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44자)

오후 세 시의 십만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오후 세 시가 되면 월명동 골목의 발소리가 뚝 끊겼다⁠. 점심 반찬을 사 간 사람들은 다 들어갔고⁠, 저녁 반찬을 사러 나올 사람들은 아직 연속극 앞에 있었다⁠. 남궁희자는 이 한 시간을 서른 해 동안 계산대에 턱을 괴고 졸면서 보냈고⁠, 석 달 전부터는 졸지 않았다⁠.

냉장 진열대 위에 손바닥만 한 삼각대를 펴고 휴대전화를 끼웠다⁠. 화면에 흰 위생모가 먼저 들어왔다⁠. 위생모 밑으로 정수리에 둥글게 묶어 올린 머리가 불룩 솟아 있었고⁠, 흰머리가 반쯤 섞인 머리칼 몇 가닥이 귀 옆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볼은 동그랗고 앞치마는 다홍색이었다⁠. 구독자들은 위생모 속에 만두가 하나 들었다고 놀렸고⁠, 희자는 만두 소리가 싫지 않았다⁠.

“⁠돋보기가 어디 갔디야⁠.⁠”

앞치마 주머니를 뒤지고⁠, 계산대 서랍을 열고⁠, 깻잎 통 뚜껑까지 들춰 보았다⁠. 화면 속의 희자도 같이 두리번거렸다⁠. 돋보기는 위생모 이마 위에 얹혀 있었고⁠, 화면이 먼저 알려 주었다⁠.

“⁠아따⁠, 우리 학생들은 봤으믄 말을 혀야지⁠.⁠”

녹화 단추를 아직 안 눌렀으니 말해 줄 학생이 없었다⁠. 희자는 혼자 웃고 단추를 눌렀다⁠.

“⁠자⁠, 우리 학생들⁠, 오늘은 봄동이여⁠. 봄동은 뜯어⁠. 칼 대지 말고 손으로 뜯어야 단물이 안 빠져⁠.⁠”

봄동 한 포기를 도마에 놓고 겉잎부터 한 장씩 떼어 냈다⁠. 노란 속잎이 나올수록 손끝에 닿는 잎이 얇고 차가워졌다⁠. 소금은 뿌리지 않고 소금물에 십 분만 담갔다⁠. 오래 절이면 봄동이 배추 흉내를 낸다는 것이 희자의 말이었다⁠. 양념은 고춧가루에 멸치액젓 두 숟가락⁠, 매실청 한 숟가락⁠, 다진 마늘 조금⁠. 희자는 스테인리스 국자 끝으로 양념을 떠서 혀끝에 댔다⁠. 액젓의 짠맛이 먼저 오고⁠, 매실의 신맛이 뒤를 받치고⁠, 고춧가루의 단내가 마지막에 목으로 넘어갔다⁠.

“⁠간 맞다⁠. 간이 안 맞으믄 우리는 오늘 안 찍어⁠. 알지⁠?⁠”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옆집 미용실 원장이 머리에 파마 롤을 여섯 개 단 채 뛰어 들어왔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희자야⁠, 숫자 봐⁠, 숫자⁠! 구만 구천구백팔십이여⁠!⁠”

“⁠찍는 중이여⁠, 이 사람아⁠.⁠”

“⁠찍는 중이니께 더 봐야지⁠!⁠”

원장이 진열대 너머에서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희자는 이마에서 돋보기를 내려 썼다⁠. 숫자가 구만 구천구백구십으로 바뀌었고⁠, 희자가 봄동에 양념을 끼얹는 사이에 다시 바뀌었다⁠. 십만⁠. 원장이 비명을 질렀고⁠, 비명에 놀란 희자의 손에서 국자가 미끄러져 양념 그릇에 빠졌다⁠. 고춧가루 물이 위생모에 튀었다⁠.

계산대 위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늘봄 평생학습관 시니어 유튜버 학교 3기 단톡방이었다⁠.

「⁠염득갑 님이 이모티콘을 보냈습니다⁠.⁠」

만세 하는 곰이었다⁠. 곰은 한 번 만세를 하고 또 만세를 했다⁠. 희자가 손가락으로 세다가 서른에서 그만두었을 때도 곰은 계속 만세를 했다⁠. 곰이 쉬는 틈에 오춘엽이 털실 뭉치를 굴리는 고양이를 끼워 넣었다⁠. 「⁠아이고 우리 희자 선생 십만이여 십만⁠!⁠!⁠! 오늘 저녁은 희자 선생이 쏘는 걸로⁠~⁠」

“⁠선생은 무슨⁠.⁠”

희자는 그렇게 말하고 댓글창을 내렸다⁠. 「⁠희자 선생님 십만 축하드려요⁠」 「⁠선생님 오늘 간은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봅니다⁠. 봄동 냄새가 화면 너머로 나요⁠」 남편과 가게를 같이 할 때 희자는 아줌마였고⁠, 사장님이었고⁠, 성율 엄마였다⁠. 두 해 전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고 혼자 가게를 열던 아침부터는 그냥 반찬 집이었다⁠.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희자는 위생모에 튄 고춧가루 물을 엄지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가게 구석 텔레비전에서 오후 뉴스가 나왔다⁠. 「⁠50대 이상 동영상 앱 이용자 943만 명⁠… 한 해 사이 24% 늘어⁠」 원장이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저 구백몇십만 가운데 십만이 희자 거라고 떠들었다⁠. 희자는 국자를 건져 행주로 닦았다⁠.

*

남궁성율은 익산역에서 군산 가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노란 형광펜 뚜껑을 이로 물고 있었다⁠. 무릎 위의 종이 묶음은 마흔여섯 장이었다⁠. 엄마 채널의 댓글을 날짜순으로 뽑은 것이었다⁠. 회사 인쇄기 앞에서 마흔여섯 장이 나오는 동안 팀장이 지나가다 「⁠이번 분기 보고서야⁠?⁠」 하고 물었고⁠, 성율은 고객 반응 분석이라고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형광펜을 칠한 줄은 셋이었다⁠.

「⁠할매 틀니 딱딱 소리 ASMR이냐ㅋㅋㅋ⁠」

「⁠이 가게 월명동 미용실 옆 반찬집 맞음⁠? 내일 가 봄⁠」

「⁠혼자 사시나 봐요 남편분은 어디 가셨어요⁠?⁠」

지난주 목요일 밤⁠, 엄마가 전화로 지나가듯 말했다⁠. 낮에 웬 남자가 와서 깻잎을 두 통 사 가면서 이 가게 혼자 하시느냐고⁠, 집도 혼자 사시느냐고 묻더라고⁠. 성율은 목요일 밤을 한숨도 못 자고 새웠다⁠. 두 해 전에도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가 가게 냉장고 앞에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은 것도 목요일 밤이었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세 시간 사이에 모든 일이 끝났다⁠.

버스가 만경강 다리를 건넜다⁠. 성율은 지갑을 열어 안쪽 칸에 꽂힌 명함 한 장을 엄지로 밀었다가 도로 넣었다⁠. 두 주째 들어 있는 명함이었다⁠.

*

희자가 위생모를 새것으로 바꿔 쓰고 있을 때 유리문이 다시 열렸다⁠. 원장이 사 온 롤케이크에 초를 꽂느라 허리를 숙인 참이었다⁠.

“⁠엄마⁠.⁠”

“⁠아이고⁠, 우리 아들⁠. 연락도 없이 뭔 일이여⁠? 회사는⁠?⁠”

성율은 대답 대신 종이 묶음을 진열대 유리 위에 펼쳤다⁠. 마흔여섯 장이 반찬 통 위로 미끄러졌다⁠. 원장이 눈치를 보더니 롤케이크를 들고 미용실로 돌아갔다⁠. 파마 롤 하나가 문턱에 떨어졌다⁠.

“⁠엄마⁠, 오늘 지워요⁠.⁠”

“⁠뭣을⁠?⁠”

“⁠채널이요⁠. 오늘 다 지워요⁠.⁠”

희자는 돋보기를 쓰고 형광펜 칠한 줄을 하나씩 읽었다⁠. 맨 처음 줄의 「⁠ㅋㅋㅋ⁠」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은 감기 걸렸는갑다⁠. 크크크 허고 기침을 허네⁠.⁠”

“⁠웃는 거예요⁠. 엄마 보고 비웃는 거라고요⁠.⁠”

“⁠비웃으믄 비웃으라 혀⁠. 봄동은 안 비웃어⁠.⁠”

“⁠엄마⁠, 주소까지 나와요⁠. 미용실 옆 반찬집이라고⁠. 내일 가 본대요⁠.⁠”

“⁠주소 나온 지가 언젠디⁠. 간판에 다 써 붙였어⁠. 전화번호까지⁠.⁠”

성율이 이마를 짚었다⁠. 희자는 아들의 손을 보았다⁠. 남편 손을 닮아서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서울에서 저 손으로 하루 종일 자판을 두드린다고 했다⁠.

“⁠지난주 그 남자는요⁠?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면서요⁠.⁠”

“⁠깻잎 두 통 사 갔어⁠.⁠”

“⁠깻잎 산 사람은 다 착해요⁠?⁠”

“⁠깻잎 고르는 손을 보믄 알어⁠. 그 양반은 통을 뒤집어서 밑에 깔린 것까지 봤어⁠. 그런 사람은 반찬을 아는 사람이여⁠.⁠”

“⁠엄마는 맛만 보면 다 안다고 그러지⁠.⁠”

“⁠다 알지⁠.⁠”

성율이 종이 한 장을 집어 희자 앞에 들이밀었다⁠. 「⁠혼자 사시나 봐요⁠」 희자는 형광펜 줄 바로 아래 붙은 다른 댓글을 보았다⁠. 「⁠선생님 오늘도 출석입니다⁠」 형광펜이 비켜 간 줄이었다⁠.

“⁠용돈 더 드릴게요⁠. 이거 안 해도 되잖아요⁠. 엄마 얼굴 팔아서 뭐 하게요⁠?⁠”

희자는 국자를 진열대 위에 내려놓았다⁠. 쇠가 유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광고 돈 들어와⁠. 그걸로 이자 내⁠.⁠”

“⁠무슨 이자요⁠?⁠”

“⁠니 아버지 병원비⁠. 가게 냉장고 바꾼 거⁠. 합치믄 사천이백⁠.⁠”

성율의 입이 열린 채 멈췄다⁠. 진열대 냉장고 모터가 웅 하고 돌았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바꾼 냉장고였다⁠.

“⁠왜 말 안 했어요⁠?⁠”

“⁠니가 물어봤냐⁠?⁠”

“⁠그걸 내가 어떻게 물어봐요⁠!⁠”

“⁠그러니께 안 했지⁠.⁠”

성율이 진열대를 한 바퀴 돌아 엄마 앞까지 왔다⁠. 키가 머리 하나는 컸다⁠.

“⁠내가 갚을게요⁠.⁠”

“⁠니 월급으로 서울 월세 내고 남는 것이 있으믄 갚어⁠.⁠”

성율이 대답을 못 했다⁠. 희자는 봄동 겉절이 한 젓가락을 집어 아들 입 앞에 내밀었다⁠. 성율은 고개를 돌렸다가⁠, 한 번 더 내밀자 받아먹었다⁠.

“⁠짜요⁠.⁠”

“⁠니 입이 싱거워진 거여⁠. 서울 물이 싱거워⁠.⁠”

“⁠그래도 오늘 지워요⁠. 비밀번호 나도 알아요⁠.⁠”

“⁠니 생일 아녀⁠. 바꿨어⁠.⁠”

성율이 엄마 휴대전화를 계산대에서 낚아챘다⁠. 희자는 말리지 않고 행주로 진열대 유리를 닦았다⁠. 성율이 아버지 생일을 눌렀다⁠. 틀렸다⁠. 가게 전화번호 뒷자리를 눌렀다⁠. 틀렸다⁠. 엄마 생일을 누르자 화면에 「⁠다섯 번 틀리면 잠깁니다⁠」가 떴다⁠.

“⁠엄마⁠, 뭐로 했어요⁠?⁠”

“⁠알려 주믄 지울 것 아녀⁠.⁠”

“⁠지우려고 묻는 거예요⁠.⁠”

“⁠그러니께 안 알려 주지⁠.⁠”

희자는 아들 손에서 휴대전화를 돌려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성율은 마흔여섯 장을 도로 모아 가방에 넣다가 한 장을 진열대 위에 남겨 두었다⁠. 「⁠혼자 사시나 봐요⁠」가 칠해진 장이었다⁠. 희자는 종이를 반찬 통 밑에 깔지 않고 반으로 접어 계산대 서랍에 넣었다⁠. 서랍 안에는 은행 이자 날짜를 적은 달력 한 장이 접혀 있었다⁠. 매달 이십오 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달력이었다⁠.

*

차예늘은 가게 안쪽 쪽방에서 헤드폰 한쪽을 귀에 걸친 채 편집 화면을 멈춰 두고 있었다⁠. 커튼 하나 너머라 모자의 말소리가 다 들어왔다⁠. 화면에는 국자가 양념 그릇에 빠지는 장면이 멈춰 있었다⁠. 원장의 비명이 터지기 직전의 한 칸이었다⁠. 예늘은 이 장면을 영상 맨 앞에 넣을 생각이었다⁠. 엄마의 비명은 자막으로 덮을 생각이었다⁠.

서울의 영상 편집 회사가 지난겨울 문을 닫았다⁠. 마지막 석 달 월급은 아직 못 받았다⁠. 군산에 내려와 엄마 미용실의 소파에서 두 주를 누워 지냈고⁠, 세 번째 주에 옆집 반찬 가게 사장님이 휴대전화를 들고 와서 이거 좀 이쁘게 붙여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편집비는 반찬이었다⁠. 오늘도 책상 위에 봄동 겉절이 한 통이 올라와 있었다⁠. 예늘은 젓가락으로 한 잎 집어 먹었다⁠. 짜지 않았다⁠. 성율 오빠 입이 싱거워진 것이 맞았다⁠.

휴대전화가 책상 위에서 떨었다⁠. 처음 보는 이름의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은결 미디어 이사 류옥채입니다⁠. 월명동 남궁반찬 채널 편집자님 맞으시죠⁠? 채널 건으로 한번 뵙고 싶습니다⁠. 편집자님께도 따로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은결 미디어는 예늘도 아는 이름이었다⁠. 나이 든 크리에이터 채널만 모아 키우는 서울 회사였고⁠, 편집자 구인 공고가 올라오면 하루 만에 마감된다는 곳이었다⁠. 예늘은 답장 칸을 눌렀다가 닫았다⁠. 지우지도 않았다⁠. 서울의 편집실에서는 모니터 두 대를 썼고⁠, 이 쪽방에서는 노트북 한 대에 반찬 통 하나를 썼다⁠. 노트북 팬이 돌 때마다 봄동의 액젓 냄새가 화면 앞으로 밀려왔다⁠. 예늘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책상 위에 엎어 두었다⁠. 커튼 너머에서 성율이 비밀번호를 하나씩 틀리고 있었다⁠.

*

“⁠엄마⁠.⁠”

성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유리문 쪽으로 몸을 돌린 채였다⁠.

“⁠저 사람이에요⁠.⁠”

골목 건너편 어귀⁠, 문 닫은 철물점 처마 밑에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셀카봉 끝에 휴대전화를 달고⁠, 화면을 남궁반찬 유리문 쪽으로 돌린 채였다⁠. 남자는 숨지도 않았다⁠. 이쪽에서 자기를 보는 것을 알고 오히려 셀카봉을 조금 더 높이 들었다⁠.

“⁠지난주 그 사람 맞죠⁠? 엄마가 말한 거랑 똑같아요⁠. 모자⁠, 회색 점퍼⁠.⁠”

희자가 돋보기를 이마 위로 올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깻잎 통을 뒤집어 밑까지 들여다보던 손님이었다⁠.

“⁠맞네⁠.⁠”

“⁠경찰 부를게요⁠.⁠”

“⁠뭣허러⁠. 반찬 사러 온 손님인디⁠.⁠”

희자는 진열대 위의 국자를 집어 들었다⁠. 성율이 엄마 팔을 잡았다가 놓쳤다⁠. 다홍색 앞치마가 유리문을 밀었고⁠, 문에 달린 종이 한 번 울렸다⁠. 쪽방 커튼이 젖혀졌고⁠, 예늘이 헤드폰을 목에 건 채 고개를 내밀었다⁠. 희자는 국자를 든 채 골목을 건너가고 있었다⁠. 위생모 위에 얹힌 돋보기가 오후 햇빛에 한 번 번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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