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43자)

열두 해 동안 막타는 누가 쳤나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4월 7일 수요일 오전⁠, 여의도 헌터협회 본부 지하 3층 연구소는 소독약과 새 전선 냄새가 났다⁠. 하얀 벽 앞에 접이식 의자 마흔 개가 놓였고⁠, 맨 앞줄에는 방송사 카메라들이⁠, 뒷줄에는 일본 방송 카메라 한 대가 따로 자리를 잡았다⁠. 「⁠레벨 이전기 시연회⁠」 현수막 아래 은색 장갑 두 짝이 유리 받침을 사이에 두고 놓여 있었다⁠.

현주는 뒷줄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초대받은 자리가 맨 앞줄이었는데 앉지 않았다⁠. 맨 앞줄에는 태호가 앉아 있었다⁠. 지팡이를 무릎에 가로로 얹고⁠,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릴 때마다 안경을 밀어 올렸다⁠.

염기태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보여 드릴 분들은 부자 헌터입니다⁠. 아버님은 A급으로 서른 해를 뛰셨고 다음 달에 은퇴하십니다⁠. 아드님은 C급이고요⁠. 두 분은 열다섯 해 동안 같은 결계 안에서 사냥했습니다⁠.⁠”

흰머리의 노장 헌터와 서른 남짓한 아들이 장갑에 손을 넣었다⁠. 유리 위로 금빛 구슬 두 개가 떠올랐다⁠. 연구원 곽진성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자 아버지의 구슬에서 금빛 실이 풀려 나와 아들의 구슬로 감겨 들었다⁠. 아들의 손등에 새 숫자가 떠올랐다⁠. 「⁠LV⁠.41 · B급⁠」⁠. 아들이 아버지를 끌어안았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질문 있습니다⁠!⁠” 앞줄 기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제 동기가 C급 헌터인데⁠, 저한테도 좀 옮겨 줄 수 있습니까⁠?⁠”

웃음이 터졌고⁠, 기태는 해 보라며 손짓했다⁠. 기자와 동기가 장갑에 손을 넣었다⁠. 구슬은 떠오르지 않았다⁠. 받침 가장자리에 붉은 글씨만 흘렀다⁠.

「⁠공동 사냥 기록 없음 · 옮길 레벨이 없습니다⁠」

“⁠같은 결계 안에서 같이 잡은 것만 옮겨집니다⁠.⁠” 진성이 마이크에 대고 작게 말했다⁠. “⁠나머지는 손을 대도 안 움직여요⁠.⁠”

기자는 동기 어깨를 두드리며 들어갔다⁠. 다음 질문은 뒷줄로 날아왔다⁠.

“⁠기현주 씨⁠! 남편분께 레벨 나눠 주실 겁니까⁠?⁠”

카메라 렌즈들이 한꺼번에 현주를 향했다⁠. 현주는 벽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레벨은 몸이에요⁠. 몸을 반 나눠 주는 사람 봤어요⁠?⁠”

맨 앞줄에서 태호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몸으로 번 월급도 이혼하면 나눠⁠.⁠”

일본 방송 카메라가 두 사람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통역을 데려온 일본 기자가 손을 들었고⁠, 통역이 질문을 옮겼다⁠.

“⁠두 분은 아직 서로 사랑하십니까⁠?⁠”

장내가 술렁였다⁠. 태호가 마이크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사이 기태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건 장치가 못 잽니다⁠.⁠”

일본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현주가 보기에 「⁠못 잰다⁠」보다는 훨씬 긴 문장이었다⁠.

*

시연회가 끝나고 현주는 비상계단 앞에서 기태를 붙잡았다⁠. 기태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있었다⁠.

“⁠남의 이혼을 시연회로 쓰시는 거⁠, 재밌으세요⁠?⁠”

“⁠재미로 하는 일 아닙니다⁠.⁠” 기태는 손수건을 접어 넣었다⁠. “⁠나는 A급 결계사로 마흔 해를 뛰었어요⁠. 짝이던 선배는 S급까지 갔고요⁠. 막타는 늘 선배가 쳤습니다⁠. 은퇴하던 날 선배 손등에는 아흔이 떠 있었고⁠, 내 손등에는 일흔둘이 떠 있었어요⁠. 마흔 해를 같은 결계 안에 있었는데요⁠.⁠”

“⁠그래서 남편을 데려다 회장님 한풀이를 하시는 거예요⁠?⁠”

“⁠한풀이 말고 제도요⁠. 제도는 첫 사례가 있어야 생깁니다⁠. 국회에도 벌써 이야기가 갔어요⁠.⁠” 기태는 엄지와 검지 사이 굳은살을 문질렀다⁠. “⁠그리고 마포 담당은 S급이라는 규정⁠, 내가 만든 거 아닙니다⁠. 세 해 전부터 있던 거예요⁠.⁠”

“⁠세 해 전에 회장님이 회장 되셨잖아요⁠.⁠”

기태가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회장님을 불렀고⁠, 기태는 고개를 까딱하고 내려갔다⁠.

*

오후 두 시⁠, 가사조정실 4⁠. 토마토 타이머 옆에 오늘은 결명자차 대신 보리차가 있었다⁠. 하정임이 돋보기를 내려 썼다⁠.

“⁠오늘은 기여도를 봅니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요⁠. 남편분부터 삼 분⁠.⁠”

태호는 대답 대신 등산 조끼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주머니를 하나씩 열어 탁자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반창고 상자와 진통제가 먼저 나왔고⁠, 박하사탕과 핫팩과 시우의 알림장이 뒤따랐다⁠. 탁자가 약국 진열대처럼 되어 가는 동안 하정임은 돋보기를 고쳐 쓰기만 했다⁠. 마지막 주머니에서 검은 머리 고무줄이 한 줌 쏟아졌다⁠.

“⁠고무줄은 왜 있어요⁠?⁠” 하정임이 물었다⁠.

“⁠현주는 싸울 때마다 머리 끈이 끊어집니다⁠. 포니테일을 너무 세게 묶어서요⁠. 끊어지면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고⁠, 눈을 가리면 막타가 늦어지고⁠, 늦어지면 결계가 한 번 더 맞습니다⁠. 그래서 열두 해 동안 고무줄을 갖고 다녔어요⁠.⁠”

현주는 고무줄 더미를 내려다보았다⁠. 제 머리를 묶고 있는 끈이 오늘 아침 어디서 났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땡⁠. 하정임이 타이머를 돌렸다⁠. “⁠아내분⁠.⁠”

“⁠제가 잡았어요⁠.⁠” 현주는 말했다⁠. “⁠메기도 제가 잡았고⁠, 지네도 제가 잡았고⁠, 인천에서 그 큰 놈도 제가 잡았어요⁠. 앞에서 칼 맞으면서요⁠. 저 사람은 뒤에 있었고요⁠.⁠”

“⁠앞에서 칼을 맞으셨어요⁠?⁠”

“⁠…⁠…결계가 맞았죠⁠.⁠”

“⁠그럼 결계가 맞은 거네요⁠.⁠” 하정임이 수첩에 적었다⁠. “⁠자⁠, 말로는 계속 이렇게 가겠네요⁠. 하나만 해 봅시다⁠. 상대방이 한 일 중에 고마웠던 것 하나씩 말해 보세요⁠. 남편분부터⁠.⁠”

태호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현주는 한 번도 뒤로 물러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 결계가 늘 앞에 있었습니다⁠. 앞에 있는 결계라 깨질 일이 많았지만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하정임이 타이머를 현주 앞으로 밀었다⁠. 타이머가 째깍째깍 돌았다⁠. 현주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창밖의 보랏빛 금을 보았다가 탁자 위 고무줄을 보았다⁠. 이 분이 지났다⁠.

“⁠김밥⁠.⁠”

태호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하정임이 수첩에 받아 적었다⁠. 태호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참치김밥이었어⁠. 당신 단무지 빼고⁠.⁠”

“⁠구체적이네요⁠.⁠” 하정임은 돋보기를 머리 위로 올렸다⁠. “⁠이렇게 합시다⁠. 협회 장치로 사냥하는 동안 누가 무엇을 했는지 잴 수 있다고 들었어요⁠. 기여도는 현장에서 봅시다⁠.⁠”

“⁠좋아요⁠.⁠” 현주는 바로 대답했다⁠. 막타를 세면 끝날 일이었다⁠. “⁠재요⁠. 숫자 나오면 그만 우기는 거예요⁠.⁠”

태호는 잠깐 안경을 벗어 닦았다⁠. 다시 썼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갑니다⁠.⁠” 하정임이 말했다⁠. “⁠조정은 현장 확인이 원칙이에요⁠.⁠”

“⁠균열 안에요⁠?⁠” 태호가 물었다⁠.

“⁠뉴스에서 봤어요⁠. S급이 손 같이 얹어 주면 보조 인원으로 들어간다면서요⁠.⁠”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복도에서 기태가 들어왔다⁠. 처음부터 거기 서서 듣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협회가 생중계하겠습니다⁠.⁠”

“⁠중계는 왜요⁠?⁠” 현주가 일어났다⁠.

“⁠기여도는 국민이 같이 봐야죠⁠. 이 숫자가 법이 될 수도 있는데요⁠.⁠”

“⁠우리 집 이혼이 왜 국민 거예요⁠?⁠”

“⁠S급 이혼이라서요⁠.⁠” 기태가 고개를 숙였다⁠. “⁠토요일 오후 두 시⁠, 마포로 하시죠⁠.⁠”

*

저녁 다섯 시⁠, 망원동 초등학교 정문 앞은 학원 버스와 엄마들로 붐볐다⁠. 태호가 협회 홍보 영상 촬영에 불려 가서⁠, 시우를 데리러 오는 일이 현주에게 넘어왔다⁠. 현주는 세 해 동안 이 정문 앞에 몇 번 서 봤는지 손가락으로 꼽아 보다가 그만두었다⁠.

시우가 가방을 메고 뛰어나왔다⁠. 반에서 키가 작은 편이었고⁠, 가방 옆주머니에는 손때 묻은 『⁠균열 도감⁠』이 꽂혀 있었다⁠. 시우는 엄마 칼자루를 보고 눈이 커졌다⁠.

“⁠엄마 진짜 왔네⁠.⁠”

“⁠진짜 왔지⁠.⁠”

문구점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따라 나왔다⁠. “⁠기현주 헌터님 맞죠⁠? 토요일에 남편분이랑 생방송 하신다면서요⁠? 저 알림 신청했어요⁠!⁠”

“⁠벌써요⁠?⁠”

“⁠우리 동네 사람 다 했을걸요⁠. 마포 메기 덕에 먹고사는 동네라⁠.⁠”

시우는 엄마 손을 잡지 않고 엄마 칼집 끝을 잡고 걸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칼집 끝은 시우 손이 닿는 높이에 있었고⁠, 엄마 손은 늘 칼자루 근처에 있었다⁠.

“⁠엄마 질 것 같아⁠?⁠”

“⁠엄마가 왜 져⁠.⁠”

“⁠협회 중계 화면에는 막타만 떠⁠. 막은 건 안 떠⁠. 아빠 점수는 늘 영이야⁠.⁠” 시우는 도감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근데 장치는 막은 것도 잰대⁠. 아빠가 그랬어⁠.⁠”

현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둑길 위로 보랏빛 금이 보였다⁠. 시우가 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 칠십구 점 오는 반올림하면 팔십이야⁠.⁠”

현주가 걸음을 멈췄다⁠. “⁠누가 반올림해 준대⁠?⁠”

“⁠몰라⁠. 기계가 하겠지⁠.⁠” 시우가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안 해 줘⁠?⁠”

*

아파트 현관 앞에서 태호와 마주쳤다⁠. 태호는 홍보 촬영 때 바른 분이 아직 이마에 남아 있었다⁠. 시우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현주는 문턱을 넘지 않았다⁠.

“⁠들어와서 밥 먹고 가⁠.⁠”

“⁠조정 중이야⁠.⁠”

“⁠조정 중엔 밥도 못 먹어⁠?⁠”

“⁠생중계는 왜 받았어⁠?⁠”

태호는 신발장에 지팡이를 기대 세웠다⁠. 지팡이 끝의 하늘색이 신발장 거울에 비쳤다⁠.

“⁠내가 뒤에서 뭘 하는지⁠, 한 번은 화면에 나와야겠어서⁠.⁠”

현주는 받아칠 말을 찾다가 놓쳤다⁠. 거실에서 시우가 소리쳤다⁠.

“⁠엄마⁠, 토요일에 나 그거 봐도 돼⁠?⁠”

현주는 대답 대신 현관문을 닫아 주었다⁠. 문 너머에서 태호가 시우에게 손부터 씻으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 해 전까지는 현주도 같은 소리를 문 안에서 들었다⁠.

*

밤 아홉 시⁠, 기지 컨테이너 숙소 앞 간이 탁자에 곽진성이 은색 팔찌 두 개를 내려놓았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한강 바람이 찬데도 그랬다⁠.

“⁠토요일에 차실 측정 팔찌입니다⁠. 미리 맞춰 보셔야 해서요⁠.⁠”

현주가 왼쪽 손목에 팔찌를 채우자 작은 화면에 「⁠기여도 0⁠」이 떴다⁠. 팔찌 안쪽이 차가웠다⁠.

“⁠이거 뭘 세요⁠?⁠”

“⁠막타⁠, 막아 낸 피해⁠, 같은 결계 안 사람을 살린 횟수요⁠. 협회 기준표대로 점수를 매깁니다⁠.⁠”

“⁠짐 진 것도 세요⁠?⁠”

진성은 잠깐 말을 고르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게는 안 셉니다⁠.⁠”

“⁠김밥 싼 것도요⁠?⁠”

“⁠…⁠…그것도요⁠.⁠”

현주는 팔찌를 돌려 보았다⁠. 막타 점수가 맨 윗줄에 있었다⁠. 막타라면 열두 해 동안 누구보다 많이 쳤다⁠. 현주는 팔찌를 풀어 진성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연구실장님⁠. 칠십구 점 오는 어떻게 정리돼요⁠?⁠”

진성의 손이 팔찌 위에서 멈췄다⁠.

“⁠소수점 말씀이세요⁠?⁠”

“⁠우리 아들이 반올림하면 팔십이래요⁠.⁠”

“⁠설정은⁠…⁠…⁠.⁠” 진성은 팔찌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정해지면 조정위원님께 서면으로 드릴 거예요⁠.⁠”

진성은 인사를 하고 둑길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두 번⁠, 강 위의 보랏빛 금을 돌아보았다⁠. 컨테이너 옆 천막에서는 기지 보조 헌터들이 컵라면을 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마포 기지에서 일당을 받는 C급 헌터들이었다⁠.

“⁠토요일에 기 헌터님 지면 마포 담당 누가 와⁠?⁠”

“⁠S급 아무나 오겠지⁠. 근데 남편분이 레벨 백 넘으면 남편분이 오는 거 아냐⁠?⁠”

“⁠그럼 우리 일당 그대로네⁠.⁠”

“⁠일당은 메기가 주는 거지 헌터가 주냐⁠.⁠”

천막 안이 와르르 웃었다⁠. 현주는 컨테이너 문에 기대어 휴대전화를 열었다⁠. 협회 중계 채널의 공지가 맨 위에 떠 있었다⁠.

「⁠토요일 오후 두 시 · 이혼 부부 기여도 공략 LIVE · 마포 S급 균열⁠」

공지 아래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알림 신청 31만⁠」⁠. 현주가 보는 사이에 32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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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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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1.06· 2화

    칠십구 점 오는 반올림하면 팔십이라는 시우 말에 웃다가 멈췄어요. 레벨 이전기가 같이 올린 레벨만 옮긴다는데, 그럼 열두 해 동안 막타 친 사람이 누구냐는 싸움이 진짜 이혼 소송보다 무섭네요?

    • 남이랑작가2026.11.06

      시우는 엄마 아빠보다 숫자를 먼저 봐요. 조정위원이 균열 안에서 재 보자고 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도망갈 데가 없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