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468자)

상견례 탁자 위의 두 자루 칼

무림 결혼정보회사 · 여무겸

사월 보름 한낮⁠, 월하원 아래층 계산대 앞에 칼 받는 상이 다시 놓였다⁠. 곽춘매가 붉은 종이에 새로 써 붙였다⁠.

「⁠사돈 맞선 — 칼 맡기는 곳⁠. 어르신은 두 자루부터 받습니다⁠」

모용란이 먼저 왔다⁠. 장검을 상 위에 놓고 번호표 「⁠일⁠」을 받았다⁠. 엽소화는 계단 위에서 부채로 모용란의 양산을 가리켰다⁠. 흰 비단 양산이었는데 접힌 살 사이가 이상하게 두꺼웠다⁠.

“⁠태부인⁠. 양산도요⁠.⁠”

모용란이 소화를 노려보았다⁠. 양산 자루를 비틀자 살 사이에서 가는 검 한 자루가 빠져나왔다⁠. 춘매가 번호표 「⁠이⁠」를 내밀며 붓으로 적었다⁠. 「⁠양산 속 검 — 백 냥⁠」⁠.

“⁠늙은이 걸음이라 짚을 게 필요하다⁠.⁠”

“⁠양산은 맡기시고 지팡이를 빌려 드릴게요⁠. 유모님 거로⁠.⁠”

“⁠그건 싫다⁠.⁠”

사마철은 반 시진 늦게 왔다⁠. 칼은 차지 않았다⁠. 염주를 목에 걸고⁠, 허리에 수놓은 주머니 하나를 찼다⁠. 소화의 부채가 주머니를 가리켰다⁠.

“⁠염주 주머니요⁠.⁠”

“⁠염주는 목에 걸었소⁠.⁠”

“⁠그러니까 주머니에는 다른 게 들었겠지요⁠.⁠”

사마철이 한숨을 쉬고 주머니를 풀었다⁠. 손잡이에 검은 야크 털 술이 달린 비수가 나왔다⁠. 삼월 초엿새 밤 월하원 문짝에 꽂혔던 것과 같은 비수였다⁠. 춘매가 번호표 「⁠삼⁠」을 붙이며 적었다⁠. 「⁠주머니 속 비수 — 백 냥⁠. 문짝 수리비 따로⁠」⁠.

“⁠문짝은 왜 따로요⁠?⁠” 사마철이 물었다⁠.

“⁠그날 꽂으신 자국이 아직 있어요⁠. 손님들이 다 그거 보고 물어봐요⁠.⁠”

*

이층 맞선 방에 탁자 하나와 의자 둘이 마주 놓였다⁠. 진과 가린은 창가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둘의 새끼손가락이 붉은 실로 이어져 있었다⁠. 오늘은 실을 묶어 달라고 두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구양추는 문간 의자에 앉아 지팡이를 무릎에 가로놓았고⁠, 남궁가 시종은 계단 아래 남았다⁠.

“⁠월하원 아홉 절차 가운데 첫 번째⁠, 차 한 잔입니다⁠.⁠”

춘매가 찻잔 둘을 놓았다⁠. 모용란이 찻잔을 들었다⁠. 사마철도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찻잔을 한 번 보고⁠, 동시에 마셨다⁠. 다 마시고 동시에 내려놓았다⁠. 찻잔 바닥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하나로 들렸다⁠.

“⁠세 번째 절차⁠, 바라는 사돈입니다⁠. 태부인부터⁠.⁠”

“⁠먼저 절하는 사돈⁠.⁠”

“⁠대장로님은요⁠?⁠”

“⁠먼저 절하는 사돈⁠.⁠”

창가에서 진과 가린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어깨였다⁠. 소화는 춘매를 보았다⁠. 춘매가 붓을 든 채 말했다⁠.

“⁠적을까요⁠? 두 분 바라는 사돈이 같음⁠. 궁합 좋음⁠.⁠”

“⁠좋긴 뭐가 좋으냐⁠!⁠” 모용란과 사마철이 동시에 소리쳤다⁠.

“⁠목소리도 맞으시네요⁠.⁠”

진이 창가에서 기침을 했다⁠. 한 달 남짓 전 같은 방에서 같은 말을 들은 사람의 기침이었다⁠.

*

“⁠절은 대장로가 먼저 하시오⁠.⁠” 모용란이 말했다⁠. “⁠우리 남궁가는 가주를 벤 손에 먼저 고개 숙이지 않는다⁠.⁠”

“⁠모용 부인⁠. 매파가 말하지 않았소⁠? 나는 남궁가가 먼저 절해야 앉겠다고 했소⁠. 내 아들을 벤 집안이 먼저⁠.⁠”

“⁠남편이 네 아들을 벤 건 망산 싸움에서다⁠. 싸움에서 벤 것과 싸움이 끝나고 벤 것은 다르다⁠.⁠”

“⁠남궁창을 벤 것도 싸움 한가운데서였소⁠.⁠”

“⁠우리 남편은 네 아들을 벤 뒤에 칼을 거두고 있었다⁠. 칼을 거두는 사람 등을 벤 게 너다⁠!⁠”

사마철의 손이 탁자 아래에서 비어 있는 주머니 자리를 더듬었다⁠. 모용란의 손이 비어 있는 허리를 더듬었다⁠. 둘 다 아래층에 맡긴 것을 찾는 손이었다⁠. 소화는 탁자 가운데 찻주전자를 놓았다⁠. 손에 잡히는 것이 주전자뿐이었다⁠.

“⁠칼을 거두는 사람⁠.⁠” 사마철이 되뇌었다⁠. “⁠모용 부인⁠. 내 아들 준이도 칼을 거두고 있었소⁠.⁠”

모용란이 입을 다물었다⁠.

“⁠준이는 망산에서 정파 아이 하나의 목에 칼을 댔다가 거두었소⁠. 가라고 했소⁠. 아이는 달아났고⁠, 아이의 아비가 뒤에서 뛰어들어 준이를 벴소⁠. 준이가 칼을 거두는 걸 보지 못했겠지⁠. 아들 목에 칼이 닿은 것만 봤을 테니⁠.⁠”

“⁠무슨 소리를⁠…⁠…⁠.⁠”

“⁠아이는 열다섯이었소⁠. 남궁 집 막내였소⁠.⁠”

모용란이 창가를 돌아보았다⁠. 진이 일어났다⁠. 실이 당겨져 가린도 따라 일어났다⁠.

*

“⁠어머니⁠. 대장로님 말씀이 맞습니다⁠.⁠”

진은 어머니 앞으로 걸어왔다⁠. 실이 늘어나며 가린이 반 걸음 뒤에 섰다⁠.

“⁠망산에서 저는 아버지 뒤를 따라 언덕을 올랐습니다⁠. 마교 무사 하나가 제 칼을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칼끝이 원을 그리고 들어왔습니다⁠. 제 목에 칼을 대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거두면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달아났습니다⁠. 달아나다 돌아봤을 때 아버지가 쓰러지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벤 뒤에 쓰러지셨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 모용란의 목소리가 떨렸다⁠. “⁠열두 해 동안⁠.⁠”

“⁠말하면 아버지가 칼을 거두는 사람을 벤 분이 되니까요⁠. 어머니가 열두 해 동안 미워하신 사람이 반으로 줄어드니까요⁠.⁠”

모용란이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진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가린이 진의 반 걸음 뒤에서 앞으로 나왔다⁠. 실이 둘 사이에서 짧아졌다⁠.

“⁠태부인⁠. 하나 더 있습니다⁠.⁠”

가린의 목소리는 느리고 낮았다⁠.

“⁠망산에서 저는 불타는 수레 밑에 있었습니다⁠. 바퀴가 무너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바퀴를 들어 올리고 저를 끌어냈습니다⁠. 그 사람 등에 칼자국이 있었습니다⁠. 저를 내려놓고 일어서면서 왼발을 끌고 칼을 무릎에 내렸습니다⁠. 모래톱에서 남궁진이 똑같이 했습니다⁠. 형한테 배웠다고 했습니다⁠.⁠”

모용란이 가린을 보았다⁠. 이마의 붉은 불꽃 문양을⁠, 관을 벗은 머리를⁠, 실에 묶인 새끼손가락을⁠.

“⁠호가⁠…⁠…⁠.⁠”

“⁠큰아드님이 불 난 수레에 가신 까닭은 저입니다⁠. 마교 아이를 꺼내러 가셨습니다⁠.⁠”

모용란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에 손을 뻗었다가 빈 잔인 것을 보고 거두었다⁠. 소화가 주전자를 들어 잔을 채웠다⁠. 모용란은 잔을 쥐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김이 올라왔다⁠.

“⁠우리 남궁가는⁠.⁠” 모용란이 말을 꺼냈다가 멈췄다⁠. 다시 꺼냈다⁠. “⁠우리 집 남자들은 망산에서 둘 다 남의 아이 때문에 죽었구나⁠. 하나는 마교 아이를 꺼내다가⁠, 하나는 제 아이를 지키다가⁠.⁠”

“⁠내 아들도 남의 아이를 살리다가 죽었소⁠.⁠” 사마철이 말했다⁠.

모용란이 사마철을 보았다⁠. 눈이 붉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굽히지 않았다⁠.

“⁠그래도 네 손이 내 남편을 벴다⁠.⁠”

“⁠그래도 당신 남편이 내 아들을 벴소⁠.⁠”

두 사람의 말이 탁자 위에서 부딪혔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열두 해 동안 각자 반쪽만 알던 말이 이제 한 탁자 위에 나란히 놓였고⁠, 나란히 놓였다고 해서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소화는 부채를 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두 분 다 맞으세요⁠. 그러니 먼저 절할 분이 없지요⁠. 동시에 하시죠⁠.⁠”

“⁠동시에⁠?⁠” 모용란이 물었다⁠.

“⁠제가 셋을 세면 같이 숙이세요⁠. 먼저 숙이는 분도 늦게 숙이는 분도 없게요⁠. 하나⁠, 둘⁠…⁠…⁠.⁠”

두 혼주가 의자에서 일어나 마주 섰다⁠. 소화가 셋을 셌다⁠. 둘은 서로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한 치 굽히고 상대를 보고⁠, 또 한 치 굽히고 상대를 보았다⁠. 허리가 반쯤 굽었을 때 두 사람의 이마가 탁자 위에서 거의 닿을 뻔했다⁠. 모용란이 멈추자 사마철도 멈췄다⁠. 사마철이 한 치 더 내려가자 모용란이 두 치 내려갔다⁠. 구양추가 문간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둘 다 허리 나간다⁠!⁠”

두 혼주가 동시에 허리를 폈다⁠. 둘 다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소화가 손뼉을 쳤다⁠.

“⁠절은 하셨습니다⁠. 깊이는 같았어요⁠. 제가 봤어요⁠.⁠”

*

앉고 나자 흥정이 시작되었다⁠.

“⁠신혼은 낙양 별원에서 산다⁠.⁠” 모용란이 말했다⁠.

“⁠천산이오⁠. 신부가 자란 곳에서⁠.⁠”

“⁠진이는 이제 소가주가 아니다⁠. 남궁가 별원에 살 까닭도 없지만⁠, 천산에 갈 까닭은 더 없다⁠.⁠”

“⁠가린도 성녀가 아니오⁠. 그래도 마교 사람들은 가린을 보고 싶어 하오⁠.⁠”

소화가 끼어들었다⁠. “⁠반년씩 하시지요⁠. 모란 필 때부터 낙엽 질 때까지는 낙양⁠, 눈 올 때부터 다음 모란 철까지는 서쪽⁠. 서쪽은 겨울에 양고기가 맛있다던데요⁠.⁠”

창가에서 진의 얼굴이 굳었다⁠. 가린이 실을 한 번 당겼다⁠.

“⁠손주 성은 남궁이다⁠.⁠” 모용란이 말했다⁠.

“⁠아명은 마교에서 짓겠소⁠.⁠”

“⁠어떤 이름을⁠?⁠”

“⁠준⁠.⁠”

모용란이 사마철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둘째는 호로 하겠다⁠.⁠”

“⁠제사는요⁠?⁠” 소화가 물었다⁠. “⁠두 집 기일이 스무엿새로 같습니다⁠. 혼례도 스무엿새고요⁠.⁠”

“⁠상은 하나로 한다⁠.⁠” 모용란이 말했다⁠. “⁠과일은 같이 쓴다⁠. 매파가 그러라고 했지⁠.⁠”

“⁠떡은 남시 떡집 것으로 하시오⁠.⁠” 사마철이 말했다⁠. “⁠준이가 좋아했소⁠.⁠”

모용란이 손을 탁자 위로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했다⁠. 사마철은 모용란의 손바닥을 한참 보다가⁠, 염주 알 한 줌을 쥐고 있던 손을 펴서 손바닥 위에 얹었다⁠. 염주 알 몇 개가 두 손 사이에 끼었다⁠. 모용란은 알을 털어 내지 않았다⁠. 쉰둘의 손과 예순하나의 손이 탁자 위에서 겹쳤다⁠. 소화는 실패를 꺼냈지만 매듭을 짓지 않았다⁠. 육례에는 사돈 맞선이 없었다⁠. 소화는 실패를 도로 넣었다⁠.

*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오복이 숨을 몰아쉬며 문간에 나타났다⁠. 구양추가 지팡이를 들었다가 내렸다⁠.

“⁠사장님⁠. 낙수 나루 곁 창고⁠. 남궁율하고 탁문걸이 만났다⁠. 내 눈으로 봤다⁠.⁠”

방 안이 얼어붙었다⁠. 사마철이 모용란의 손에서 제 손을 거두었다⁠.

“⁠무슨 말을 했느냐⁠?⁠” 진이 물었다⁠.

“⁠스무엿새 해 질 녘⁠. 친영 행렬이 나루에서 배에 오르는 때⁠. 정파 청년들이 북쪽 둑에서⁠, 마교 무사들이 남쪽 둑에서 동시에 친다⁠. 정파는 마교가 쳤다고 하고⁠, 마교는 정파가 쳤다고 한다⁠. 혼례는 깨지고⁠, 그믐 다음 날 싸움이 붙는다⁠. 남궁율은 소가주 자리를⁠, 탁문걸은 장로회와 소금길을 갖는다⁠.⁠”

모용란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짚던 손이 허리를 떠나 아래층 칼 받는 상을 향했다⁠.

“⁠율이가 마교 장로와⁠.⁠”

“⁠이장로가 정파 놈과⁠.⁠” 사마철이 일어났다⁠.

두 혼주가 서로를 보았다⁠. 이번에는 노려보는 눈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에게 등을 찔린 사람끼리 보는 눈이었다⁠.

창가에서 진이 빈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가린은 관을 벗은 머리에 손을 얹었다가 내렸다⁠. 진이 낮게 말했다⁠.

“⁠형님이 그랬다⁠. 화살은 하나가 아니라고⁠.⁠”

“⁠그럼 이번엔 화살이 실을 못 찾게 하면 된다⁠.⁠” 가린이 소화를 보았다⁠. “⁠매파⁠. 스무엿새에는 실을 짧게 묶어라⁠. 한 자로⁠. 둘 사이로 화살이 못 지나가게⁠.⁠”

“⁠한 자면 배 위에서 둘이 꼭 붙어 서셔야 해요⁠.⁠”

“⁠알고 있다⁠.⁠”

진이 귀를 붉히며 창밖을 보았다⁠. 소화는 탁자 위 빈 찻잔 둘을 나란히 놓았다⁠.

“⁠두 분⁠. 칼은 아래층에 있어요⁠. 백 냥씩 내시면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소리가 나오느냐⁠!⁠”

“⁠스무엿새까지 열흘 남짓이에요⁠. 행렬을 짜려면 혼주 두 분이 같이 짜셔야 해요⁠. 같은 칼로 같은 둑을 지키셔야 하고요⁠.⁠”

모용란이 계단으로 걸어갔다⁠. 내려가다 돌아보았다⁠.

“⁠대장로⁠. 남쪽 둑은 마교가 맡아라⁠. 북쪽 둑은 우리 남궁가가 맡겠다⁠.⁠”

“⁠둑을 바꿉시다⁠. 남궁 사람이 남궁 사람을⁠, 마교 사람이 마교 사람을 막으면 손이 무뎌지오⁠.⁠”

모용란이 한참 사마철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층에서 춘매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태부인⁠! 양산 속 검은 백 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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