기러기를 들고 객관 안으로 들어갔다. 소화는 문 앞에서 기다렸다. 반 시진쯤 지나자 객관 마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넘어왔다. 춘매가 코를 킁킁거렸다.
“아가씨, 기러기 굽는 냄새예요.”
구양추가 다시 나왔다. 손에 붉은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보자기를 풀자 노릇하게 구운 기러기 한 마리가 나왔다. 다리 하나가 없었다. 기러기 배 위에 쪽지가 꽂혀 있었다.
「납채 잘 받았다. 맛은 짰다. 다리 하나는 성녀가 먹었다. — 마교」
“답례입니다.” 구양추가 말했다. “마교는 받은 것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
소화는 구운 기러기를 안고 다시 낙수를 건넜다. 남궁 별원 대청에 기러기를 내려놓자 모용란이 쪽지를 읽고 얼굴이 붉어졌다.
“짜다고?”
“짜다고 하셨습니다.”
“마교 것들 혓바닥이 짠 거다. 소금밭 옆에서 크니까.”
모용란은 붓을 들어 쪽지 뒤에 몇 자를 쓰고 시종을 불렀다. 시종이 소금 한 자루를 들고 왔다. 모용란이 소금 자루를 기러기 옆에 내려놓았다.
“이것도 가져가라. 남궁가는 짜다는 소리를 들으면 소금을 보낸다. 앞으로 싱겁게 먹으라고.”
진이 기둥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떨렸다. 웃음을 참는 것인지 화를 참는 것인지 소화는 알 수 없었다. 남궁율이 담장 위에서 사과 껍질을 길게 늘어뜨렸다.
“매파님, 오늘 강을 몇 번 건너십니까?”
“사례가 나오는 만큼요.”
소화는 소금 자루를 춘매에게 지우고 구운 기러기를 다시 안았다. 세 번째로 낙수를 건너는 배 위에서 춘매가 소금 자루에 기대어 앓는 소리를 냈다.
“아가씨, 납채가 원래 이렇게 무거워요?”
“원래는 기러기 한 마리야. 이 집들이 무겁게 만드는 거지.”
마교 객관에서 구양추는 소금 자루를 받더니 한 줌 집어 맛을 보았다. 노파의 얼굴이 처음으로 풀렸다.
“좋은 소금이로군. 하서 소금보다 낫다.”
“태부인께서 싱겁게 드시라고 하셨어요.”
“싱겁게 먹으라고 소금을 보내는 집안은 처음 본다.”
가린이 계단을 내려와 소금 자루를 들여다보았다. 이마의 불꽃 문양 아래 눈이 조금 휘었다.
“매파. 남궁진은 뭐라고 했지?”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어깨만 떨었어요.”
“화가 나서?”
“웃음을 참으시는 것 같았어요. 제 눈엔요.”
가린이 소금 자루를 다시 묶었다. 묶는 손이 느렸다. 소화는 실패를 꺼내 실 끝에 매듭 하나를 더 지었다. 기러기는 갔고, 받았고, 답례까지 오갔다. 모양이야 어떻든 납채는 끝났다. 소화는 구운 기러기를 객관 문지기에게 건넸다.
“남은 다리는 성녀님 몫입니다. 신랑 집 기러기는 신부가 다 먹어야 복이 와요.”
“그런 말이 있소?” 문지기가 물었다.
“오늘 생겼어요.”
*
해 질 녘 월하원 이층에 남궁진이 혼자 올라왔다. 칼은 아래층 상에 맡기고 번호표 「일」을 손가락에 끼운 채였다. 진은 맞선 방 의자에 앉지 않고 창틀에 기대어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매파. 상담을 하러 왔다.”
“혼처 상담이요?”
“미움받는 상담.”
소화는 부채를 펴다 말았다. 진은 창밖을 본 채 말을 이었다.
“그 여자가 먼저 실을 끊게 하려면 내가 미워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여자가 남자를 못 견디게 미워하느냐?”
“삼백 쌍을 맺는 동안 그런 상담은 처음이네요. 사례는 곱절입니다.”
“내라는 대로 내지.”
소화는 손가락을 꼽았다. “맞선 자리에서 제 자랑만 하기. 상대 말을 끊기. 밥 먹을 때 소리 내기. 상대 집안 어른 흉보기. 시를 지어 바치기.”
“시는 왜?”
“못 짓는 시를 지어 바치면 여자들이 제일 질색해요.”
진이 처음으로 소화를 돌아보았다. “나는 시를 못 짓는다.”
“그럼 딱이네요.”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무엇인가 적기 시작했다. 적다가 지우고, 다시 적었다. 소화는 등잔을 켜 주며 종이를 흘끔 보았다. 「모란」이라는 글자가 세 번 지워져 있었다.
“소가주님. 오늘 기러기, 산 걸로 보내자고 하셨지요.”
진의 붓이 멈췄다. “어머니가 들으셨으면 혼났다.”
“산 기러기를 보내자는 분이 미움받는 상담을 하러 오셨네요.”
“죽은 기러기를 받으면 그 여자가 화를 내서 실을 끊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그걸 구워 먹었다.”
“다리 하나만요.”
진이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고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돌아보았다.
“다리 하나만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
“나머지는 남겨 두셨다는 뜻이지요.”
진은 대답 없이 내려갔다. 계단 소리가 올라올 때보다 느렸다.
*
밤이 깊어 월하원 아래층에서 오복이 탁자를 닦고 있었다. 닦는 손이 빨랐고, 탁자 모서리마다 손바닥을 한 번씩 대 보는 버릇이 있었다. 숨은 칼이 없나 보는 손이었다. 춘매가 소금 자루를 진 어깨를 주무르며 이층으로 올라간 뒤, 오복의 손이 멈췄다.
대문이 소리 없이 열려 있었다.
문간에 마른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왔고, 검은 장포 위로 검은 염주를 목에 걸었다. 노인은 들어오지 않고 문지방 밖에서 객잔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오복이 걸레를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었다.
“대장로님.”
소화는 계산대 뒤에서 부채를 쥐었다. 문지방 너머의 노인이 소화를 보았다. 눈이 깊었고, 깊은 눈 밑에 주름이 칼자국처럼 그어져 있었다.
“마교 장로회 대장로 사마철이오. 매파.”
“들어오세요. 문지방에 서 계시면 복이 나갑니다.”
“마교 사람이 정파 혼사를 맡은 객잔 문지방을 넘으면 말이 많아지오. 여기서 하겠소, 매파.”
“문짝에 꽂아 두신 서신은 잘 받았어요. 혀는 아직 붙어 있네요.”
사마철은 웃지 않았다. 염주 알 하나를 엄지로 넘겼다.
“혼담을 거두시오. 그러면 이 객잔은 남겨 두겠소. 오복이라는 놈도 그냥 두겠소.”
“오복은 우리 점소이예요. 월급이 한 냥이에요. 데려가시려면 남은 달 월급하고 지붕 수리비를 내셔야 해요.”
“매파는 성녀가 무엇인지 모르오. 성녀는 마교 사람들의 무릎이오. 성녀가 정파에 시집가면 마교 사람 수만이 정파 앞에 무릎을 꿇는 거요. 백 년 동안 마두 소리를 들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 무릎을 내가 꺾을 수는 없소.”
소화는 부채를 접었다. 사마철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하서 장터에서 마교 사람이라고 국밥 한 그릇 안 팔던 주막집을, 소화는 어릴 때 여러 번 보았다.
“대장로님. 혼사가 깨지면 사월 그믐에 싸움이 다시 붙어요. 그 무릎들이 다시 망산 아래로 가고요.”
“싸움은 무릎을 안 꺾소. 목을 꺾지.”
“목은 다시 안 붙어요. 무릎은 다시 펴지고요.”
사마철이 처음으로 소화를 똑바로 보았다. 등잔 불빛이 소화의 얼굴을 지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사마철의 눈이 소화의 머리에서 멈췄다. 높이 틀어 올린 검은 머리에 꽂힌 붉은 매듭 장식 위였다. 사마철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염주 알을 넘기던 엄지가 멈췄다.
“그 매듭.”
소화의 손이 저도 모르게 머리로 올라가다 멈췄다.
“숙주 매듭이로군. 하서 숙주 장터에서만 그렇게 땋소. 매파는 어디 사람이오?”
“낙양 사람입니다. 낙양에서 열 해를 살았어요.”
“그 전에는?”
“그 전에는 매파가 아니었지요.”
사마철은 대답을 듣고도 한참 문지방 밖에 서 있었다. 골목 끝에서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났다. 사마철이 몸을 돌렸다. 돌리면서 낮게 말했다.
“팔자첩 주고받는 날, 마교 혼주 자리에 내가 앉겠소. 매파.”
문이 닫혔다. 오복이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장님. 대장로님은 한 번 본 얼굴을 안 잊으십니다.”
“나도 안 잊어.”
소화는 계산대 위 등잔을 껐다. 어둠 속에서 머리의 매듭을 빼어 손바닥에 쥐었다. 열두 해 동안 손에 익은 매듭의 결이 손금 위에서 까끌거렸다. 소화는 매듭을 다시 꽂고, 대문 빗장을 두 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