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85자)

레벨도 재산이니 반 나눠 달라는 남편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2027년 4월 5일 월요일 오전⁠, 서울가정법원 1층 검색대에서 금속 탐지기가 세 번 울었다⁠. 기현주는 두 팔을 벌린 채 기다렸다⁠. 회색 후드 집업 지퍼를 목까지 올렸는데도 안에 입은 검은 경갑이 탐지기를 울렸고⁠, 등에 멘 긴 칼은 칼자루가 어깨 위로 한 뼘이나 솟아 있었다⁠.

“⁠칼은 여기 맡기셔야 합니다⁠.⁠”

법원 경위가 플라스틱 바구니를 내밀었다⁠. 휴대전화와 자동차 열쇠를 담는 바구니였다⁠. 칼은 바구니 길이의 세 배였다⁠.

“⁠마포 균열 담당이에요⁠. 알림 오면 바로 들어가야 돼요⁠.⁠”

“⁠여기는 가정법원입니다⁠.⁠”

“⁠균열이 법원 사정을 봐주진 않거든요⁠.⁠”

경위는 무전기로 위층과 한참 이야기하더니 노란 케이블 타이 하나를 들고 왔다⁠. 칼집과 칼자루를 한데 묶어 놓으면 들여보내 주겠다고 했다⁠. 현주는 순순히 등을 내밀었다⁠. 타이가 딸깍 소리를 내며 조여졌다⁠.

“⁠뽑으시려면 이것부터 끊으셔야 합니다⁠.⁠”

“⁠일 초면 끊어요⁠.⁠”

경위의 얼굴이 굳었다⁠. 현주는 얼른 덧붙였다⁠. “⁠안 끊을게요⁠.⁠”

엘리베이터 거울에 키 크고 다부진 여자가 비쳤다⁠. 높이 묶은 검은 포니테일⁠, 날카로운 눈매⁠, 왼쪽 눈썹 위의 짧은 흉터⁠. 흉터는 여덟 해 전 인천의 균열에서 생겼다⁠. 생긴 날부터 현주는 싸울 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거울 속 칼자루에 감긴 노란 타이가 오늘따라 우스꽝스러웠다⁠.

*

「⁠가사조정실 4⁠」는 생각보다 밝았다⁠. 남향 창으로 한낮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창 너머 북서쪽 하늘에 보랏빛 금 하나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마포 균열이었다⁠. 서울 어디서 올려다봐도 보이는 금이라⁠, 현주는 금 바로 아래에서 세 해를 살았는데도 멀리서 보는 일은 드물었다⁠.

조정위원 하정임은 예순을 훌쩍 넘긴 여자였다⁠. 짧은 은발 파마에 돋보기를 머리 위로 올려 썼고⁠, 책상에는 빨간 토마토 모양의 주방 타이머와 보온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보온병에서 결명자차 냄새가 났다⁠.

“⁠남편분은 칠 분 늦으신대요⁠. 차 한 잔 하고 계세요⁠.⁠”

칠 분이 지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변태호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넓은 어깨에 배가 조금 나온 몸⁠, 부스스한 갈색 파마머리⁠, 계단을 뛰어 올라오느라 김이 서린 둥근 금테 안경⁠. 남색 로브 위에 주머니가 열두 개 달린 등산 조끼를 입었고⁠, 손에 든 지팡이 끝이 하늘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지팡이는 나무라서 검색대가 울지 않았다고 했다⁠. 현주는 칼을 묶이고 올라왔다⁠.

태호는 자리에 앉자마자 조끼 주머니에서 은박지에 싼 김밥 두 줄을 꺼내 하나를 현주 앞에 놓았다⁠.

“⁠아침 안 먹었지⁠.⁠”

“⁠먹었어⁠.⁠”

“⁠뭐 먹었는데⁠?⁠”

현주는 대답하지 않고 김밥을 끌어당겼다⁠. 하정임이 돋보기를 내려 쓰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자⁠, 두 분 다 이혼에는 동의하셨고요⁠. 오늘은 재산 나누는 거하고 시우 양육 이야기를 할 거예요⁠. 한 사람 삼 분씩 말하고⁠, 중간에 끼어들면 타이머를 처음부터 다시 돌립니다⁠.⁠”

토마토 타이머가 드르륵 돌아갔다⁠. 태호가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아파트는 반⁠, 차는 현주가 가져가고⁠, 마석 적금도 반⁠.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태호는 안경을 밀어 올렸다⁠. “⁠레벨도 반 나눠 주세요⁠.⁠”

현주는 김밥을 씹다가 웃음이 터졌다⁠. “⁠레벨을 어떻게 나눠⁠?⁠”

땡⁠. 타이머가 울렸다⁠. 하정임이 타이머를 처음부터 다시 돌렸다⁠.

“⁠아직 남편분 시간입니다⁠.⁠”

태호는 목을 가다듬었다⁠. “⁠결혼할 때 현주는 레벨 59였어요⁠. 지금은 99고요⁠. 열두 해 동안 마흔이 올랐습니다⁠. 그 마흔⁠, 혼자 앞에서 올린 거 아닙니다⁠. 제가 뒤에서 결계 치고⁠, 짐 지고⁠, 붕대 감고⁠, 김밥 싸고⁠…⁠…⁠.⁠”

“⁠김밥은 사 온 거잖아⁠.⁠”

땡⁠.

하정임은 말없이 타이머를 다시 돌렸다⁠. 태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괴물이 죽을 때 금빛 가루가 나오는데⁠, 그게 마지막 한 방 친 사람한테 거의 다 갑니다⁠. 저희 말로 막타요⁠. 막타는 늘 현주가 쳤어요⁠. 같은 결계 안에 있던 저한테는 실낱만큼 오고요⁠. 저는 열두 해 동안 딱 하나 올랐습니다⁠.⁠”

하정임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현주가 고개를 빼고 보니 「⁠일⁠」 한 글자였다⁠.

*

현주의 삼 분이 막 시작됐을 때 노크 소리가 났다⁠. 하정임이 당사자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한국헌터협회 회장 염기태입니다⁠. 당사자들 직장 대표로 왔습니다⁠.⁠”

예순 넘은 남자가 흰 와이셔츠 소매를 걷은 채 들어왔다⁠.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오래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지팡이를 마흔 해 쥔 손이었다⁠. 뒤에 안경 쓴 연구원이 은색 가방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가방 옆면에 「⁠레벨 이전기 · 시제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회장님이 남의 이혼에 왜 오세요⁠?⁠”

“⁠S급 열두 명 가운데 둘이 이혼을 합니다⁠. 남의 일이 될 수가 없죠⁠. 협회 일입니다⁠.⁠” 기태는 의자를 끌어다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말했다⁠. “⁠협회 연구소가 레벨을 옮기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결계 안에서 같이 사냥해 올린 레벨만 옮겨집니다⁠. 두 분이 첫 사례가 돼 주시면⁠, 열두 해 동안 뒤에 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숫자를 받습니다⁠.⁠”

“⁠뒤에 있던 사람이 누군데요⁠?⁠”

기태는 대답 대신 태호를 보았다⁠. 태호는 김밥 은박지를 접고 있었다⁠.

연구원이 가방을 열었다⁠. 은색 장갑 두 짝 사이에 동그란 유리 받침이 있었다⁠. 기태가 보여 드리기만 하겠다고 하자 태호가 먼저 오른손을 장갑에 넣었다⁠. 현주는 팔짱을 끼고 버티다가⁠, 남편이 혼자 숫자를 띄우는 꼴은 못 보겠어서 왼쪽 장갑에 손을 밀어 넣었다⁠.

유리 받침 위로 금빛 구슬 두 개가 떠올랐다⁠. 하나에는 「⁠LV⁠.99⁠」⁠, 하나에는 「⁠LV⁠.81⁠」이 새겨져 있었다⁠. 받침 가장자리에 작은 글씨가 흘렀다⁠.

「⁠혼인 중 공동 사냥으로 오른 레벨 — 기현주 40 · 변태호 1⁠」

하정임이 서랍에서 계산기를 꺼냈다⁠. 버튼 누르는 소리가 또박또박 났다⁠.

“⁠합이 마흔하나⁠. 반이면 이십 점 오⁠. 그럼 기현주 씨는 칠십구 점 오⁠, 변태호 씨는 백 점 오가 되네요⁠.⁠”

“⁠소수점은 장치가 알아서 정리합니다⁠.⁠” 기태가 말했다⁠.

현주는 구슬을 노려보았다⁠. “⁠칠십구면 A급이잖아요⁠.⁠”

“⁠S급은 팔십부터죠⁠. 마포 균열은 S급 담당 균열이고요⁠.⁠”

현주가 장갑 낀 손을 쥐었다⁠. 「⁠LV⁠.99⁠」 구슬이 덜컥 들려 탁자 한가운데로 미끄러졌다⁠. 탁자 위에는 「⁠이혼 조정 신청서⁠」와 두 사람의 도장이 놓여 있었다⁠. 태호가 반사적으로 구슬을 붙잡았고⁠, 현주도 놓지 않았다⁠. 금빛 구슬이 두 사람 손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가운데로 머리카락만 한 금이 쭉 그어졌다⁠.

연구원이 가방을 쾅 닫았다⁠. 구슬이 사라졌다⁠.

“⁠보여 드리기만 한다고 하셨잖아요⁠!⁠” 연구원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기태는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땡⁠. 토마토 타이머가 울렸다⁠. 현주의 삼 분이 끝났다⁠. 한 마디도 못 했다⁠.

*

현주의 휴대전화가 탁자 위에서 떨었다⁠. 화면에 붉은 글자가 떴다⁠.

「⁠균열 알리미 · 마포 S급 균열 활동 증가 · 담당 헌터 즉시 출동⁠」

현주는 손가락으로 케이블 타이를 툭 끊고 일어났다⁠. 같은 순간 태호도 일어나 조끼 지퍼를 올렸다⁠. 열두 해 몸에 밴 동작이었다⁠. 하정임이 문 앞에서 두 사람 등에 대고 소리쳤다⁠.

“⁠다음 기일 수요일 오후 두 시예요⁠! 둘이 그렇게 같이 나가면 조정은 왜 해요⁠?⁠”

태호의 낡은 SUV 뒷자리에는 아직 시우의 카시트가 달려 있었다⁠. 시우는 열한 살이었고 카시트를 졸업한 지 오래였다⁠. 시우가 버리지 말라고 했다고 태호가 말했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아파트 이야기도 레벨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오늘 마포 균열 주변 교통을 통제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망원 한강공원 주차장 자리에는 협회 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컨테이너 숙소와 의무 천막⁠, 중계 천막⁠, 그리고 둑길 아래 관광객들⁠. 사람들은 강 위 하늘에 그어진 보랏빛 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기지 입구의 핫도그 노점 이모가 집게를 흔들었다⁠.

“⁠현주 씨⁠, 오늘 메기 몇 마리⁠?⁠”

“⁠나와 봐야 알아요⁠!⁠”

출입석은 허리 높이의 검은 돌이었다⁠. 현주가 손바닥을 얹자 돌 표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LV⁠.99 · S급 · 출입 허가⁠」⁠. 협회 중계 진행자 봉재만이 카메라 드론을 끌어안고 뛰어왔다⁠.

“⁠헌터님⁠! 중계 들어갑니다⁠! 보조 인원으로 손 좀 얹을게요⁠!⁠”

재만이 현주의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갰다⁠. 돌이 한 번 더 빛났다⁠. 「⁠보조 인원 1⁠」⁠. S급이 손을 같이 얹어 데려가는 사람은 등급을 묻지 않는 돌이었다⁠. 태호는 옆에서 따로 손을 얹었다⁠. 「⁠LV⁠.81 · S급⁠」⁠. 협회는 세 해 전부터 마포를 현주 혼자 맡겼고⁠, 태호가 이 돌에 손을 얹는 것은 세 해 만이었다⁠.

*

균열 안의 하늘은 보랏빛이었고⁠, 머리 위로 한강이 거꾸로 흘렀다⁠. 버스만 한 메기들이 돌비늘을 번뜩이며 공중을 헤엄쳤다⁠. 현주는 칼을 뽑고 앞으로 달렸다⁠. 뒤에서 지팡이가 땅을 찍는 소리가 났고⁠, 하늘색 막이 등 뒤를 덮었다⁠. 결계가 어디에 있는지 현주는 보지 않아도 알았다⁠.

재만의 목소리가 드론 스피커로 울렸다⁠. “⁠아아⁠, 이혼 조정 중인 부부⁠, 오늘은 같은 균열입니다⁠! 아내분 앞에⁠, 남편분 뒤에⁠! 열두 해째 같은 자리입니다⁠!⁠”

재만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댓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조정 중인데 결계 각도 왜 이럼⁠」

「⁠아저씨 지팡이 끝 하늘색 이쁘다⁠」

「⁠이혼하는 거 맞음⁠?⁠」

메기 떼 가운데 가장 큰 놈이 입을 쩍 벌렸다⁠. 목구멍 안쪽에서 보랏빛 물이 소용돌이쳤다⁠. 숨이었다⁠. S급 메기의 숨은 혼자 치는 결계를 뚫었다⁠.

“⁠태호⁠!⁠”

“⁠하나⁠.⁠”

현주는 돌아보지 않고 칼등을 등 뒤로 내밀었다⁠. 칼등이 지팡이 끝에 정확히 닿았다⁠. 열두 해 동안 수천 번 댄 자리였다⁠.

“⁠둘⁠.⁠”

“⁠김밥⁠.⁠”

두 사람이 같은 숨에 내쉬었다⁠. 하늘색 결계 위로 금빛 막이 한 겹 더 씌워졌다⁠. 부부 공동 결계⁠. 보랏빛 물줄기가 막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고⁠, 현주는 물보라를 뚫고 뛰어올라 메기의 아가미 사이에 칼을 박았다⁠.

메기가 몸을 비틀다 멈췄다⁠. 비늘 틈에서 금빛 가루가 쏟아져 현주의 오른손 등으로 빨려 들었다⁠. 가늘고 긴 한 줄기가 뒤로 흘러가 태호의 손에 닿았다⁠. 현주가 주먹을 쥐자 손등에 「⁠LV⁠.99⁠」가 떠올랐다가 꺼졌다⁠.

“⁠막타⁠! 기현주 막타입니다⁠!⁠”

「⁠구령이 김밥이라고⁠?ㅋㅋㅋㅋ⁠」

「⁠이혼한다며⁠」

*

기지로 나오니 오후 해가 기울고 있었다⁠. 현주가 핫도그 노점 앞 의자에 앉자 태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생수와 반창고를 꺼내 내밀었다⁠. 현주는 받아서 뺨의 긁힌 자리에 반창고를 붙였다⁠. 붙이고 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우리 지금 뭐 하는 거야⁠?⁠”

“⁠구령은 당신이 먼저 했어⁠.⁠”

“⁠당신이 불렀잖아⁠.⁠”

태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호가 화면을 현주 앞으로 돌렸다⁠. 시우였다⁠.

「⁠아빠 엄마랑 같이 들어갔어⁠? 알리미에 둘 다 떴어 그리고 오늘 김밥 남았어⁠?⁠」

현주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노점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헌터협회⁠, 레벨 이전기 첫 사례 발표 — S급 부부 기현주·변태호⁠」

이어서 짧은 자막 하나가 더 지나갔다⁠. 「⁠미국·일본 헌터협회도 레벨 이전 기술 주목⁠」⁠. 핫도그 이모가 집게를 멈추고 텔레비전과 현주를 번갈아 보았다⁠.

현주의 휴대전화에 협회 문자가 들어왔다⁠.

「⁠마포 균열 담당 자격 안내 — S급(⁠LV⁠.80 이상⁠) 헌터에 한함⁠」

현주는 주먹을 쥐었다⁠. 손등에 「⁠LV⁠.99⁠」가 떠올랐다⁠. 옆에서 태호가 김밥 남은 한 줄을 시우 몫으로 은박지에 다시 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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