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505자)

삼백한 번째 붉은 실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사월 스무엿새 해 질 녘⁠, 남궁 별원 혼례청에 등이 일흔 개 켜졌다⁠. 엽소화는 혼례청 문간에 서서 등 하나하나의 심지를 세었다⁠. 바람이 들면 꺼질 자리를 막으려고 문마다 비단 휘장을 내렸다⁠. 휘장 너머 마당에 손님들이 앉았다⁠. 동쪽 자리에 정파 사람들이⁠, 서쪽 자리에 마교 사람들이 앉았고⁠, 가운데 통로에는 개방 거지 아홉이 해바라기씨를 들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누구도 거지들을 내쫓지 않았다⁠. 나루에서 무사들 위에 걸터앉았던 엉덩이들이었다⁠.

혼례청 안쪽 높은 자리에 혼주 의자 둘이 놓였다⁠. 오른쪽 의자에 모용란이 앉았다⁠. 혼례 겉옷 한쪽 소매가 없었다⁠. 왼쪽 의자에 사마철이 앉았다⁠. 검은 장포 아래 옆구리를 흰 무명으로 두껍게 감았고⁠, 의원 하나가 의자 뒤에 쪼그려 앉아 사마철의 숨을 세고 있었다⁠.

“⁠대장로님⁠. 맞절 한 번 하시면 바로 누우셔야 합니다⁠.⁠” 의원이 말했다⁠.

“⁠맞절은 한 번에 안 끝나오⁠. 저 늙은이가 허리를 끝까지 숙이는지 봐야 하오⁠.⁠”

“⁠저 늙은이도 같은 말을 할 거다⁠.⁠” 모용란이 말했다⁠.

곽춘매가 혼례청 구석에서 붓을 들고 소화에게 속삭였다⁠.

“⁠아가씨⁠, 장터 내기 다 끝났어요⁠. 혼례 올린다에 건 사람은 저하고 사공 아저씨하고 개방 신랑님뿐이래요⁠. 아홉 대 하나였을 때 걸었으니까 아홉 곱이요⁠.⁠”

“⁠동전 다섯 닢이면 마흔다섯 닢⁠.⁠”

“⁠검 놓는다 관 벗는다에 건 거까지 하면 백 닢 넘어요⁠. 저 이제 부자예요⁠.⁠”

“⁠월급은 그대로야⁠.⁠”

*

신랑 신부가 들어왔다⁠. 진은 붉은 혼례복 안에 등을 무명으로 감았다⁠. 화살을 뽑은 자리에서 피가 배어 나와 혼례복 등판이 조금 더 짙었다⁠. 걸음은 곧았다⁠. 가린은 붉은 비단 꽃을 머리에 꽂았고⁠, 이마의 불꽃 문양은 나루에서 땀에 번져 다시 그렸다⁠. 두 사람의 새끼손가락은 아직 한 자 실로 이어져 있었다⁠.

소화가 혼례청 가운데 섰다⁠.

“⁠혼주 두 분⁠, 맞절하십시오⁠.⁠”

모용란과 사마철이 일어났다⁠. 의원이 사마철의 팔을 붙들었고⁠, 구양추가 반대편 팔을 붙들었다⁠. 두 혼주가 혼례청 한가운데서 마주 섰다⁠. 사월 보름 월하원 이층에서는 한 치씩 굽히며 서로의 정수리를 살폈다⁠. 오늘은 살피지 않았다⁠. 모용란이 허리를 숙였고⁠, 사마철이 같이 숙였다⁠. 숙인 허리가 끝까지 내려갔다⁠. 사마철의 옆구리 무명에 붉은 점이 번졌다⁠. 사마철은 허리를 펴지 않고 숨을 세 번 쉬고 나서 폈다⁠.

마당 손님들 가운데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서쪽 자리에서⁠, 이어서 동쪽 자리에서⁠. 손뼉 소리였다⁠. 휘장이 바람에 들썩였다⁠.

혼례청 문간에 회색 장포가 들어섰다⁠. 무림맹 총관 당설희가 공문을 들고 있었다⁠. 뒤에 소림 승려 하나가 합장한 채 따랐다⁠. 당설희는 혼주 둘을 보고⁠, 신랑 신부를 보고⁠, 마지막으로 소화를 보았다⁠.

“⁠맞절을 보았소⁠.⁠”

당설희가 공문을 펼쳤다⁠. 목소리가 혼례청 끝까지 닿았다⁠.

“⁠무림맹은 남궁세가와 마교 장로회가 사돈을 맺었음을 강호에 알린다⁠. 사월 그믐에 끝나는 휴전을 오늘부로 화친으로 바꾼다⁠. 화친을 깨는 집안은 맹과 맹에 든 모든 문파를 적으로 맞는다⁠.⁠”

소림 승려가 합장한 손을 한 번 들었다 내렸다⁠. 성 동문 밖 천막들이 내일 아침 걷힌다는 뜻이었다⁠. 소화는 춘매에게 찻잔을 하나 가져오게 했다⁠. 차를 따라 당설희 앞에 내밀었다⁠.

“⁠첫 번째 절차입니다⁠, 총관님⁠.⁠”

당설희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혼례청 안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당설희는 잔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마셨다⁠. 한 모금으로 그치지 않고 잔을 다 비웠다⁠.

“⁠식었소⁠.⁠”

“⁠처음 드시는 거라 일부러 식혔어요⁠. 뜨거우면 놀라실까 봐요⁠.⁠”

*

신랑 신부가 맞절을 했다⁠. 진이 먼저 숙였고 가린이 따라 숙였다⁠. 실이 한 자라 두 사람 머리가 숙이는 동안 거의 닿았다⁠. 둘 다 이마가 닿기 직전에 멈췄다⁠. 모용란이 혼주 자리에서 헛기침을 했다⁠. 진의 귀가 붉어졌다⁠.

소화가 표주박 하나를 반으로 갈라 만든 두 잔에 술을 따랐다⁠. 신랑 신부가 한 박을 둘로 나눈 잔으로 술을 나눠 마셔 한 몸이 됨을 보이는 합근이었다⁠. 진은 받자마자 들이켰다⁠. 가린은 잔에 코를 댔다⁠. 혼례청이 조용해졌다⁠. 가린은 냄새를 맡고⁠, 진의 빈 잔과 바꾸지 않고⁠, 제 잔을 다 마셨다⁠.

“⁠안 바꾸냐⁠?⁠” 진이 물었다⁠.

“⁠이제 네 잔이 내 잔이다⁠. 바꿔 봐야 같은 잔이다⁠.⁠”

마당 서쪽에서 구양추가 코를 풀었다⁠. 동쪽에서 모용란의 시종이 손수건을 건넸다⁠.

관매 장금옥이 혼례청 문간에서 명패를 흔들며 들어왔다⁠. 놋쇠 도장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혼서에 관아 도장⁠! 관매 장금옥이 찍소⁠!⁠”

장금옥이 혼서에 도장을 꾹 눌렀다⁠. 붉은 인주가 종이에 번졌다⁠. 장금옥이 소화를 돌아보았다⁠.

“⁠국수는⁠?⁠”

“⁠부엌에 있어요⁠. 고명 두 개 얹어 놨어요⁠.⁠”

“⁠세 개 얹으시오⁠. 서른 해에 이런 혼사는 처음이니까⁠.⁠”

소화는 실패를 꺼냈다⁠. 매듭 여섯이 실 끝에 매달려 있었다⁠. 맞선부터 청기까지 례 하나에 매듭 하나였다⁠. 소화는 일곱 번째 매듭을 지었다⁠. 친영이 끝나고 혼례를 올렸다⁠. 실 끝에 매듭 일곱이 나란히 흔들렸다⁠.

진이 혼례복 품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납징 날 가린이 따로 보낸 상자였다⁠. 가린이 상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직 갖고 있냐⁠?⁠”

“⁠열어 봤다고 했잖으냐⁠.⁠”

진이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 마른 붉은 고추 하나와 접힌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쪽지에는 가린의 글씨가 서툴게 적혀 있었다⁠. 「⁠다 먹은 사람에게⁠. 다음엔 덜 맵게⁠」⁠. 소화가 부채를 펴서 웃음을 가렸다⁠. 진이 소매에서 다른 종이를 꺼내 가린에게 내밀었다⁠. 여러 번 접혔다 펴져 귀퉁이가 다 일어난 종이였다⁠.

“⁠모란밭 시다⁠. 웃을 일이 없을 때 읽겠다고 했지⁠.⁠”

“⁠오늘은 웃을 일이 많다⁠.⁠”

“⁠그래도 가져라⁠. 버리지 말라며⁠.⁠”

가린이 종이를 펴서 읽었다⁠. 붉은 것끼리는 혼인하지 않는다⁠. 읽고 나서 혼례복의 붉은 소매를 내려다보고⁠, 진의 붉은 소매를 보았다⁠. 가린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콧바람도 참지 않았다⁠.

*

손님들이 마당으로 나가 술상에 앉자⁠, 혼주 둘이 소화를 혼례청 옆방으로 불렀다⁠. 사마철은 평상에 기대어 누웠고⁠, 모용란은 의자에 앉았다⁠. 소화가 문을 닫았다⁠.

“⁠사례 이야기를 하자⁠.⁠” 모용란이 말했다⁠.

“⁠월하원 정찰가는 첫날 총관님께 말씀드렸어요⁠. 세가 혼사는 기본 오백⁠. 원수 집안이면 곱절⁠. 백 년 원수면 또 곱절⁠.⁠”

사마철이 평상에서 손가락을 꼽았다⁠. “⁠이천이오⁠.⁠”

“⁠이천이에요⁠.⁠”

모용란과 사마철이 서로를 보았다⁠.

“⁠신랑 집이 더 내야지⁠.⁠” 사마철이 말했다⁠. “⁠장가를 가는 쪽이 사례를 낸다고 들었소⁠.⁠”

“⁠신부 집이 더 낸다⁠. 마교 성녀를 맡아 준 집이 우리다⁠.⁠”

“⁠성녀가 아니오⁠. 관을 벗었소⁠.⁠”

“⁠그럼 진이도 소가주가 아니다⁠. 검을 내려놓았다⁠.⁠”

“⁠그럼 자리 없는 둘이 혼인했으니 사례도 깎아야겠소⁠.⁠”

“⁠깎는 건 안 됩니다⁠.⁠” 소화가 말했다⁠. “⁠자리가 혼인한 게 아니라 사람이 혼인했으니까요⁠. 사람 값은 안 깎아요⁠.⁠”

모용란이 웃었다⁠. 소화가 모용란의 웃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입가가 한쪽만 올라가는 웃음이었고⁠, 웃고 나서 스스로 놀란 얼굴이었다⁠.

“⁠반씩 하자⁠, 사돈⁠.⁠”

“⁠반씩 하오⁠.⁠”

모용란이 시종을 불러 은표 한 장을 가져오게 했다⁠. 사마철이 품에서 은표 한 장을 꺼냈다⁠. 핏자국이 귀퉁이에 묻어 있었다⁠. 두 장이 소화의 손에 놓였다⁠. 천 냥과 천 냥이었다⁠. 만통전장에 진 빚과 한 푼도 다르지 않았다⁠.

문밖에서 춘매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칼 맡긴 값은요⁠? 소가주님 소매 비수 백⁠, 성녀님 독비녀 백⁠, 대장로님 주머니 백은 외상이고⁠, 문짝 수리비 따로⁠. 태부인 양산은 아침에 받았어요⁠.⁠”

“⁠그건 너희 월급으로 줄게⁠.⁠”

“⁠진짜요⁠?⁠”

“⁠반만⁠.⁠”

*

모용란이 먼저 방을 나갔다⁠. 아들에게 가 보겠다고 했다⁠. 율이는 현청에서 곤장 팔십을 맞고 엎드려 있고⁠, 소가주 검은 자기가 거둬 사당에 두었다고 했다⁠. 진이 다시 차겠다고 하면 주겠다고 했다⁠. 진이 안 찰 것이라는 것도 아는 얼굴이었다⁠.

방에 소화와 사마철만 남았다⁠. 사마철은 평상에 기댄 채 천장을 보았다⁠. 소화는 소매에서 숙주 매듭을 꺼냈다⁠. 붉은 실로 땋은 매듭은 열두 해 동안 손때가 배어 끝이 검붉었다⁠. 소화는 매듭을 사마철 손에 쥐여 주었다⁠.

사마철의 손이 매듭을 쥐지 않고 펼친 채 있었다⁠.

“⁠무엇이오⁠.⁠”

“⁠준이가 대장로님께 서신과 같이 보낸 매듭이에요⁠. 허락해 달라고요⁠. 대장로님은 서신만 보시고 매듭은 돌려보내셨지요⁠. 준이가 그걸 다시 제 머리에 꽂아 줬어요⁠. 허락은 나중에 받자고⁠.⁠”

“⁠열두 해 동안 꽂고 다녔소⁠.⁠”

“⁠허락을 못 받았으니까요⁠. 정혼이 안 끝난 매듭은 버릴 수도 없고 꽂고 다닐 수도 없어요⁠. 그래서 꽂고 다녔어요⁠.⁠”

사마철이 손바닥 위 매듭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허락하면 무엇이 달라지오⁠? 준이는 없소⁠.⁠”

“⁠제가 달라져요⁠.⁠” 소화가 말했다⁠. “⁠허락을 받으면 정혼이 끝나요⁠. 끝난 매듭은 내려놓을 수 있어요⁠.⁠”

사마철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에서 개방 거지들이 노래를 시작했고⁠, 서쪽 자리 누군가가 서쪽 말로 장단을 맞췄다⁠. 사마철의 손가락이 천천히 매듭을 감싸 쥐었다⁠.

“⁠허락하오⁠.⁠”

목소리가 낮았다⁠.

“⁠열두 해 늦게⁠. 엽가 소화를 사마준의 아내로 허락하오⁠.⁠”

소화는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였다⁠. 다시 들었을 때 얼굴에 부채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사마철은 매듭을 품에 넣었다⁠. 염주 알 한 줌이 들어 있는 자리였다⁠.

“⁠준이 위패에 걸어 두겠소⁠. 서쪽으로는 안 데려가오⁠. 망산에 두오⁠. 해마다 스무엿새에 떡을 들고 올라가겠소⁠. 매파도 오시오⁠.⁠”

“⁠삯은 반씩 내요⁠. 묘지기 영감님이 올해 열두 해 치를 받았으니 당분간은 공짜고요⁠.⁠”

사마철이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 비슷한 소리가 아니라 웃음이었다⁠. 옆구리를 움켜쥐고 웃다가 의원에게 혼났다⁠.

*

닷새 뒤⁠, 오월 초하루 아침⁠, 월하원 이층 창가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은 계단을 내려가 골목 어귀까지 이어졌다⁠. 흰 옷과 검붉은 옷이 섞여 있었다⁠. 정파 청년 하나가 맨 앞에 서서 손을 비볐다⁠. 손등에 먹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예물 수레를 다리에서 막던 날 방을 쓴 손이었다⁠.

“⁠매파님⁠. 혼처 있느냐고 하셨지요⁠.⁠”

“⁠있으세요⁠?⁠”

“⁠없어서 왔소⁠.⁠”

청년 뒤에 검붉은 옷의 마교 처녀 하나가 서 있었다⁠. 객관 대문을 지키던 무사였다⁠. 처녀는 청년을 흘끔 보고 고개를 돌렸다⁠. 청년도 처녀를 흘끔 보고 고개를 돌렸다⁠. 소화는 부채를 접어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춘매야⁠. 첫 번째 절차⁠.⁠”

춘매가 찻잔 둘을 놓았다⁠. 청년은 단숨에 들이켰고⁠, 처녀는 냄새를 맡고 청년의 빈 잔과 제 잔을 바꿨다⁠. 아래층에서 오복이 탁자를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창밖 골목 담벼락의 관아 방은 바람에 찢겨 귀퉁이만 남아 있었다⁠.

소화는 실패에서 실을 한 자 뽑았다⁠. 반이 남은 실이 아직 두꺼웠다⁠. 청년의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탁자를 건너 처녀의 새끼손가락에 감았다⁠. 두 번 돌리고 매듭을 지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삼백한 번째였다⁠.

처녀가 실을 내려다보았다⁠. “⁠끊으면⁠?⁠”

“⁠끊는 분이 수리비를 냅니다⁠.⁠”

소화가 부채를 활짝 폈다⁠. 높이 틀어 올린 검은 머리에 붉은 매듭 장식 하나가 꽂혀 있었다⁠. 남시 장터에서 새로 산 것이었다⁠. 땋은 결이 아직 빳빳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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