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44자)

이혼 조정, 균열 안에서 생중계로 하겠습니다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4월 10일 토요일 오후 한 시 사십 분⁠, 망원 한강공원 기지 앞 둑길에 사람이 빽빽했다⁠. 협회가 세운 대형 화면에 「⁠이혼 부부 기여도 공략 LIVE⁠」 글자가 번쩍였고⁠, 핫도그 노점 앞에는 「⁠오늘 매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모는 핫도그 대신 응원봉을 팔고 있었다⁠. 앞면에는 「⁠현주⁠」⁠, 뒷면에는 「⁠태호⁠」라고 적힌 응원봉이었다⁠.

“⁠어느 거 하실래요⁠? 반반도 있어요⁠.⁠”

“⁠반반은 뭐예요⁠?⁠”

“⁠가운데 접으면 둘 다 보여요⁠.⁠”

출입석 옆에는 접이식 탁자 하나가 놓였다⁠. 탁자에 붙은 종이에는 하정임의 손글씨로 「⁠가사조정 현장 확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정임은 은발 위에 협회 노란 안전모를 쓰고⁠, 목에는 토마토 타이머를 끈으로 매달았다⁠. 태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하정임 손에 쥐여 주었다⁠.

“⁠안은 바람이 셉니다⁠. 등에 붙이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받으면 제가 남편분 편이 되는 건가요⁠?⁠”

“⁠핫팩은 중립입니다⁠.⁠”

곽진성이 두 사람 손목에 측정 팔찌를 채웠다⁠. 작은 화면에 똑같이 「⁠기여도 0⁠」이 떴다⁠. 현주는 팔찌를 한 번 두드려 보았다⁠. 막타 점수가 맨 윗줄에 있었다⁠.

시우는 핫도그 노점 의자에 앉아 대형 화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호가 이모에게 맡겨 둔 자리였다⁠. 시우 무릎에는 『⁠균열 도감⁠』과 태블릿이 겹쳐 놓여 있었다⁠. 현주가 지나가자 시우가 반반 응원봉을 흔들었다⁠.

현주가 출입석에 손바닥을 얹었다⁠. 「⁠LV⁠.99 · S급 · 출입 허가⁠」⁠. 하정임이 현주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갰다⁠. 손이 작고 따뜻했다⁠. 「⁠보조 인원 1⁠」⁠. 옆에서 태호가 손을 얹자 봉재만이 냉큼 태호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갰다⁠.

“⁠자⁠, 들어가서도 한 사람 삼 분씩입니다⁠.⁠”

*

균열 안으로 들어서자 하정임의 안전모가 바람에 휙 돌아갔다⁠. 머리 위 한강에서 거꾸로 물방울이 떨어졌고⁠, 보랏빛 하늘 아래로 돌비늘 메기 떼가 몰려왔다⁠. 봉재만의 드론 두 대가 윙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아아⁠, 여러분⁠! 지금 조정위원님이 균열 안에 계십니다⁠! 대한민국 가정법원 역사상 처음입니다⁠!⁠”

태호가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하늘색 결계가 둥글게 펼쳐져 태호와 하정임을 감쌌다⁠. 현주는 벌써 결계 앞으로 달려 나가 있었다⁠. 첫 메기의 지느러미를 베고⁠, 두 번째 메기의 아가미에 칼을 박았다⁠. 금빛 가루가 쏟아질 때마다 팔찌 숫자가 뛰었다⁠.

「⁠기현주 31 · 변태호 9⁠」

댓글이 화면 아래를 메웠다⁠.

「⁠역시 국내 3위 클라스⁠」

「⁠아저씨 지팡이만 들고 서 있음⁠?⁠」

「⁠막타가 깡패다⁠」

하정임이 결계 안에서 타이머를 들어 보였다⁠. “⁠아내분⁠, 삼 분 지났어요⁠! 남편분 차례예요⁠!⁠”

“⁠메기한테 말씀하세요⁠!⁠”

메기 하나가 결계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하늘색 막이 출렁였고⁠, 태호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붙들고 버텼다⁠. 안경이 콧등에서 반쯤 흘러내렸다⁠. 팔찌 숫자가 조금씩 올랐다⁠. 「⁠변태호 14⁠」⁠. 막아 낸 피해는 막타보다 느리게 쌓였다⁠.

“⁠남편분⁠, 지금 하실 말씀 있으세요⁠?⁠” 하정임이 물었다⁠.

“⁠지금은 없습니다⁠!⁠” 태호가 이를 악물었다⁠. “⁠나중에 몰아서 하겠습니다⁠!⁠”

*

메기 떼가 갈라지며 우두머리가 내려왔다⁠. 몸길이가 지하철 두 칸만 했고⁠, 등에 박힌 마석이 보랏빛으로 맥박 쳤다⁠. 마석은 괴물 몸에서 나오는 빛나는 돌이었고⁠, 발전소에 넣으면 전기가 되었다⁠. 서울 지하철 몇 노선이 마포 메기의 마석으로 달렸다⁠.

우두머리가 입을 열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태호가 소리쳤다⁠.

“⁠숨 온다⁠! 결계 안으로⁠!⁠”

현주는 결계로 돌아가는 대신 옆으로 뛰었다⁠. 우두머리 옆구리에 붙은 작은 메기 셋이 보였다⁠. 셋이면 막타 셋이었다⁠. 팔찌 숫자가 눈에 밟혔다⁠. 현주는 결계 경계를 넘어 칼을 휘둘렀다⁠. 하나⁠, 둘⁠. 금빛 가루가 손등으로 들어왔다⁠. 「⁠기현주 44⁠」⁠.

보랏빛 물줄기가 쏟아졌다⁠.

현주가 고개를 드는 순간 등 뒤에서 하늘색 막이 늘어나 머리 위를 덮었다⁠. 태호가 결계를 현주가 있는 곳까지 억지로 당겨 늘인 것이었다⁠. 늘어난 막은 얇았다⁠. 물줄기가 막을 때리자 쩡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색 위로 금이 거미줄처럼 번졌다⁠. 결계 안쪽에서 태호의 금테 안경이 날아갔다⁠. 하정임은 안전모를 두 손으로 누르고 쪼그려 앉았다⁠. 토마토 타이머가 하정임 가슴 앞에서 대롱대롱 흔들렸다⁠.

「⁠변태호 41⁠」

「⁠아저씨 안경 날아감ㅠㅠ⁠」

「⁠현주 언니 왜 밖에 있어요⁠」

“⁠현주야⁠!⁠” 태호가 피가 맺힌 이마로 외쳤다⁠. “⁠하나⁠!⁠”

현주는 돌아보지 않고 칼등을 뒤로 내밀었다⁠. 결계가 늘어난 만큼 지팡이 끝도 멀었다⁠. 현주는 세 걸음 뒷걸음질 쳐서 칼등을 지팡이 끝에 댔다⁠. 보지 않고도 닿았다⁠.

“⁠둘⁠.⁠”

“⁠김밥⁠.⁠”

금빛 막이 거미줄 금 위로 덮였다⁠. 두 번째 물줄기가 막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었다⁠. 하정임이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들었다⁠.

“⁠김밥이 구령이에요⁠?⁠”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현주가 뛰어올랐다⁠. 칼이 우두머리 등의 마석 바로 아래를 꿰뚫었다⁠. 거대한 몸이 공중에서 멈췄다가 천천히 기울었고⁠, 금빛 가루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현주의 손등이 뜨거워졌다⁠.

팔찌 숫자가 마지막으로 바뀌었다⁠.

「⁠기현주 48 · 변태호 52⁠」

숫자 아래에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있었다⁠. 「⁠같은 결계 안 사람을 살린 횟수 — 변태호 3⁠」⁠. 현주는 숫자 셋을 하나씩 짚어 보았다⁠. 조정위원⁠, 재만⁠, 그리고 자기였다⁠.

*

기지로 나오자 둑길이 웅성거렸다⁠. 대형 화면에 48 대 52가 크게 떠 있었다⁠. 댓글 창은 이미 다른 말로 채워지고 있었다⁠.

「⁠#막타충 기현주⁠」

「⁠열두 해 존버한 아저씨 울컥⁠」

「⁠현주 언니 뒤 좀 봐요 제발⁠」

「⁠반반 응원봉 접어서 태호만 보이게 들었음⁠」

핫도그 이모가 응원봉 상자를 정리하다가 현주와 눈이 마주쳤다⁠. 이모는 한참 머뭇거리다 말했다⁠.

“⁠현주 씨⁠, 미안한데⁠…⁠… 나 오늘부터 태호 씨도 좀 할게⁠. 반반으로⁠.⁠”

협회 천막 앞에서 기태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현주는 기자들 사이를 밀고 들어갔다⁠. 기태가 손을 들어 기자들을 물렸다⁠.

“⁠기준표 회장님이 만드셨죠⁠?⁠”

“⁠협회 연구소가 만들었습니다⁠.⁠”

“⁠팔찌가 짐 무게는 안 센대요⁠. 막은 건 세면서요⁠.⁠”

“⁠무게까지 셌으면 남편분이 칠십은 나왔을 겁니다⁠.⁠” 기태는 태호가 앉아 있는 의무 천막을 턱으로 가리켰다⁠. 태호는 이마를 꿰매면서 안경 없이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직접 보셨잖아요⁠. 깨진 결계도⁠, 날아간 안경도요⁠.⁠”

현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등 뒤에서 하정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정임은 안전모를 벗어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숫자는 참고만 합니다⁠, 회장님⁠. 조정은 사람이 해요⁠.⁠” 하정임이 현주를 보았다⁠. “⁠그리고 아내분⁠, 오늘 삼 분 발언 세 번 다 안 쓰셨어요⁠. 다음 기일에 몰아서 쓰세요⁠.⁠”

*

의무 천막 안은 소독약 냄새와 컵라면 냄새가 섞여 있었다⁠. 태호는 간이 침대에 걸터앉아 이마에 붙인 거즈를 만지고 있었다⁠. 안경이 없으니 눈이 작아 보였다⁠. 현주는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금테 안경을 꺼내 태호 무릎 위에 놓았다⁠. 균열 안에서 메기 지느러미 사이에 끼어 있던 것을 주워 온 것이었다⁠. 오른쪽 알에 금이 갔고 다리 하나가 덜렁거렸다⁠.

태호가 안경을 쓰고 현주를 올려다보았다⁠. 금 간 알 너머로 한쪽 눈이 두 개로 보였을 텐데 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늘였어⁠.⁠” 현주가 먼저 말했다⁠. “⁠늘이면 얇아지는 거 알면서⁠.⁠”

“⁠당신이 밖에 있었잖아⁠.⁠”

“⁠점수 따려고 나간 거야⁠.⁠”

“⁠알아⁠.⁠” 태호는 안경 다리를 귀에 걸려다 실패했다⁠. “⁠열두 해 봤어⁠. 당신은 막타가 셋 보이면 셋 다 가야 직성이 풀려⁠.⁠”

“⁠그럼 두고 오지 그랬어⁠. 조정위원님만 지키고⁠.⁠”

“⁠조정위원님은 결계 안에 있었고 당신은 밖에 있었어⁠. 늘이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어⁠.⁠” 태호는 덜렁거리는 안경 다리를 붙들고 웃었다⁠. “⁠그리고 당신 두고 왔으면 기여도가 더 나왔겠지⁠. 그것까지 생각할 틈은 없더라⁠.⁠”

현주는 간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천막 밖에서 이모가 반반 응원봉을 접는 소리가 났다⁠. 현주는 태호 손목의 팔찌를 보았다⁠. 「⁠52⁠」⁠.

“⁠이제 반 가져가도 된다 이거지⁠?⁠”

“⁠48 대 52잖아⁠.⁠”

“⁠반은 50 대 50이야⁠. 당신이 2 더 가져갔어⁠.⁠”

태호가 웃다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꿰맨 자리가 당겼다⁠. 현주는 조끼 주머니를 뒤져 진통제를 찾아 태호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어느 주머니에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현주는 진통제를 꺼내고 나서야 알았다⁠.

“⁠네 번째 주머니⁠.⁠” 태호가 말했다⁠. “⁠알고 있었네⁠.⁠”

“⁠열두 해 봤어⁠.⁠”

현주는 일어나서 천막을 나왔다⁠. 밖에서는 재만이 드론을 닦으며 댓글을 읽어 주고 있었다⁠. 해외 시청자들의 댓글을 번역기로 돌린 것이었다⁠.

「⁠한국은 이혼을 원래 이렇게 합니까⁠?⁠」

「⁠저 아내가 뒤를 한 번만 보면 좋겠습니다⁠」

*

저녁 일곱 시⁠, 현주는 시우를 데리고 둑길을 걸었다⁠. 망원동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십 분이었다⁠. 태호는 꿰맨 이마로 협회 인터뷰에 붙잡혀 있었다⁠. 시우는 엄마 칼집 끝을 잡고 걷다가 둑길 가로등 아래에서 멈췄다⁠.

“⁠엄마⁠, 이거 봐⁠.⁠”

시우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 오늘 중계 영상이 멈춰 있었다⁠. 금빛 공동 결계가 올라간 순간이었다⁠. 시우가 화면 위쪽⁠, 균열 안에서 보이는 보랏빛 하늘의 이음매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금 있잖아⁠. 결계 올라가니까 줄었어⁠. 눈곱만큼⁠.⁠”

“⁠메기가 죽어서 그런 거야⁠.⁠”

“⁠아니야⁠. 메기 죽기 전에 줄었어⁠.⁠” 시우는 다른 영상을 열었다⁠. 화면 귀퉁이에 「⁠2024⁠.03⁠.11 · 마포 균열 첫날⁠」이라고 찍혀 있었다⁠. 젊은 현주가 칼을 들고 있었고⁠, 뒤에서 태호가 금빛 결계를 치고 있었다⁠. “⁠세 해 전 첫날도 그랬어⁠. 엄마 아빠 둘 다 금빛 결계 안에 있을 때만 줄어⁠. 아빠 혼자 칠 때는 안 줄어⁠. 엄마 혼자 싸울 때도 안 줄어⁠.⁠”

현주는 영상 속 자기를 보았다⁠. 세 해 전 현주는 지금보다 볼이 통통했고⁠, 머리 끈이 끊어져 머리카락이 눈을 덮고 있었다⁠. 영상 속 태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꺼내 던져 주었다⁠. 현주는 보지도 않고 받아서 머리를 묶었다⁠.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 현주는 기억하지 못했다⁠.

“⁠조정위원 할머니가 김밥이 왜 구령이냐고 물었잖아⁠.⁠” 시우가 말했다⁠. “⁠아까 화면에 나왔어⁠. 엄마 대답 안 했어⁠.⁠”

“⁠나중에 한다고 했어⁠.⁠”

“⁠내가 네 살 때 정한 거잖아⁠. 엄마 아빠 출동할 때 현관에서 하나⁠, 둘 하면 내가 김밥 하고 소리 질렀어⁠. 김밥 사 오라고⁠.⁠” 시우는 영상을 앞으로 돌리며 덧붙였다⁠. “⁠엄마는 한 번도 안 사 왔어⁠. 아빠가 사 왔어⁠.⁠”

영상 끝에서 협회 무전이 짧게 지직거렸다⁠. 「⁠전원 철수⁠. 반복한다⁠, 철수⁠.⁠」

“⁠그때 협회가 철수하라고 해서 나왔어⁠.⁠”

“⁠응⁠. 그다음부터 엄마 아빠 둘이 같이 금빛 결계 친 거⁠, 오늘이 처음이야⁠. 지난 월요일 빼고⁠.⁠” 시우는 태블릿을 끄고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시우 눈에 들어갔다⁠. 태호를 닮은 눈이었다⁠. “⁠엄마⁠. 마포는 엄마 아빠가 같이 들어가야 닫히는 균열이야⁠.⁠”

“⁠협회가 못 닫는 균열이라고 했어⁠.⁠”

“⁠협회 화면에는 막타만 뜨잖아⁠.⁠”

둑길 너머 강 위에서 보랏빛 금이 천천히 숨을 쉬듯 벌어졌다가 오므라들었다⁠. 현주는 처음으로 금이 숨을 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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