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418자)

철퇴 신부가 지킨 낙수 나루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사월 스무엿새 아침⁠, 남궁 별원 사당 앞마당에 제사상 하나가 차려졌다⁠. 상 위에 위패 셋이 나란히 놓였다⁠. 남궁창⁠, 남궁호⁠, 그리고 사마준⁠. 사마준의 위패는 어젯밤 사마철이 직접 깎아 온 것이었다⁠. 칼로 깎은 글씨가 서툴러 획 끝이 조금씩 비뚤었다⁠.

엽소화는 상 끝에서 대추와 밤을 놓았다⁠. 모용란이 과일 접시를 들고 와서 위패 앞에 놓았고⁠, 구양추가 남시 떡집 찹쌀떡 접시를 들고 와서 과일 접시 앞에 놓았다⁠. 모용란이 떡 접시를 과일 뒤로 옮겼다⁠. 구양추가 다시 앞으로 옮겼다⁠.

“⁠떡이 앞이다⁠. 준이 도련님이 좋아하던 거다⁠.⁠”

“⁠과일이 앞이다⁠. 우리 남궁가 상이다⁠.⁠”

“⁠오늘은 한 상이다⁠!⁠”

사마철이 두 노부인 사이로 손을 뻗어 떡 접시와 과일 접시를 나란히 놓았다⁠. 둘 다 앞이 되었다⁠. 모용란과 구양추가 동시에 사마철을 노려보았고⁠, 사마철은 못 본 척 향을 피웠다⁠.

진이 먼저 절했다⁠. 아버지와 형의 위패 앞에서 한 번⁠, 사마준의 위패 앞에서 한 번⁠. 두 번째 절이 첫 번째보다 길었다⁠. 모용란이 아들의 절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사마철이 절했다⁠. 남궁창의 위패 앞에서 허리를 굽힐 때 사마철의 등이 굳었다가 풀렸다⁠. 마지막으로 모용란이 사마준의 위패 앞에 섰다⁠. 사돈 맞선 날 탁자 위에서 반쯤 숙였던 허리를⁠, 이번에는 끝까지 숙였다⁠.

*

해가 기울 무렵 친영 행렬이 별원 문을 나갔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 오는 례를 친영이라 했고⁠, 신랑은 신부 집 대문 앞에 기러기를 바치고 절하는 것으로 례를 열었다⁠. 진은 붉은 혼례복 위에 아무 칼도 차지 않았고⁠, 품에 기러기 한 마리를 안았다⁠. 오늘 새벽 장터에서 산 살아 있는 기러기였다⁠.

“⁠산 걸로 보내자고 했던 게 너였지⁠.⁠” 모용란이 말했다⁠.

“⁠쏘신 건 어머니십니다⁠.⁠”

“⁠오늘은 안 쏜다⁠.⁠”

기러기가 진의 손등을 물었다⁠. 진이 이를 악물고 놓지 않았다⁠. 행렬 뒤에서 곽춘매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거지 신랑이 해바라기씨를 까며 행렬 옆을 따라 걸었고⁠, 순풍표국 여자 표사가 철퇴를 어깨에 메고 신부 행렬 호위를 자청해 맨 앞에 섰다⁠. 비단 가게 안주인은 반 토막 실을 소매에 매고 나왔고⁠, 남편은 나머지 반 토막을 손목에 감고 따라 나왔다⁠. 실을 돌려주러 왔던 손님들 가운데 열댓 쌍이 행렬 뒤에 붙었다⁠.

행렬이 남시 다리를 건널 때⁠, 다리 곁 찻집 이층 창에 회색 장포가 보였다⁠. 무림맹 총관 당설희가 창가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 누런 가사를 걸친 소림 승려 하나가 앉아 있었다⁠. 성 동문 밖 들판에는 사흘 전부터 소림 승병의 천막이 줄지어 들어찼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화가 행렬에서 빠져나와 창 아래에 섰다⁠.

“⁠총관님⁠! 차 한 잔 하고 계시네요⁠!⁠”

당설희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손에 든 것은 찻잔이 아니라 허리에 차던 물병이었다⁠.

“⁠내 물이오⁠. 매파⁠.⁠”

“⁠오늘 해 질 녘에 혼주 두 분이 맞절하세요⁠. 보러 오세요⁠.⁠”

“⁠맞절을 하면 가겠소⁠. 안 하면 이 스님과 그믐 다음 날 이야기를 마저 하겠소⁠.⁠”

소림 승려가 소화에게 합장했다⁠. 소화도 부채를 접고 고개를 숙였다⁠. 승려의 손목에 굵은 염주가 감겨 있었다⁠. 소화는 행렬로 돌아가며 사마철의 염주를 떠올렸다⁠. 염주를 쥔 사람이 성 안팎에 다 있었다⁠.

마교 객관 대문 앞에서 진은 기러기를 구양추에게 바쳤다⁠. 구양추가 기러기를 받아 들고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산 거로군⁠.⁠”

“⁠산 겁니다⁠.⁠”

“⁠이건 안 굽겠다⁠.⁠”

가린이 대문을 나왔다⁠. 붉은 혼례복에 머리를 틀어 올렸고⁠, 금관 대신 붉은 비단 꽃 하나를 꽂았다⁠. 이마의 불꽃 문양은 새로 그렸다⁠. 소화는 실패에서 실을 한 자 뽑아 진과 가린의 새끼손가락에 묶었다⁠. 한 자 실은 짧았다⁠. 두 사람은 어깨를 붙이고 서야 했다⁠. 진이 한쪽 어깨를 조금 내렸다⁠. 가린이 내려간 어깨를 보았다⁠.

“⁠기러기한테 물린 손이냐⁠?⁠”

“⁠아니다⁠.⁠”

“⁠피 나는데⁠.⁠”

“⁠기러기 피다⁠.⁠”

*

남쪽 나루에 배 두 척이 대어 있었다⁠. 앞 배에 신랑 신부와 소화가⁠, 뒤 배에 두 혼주와 구양추가 탔다⁠. 진이 가린의 손을 잡고 배에 오르려는 순간⁠, 나루 곁 창고 문이 한꺼번에 열렸다⁠.

검붉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른 남짓이었다⁠. 맨 뒤에 탁문걸이 비단신을 신고 섰다⁠. 품에 붉은 비단에 싼 금관을 안고 있었다⁠.

“⁠정파 놈들이 성녀를 끌고 간다⁠! 성녀를 되찾아라⁠!⁠”

무사들이 행렬로 달려들었다⁠.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뒤 배에서 모용란이 뛰어내렸다⁠. 양산 속에 숨겨 왔던 가는 검이 손에 있었다⁠. 오늘 아침 춘매에게 백 냥을 치르고 찾아간 검이었다⁠. 사마철이 뒤따라 뛰어내렸다⁠. 손에 검은 털 술이 달린 비수가 들려 있었다⁠. 값은 혼례 뒤에 치르겠다며 춘매에게서 외상으로 찾아간 비수였다⁠.

“⁠등⁠!⁠” 모용란이 외쳤다⁠.

사마철이 모용란과 등을 맞댔다⁠. 쉰둘의 등과 예순하나의 등이 나루 한가운데서 붙었다⁠. 모용란의 검이 앞의 무사 셋을 막았고⁠, 사마철의 비수가 뒤의 무사 둘을 막았다⁠. 모용란이 왼쪽으로 돌면 사마철이 오른쪽으로 돌았다⁠. 삼월 초아흐레 월하원 이층에서 진과 가린이 실에 묶인 채 그랬듯이⁠.

“⁠우리 남궁가는 마교 늙은이 등에 기대 싸워 본 적이 없다⁠!⁠”

“⁠처음은 다 어렵다고 매파가 그랬소⁠!⁠”

탁문걸이 직접 칼을 뽑았다⁠. 모용란의 등 뒤⁠, 사마철이 막고 선 자리로 곧게 찔러 들어왔다⁠. 사마철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모용란의 등이 열렸다⁠. 칼이 사마철의 옆구리로 들어갔다⁠. 사마철의 비수가 동시에 탁문걸의 손목을 그었다⁠. 탁문걸의 칼이 떨어졌다⁠.

구양추의 지팡이가 탁문걸의 무릎을 쳤다⁠. 탁문걸이 무릎을 꿇었다⁠. 여자 표사의 철퇴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무사 둘을 한꺼번에 강물로 밀어 넣었다⁠. 거지 신랑이 해바라기씨 자루를 뒤집어 나루 바닥에 쏟자 달려오던 무사들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개방 거지 아홉이 기다렸다는 듯 넘어진 무사들 위에 차례로 걸터앉았다⁠.

“⁠다리 밑에서 늘 하던 거요⁠!⁠” 거지 신랑이 외쳤다⁠.

탁문걸의 품에서 금관이 굴러 나왔다⁠. 가린이 앞 배에서 내려다보았다⁠. 집으러 가지 않았다⁠. 오복이 관을 주워 들고 가린을 보았다⁠. 가린이 고개를 저었다⁠. 오복은 관을 사마철 발치에 내려놓았다⁠.

사마철이 옆구리를 손으로 누른 채 서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모용란이 돌아보았다⁠.

“⁠대장로⁠.⁠”

“⁠배에 오르시오⁠, 모용 부인⁠. 해가 지오⁠. 친영은 해 질 녘에 끝내야 하오⁠.⁠”

*

배가 낙수 한가운데를 건넜다⁠. 노 젓는 소리 사이로 사마철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모용란이 제 혼례 겉옷 소매를 찢어 사마철의 옆구리에 감았다⁠. 앞 배에서 진과 가린은 어깨를 붙이고 서 있었다⁠. 한 자 실이 두 사람 손 사이에서 늘어질 틈이 없었다⁠.

뒤 배에서 모용란이 소매 매듭을 이로 당겨 조였다⁠. 사마철이 숨을 들이켰다⁠.

“⁠모용 부인⁠. 손이 맵소⁠.⁠”

“⁠우리 남궁가는 상처를 싸맬 때 봐주지 않는다⁠.⁠”

“⁠내 등을 막느라 소매를 버렸구려⁠.⁠”

“⁠네가 먼저 내 등을 막았다⁠. 빚은 바로 갚는다⁠. 우리 남궁가는⁠.⁠”

사마철이 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가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구양추가 뱃전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사돈끼리 빚 따지는 집은 처음 본다⁠.⁠”

“⁠유모는 서른 해에 처음 보는 게 많구나⁠.⁠” 모용란이 말했다⁠.

북쪽 나루가 가까워지자 둑 위에 흰 옷 청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맨 앞에 남궁율이 소가주 검을 허리에 차고 활을 들고 있었다⁠. 화살 깃이 흰색과 회색이었다⁠.

“⁠아우님⁠! 마교 놈들이 남쪽 나루에서 행렬을 쳤다면서요⁠. 정파가 마교 처가를 지켜 줄 까닭은 없지요⁠.⁠”

소화가 앞 배 뱃머리에 섰다⁠. 부채를 펴 들었다⁠.

“⁠들러리님⁠! 오늘 행렬 축의금은 따로 받습니다⁠. 활은 내려놓고 오세요⁠!⁠”

“⁠매파님 혀는 오늘도 빠르시군요⁠.⁠”

남궁율이 시위를 당겼다⁠. 화살 끝이 가린을 향했다⁠. 진이 가린 앞으로 몸을 돌렸다⁠. 한 자 실 안에서 돌 수 있는 만큼만⁠. 화살이 진의 등⁠, 왼쪽 어깨 아래에 박혔다⁠. 진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가 섰다⁠. 가린이 진의 팔을 잡았다⁠.

“⁠남궁진⁠!⁠”

“⁠말했잖으냐⁠. 다음 화살은 내가 받는다고⁠.⁠”

배가 나루에 닿았다⁠. 진이 뛰어내렸다⁠. 가린이 실에 끌려 함께 뛰어내렸다⁠. 진은 칼이 없었다⁠. 나루 곁 말뚝에 꽂혀 있던 노 하나를 뽑아 들었다⁠. 청년들이 칼을 뽑고 몰려왔다⁠. 가린이 혼례복 소매 속에서 가늘고 긴 칼을 뽑았다⁠. 소화가 뱃머리에서 소리쳤다⁠.

“⁠성녀님⁠, 혼례복에 칼은 안 됩니다⁠!⁠”

“⁠관을 벗었다⁠. 성녀 아니다⁠.⁠”

진과 가린은 등을 맞댔다⁠. 진이 노로 앞을 쓸면 가린이 칼등으로 옆을 쳤다⁠. 한 자 실이 두 사람 허리 사이에서 팽팽했다⁠. 청년들은 실을 노렸지만 두 사람이 너무 붙어 있어 칼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진이 청년들을 지나 남궁율 앞에 섰다⁠. 남궁율이 소가주 검을 뽑았다⁠. 아버지의 검이었다⁠. 은 구름 상감이 노을빛에 붉었다⁠.

“⁠아우님⁠, 맨손으로 검을 막겠소⁠?⁠”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왼발을 반 걸음 끌며 노 끝을 무릎 높이로 내렸다⁠. 형의 걸음이었다⁠. 남궁율의 검이 내려왔고⁠, 진의 노가 검등을 흘려 옆으로 보냈다⁠. 검이 땅에 박혔다⁠. 진은 노를 돌려 남궁율의 손목을 쳤다⁠. 남궁율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진은 검을 줍지 않았다⁠. 남궁율 등에 멘 활을 잡아당겨 무릎에 대고 꺾었다⁠. 활이 두 동강 났다⁠.

“⁠형님 화살은 이제 없소⁠.⁠”

둑 끝에서 쇠사슬 소리가 났다⁠. 현청 포쾌들이 몰려왔다⁠. 맨 앞에 관매 장금옥이 명패를 흔들며 달려왔다⁠.

“⁠성안 나루에서 칼 뽑은 놈들 다 잡아라⁠! 곤장 팔십이다⁠! 그리고 이 혼사 관아 도장 찍을 사람 여기 있소⁠!⁠”

포쾌가 둑 위를 둘러보았다⁠. 구경꾼 수십이 한꺼번에 남궁율을 가리켰다⁠. 비단 가게 안주인과 남편이 반 토막 실을 든 손으로 같이 가리켰다⁠. 포쾌가 남궁율의 팔에 쇠사슬을 감았다⁠. 남궁율은 웃지 않았다⁠. 끌려가다 말고 진을 돌아보았다⁠.

“⁠아우님⁠. 이 혼사가 싸움을 막을 거라 믿소⁠? 성 동문 밖에 소림 승병이 와 있소⁠. 그믐 다음 날이면 성안으로 들어오오⁠.⁠”

“⁠그럼 그믐 다음 날 또 막겠소⁠.⁠”

“⁠노 하나로⁠?⁠”

“⁠노가 모자라면 장인어른 염주라도 들겠소⁠.⁠”

남궁율이 진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쇠사슬 소리가 둑 너머로 멀어졌다⁠.

*

해가 산마루에 걸리기 직전⁠, 친영 행렬이 별원 문 앞에 닿았다⁠. 진의 등에 박힌 화살은 소화가 꺾어 짧게 만들었고⁠, 피가 붉은 혼례복을 더 붉게 적셨다⁠. 가린은 실에 묶인 손으로 진의 팔을 붙들고 걸었다⁠.

뒤따라온 사마철이 별원 문간에서 휘청였다⁠. 모용란이 감아 준 소매가 피에 젖어 검었다⁠. 구양추가 부축하려 하자 사마철이 손을 내저었다⁠.

“⁠의원을 부르시오⁠, 매파⁠. 혼례청 혼주 자리 곁에⁠.⁠”

“⁠대장로님⁠, 누우셔야 해요⁠.⁠”

“⁠혼주는 앉아 있어야 하오⁠. 해가 지기 전에 시작하시오⁠. 끝날 때까지는 안 죽소⁠.⁠”

모용란이 사마철 곁에 섰다⁠. 사마철의 팔을 제 어깨에 걸었다⁠.

“⁠들어가자⁠, 사돈⁠.⁠”

소화는 두 혼주 뒤에서 실패를 쥐었다⁠. 친영이 끝났다⁠. 매듭 하나를 더 지으려다 손을 멈추고⁠, 혼례청에서 짓기로 하고 실패를 소매에 넣었다⁠. 소매 안에서 숙주 매듭이 손끝에 닿았다⁠.

14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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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산책2026.11.06· 14화

    사마철 대장로가 「혼주는 앉아 있어야 하오」 할 때 눈물 났어요. 그리고 모용란이 「들어가자, 사돈」이라니. 원수 집안 어른 둘이 어깨를 거는 장면을 보려고 여기까지 읽은 것 같아요.

    • 여무겸작가2026.11.06

      망산에서 서로의 아이를 살린 두 집이었으니까요. 소화가 소매에 넣어 둔 숙주 매듭은 마지막 화 혼례청에서 풀립니다.

철퇴 신부가 지킨 낙수 나루 · 무림 결혼정보회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