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00자)

맞불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강현곤은 오후 두 시 삼십 분에 월명동 골목 어귀의 문 닫은 철물점 처마 밑에 경차를 세웠다⁠. 한 달 전 셀카봉을 들고 섰던 자리였다⁠. 운전석에서 내다보니 남궁반찬 유리문 안이 훤했다⁠. 진열대 앞에 사람이 여섯이었다⁠. 셋은 머리에 털실 모자를 쓰고 있었다⁠. 빨강⁠, 노랑⁠, 연두⁠. 할머니 둘과 할아버지 하나가 진열대 옆 접이식 의자에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현곤은 휴대전화를 들어 유리문 안을 찍었다⁠. 손이 저절로 썸네일 각도를 잡았다⁠. 털실 모자 쓴 노인 셋이 나란히 앉은 그림은 잘 팔렸다⁠. 「⁠반찬 할매⁠, 응원단까지 동원⁠」 제목이 먼저 떠올랐다⁠.

현곤의 엄마는 보험 설계사였다⁠. 동네 노인정을 돌며 노인들에게 보험을 팔았고⁠, 노인들은 엄마를 딸처럼 대했다⁠. 현곤이 고등학교 이 학년일 때 엄마가 다니던 회사가 사기로 문을 닫았다⁠. 노인정 할머니들이 집 앞에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할머니들에게 갚을 돈을 벌러 새벽마다 나갔다가⁠, 다섯 해 뒤에 다 갚고 몸이 망가졌다⁠. 노인 상대로 하는 장사는 결국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현곤은 열여덟 살에 배웠다⁠. 누가 먼저 두드리느냐만 달랐다⁠.

현곤은 가방 맨 위의 반찬 통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셀카봉을 펴고 차에서 내렸다⁠.

*

남궁희자는 오후 세 시 정각에 진열대 위에 휴대전화 두 대를 마주 보게 세웠다⁠. 하나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희자의 것이었고⁠, 하나는 현곤의 셀카봉 끝에 매달린 것이었다⁠. 두 화면에 동시에 「⁠LIVE⁠」가 떴다⁠. 희자 쪽 화면의 숫자가 먼저 오천을 넘었고⁠, 현곤 쪽 숫자가 조금 늦게 따라왔다⁠.

“⁠우리 학생들⁠, 오늘은 손님이 왔어⁠. 뒤집개 학생도 왔고⁠. 뒤집개 학생들도 반찬 먹고 가⁠.⁠”

“⁠선생님⁠, 반찬 말고 질문 먼저 드릴게요⁠.⁠”

현곤이 웃는 얼굴로 셀카봉을 조금 낮췄다⁠. 희자 얼굴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로 잡혔다⁠. 희자가 국자로 셀카봉을 툭 쳐서 각도를 바로잡았다⁠.

“⁠사람을 밑에서 찍으믄 콧구멍만 나와⁠.⁠”

두 채팅창이 동시에 「⁠ㅋㅋㅋㅋ⁠」로 덮였다⁠. 현곤은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광고 수익⁠, 빚 갚는 데 쓰시죠⁠?⁠”

“⁠그려⁠.⁠”

희자가 바로 대답했다⁠. 현곤이 다음 질문을 준비하다가 한 박자 늦었다⁠.

“⁠그럼 구독자들 클릭으로 빚 갚으시는 거네요⁠?⁠”

“⁠그려⁠. 우리 학생들이 눌러 주믄 그 돈으로 이자 내⁠. 빚은 사천이백⁠. 니가 영상에 올린 숫자 맞어⁠. 남편 병원비랑 가게 냉장고⁠. 이자 날짜도 맞어⁠. 매달 이십오 일⁠. 다음 이십오 일까지 이 주 남었어⁠.⁠”

희자는 진열대 냉장고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것이 그 냉장고여⁠. 우리 학생들 클릭으로 돌아가는 냉장고⁠. 오늘 이 안에 든 반찬도 다 우리 학생들 덕이여⁠. 그것이 잘못이믄 나는 잘못허는 중이여⁠.⁠”

희자 쪽 채팅창이 하트로 덮였다⁠. 현곤 쪽 채팅창은 반으로 갈렸다⁠. 「⁠할매 쿨하네⁠」 「⁠그래도 돈은 돈임⁠」 미용실 원장이 파마 롤을 단 채 화면 뒤를 가로질러 지나갔다가⁠, 화면에 찍힌 것을 알고 다시 돌아와 손을 흔들었다⁠. 두 채팅창에 「⁠롤 할매 누구임⁠?⁠」이 동시에 올라왔다⁠. 털실 모자를 쓴 춘엽이 화면 귀퉁이에서 원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현곤이 셀카봉을 고쳐 잡았다⁠. K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화내는 장면 하나⁠.

“⁠남편분 돌아가신 것도 콘텐츠로 쓰시는 거죠⁠? 병원비 이야기 나오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구독 누르니까⁠.⁠”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접이식 의자의 낚시 할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성율이 쪽방 커튼 앞에서 한 걸음 나왔다가 멈췄다⁠. 희자는 국자를 들지 않았다⁠. 진열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두꺼운 반찬 통이었다⁠. 뚜껑을 열자 봄동 겉절이가 들어 있었다⁠.

“⁠니가 가져간 통에 담은 것이여⁠.⁠”

현곤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현곤의 가방에 든 통과 똑같은 통이었다⁠.

“⁠통 바닥에 갖다 달라고 써 놨는디⁠, 니가 안 가져올 것 같어서 새로 하나 담었어⁠. 남편 이야기는 내가 먼저 했어⁠. 니가 묻기 전에⁠. 콘텐츠가 뭔지 나는 몰라⁠. 쓰러진 사람 이야기를 안 허믄 나는 이 가게를 설명을 못 혀⁠. 냉장고도 설명을 못 허고⁠, 빚도 설명을 못 혀⁠.⁠”

*

오춘엽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뜨개바늘을 쥐고 있었다⁠. 화면에 안 잡히는 자리였다⁠.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희자가 동기들에게 부탁했다⁠. 오늘은 내 뒤에서 반찬만 드시라고⁠. 무슨 말이 나와도 끼어들지 말라고⁠. 춘엽은 끼어들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손을 가만두면 입이 열릴 것 같아서 바늘을 움직였다⁠. 겉뜨기 한 단⁠, 안뜨기 한 단⁠.

옆자리의 낚시 할아버지는 겉절이를 한 접시 비우고 꾸벅꾸벅 졸았다⁠. 뒤집개가 남편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할아버지가 번쩍 눈을 떴다⁠. 젓가락을 떨어뜨렸고⁠, 떨어진 젓가락을 줍지 않고 뒤집개를 노려보았다⁠. 서예 할머니는 휴대전화로 뒤집개 쪽 채팅창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말을 하나씩 읽으며 혼자 대꾸하고 있었다⁠. 이놈아⁠, 니 할매도 반찬 했어⁠.

춘엽은 바늘을 멈추고 유리문을 보았다⁠. 유리문 밖 골목은 오후 햇빛으로 하얬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득갑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침에 단톡방에 「⁠오늘 세 시 다들 반찬 가게로⁠」라고 올렸을 때 숫자 1이 하나 끝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득갑의 1이었다⁠. 춘엽은 노란 털실 모자 하나를 무릎에 두고 있었다⁠. 득갑 몫이었다⁠.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모자였다⁠.

*

남궁성율은 엄마 휴대전화 뒤에서 두 번째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시킨 일이었다⁠. 뒤집개가 편집할 것이니⁠, 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찍어 놔라⁠. 성율의 휴대전화는 가로로 돌아가 있었고 삼각대 없이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 달 사이 손이 배웠다⁠.

뒤집개가 남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성율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싶었다⁠. 내려놓고 저 셀카봉을 꺾고 싶었다⁠. 석 달 동안 새벽마다 댓글창에서 하던 일을 지금 몸으로 하고 싶었다⁠. 성율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않았다⁠. 엄마가 겉절이 통을 꺼내는 손을 화면 한가운데 잡았다⁠. 엄마의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아버지 손을 닮은 것은 자기 손이었다⁠. 엄마 손이 아니었다⁠. 엄마 손은 엄마 손대로 굵었다⁠.

성율은 화면을 엄마 얼굴로 천천히 올렸다⁠. 엄마는 웃지도 울지도 않고 뒤집개를 보고 있었다⁠. 맛을 보기 전의 얼굴이었다⁠.

*

차예늘은 쪽방 커튼 뒤에서 두 채팅창을 노트북으로 보고 있었다⁠. 뒤집개 쪽 채팅창에 낯익은 아이디가 하나 있었다⁠. 은결 운영팀이 쓰는 관리용 계정이었다⁠. 수습 주간에 예늘도 관리용 계정으로 댓글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계정이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올리고 있었다⁠. 「⁠빚 갚으려고 동정 팔이⁠」 「⁠편집자도 한패⁠」

편집자도 한패⁠. 예늘은 노트북을 덮었다⁠. 커튼을 젖히고 나갔다⁠. 성율 오빠가 놀라 카메라를 돌렸고⁠, 희자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예늘은 두 휴대전화 사이⁠, 진열대 앞까지 걸어 나갔다⁠.

“⁠저는 이 채널 편집자예요⁠. 차예늘이요⁠.⁠”

현곤이 셀카봉을 예늘 쪽으로 돌렸다⁠. 눈이 커졌다⁠. K팀장이 금지한 이야기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달에 저는 선생님 영상 원본을 서울의 한 회사에 넘겼어요⁠. 정직원 자리를 준다고 해서요⁠. 선생님한테는 말 안 했어요⁠. 그 원본이 뒤집개 영상에 들어갔어요⁠. 선생님이 돋보기 찾는 장면이요⁠. 웃는 장면을 무섭게 만든 게 그거예요⁠. 회사 이름은 지금 말 못 해요⁠. 말하면 소송이 들어온대요⁠. 그래도 제가 넘겼다는 건 제 입으로 말해요⁠.⁠”

현곤이 웃는 얼굴을 다시 붙였다⁠.

“⁠누나도 돈 받았잖아요⁠. 정직원 월급⁠.⁠”

“⁠받기로 했어요⁠.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안 받았으면 말 안 해도 됐겠죠⁠.⁠”

두 채팅창이 동시에 멈췄다가 터졌다⁠. 현곤 쪽 채팅창에서 관리용 계정이 같은 말을 세 번 올렸고⁠, 다른 아이디들이 관리용 계정을 놀리기 시작했다⁠. 「⁠복붙 계정 퇴근하세요⁠」

*

강현곤의 휴대전화 화면 위로 메시지가 내려왔다⁠. 라이브 화면을 가리는 위치였다⁠. 「⁠K팀장⁠: 당장 끄세요⁠. 지금⁠.⁠」 현곤은 메시지를 옆으로 밀어 지웠다⁠. 다시 내려왔다⁠. 「⁠협력비 없습니다⁠. 끄세요⁠.⁠」

현곤은 셀카봉을 접었다⁠. 라이브가 꺼지자 현곤 쪽 휴대전화가 조용해졌다⁠. 희자 쪽 휴대전화만 아직 「⁠LIVE⁠」를 깜박이고 있었다⁠. 현곤은 가방을 열어 빈 반찬 통을 꺼냈다⁠. 진열대 위 희자가 새로 담은 통 옆에 나란히 놓았다⁠.

“⁠통은 돌려 드릴게요⁠.⁠”

“⁠새 통은 가져가⁠.⁠”

“⁠안 가져가요⁠.⁠”

“⁠가져가⁠. 니가 안 가져가믄 내가 너그 집까지 들고 간다⁠. 주소는 몰라도 니 차 번호는 알어⁠.⁠”

희자 쪽 채팅창이 「⁠ㅋㅋㅋㅋ⁠」로 폭발했다⁠. 현곤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깨물다가 졌다⁠. 짧게 웃었다⁠. 새 통을 들고 유리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문을 나서는 현곤의 등 뒤로 희자가 한마디를 더 던졌다⁠. “⁠통은 다음에 또 가져와⁠!⁠” 현곤은 뒤돌아보지 않고 통을 든 손을 한 번 들었다⁠.

골목 어귀의 경차에 올라탄 현곤은 시동을 걸지 않았다⁠. 조수석에 새 반찬 통을 놓고⁠, 휴대전화에 쌓인 메시지를 위에서부터 읽었다⁠. 「⁠K팀장⁠: 오늘 라이브 다시 보기 내리세요⁠.⁠」 「⁠K팀장⁠: 다음 소재는 당분간 없습니다⁠.⁠」 「⁠K팀장⁠: 협력 계약은 법무팀과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현곤은 다시 보기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껐다⁠. 새 통의 뚜껑을 열자 차 안에 액젓 냄새가 퍼졌다⁠. 지난번보다 덜 짰다⁠. 할머니가 자기 입에 맞춰 간을 했다는 것을 현곤은 두 잎째에 알았다⁠.

*

희자가 라이브를 끈 것은 네 시 십 분이었다⁠. 구독자는 십팔만이 되어 있었다⁠. 동기들이 손뼉을 쳤고⁠, 춘엽이 만세 하는 고양이를 단톡방에 쉰 번 보냈다⁠. 희자는 손뼉을 치지 않았다⁠. 예늘이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쪽방 앞에 서 있었다⁠. 예늘의 얼굴이 하얬다⁠.

“⁠네⁠. 네⁠, 이사님⁠. 알겠습니다⁠.⁠”

예늘이 전화를 내렸다⁠.

“⁠입사 취소래요⁠. 내일 내용증명 보낸대요⁠. 영업 비밀이랑 명예 훼손이요⁠.⁠”

“⁠회사 이름도 안 말혔는디⁠?⁠”

“⁠그래도래요⁠.⁠”

희자는 예늘에게 다가가 털실 모자를 벗겨 들고 예늘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미용실 원장이 문간에서 롤을 단 채 딸을 보고 있었다⁠. 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딸에게 와서 등을 두드렸다⁠.

“⁠선생님⁠, 저 때문에 선생님까지 엮이면 어떡해요⁠?⁠”

“⁠엮여야 품앗이지⁠. 내가 니 반찬값 석 달 밀렸어⁠. 편집비 대신 소송비 대 줄게⁠.⁠”

“⁠반찬값은 받았어요⁠. 매일 받았어요⁠.⁠”

“⁠그라믄 이번에는 니가 나헌테 반찬 해 와⁠. 계란말이도 못 허는 것이⁠.⁠”

원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계란말이는 내가 갈쳤어⁠. 지가 안 배웠지⁠.⁠”

유리문이 다시 열렸다⁠. 종이 울렸다⁠. 문간에 용접공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염득갑이었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화면에 방금 끝난 희자의 라이브 다시 보기가 떠 있었다⁠. 숨이 차서 어깨가 오르내렸다⁠. 해망동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희자 씨⁠.⁠”

“⁠득갑 씨⁠, 일단 앉어⁠.⁠”

“⁠안 앉어⁠. 서서 말헐라네⁠.⁠”

득갑이 휴대전화를 진열대 위에 내려놓았다⁠. 은결 출연자 공지방의 「⁠운영팀 K⁠」 글을 찍은 사진이 화면에 떠 있었다⁠.

“⁠나도 말헐라네⁠. 라이브로⁠. 내 얼굴로⁠.⁠”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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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지담2026.11.01· 9화

    털실 모자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반찬가게에 줄 선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구독자분들이 지키러 온 거죠?

    • 윤은류작가2026.11.01

      빨강, 노랑, 연두 모자를 쓰고 온 분들이에요. 희자 씨가 영상에서 고맙다고 한 바로 그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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