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80자)

삼억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류옥채는 월요일 오후 두 시 오십오 분에 남궁반찬 유리문 앞에 도착했다⁠. 홍삼 선물 세트를 든 손을 바꿔 쥐고 유리 너머를 먼저 보았다⁠. 진열대 위에 손바닥만 한 삼각대가 펴져 있었고⁠, 흰 위생모를 쓴 주인이 휴대전화 화면에 대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류옥채는 문을 밀지 않았다⁠. 열두 해 동안 마흔 개 넘는 채널을 샀고⁠, 촬영 중인 사람의 문을 열면 하루치 계약이 날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유리문 너머에서 희자가 손짓을 했다⁠. 들어오라는 손짓이 아니었다⁠. 거기서 기다리라는 손바닥이었다⁠. 류옥채는 골목에 선 채 십오 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미용실 문이 두 번 열렸고⁠, 파마 롤을 단 머리가 두 번 내다보고 들어갔다⁠.

녹화가 끝나자 희자가 유리문을 열었다⁠.

“⁠고들빼기 무치는 중이었어⁠. 들어와요⁠.⁠”

“⁠기다리는 거 괜찮았습니다⁠. 어머님 찍으시는 거 처음 봤어요⁠. 화면으로만 보다가⁠.⁠”

“⁠화면으로 보믄 내가 이뻐 보이제⁠?⁠”

“⁠실물이 더 빠르세요⁠. 손이요⁠.⁠”

희자가 고들빼기 한 젓가락을 종지에 덜어 내밀었다⁠. 류옥채는 홍삼 상자를 계산대 옆에 내려놓고 젓가락을 받았다⁠. 고들빼기는 처음에 썼고⁠, 씹을수록 쓴맛 밑에서 들기름 냄새와 단맛이 올라왔다⁠. 류옥채는 젓가락을 쥔 채 잠깐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국수를 말던 시절⁠, 국수 옆에 늘 올리던 반찬이 고들빼기였다⁠.

“⁠쓴 걸 먼저 주시네요⁠.⁠”

“⁠고들빼기는 쓴 것이 먼저 와야 혀⁠. 단 것이 먼저 오믄 그것은 고들빼기가 아니고 설탕이여⁠.⁠”

류옥채는 가방에서 투명 파일 하나를 꺼내 진열대 유리 위에 올렸다⁠. 서류는 석 장뿐이었다⁠.

“⁠어머님⁠, 숫자부터 말씀드릴게요⁠. 매입가는 삼억입니다⁠. 채널 이름과 지금까지 올리신 영상은 저희 회사로 옮겨지고⁠, 어머님은 두 해 동안 지금처럼 출연해 주시면 됩니다⁠. 출연료는 달마다 따로 드려요⁠. 댓글은 저희 관리팀이 하루 세 번 보고⁠, 뒤집개 같은 사람은 저희 법무팀이 상대합니다⁠. 어머님이 하실 일은 오후 세 시에 반찬 하시는 것뿐이에요⁠.⁠”

류옥채는 파일 밑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이름 없이 지역과 나이만 적힌 종이였다⁠.

“⁠대구에서 떡집 하시던 일흔한 살 어르신이 계셨어요⁠. 구독자 이십만이 넘자 가게 앞에 텐트 치고 자는 사람이 생겼어요⁠. 여수의 예순아홉 살 어르신은 손자 학교 이름이 댓글에 올라오고 나서 채널을 지우셨고요⁠. 두 분 다 저희가 연락드렸을 때는 늦었어요⁠.⁠”

희자는 돋보기를 쓰고 종이를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돋보기를 위생모 위로 올렸다⁠.

“⁠말이 달어⁠.⁠”

“⁠네⁠?⁠”

“⁠이사님 말이 달다고⁠. 단 것은 끝이 써⁠. 고들빼기허고 거꾸로여⁠.⁠”

류옥채가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가게 안쪽 쪽방 커튼이 젖혀졌다⁠.

*

희자는 아들이 쪽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성율은 휴가를 하루 더 냈다고 했고⁠, 점심 먹고 나서 쪽방 책상에서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예늘이 뒤따라 나왔다⁠. 둘 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류옥채가 먼저 몸을 돌렸다⁠.

“⁠성율 씨⁠, 오셨어요⁠.⁠”

희자는 국자를 들어 고들빼기 그릇에 걸쳐 두었다⁠. 손이 할 일이 없어지자 손이 앞치마 주머니로 들어갔다⁠.

“⁠성율아⁠. 니가 이 양반을 어찌 알어⁠?⁠”

성율이 대답하기 전에 류옥채가 말했다⁠.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요⁠, 어머님⁠. 두 주 전에요⁠. 십만 가까운 채널이 오르면 저희는 가족분들께 먼저 연락드려요⁠. 어르신들은 대개 자식 말을 들으시니까요⁠.⁠”

“⁠두 주 전⁠.⁠”

희자가 날짜를 혀 위에서 굴렸다⁠. 두 주 전이면 깻잎 두 통 사 간 남자가 오기 전이었다⁠. 성율이 엄마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엄마⁠, 들어 봐요⁠. 지우는 거보다 이게 나아요⁠. 삼억이면 빚 다 갚고도 남아요⁠. 엄마 얼굴은 회사가 지켜 주고⁠, 저 뒤집개 같은 놈은 법무팀이 막고⁠. 엄마는 하던 거 그대로 하면 되고요⁠.⁠”

“⁠하던 거 그대로 허는디 왜 남의 것이 되는디⁠?⁠”

“⁠이름만 회사로 가는 거예요⁠.⁠”

“⁠이름만⁠?⁠”

희자가 계산대 위 휴대전화를 집어 화면을 켰다⁠. 채널 이름이 떠 있었다⁠. 「⁠월명동 남궁반찬⁠」 석 달 전 예늘이 만들어 준 이름이었고⁠, 남궁은 희자의 성이면서 남편의 성이었다⁠. 남궁끼리 만나 남궁 하나를 낳았다고 시장 사람들이 서른 해를 놀렸다⁠.

“⁠이름이 이것인디⁠, 이름만 간다고⁠?⁠”

성율이 입을 다물었다⁠. 희자는 예늘을 보았다⁠. 예늘은 커튼 자락을 손가락에 감고 있었다⁠.

“⁠예늘이 너도 같은 생각이냐⁠?⁠”

“⁠저는⁠… 선생님이 정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생각이 아니고 대답이여⁠.⁠”

예늘이 커튼 자락을 놓았다⁠. 류옥채가 파일을 덮어 진열대 가운데에 놓았다⁠.

“⁠오늘 정하시라는 거 아니에요⁠. 어머님 같은 분이 하루 만에 정하시면 저는 오히려 걱정합니다⁠. 홍삼은 그냥 두고 갈게요⁠. 아드님 드세요⁠. 요즘 잠을 못 주무신대요⁠.⁠”

류옥채가 나간 뒤 유리문의 종이 한참 흔들렸다⁠. 희자는 홍삼 상자를 계산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이 잠을 못 잔다는 말을⁠, 엄마가 남한테서 들었다⁠.

*

오춘엽은 늘봄 평생학습관 3층 교실 맨 앞자리에서 휴대전화에 입힐 덮개를 뜨고 있었다⁠. 시니어 유튜버 학교 3기 저녁반이었다⁠. 칠판에는 강사가 크게 써 놓은 글씨가 있었다⁠. 「⁠오늘 배울 것 — 라이브 켜기⁠. 겁먹지 마세요⁠. 누르면 켜집니다⁠.⁠」

희자가 십 분 늦게 들어왔다⁠. 위생모는 벗었고⁠, 정수리에 묶은 머리가 그대로 동그랬다⁠. 춘엽은 뜨개바늘을 멈추지 않고 옆자리 가방을 치웠다⁠.

“⁠십만 선생 오셨네⁠. 늦게 오믄 오늘 밥은 희자 선생이 사는 것이여⁠.⁠”

“⁠단톡방에서 곰이 마흔 번 만세허던디⁠, 곰한테 사라 혀⁠.⁠”

뒷줄에서 염득갑이 헛기침을 했다⁠. 예순여섯 살⁠, 조선소에서 서른 해 용접을 하다 조선소가 문을 닫은 해에 해망동에 철물 수리 작업장을 냈다는 사람이었다⁠. 팔뚝에 불똥 자국이 별자리처럼 박혀 있었다⁠.

“⁠마흔 번이 아니고 서른아홉 번이여⁠.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하나는 우는 곰이 나갔어⁠.⁠”

“⁠그려서 마지막에 곰이 울었구나⁠. 나는 십만이 서운헌 줄 알았네⁠.⁠”

교실이 웃었다⁠. 득갑은 웃지 않고 다리를 꼬았다⁠.

“⁠희자 씨⁠, 서울 회사 왔다매⁠. 은결⁠.⁠”

춘엽의 바늘이 멈췄다⁠. 소문은 학습관 엘리베이터보다 빨랐다⁠.

“⁠어찌 알어요⁠?⁠”

“⁠나도 거기다 팔았어⁠. 지난달에⁠. 「⁠철물 고치는 할아버지⁠」 오천 받고⁠.⁠”

교실이 조용해졌다⁠. 춘엽이 몸을 돌렸다⁠.

“⁠득갑 씨⁠, 그런 말을 왜 인자 해⁠?⁠”

“⁠자랑할 일도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니께⁠. 편혀⁠. 댓글도 안 봐도 되고⁠, 찍으라는 날 가서 찍으믄 돼⁠. 우리 집사람 수술비가 거기서 나왔어⁠. 희자 씨도 팔어⁠. 아들이 대기업 다녀도 아들 돈은 아들 돈이여⁠.⁠”

득갑의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작아졌다⁠. 춘엽은 작아지는 끝을 들었다⁠. 편하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희자도 들은 얼굴이었다⁠. 희자는 득갑에게 대꾸하지 않고 손을 들었다⁠.

“⁠강사님⁠. 라이브는 아무 데서나 켜져요⁠? 가게에서도⁠?⁠”

“⁠와이파이만 있으면 화장실에서도 켜집니다⁠, 어머님⁠.⁠”

“⁠화장실은 안 켜⁠.⁠”

교실이 다시 웃었다⁠. 춘엽은 뜨던 덮개를 마저 떴다⁠. 빨간 털실 덮개였다⁠. 다 뜬 덮개를 희자 휴대전화에 씌워 주었다⁠. 휴대전화가 작은 스웨터를 입은 꼴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춘엽은 득갑이 밀크커피 단추를 두 번 누르는 것을 보았다⁠. 한 잔은 희자 앞으로 내밀었다⁠. 희자가 받아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설탕 커피를 설탕 넣어서 마시네⁠.⁠”

“⁠단 것이 좋아⁠. 쓴 것은 조선소에서 평생 먹었어⁠.⁠”

득갑이 휴대전화를 꺼내 자기 채널을 열었다⁠. 아니⁠, 이제 자기 것이 아닌 채널이었다⁠. 맨 위 영상의 썸네일에 득갑의 얼굴이 크게 들어가 있었고⁠, 노란 글씨가 박혀 있었다⁠. 「⁠예순여섯 용접공⁠, 무릎 때문에 일 그만둘 뻔한 사연⁠」

“⁠이 제목도 내가 안 지었어⁠. 무릎은 멀쩡혀⁠. 허리가 아프지⁠.⁠”

춘엽이 끼어들었다⁠.

“⁠그라믄 허리라고 고치라 혀⁠.⁠”

“⁠무릎이 더 잘 나간대⁠. 무릎이⁠.⁠”

득갑이 웃었다⁠. 소리만 웃었다⁠. 희자는 종이컵을 손바닥으로 감싸 쥔 채 썸네일 속 득갑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춘엽은 그런 희자를 오래 보았다⁠. 자판기 불빛 아래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복도 바닥에 나란히 길게 누웠다⁠.

“⁠라이브 켤 때 이거 입혀⁠. 떨어뜨려도 안 깨져⁠.⁠”

*

밤 아홉 시⁠, 남궁성율은 쪽방 커튼 뒤에서 엄마의 등을 보고 있었다⁠.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 안에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휴대전화가 삼각대 위에 있었고⁠, 엄마는 위생모를 다시 쓰고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엄마⁠, 진짜 켜요⁠? 생방송은 지울 수도 없어요⁠.⁠”

“⁠지울 것을 왜 켜⁠.⁠”

화면 귀퉁이에 「⁠LIVE⁠」가 떴다⁠. 들어온 사람 숫자가 열⁠, 백⁠, 천으로 바뀌었다⁠. 「⁠선생님 첫 라이브⁠!⁠!⁠」 「⁠프랑크푸르트 새벽 두 시인데 깼어요⁠」 「⁠뒤집개 영상 보고 왔음⁠. 해명하세요⁠」 성율은 커튼을 쥔 손에 땀이 찼다⁠. 이 시간이면 늘 자기가 노트북 앞에서 저런 줄을 지우고 싸우던 시간이었다⁠.

두 주 전 화요일 점심⁠, 회사 앞 국밥집에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공손한 여자 목소리가 은결 미디어라고 했고⁠, 어머님 채널이 곧 십만을 넘을 거라고 했고⁠, 십만부터가 위험하다고 했다⁠. 십만 넘은 어르신 채널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하나씩 말했다⁠. 성율은 국밥이 식는 줄도 모르고 들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성율이 먼저 물었다⁠. 엄마가 그만두게 할 방법이 있느냐고⁠. 여자 목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했다⁠. 화요일 점심의 국밥은 반도 줄지 않았고⁠, 명함은 다음 날 퀵으로 회사에 왔다⁠.

“⁠우리 학생들⁠, 늦게 와서 미안혀⁠. 오늘은 반찬 없어⁠. 반찬 대신 보여 줄 것이 있어⁠.⁠”

엄마가 휴대전화를 들고 화면을 공유하는 법을 세 번 틀렸다⁠. 세 번째에는 엄마 얼굴이 거꾸로 나왔고⁠, 채팅창이 「⁠ㅋㅋㅋㅋ 선생님 물구나무⁠」로 덮였다⁠. 네 번째에 성율이 찍은 맛 시험 영상이 떴다⁠. 접시 세 개⁠, 재채기⁠, 「⁠땡⁠」 채팅창이 한참 멈췄다가 터졌다⁠.

“⁠우리 아들이 찍은 것이여⁠. 손이 떨려서 화면이 비뚤어⁠. 그래도 거짓말은 안 혀⁠.⁠”

엄마가 화면 앞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라고 하나 더⁠. 서울서 이 채널을 사겠다는 데가 있어⁠. 돈을 많이 준대⁠. 안 팔어⁠. 반찬은 팔어도 이것은 안 팔어⁠.⁠”

성율은 커튼을 놓았다⁠. 채팅창이 빨간 하트로 덮였다⁠. 들어온 사람이 삼천을 넘었다⁠. 라이브가 끝났을 때 구독자는 십이만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삼각대에서 휴대전화를 빼다가 화면을 보고 멈췄다⁠. 커튼 앞의 성율에게도 화면 위로 내려온 문자가 보였다⁠.

「⁠류옥채입니다⁠. 라이브 잘 봤습니다⁠, 어머님⁠. 계약서 초안은 성율 씨께 드렸습니다⁠. 천천히 읽어 보세요⁠.⁠」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눈이 아들 얼굴을 지나 쪽방 의자에 걸쳐 둔 아들의 서류 가방에 가서 멈췄다⁠. 성율은 가방을 집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꺼내 봐⁠.⁠”

엄마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휴대전화를 진열대 위에 엎어 놓았다⁠.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 계산대 밑에서 홍삼 상자의 금박 띠가 깜박이는 불빛을 받아 번쩍였다가 꺼졌다⁠. 성율은 가방 지퍼를 끝까지 열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삼억 ·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