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708자)
뒤집개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골목을 다 건너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셀카봉은 내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구독자 십만 축하드려요.”
희자는 남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까이서 보니 서른 중반쯤 되는 얼굴이었다. 야구 모자 챙 밑으로 눈썹이 짙었고, 회색 점퍼 소매 끝이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셀카봉 끝 휴대전화 화면에 희자의 국자가 크게 들어가 있었다. 화면 귀퉁이에 빨간 글씨가 깜박였다. 「LIVE」
“지금 찍는 거여?”
“네, 생방송이에요. 저는 뒤집개TV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뒤집어 보는 채널이요.”
“반찬 가게 앞에서 뒤집개 들고 오믄 쓰간디. 부침개 부치러 왔어?”
화면 아래로 글자가 줄줄이 올라갔다. 「ㅋㅋㅋㅋ 할매 드립 봐」 「뒤집개 형 털리는 각」 남자는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제보가 하나 들어와서요. 선생님 영상에 나오는 고춧가루가 국산이라고 하시는데, 중국산이라는 제보가요. 확인차 왔습니다.”
“확인은 혀로 허는 거여. 눈으로 허는 것이 아녀.”
희자는 국자로 가게를 가리켰다.
“들어와.”
남자가 셀카봉을 든 채 따라 들어왔다. 성율이 유리문 앞에서 비켜 주지 않고 남자를 막았다.
“지난주에 와서 우리 엄마한테 혼자 사시냐고 물은 사람 맞죠?”
“취재죠. 혼자 사시는 어르신 채널이 요즘 반응이 좋거든요.”
“반응?”
“아들이시구나. 화면에 얼굴 나와도 괜찮으세요?”
성율이 손바닥으로 셀카봉 화면을 가렸고, 남자는 셀카봉을 슬쩍 비켜 들었다. 희자가 둘 사이에 접시 세 개를 내려놓았다. 국자 끝으로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씩 덜었다. 왼쪽은 경북 영양에서 받은 태양초, 가운데는 시장 도매상의 수입 고춧가루, 오른쪽은 희자가 진안의 동서한테 받아 빻은 것이었다. 접시 밑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다.
“찍어. 우리 아들도 찍고.”
성율이 멈칫하다가 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화면을 가로로 돌리는 손이 서툴렀다. 희자는 새끼손가락 끝에 왼쪽 고춧가루를 묻혀 혀에 댔다.
“이것이 영양이여. 처음엔 달고, 삼키고 나서 매워. 뒤가 길어.”
가운데 것을 댔다.
“이것은 처음부터 매워. 그라고 끝이 텁텁혀. 입천장에 모래 앉은 것 맹키로. 수입이여. 나쁜 것이 아녀. 값이 싸고, 김치 담그는 집은 많이들 써.”
오른쪽 것을 댔다.
“이것이 우리 가게 것이여. 영양만큼 달진 않고, 수입만큼 맵지도 않어. 껍질이 두꺼워서 씹히는 맛이 있어. 겉절이에는 이것이 맞어.”
“그건 선생님 말씀이고요.”
“그라믄 니가 해 봐.”
남자는 셀카봉을 진열대 위 삼각대 옆에 기대 놓고 새끼손가락에 고춧가루를 묻혔다. 왼쪽 것을 혀에 대더니 눈을 감았고, 가운데 것을 대더니 재채기를 했다. 고춧가루가 진열대 유리에 흩어졌다. 오른쪽 것을 대고는 혀를 내밀고 손부채질을 했다.
“가운데가… 국산이요.”
“땡.”
라이브 화면에 「ㅋㅋㅋㅋㅋ」가 폭포처럼 내려갔다. 희자가 물 한 컵을 건넸다. 남자가 물을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웃는 얼굴이 돌아와 있었다.
“오늘 촬영본은 제 채널 거고요, 편집은 제가 합니다.”
“그려, 니 것은 니가 혀. 우리 아들 것은 우리 아들이 허고.”
희자는 계산대 밑에서 겉절이 한 통을 꺼내 비닐봉지에 담았다. 남자에게 내밀었다.
“가는 길에 먹어. 혀가 싱거워서 그려. 짠 것을 좀 먹어야 간이 서.”
남자가 봉지를 받을지 말지 한 박자 망설였다. 받았다. 셀카봉을 접으며 유리문을 밀고 나가다가, 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뒤돌아보지 않고 손을 한 번 들었다.
*
강현곤은 비응항 방파제 앞에 경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노트북을 무릎에 올렸다. 조수석에는 반찬 가게 할머니가 준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바다 쪽으로 해가 기울었고, 방파제 끝에서 낚시꾼 둘이 같은 자리에 줄을 던졌다.
라이브는 끝났고, 다시 보기 조회수는 이만을 넘었다. 댓글은 반으로 갈렸다. 「뒤집개 형 오늘 혀 털림」 「근데 할매 국자 들고 나오는 거 좀 무섭긴 함」 현곤은 두 번째 댓글에 하트를 눌렀다. 무섭다는 말이 붙는 영상이 오래 돌았다. 대리운전을 하던 다섯 해 동안 배운 것은 술 취한 손님이 무서워하는 말과 웃는 말을 가르는 법이었고, 채널을 열고 두 해 동안 배운 것은 무서운 말이 웃는 말보다 세 배 오래 남는다는 것이었다.
비닐봉지를 열자 액젓 냄새가 차 안에 퍼졌다. 현곤은 젓가락이 없어 손가락으로 봄동 한 잎을 집어 먹었다. 짰다. 짠맛 뒤로 단맛이 천천히 올라왔다. 한 잎을 더 먹었다. 대리운전하던 밤에 편의점 삼각김밥 말고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떴다. 저장된 이름은 「K팀장」이었다.
「현장 소스 좋네요. 맛 시험 부분은 빼 주세요. 국자 들고 건너오는 장면은 앞으로. 금요일 오전 공개.」
현곤은 엄지로 「넵」을 보냈다. 손가락에 묻은 고춧가루를 바지에 닦고 편집 프로그램을 열었다. 맛 시험 장면이 담긴 구간을 끌어다 휴지통에 넣었다. 접시 세 개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봉지 안에는 겉절이가 아직 반쯤 남아 있었다. 현곤은 봉지 입구를 두 번 묶어 조수석 바닥에 내려놓았다.
*
새벽 두 시, 남궁성율은 고등학교 때 쓰던 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벽에는 아홉 살 때 붙인 월드컵 포스터가 누렇게 바래 붙어 있었고, 포스터 속 선수들은 아직도 두 팔을 벌리고 뛰었다. 얇은 벽 너머에서 엄마가 코를 골았다. 들숨은 길고 날숨은 짧았다. 아버지 계실 때는 둘이 번갈아 골아서 이 방까지 화음이 들렸다.
노트북 화면에는 뒤집개TV의 커뮤니티 글이 떠 있었다.
「군산 십만 반찬 할매 현장 검증 편집본 금요일 공개. 할매 국자 들고 돌진하는 장면 있음 ㄷㄷ」
성율은 댓글 칸을 눌렀다. 아이디 칸에 「월명동아들」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석 달 전 엄마 영상에 처음 「할매 손 좀 씻고 해라」라는 댓글이 달린 밤에 만든 이름이었다. 이름을 만든 밤부터 새벽마다 엄마 영상의 댓글창을 돌았다. 틀니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틀니 아니라고 달았고, 위생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위생모 안 보이느냐고 달았다. 답글이 답글을 낳았다. 엄마는 모르는 일이었다.
「고소각. 영상 올리면 끝까지 갑니다. 초상권 동의 안 했습니다.」
일 분도 안 되어 답글이 달렸다.
「월명동아들님 오늘도 출근하셨네요ㅋ 아드님 오늘 화면에 잘 나오시던데. 금요일 기대하세요」
성율은 노트북을 덮었다.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 통마다 엄마 글씨로 날짜가 붙어 있었다. 「4/13 멸치」 「4/14 봄동」 봄동 통을 꺼내 손가락으로 한 잎 집어 먹었다. 한나절 사이에 숨이 죽어 낮보다 덜 짰다. 성율은 냉장고 문을 연 채로 한참 서 있다가 문을 닫았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
금요일 저녁, 차예늘은 엄마 미용실 소파에서 뒤집개TV의 새 영상을 세 번째로 돌려 보고 있었다. 제목은 「십만 반찬 할매, 맛 검증 앞에서 국자 들었다」였다. 첫 장면은 희자가 국자를 들고 골목을 건너오는 모습이었다. 느린 화면에 쿵쿵 울리는 북소리를 깔았다. 맛 시험 장면은 통째로 빠졌고, 남자가 재채기하는 장면도 빠졌다. 대신 희자가 “확인은 혀로 허는 거여”라고 말하는 입만 확대해 세 번 되풀이했다. 자막은 「원산지 질문에 끝까지 답 피함」 조회수는 육십만이었다.
예늘은 편집자의 눈으로 영상을 다시 보았다. 잘 만든 영상이었다. 북소리가 들어가는 자리, 느린 화면을 푸는 자리, 입을 확대하는 박자. 서울 편집실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손이 들어가 있었다. 예늘은 남의 영상에서 제 손버릇을 알아보는 자기 눈이 싫었다.
성율 오빠가 찍은 영상이 노트북에 있었다. 화면이 기울고 손이 흔들렸지만 접시 세 개와 재채기와 「땡」이 다 들어 있었다. 예늘은 두 영상을 나란히 붙인 반박 영상을 한 시간 만에 만들었다. 올리는 단추는 희자 선생님이 누르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예늘은 군산역 앞 빵집 이 층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의 류옥채는 쉰 언저리로 보였다. 짧게 자른 은빛 단발이었고, 회색 재킷 안에 흰 셔츠를 입었고, 손톱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류옥채는 단팥빵을 반으로 갈라 속을 먼저 보고 한 입 먹었다.
“팥을 직접 쑤는 집이네요. 껍질이 씹혀요.”
“네, 여기는 그래요.”
“편집자님 반박 영상 봤어요. 아직 안 올라온 것도요.”
예늘의 손이 컵 손잡이에서 멈췄다.
“어떻게요?”
“아드님이 보내 주셨어요. 저희가 법적으로 쓸 수 있는지 봐 달라고.”
류옥채는 휴대전화를 예늘 쪽으로 돌렸다. 뒤집개TV의 조회수 그래프가 떠 있었다. 사흘 만에 위로 꺾인 선이었다.
“이런 채널이 하나로 안 끝나요. 십만 넘은 어르신 채널에는 여섯 달 안에 이런 게 셋, 넷 붙어요. 가게 앞에 오고, 집 앞에 오고, 그다음엔 자식 회사 앞에 와요. 저는 그걸 열두 해 동안 봤어요. 어머님 혼자서는 못 막으세요. 편집자님도 못 막으시고요.”
“그래서 사신다는 거예요?”
“채널은 저희가 사서 키우고, 어머님은 지금처럼 오후 세 시에 반찬 하시면 돼요. 댓글은 저희 관리팀이 보고, 저런 사람은 저희 법무팀이 상대해요. 매입가는 삼억이에요.”
예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만 났다.
“그리고 편집자님은 저희 편집팀으로 오셨으면 해요. 정직원이고, 서울이고, 첫 달 월급은 입사 전에 드려요. 밀린 석 달 치가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예늘이 고개를 들었다. 류옥채는 남은 단팥빵 반쪽을 예늘 앞으로 밀었다.
“제가 그 회사 대표를 알아요. 받기 어려우실 거예요.”
“선생님은 안 파실 거예요.”
“편집자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간이 안 맞으면 그날은 안 찍으시거든요. 마음에 안 맞으면 안 하세요.”
류옥채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은 짧았고 눈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편집자님이 전해 주세요. 제가 직접 가면 어머님은 문부터 닫으실 거예요. 편집자님이 가져가시면 봉투라도 여실 거고요.”
예늘은 서류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넣고 나서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창밖으로 군산역 광장의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가 같은 자리에 도로 앉았다.
*
토요일 저녁 일곱 시, 남궁반찬 셔터를 반쯤 내린 뒤였다. 희자는 진열대 앞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성율은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주말까지 눌러앉아 가게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늘이 들고 온 서류 봉투는 진열대 유리 위에 놓여 있었다.
“삼 다음에 영이 몇 개라고?”
“여덟 개요, 선생님.”
희자가 삼을 누르고 영을 하나씩 눌렀다. 다섯 번째 영에서 계산기 화면이 꽉 찼다. 희자가 계산기를 귀에 대고 흔들었다.
“이것이 고장 났어. 영이 안 들어가.”
“계산기가 작아서 그래요.”
“삼억이믄 봄동이 몇 포기여?”
“엄마.”
성율의 목소리였다. 희자는 계산기를 내려놓고 아들을 보았다. 성율은 서류 봉투를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처음 듣는 숫자를 들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희자는 혀끝으로 어금니를 한 번 훑었다. 저녁에 먹은 고들빼기의 쓴맛이 아직 남아 있었다.
“예늘아. 사겠다는 사람이 누구여?”
“은결 미디어 이사님이요. 류옥채.”
“그 양반이 직접 와야지.”
예늘이 무슨 뜻이냐는 얼굴을 했다. 희자는 서류 봉투를 열지 않고 손바닥으로 눌러 진열대 가운데로 밀었다.
“반찬도 얼굴 보고 파는디, 채널을 봉투로 사? 데려와. 월요일 오후 세 시. 내 앞에서 말허라 혀.”
성율이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도로 앉았다. 희자는 계산기를 서랍에 넣고, 아들 쪽으로 고들빼기 통을 밀어 주었다. 성율은 통을 받지 않았다. 셔터 밑으로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한 줄 들어와 진열대 유리 위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