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38자)
엄마, 나야
로맨스 스캠에 걸린 엄마 · 지백솔
아침 일곱 시 십이 분, 모르는 번호였다. 순애는 칫솔을 문 채로 받았다.
“엄마, 나야. 엄마….”
소롬의 목소리였다. 울고 있었다. 숨이 가쁘고, 끝이 갈라졌다.
“엄마, 사고 났어. 버스가 사람을 쳤어. 할머니가 다쳤어. 피가 많이 나. 엄마, 나 어떡해. 경찰 오기 전에 합의해야 된대. 이 아저씨 바꿔 줄게. 엄마, 빨리….”
목소리가 멀어지고 남자가 받았다. 거친 목소리였다.
“어머니 되십니까? 따님이 우리 어머니를 쳤어요. 지금 병원 가는 중입니다. 경찰에 넘기면 따님 면허 끝나고 실형입니다. 지금 삼천만 원 현금으로 준비하시면 합의서 써 드립니다. 은행 가시면 직원이 물어볼 텐데 집수리 비용이라고 하세요. 따님 생각하시면.”
순애는 칫솔을 세면대에 놓았다. 거울 속의 자기 얼굴에 치약 거품이 묻어 있었다. 손등으로 닦았다.
“우리 딸 다시 바꿔 주세요.”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한마디만요.”
잠깐 조용하더니 소롬의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엄마, 나야. 엄마, 미안해. 빨리 와.”
순애는 눈을 감았다. 소리만 남겼다. 우는 목소리가 「엄마」 앞에서 숨을 들이켜지 않았다. 소롬은 울 때 꼭 코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넘어졌을 때도, 아빠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소롬은 전화로 「엄마, 나야」라고 하지 않았다. 소롬은 늘 「엄마, 어디야?」로 시작했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부터 물었다.
“얘야, 아빠가 좋아하던 짬뽕집 이름이 뭐였지?”
수화기 너머가 끊겼다. 「통화 종료」 글자가 떴다.
순애는 세면대를 짚고 숨을 두 번 고른 뒤, 손을 털고 딸의 번호를 직접 눌렀다. 저장된 번호, 「추소롬」 신호가 세 번 가고 받았다. 엔진 소리와 하차 벨 소리가 먼저 들렸다.
“운전 중입니다. 용건만 간단히. 다음 정류장은 고잔 시장입니다.”
“너 지금 어디야?”
“버스지 어디야. 사월 정류장 지났어. 왜?”
“사고 안 났지?”
“사고? 아침부터 무슨 소리야. 손님 타신다. 끊어.”
전화가 끊겼다. 순애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타일이 차가웠다. 칫솔에서 치약이 바닥으로 한 방울 떨어졌다.
*
재빈은 순애의 전화를 받자마자 지역 커뮤니티 주소 하나를 보냈다. 「안산 버스 레전드 기사님」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었다. 승객이 몰래 찍은 영상이었다. 소롬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정류장은 고잔역, 고잔역입니다. 오늘 비가 오니 우산 두고 내리지 마세요. 두고 내리시면 제 겁니다」라고 하고 있었다. 조회 수가 몇만이었다.
「홍삼: 목소리를 흉내 내려면 짧은 녹음만 있으면 돼요. 단지에서도 그렇게 해요. 자식 목소리를 따서 부모한테 울면서 전화하는 조가 따로 있어요. 소롬 씨 영상이 돌기 시작했을 때 지우라고 할 걸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순애: 숨은 못 따더라.」
「홍삼: 숨은 녹음에 안 남아요. 목소리만 남아요.」
순애는 가족 단톡방을 열었다.
「순애: 오늘부터 우리 집 암호 정한다. 누가 급하다고 돈 얘기하면 끊고 다시 걸고, 암호 물어볼 것.」 「소롬: 뭔 일 있었어?」 「순애: 너 목소리로 전화 왔어. 버스 사고 났다고. 삼천 달래.」 「소롬: 미친」 「소롬: 나 오늘 사고 안 냄. 사이드 미러도 안 깸」 「청주 이모: 암호 뭐로 하노」 「청주 이모: 곰 이모티콘 두 번 어떻노」 「소롬: 이모 그건 이모가 맨날 하잖아」 「청주 이모: 그러니까 외우기 쉽지」 「순애: 아빠 짬뽕집 이름. 셋 다 아는 거.」 「소롬: 아 그거. 그 집 이름 아빠가 맨날 틀리게 불렀잖아」 「순애: 틀리게 부르던 이름으로 하자. 그건 우리만 알아」 「청주 이모: 나는 모른다」 「소롬: 이모는 곰 두 번 하면 돼」 「청주 이모: (엄지 든 곰 이모티콘)」 「청주 이모: (엄지 든 곰 이모티콘)」
순애는 웃다가 안경을 벗어 눈가를 닦았다. 남편이 틀리게 부르던 짬뽕집 이름을 소리 내어 한 번 말해 보았다. 욕실 문틈으로 아침 볕이 들어왔다.
*
순애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탁갑룡은 한 번 만에 받았다.
“어머님이 먼저 전화를 다 주시고. 천재일우올시다.”
“점심 사세요. 고잔 시장 국밥집. 열두 시.”
고잔 시장 국밥집은 입구에 가마솥 둘이 끓고 있었고, 벽에 「순대국 9,000 / 특 11,000」 차림표가 붙어 있었다. 탁갑룡은 먼저 와서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출입문과 순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순애는 맞은편에 앉아 수저를 냅킨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특으로 두 그릇이요. 다대기는 따로.”
탁갑룡이 웃었다.
“어머님은 국밥도 규정대로 드시네요.”
“아침에 우리 딸이 사고를 냈대요. 사람을 쳤대요. 삼천만 원이면 합의해 준대요.”
탁갑룡의 젓가락이 깍두기 위에서 멈췄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큰일 날 뻔하셨네요.”
“딸 목소리를 따서 울렸어요. 숨은 못 땄더라고요.”
“세상 참 무섭습니다.” 탁갑룡이 깍두기를 집었다. “그러니까 어머님, 이제 그만하시지요. 어머님이 경찰 다니시고 대화방 키우시고 재빈이 끌고 다니시니까, 위에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 전화는 저도 모르는 일이에요. 진짜로요. 그런데 다음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버스는 큰 차라서요.”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뚝배기에서 김이 올라 탁갑룡의 금테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탁갑룡이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으로 닦았다. 안경을 벗은 눈은 생각보다 작고 피곤했다.
“실장님은 단지에 두 해 있었다면서요.”
탁갑룡이 안경을 닦다 멈췄다.
“재빈이가 별말을 다 했네.”
“재빈이 말고 실장님 눈이 말해요. 은행에서 빚 독촉 받는 손님들 눈이 그래요. 잠을 못 자서 아래가 내려앉고, 웃을 때 눈은 안 웃어요.” 순애는 다대기를 국밥에 반 숟가락만 넣었다. “실장님도 「고액 해외 취업」 보고 갔어요?”
“나는 사업하다 망해서 갔습니다. 빚쟁이 피해서. 가 보니 빚쟁이가 거기 더 많더군요.” 탁갑룡이 안경을 다시 썼다. “어머님, 제 사정 들으시려고 부르신 거 아니잖습니까. 용건만 하시지요.”
“용건은 하나예요. 일억 보낼게요.”
탁갑룡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우리 딸한테 손대지 마세요. 목소리도요. 재빈이 빚도 그걸로 끝내요. 일억이면 재빈이 남은 빚보다 많잖아요.”
“그건 위에서 정할 일인데.”
“구채봉한테 물어보세요. 내가 내 손으로 보내는 걸 보고 싶다고 했어요. 보여 줄게요. 다만 나는 은행 사람이라서 은행에서, 계좌로 보내요. 현금 들고 길에서 낯선 사람한테 주는 건 안 해요. 그건 내가 서른 해 동안 손님들한테 하지 말라던 거예요.”
탁갑룡은 국밥을 한 숟가락 떴다. 뜨거워서 입김을 불었다. 한참 씹고 삼키고 나서 말했다.
“어머님. 견물생심이라고 하지요. 돈을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위에서는 반대로 씁니다. 마음을 보면 돈이 생긴다고. 어머님 마음이 따님한테 있는 걸 위에서 봤어요. 그러니까 돈은 생깁니다. 날짜는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탁갑룡이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두 그릇 값을 내고 영수증을 받지 않았다. 문을 나서며 돌아보지 않았다.
순애는 혼자 남아 국밥을 끝까지 먹었다. 다대기를 더 넣지 않았다. 뚝배기 바닥에 밥알 몇 개가 눌어붙어 있었다. 숟가락으로 긁어 마저 먹었다.
*
오후 세 시, 안산 중앙동의 미단 미용실에는 손님 둘이 머리에 비닐 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다. 파마약 냄새가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찔렀다. 미단은 순애를 거울 앞 의자에 앉히고 가위를 들었다.
“지점장님 머리, 짧은 것까지는 좋은데 뒤가 너무 각졌어. 은행 창구 칸막이처럼.”
“삼십 년 다닌 미용실에서 늘 이렇게 해 줬어요.”
“그 원장이 지점장님 무서워서 그런 거야.” 미단이 뒷머리를 빗어 올렸다. 가위 소리가 귀 뒤에서 사각거렸다. 비닐 모자를 쓴 손님 하나가 거울로 순애를 보았다.
“어머, 그 미군 지점장님이세요? 원장님이 얘기 많이 했어요. 사진 보니까 우리 손녀가 좋아하는 배우 닮았던데.”
“캐나다 소방관이에요. 애가 셋이고요.”
“아이고, 애 셋이면 바람 필 시간도 없겠네.”
손님 둘이 깔깔 웃었다. 미단도 웃다가 가위를 멈췄다. 웃음이 가라앉자 미단이 순애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췄다.
“지점장님, 어젯밤에 탁 사장이 나한테 따로 메시지 보냈어요. 나만 착수금 안 내도 되게 해 주겠대. 대신 지점장님이 다음에 뭘 하는지 알려 달래요. 경찰서에 언제 가는지, 누구 만나는지.”
순애는 거울 속 미단을 보았다. 미단은 가위 끝으로 순애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맞췄다.
“답했어요?”
“답했지. 「저 그런 거 안 해요, 머리나 하러 오세요」 그리고 차단했어.” 미단이 순애의 목에 두른 보를 털었다. “나 삼천 날렸어. 딸 시집갈 돈. 그 돈은 안 돌아와도, 이 미용실에서 내 입으로 남의 일 팔아먹는 건 안 해. 미용실은 원래 말이 다 모이는 데야. 모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파는 순간 장사 끝나.”
미단이 거울을 들어 순애의 뒷머리를 비춰 주었다. 각이 둥글게 깎여 있었다. 흰머리가 목덜미를 따라 짧게 누웠다.
“어때요?”
“좋네요.”
“좋다는 말 처음 듣네. 빈센트는 맨날 「아름다워요」만 했어. 머리 바꿔도 몰랐어.” 미단이 가위를 내려놓았다. “지점장님, 뭐 할 거면 나도 끼워 줘요. 탁 사장한테 뭘 흘려야 하면 내가 흘릴게. 미용실 원장 말은 다들 믿어.”
*
반 경위는 순애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이버수사팀 회의실 창밖으로 해가 기울었다.
“일억을 미끼로 쓰시겠다고요.”
“삼백만 원으로 계좌 하나를 묶었어요. 일억이면 한국 쪽 돈길 전체가 움직여요. 탁갑룡도 직접 움직이고요. 위에서 나를 직접 본다고 했으니까요.”
“지점장님, 저희가 그 돈을 지켜 드린다는 약속은 못 해요.” 반 경위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돈이 계좌에 머무는 시간이 몇 분이에요. 저희가 잡는 건 사람이지 돈이 아니에요. 일억 가운데 얼마가 돌아올지 저는 몰라요. 하나도 안 돌아올 수도 있어요.”
“알아요. 창구에서 손님들한테 제일 많이 한 말이 그거예요. 돌아올 거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돌아온 손님은 몇 안 됐고, 돌아온 돈은 더 적었어요.”
반 경위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회의실 벽시계 초침이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아시는데 왜 하세요?”
순애는 휴대전화를 꺼내 「같은 목소리」 대화방을 열었다. 마흔세 명이었다. 봉남이 영수증을 올린 뒤로 하루에 몇 명씩 늘었다.
“이 사람들 돈은 이미 다 나갔어요. 남은 건 내 돈 일억이에요. 이 돈은 아직 내 손에 있어요. 내 손에 있는 돈으로 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이 방에 나 하나예요.”
반 경위는 대화방의 이름들을 한참 보았다. 고개를 들었다.
“딸분은 아세요?”
순애는 휴대전화를 닫았다.
“오늘 저녁에 말할게요. 보내기 전에 가족한테 말하라고 서른 해 동안 손님들한테 말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