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60자)

월명동아들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류옥채는 어버이날 오후 세 시 정각에 남궁반찬 유리문을 밀었다⁠. 이번에는 홍삼 상자를 들고 오지 않았다⁠. 빈손이었다⁠. 가게 안에는 셋이 있었다⁠. 위생모를 쓴 희자가 진열대 뒤에 있었고⁠, 아침 기차로 내려온 아들이 계산대 옆 의자에 있었고⁠, 편집자가 쪽방 커튼 앞에 서 있었다⁠. 진열대 위에는 삼각대가 접힌 채 누워 있었다⁠. 오늘은 찍지 않는 날이었다⁠.

“⁠어버이날인데 빈손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이사님 어머니헌테는 뭣 드렸소⁠?⁠”

“⁠아침에 전화드렸어요⁠. 대전에 계세요⁠.⁠”

“⁠전화도 선물이여⁠.⁠”

희자가 오이소박이 한 개를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류옥채는 젓가락을 받았다⁠. 어버이날 주문하고 남은 마지막 통이라고 희자가 말했다⁠. 오이를 베어 물자 아삭하는 소리가 가게 안에 크게 울렸다⁠. 부추의 매운맛이 코로 올라왔다⁠. 류옥채는 오이를 다 먹고 젓가락을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어머님⁠, 숨기지 않겠습니다⁠. 뒤집개는 저희가 광고비를 대는 협력 채널이 맞습니다⁠.⁠”

편집자가 커튼 자락을 쥐었다⁠. 아들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희자만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를 들으시겠어요⁠?⁠”

“⁠들을라고 불렀어요⁠.⁠”

“⁠구독자 십만 넘는 어르신 채널에는 여섯 달 안에 뒤집개 같은 채널이 반드시 붙어요⁠. 저희가 대든 안 대든요⁠. 저희는 그중에서 집 앞까지 안 가는 사람을 골라요⁠. 뒤집개는 한 번도 어르신 집 주소를 올린 적이 없어요⁠. 가게까지만 가요⁠. 저희가 손을 떼면 그 자리에 집 대문까지 가는 사람들이 붙습니다⁠. 어머님⁠, 이 시장은 원래 이래요⁠. 저는 시장을 만든 사람이 아니에요⁠. 그 안에서 덜 다치게 하는 사람이에요⁠.⁠”

“⁠덜 다치게 헐라고 사천이백을 퍼뜨렸소⁠?⁠”

“⁠날짜를 맞췄습니다⁠. 그 숫자가 나가면 어머님이 저희를 생각하실 거라고 봤어요⁠. 그건 제 잘못입니다⁠. 사과드립니다⁠.⁠”

류옥채가 고개를 숙였다⁠. 짧게 숙였고 금방 들었다⁠.

“⁠이사님 말이 다 맞어요⁠.⁠”

류옥채가 희자를 보았다⁠. 아들과 편집자도 희자를 보았다⁠.

“⁠뒤집개 같은 것이 안 붙는 채널은 없겄지⁠. 덜 다치게 해 준다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겄지⁠. 대구 떡집 할머니는 이사님 덕에 떡 썰고 있겄지⁠. 근디 이사님⁠, 반찬 가게에도 칼이 있어요⁠. 칼은 써는 사람이 쥐어야 혀⁠. 덜 다치게 해 준다는 사람이 칼을 쥐고 있으믄⁠, 다칠 날짜도 그 사람이 정혀⁠. 이번처럼⁠.⁠”

“⁠어머님⁠, 그래서 저희가 계약서로 묶이는 거예요⁠. 날짜를 정하는 사람도 계약서 안에 있으니까요⁠.⁠”

“⁠계약서는 내가 돋보기로 읽었어요⁠. 칼 쥔 사람 이름은 한 줄도 없던디⁠.⁠”

류옥채가 처음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편집자님⁠.⁠”

예늘이 커튼을 놓았다⁠.

“⁠편집실 서버 화면을 찍으신 거 압니다⁠. 그 사진이 어디든 올라가면 영업 비밀 유출로 소송하겠습니다⁠. 편집자님 개인을 상대로요⁠. 입사도 없던 일이 됩니다⁠. 이건 협박이 아니고 절차예요⁠.⁠”

예늘의 얼굴이 하얘졌다⁠. 희자가 국자를 들어 진열대 위에 내려놓았다⁠. 쇠가 유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우리 예늘이는 내 반찬 먹고 내 영상 붙인 애여⁠. 소송을 헐라믄 나헌테 혀요⁠.⁠”

“⁠어머님은 서버를 안 찍으셨어요⁠.⁠”

류옥채가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둔 가방을 집었다⁠. 가려다가 말고 아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니⁠, 아들을 지나 희자를 보았다⁠.

*

남궁성율은 류옥채가 자기를 보다가 엄마에게 눈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았다⁠. 두 주 동안 류옥채의 목소리는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아껴 두었다가 마지막에 꺼냈다⁠.

“⁠그리고 어머님⁠, 하나 더 아셔야 공평할 것 같아요⁠. 뒤집개가 처음 어머님 채널을 고른 건 저희가 아닙니다⁠. 뒤집개가 먼저 들고 왔어요⁠. 월명동아들이라는 분이 석 달째 뒤집개 댓글창에서 싸우셨거든요⁠. 싸움이 붙은 채널은 조회수가 나와요⁠. 저희는 뒤집개가 들고 온 소재에 날짜를 맞췄을 뿐입니다⁠.⁠”

엄마가 돋보기를 위생모 위로 올렸다⁠.

“⁠월명동아들⁠?⁠”

“⁠어머님 아드님이요⁠.⁠”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진열대 냉장고 모터가 돌았다⁠. 류옥채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유리문을 밀었다⁠.

“⁠오억은 다음 주까지 유효합니다⁠. 어머님 채널 지키시는 데 가장 빠른 길이에요⁠. 그건 변하지 않아요⁠.⁠”

종이 울리고 문이 닫혔다⁠. 엄마가 아들을 보았다⁠. 성율은 엄마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피하지 않으니 눈이 뜨거워졌다⁠.

“⁠니가 싸웠냐⁠?⁠”

“⁠네⁠.⁠”

“⁠언제부터⁠?⁠”

“⁠엄마 첫 영상에 손 좀 씻고 하라는 댓글 달린 날부터요⁠. 일월 말이요⁠.⁠”

“⁠밤에⁠?⁠”

“⁠새벽에요⁠. 엄마 자는 시간에⁠.⁠”

엄마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성율은 휴대전화를 꺼내 「⁠월명동아들⁠」의 활동 기록을 열어 엄마 손에 올렸다⁠. 엄마가 돋보기를 다시 내려 쓰고 화면을 밀었다⁠. 밀고 또 밀었다⁠. 댓글이 천이백 개였다⁠.

*

남궁희자는 셔터를 다 내린 가게 안에서 진열대 유리에 팔꿈치를 대고 아들의 댓글을 읽었다⁠. 형광등 하나만 켜 두었다⁠. 예늘은 미용실로 돌려보냈다⁠. 아들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무릎에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혼나기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의 자세였다⁠.

「⁠우리 엄마 위생모 안 보이세요⁠? 눈을 삶아 드셨어요⁠?⁠」

희자가 소리 내어 읽고 웃었다⁠.

“⁠눈을 삶아 먹어⁠? 이것은 무슨 반찬이여⁠?⁠”

「⁠틀니 아니고 엄마 원래 이빨임⁠. 치과 영수증 올려 드려요⁠?⁠」

“⁠치과 영수증은 없는디⁠. 니가 어찌 올릴라고 혔어⁠?⁠”

「⁠할매 할매 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 이름 있어요⁠. 남궁희자 선생님입니다⁠.⁠」

희자는 거기서 웃음을 멈췄다⁠. 화면을 더 밀지 않았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누구였는지 희자는 이날까지 몰랐다⁠. 첫 달 댓글창에 「⁠선생님⁠」이 처음 달린 날을 희자는 기억했다⁠. 첫 선생님 밑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날도 기억했다⁠. 희자는 돋보기를 벗어 진열대 위에 놓았다⁠.

“⁠니가 먼저 선생님이라 혔구나⁠.⁠”

성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희자는 아들의 눈 밑을 보았다⁠. 거뭇했다⁠. 석 달 치 새벽이 거기 고여 있었다⁠. 희자는 진열대 문을 열고 봄동 겉절이 통을 꺼냈다⁠. 한 달 전에 아들이 짜다고 한 겉절이를 다시 담근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한 잎 집어 아들 입 앞에 내밀었다⁠.

“⁠짜요⁠.⁠”

“⁠짜지⁠?⁠”

“⁠네⁠.⁠”

“⁠그래도 먹어⁠. 새벽에 싸우는 사람은 짜게 먹어야 혀⁠. 땀으로 다 나가⁠.⁠”

성율이 받아먹었다⁠. 씹다가 고개를 숙였다⁠. 희자는 겉절이 통을 아들 앞에 놓아두었다⁠.

“⁠엄마⁠. 나 회사에 휴직계 냈어요⁠. 무급으로 한 달⁠. 오늘 아침에요⁠.⁠”

“⁠뭣허러⁠?⁠”

“⁠엄마 편 할라고요⁠. 지우라고 한 것도⁠, 팔라고 한 것도 내가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이제 안 무서운 거 아니에요⁠. 그래도 엄마 혼자 하게는 안 둘라고요⁠.⁠”

아들 입에서 사투리가 샜다⁠. 화가 났을 때만 새던 말이 오늘은 다른 데서 샜다⁠. 희자는 겉절이 통 뚜껑을 아들 앞으로 밀었다⁠.

“⁠무급이믄 니 월세는 어쩔라고⁠?⁠”

“⁠엄마 집에 살면 월세 안 나가요⁠.⁠”

“⁠그라믄 니가 설거지혀⁠. 한 달 내내⁠.⁠”

*

오춘엽은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 남궁반찬 셔터를 두드렸다⁠. 손에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셔터가 반쯤 올라가자 허리를 숙이고 들어왔고⁠,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고무장갑을 끼고 개수대 앞에 서 있었다⁠.

“⁠아이고⁠, 니가 성율이냐⁠?⁠”

“⁠네⁠. 안녕하세요⁠.⁠”

“⁠니가 월명동아들이여⁠?⁠”

성율이 고무장갑 낀 손으로 머리를 긁으려다 멈췄다⁠. 춘엽은 성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율의 팔뚝을 철썩 때렸다⁠.

“⁠나 니 댓글 팬이여⁠! 우리 며느리가 너 댓글 캡처해서 보여 줬어⁠. 눈을 삶아 드셨어요⁠. 아이고⁠, 그 말 듣고 내가 밥상에서 웃다가 사레들렸어⁠.⁠”

희자가 안쪽에서 나오며 혀를 찼다⁠.

“⁠사레 들릴 말을 웃긴다고 허네⁠.⁠”

“⁠웃기잖여⁠! 희자 선생은 아들 하나는 잘 낳았어⁠.⁠”

춘엽이 쇼핑백을 진열대 위에 쏟았다⁠. 털실로 뜬 위생모 덮개가 열 개 넘게 쏟아졌다⁠. 빨강⁠, 노랑⁠, 연두⁠. 위생모 위에 씌우면 정수리 만두가 뜨개 모자 속에 쏙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동기들 다 하나씩 줄라고 떴어⁠. 내일부터 단체로 쓰고 찍는 것이여⁠. 품앗이 모자⁠.⁠”

“⁠이것은 위생모가 아니고 털모자여⁠. 반찬에 털 들어가⁠.⁠”

“⁠그라믄 찍을 때만 써⁠. 반찬 할 때는 벗고⁠.⁠”

성율이 연두색 하나를 집어 엄마 위생모 위에 씌웠다⁠. 희자가 거울을 보더니 벗지 않았다⁠. 춘엽이 손뼉을 쳤다⁠. 성율이 휴대전화로 엄마를 찍었다⁠. 화면을 가로로 돌리는 손이 한 달 전보다 덜 서툴렀다⁠. 춘엽이 자기도 찍어 달라며 빨간 덮개를 머리에 얹고 엄마 옆에 바짝 붙었다⁠. 둘이 나란히 브이를 했다⁠. 셔터 밑으로 일요일 아침 햇빛이 들어와 털실 보풀 위에서 반짝였다⁠.

*

강현곤은 일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전주 원룸 바닥에서 「⁠월명동아들⁠」의 메시지를 읽었다⁠. 석 달 동안 자기 댓글창에서 새벽마다 싸우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귀찮았고⁠, 나중에는 고마웠다⁠. 월명동아들이 한 번 붙으면 댓글이 오백 개씩 늘었다⁠. 영상을 올린 뒤에 월명동아들이 언제 나타날지 기다린 밤도 있었다⁠.

현곤은 답장을 치기 전에 「⁠K팀장⁠」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월명동 아들이 라이브로 맞짱 뜨자는데요⁠. 가도 돼요⁠?⁠」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가세요⁠. 조회수 좋을 겁니다⁠. 대신 편집자 이야기는 꺼내지 말 것⁠. 회사 이야기도 금지⁠. 빚 이야기로만 가세요⁠. 할머니가 화내는 장면 하나만 건지면 됩니다⁠.⁠」

현곤은 「⁠넵⁠」을 보냈다⁠. 냉장고 위에 엎어 둔 반찬 통을 집어 뒤집었다⁠. 통 바닥에 매직으로 적은 글씨가 있었다⁠. 「⁠남궁반찬⁠. 다 먹고 통은 갖다 주쇼⁠.⁠」 열흘 넘게 엎어 두면서 한 번도 바닥을 본 적이 없었다⁠. 현곤은 통을 들고 한참 앉아 있다가 가방 맨 위에 넣었다⁠. 그리고 월명동아들에게 답장을 쳤다⁠.

*

일요일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어⁠, 남궁성율은 고등학교 때 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월드컵 포스터 속 선수들이 오늘도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벽 너머에서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들숨도 날숨도 길었다⁠.

성율은 「⁠월명동아들⁠」로 뒤집개TV에 메시지를 보냈다⁠. 석 달 동안 댓글로만 싸웠고⁠, 직접 말을 거는 것은 처음이었다⁠.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가게로 오세요⁠. 라이브 켜고⁠. 숨어서 찍지 말고 앞에서⁠.⁠」

보낸 뒤에 숫자 1이 바로 지워졌다⁠. 답장은 오 분 뒤에 왔다⁠. 기다리는 동안 성율은 의자에서 세 번 일어났다 앉았다⁠.

「⁠좋네요⁠. 내일 세 시⁠. 할머니 찍는 시간 맞죠⁠? 할머니도 라이브 켜시라고 하세요⁠. 맞불로 가요⁠. 조회수 반반 나눠 먹읍시다⁠.⁠」

성율은 답장 화면을 들고 엄마 방 문 앞까지 갔다⁠. 문틈으로 코 고는 소리가 고르게 새어 나왔다⁠. 성율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5/8 봄동⁠」 통이 맨 앞에 있었다⁠. 성율은 한 잎을 꺼내 먹고⁠, 짜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짠맛이 가시기 전에 한 잎을 더 먹었다⁠. 냉장고 불빛 속에서 엄마 글씨의 날짜들이 줄을 맞춰 있었다⁠. 내일 날짜가 붙을 통은 아직 없었다⁠. 성율은 마스킹 테이프를 한 조각 뜯어 매직으로 「⁠5/10 맞불⁠」이라고 쓰고 빈 반찬 통 뚜껑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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