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66자) · 12월 7일~10일

반출 금지

십이 년 전 내가 보낸 고백이 반송돼 돌아왔다 · 유하람

월요일 아침 열 시에 은비가 선반 앞에 서 있었다. 퇴근 준비를 마친 차림으로.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고 손에 봉투 세 통을 들고.

“선우 씨. 이거 세 개 다 은평이에요. 저 은평 살아요. 가는 길에요.”

“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가는 길로 만들면 가는 길이죠.”

은비는 그렇게 말하고 봉투를 패딩 안주머니에 넣었다. 셋 다 한꺼번에. 그 사람 주머니는 그것을 다 넣고도 남았다. 젊은 사람의 패딩은 주머니가 크다. 선우는 말리지 않았다. 말릴 말이 있었다. 근무 외라는 말, 국 업무가 아니라는 말, 센터장 말.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은비가 든 봉투 셋의 부전지를 강 선배가 떼는 것을 봤다. 노란 종이 셋이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삼십 년 동안 떼지 않은 것을 그 사람은 이번 주에 넷 뗐다.

오 주임이 그 옆을 지나갔다. 지나가다가 멈췄다.

“은평이면 걸어서 얼마나 돼.”

“여기서요? 세 시간이요.”

“나 같이 가.”

“주임님 집 반대쪽이잖아요.”

“운동이야. 배달 아니고. 팔 킬로.”

오 주임은 봉투를 두 통 골랐다. 은평이 아니라 서대문이었다. 은평 가는 길에 있는 서대문. 그 사람은 그것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달걀을 꺼내서 먹으면서 은비와 같이 나갔다. 정문으로. 야간조가 정문으로 나가는 것을 선우는 십이 년 동안 처음 봤다. 다들 지하철이 가까운 뒷문으로 나갔다.

일곱 통.

그 숫자를 만든 것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이 선우한테는 낯선 일이었다. 십이 년 동안 그의 숫자는 자기 손이 옮긴 바구니 수였다. 이천사백. 이천이백. 남의 손이 보탠 숫자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열 시에 돌아온 사람들이 그 숫자를 만들었다. 은비 셋, 오 주임 둘, 선우 하나, 그리고 목요일의 박순례 할머니 것 하나. 은비 봉투 가운데 하나가 은평 미용실이었다. 1999년. 미용실은 아직 있었고 주인이 바뀌어 있었는데, 새 주인이 옛 주인 조카였다. 조카가 받았다. 은비는 그 조카가 봉투를 받으면서 파마 롤을 손에 든 채였다고 했다. 한 손에 롤, 한 손에 봉투. 그것을 말하는 은비 얼굴이 이 방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입이 빠른 사람의 입이 느려져 있었다.

오 주임은 서대문 두 통을 다 못 줬다. 한 곳은 주소가 없어졌고 옆집이 몰랐다. 한 곳은 교회였다. 1996년 편지를 교회 사무실에 주니 목사가 바뀌어서 모른다고 했다. 오 주임은 그것을 다시 가지고 왔다. 봉투 두 통이 선반으로 돌아갔다. 강 선배가 부전지를 다시 붙였다. 뗀 것을 다시 붙일 때 그 사람 손이 느렸다. 붙이는 것이 떼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걸어서 다섯 시간이야.”

오 주임이 말했다.

“일 킬로 빠졌어.”

그것이 그 사람이 그날 한 말의 전부였다.

화요일에 선우는 성북으로 갔다. 1998년. 받는 사람은 세탁소였다. 정릉 골목. 주소는 있었고 세탁소는 없었다. 그 자리에 무인 사진관이 있었다. 유리문 안에 의자 하나와 조명 둘. 사람은 없었다. 그는 강 선배 말대로 없어진 자리에 섰다. 서서 사진관 유리에 비친 자기를 봤다. 조끼, 명찰, 봉투를 든 두 손. 삼 분쯤 그렇게 서 있으니 옆 쌀집에서 사람이 나왔다.

“뭐 찾아요?”

“여기 세탁소요. 삼십 년 전에.”

“아, 김 씨네. 그 집 아들이 저 위에서 세탁소 해요. 이름 같아요. 골목 끝에서 왼쪽.”

골목 끝에서 왼쪽에 세탁소가 있었다. 같은 이름. 아들은 쉰쯤이었고 다리미를 들고 있었다. 봉투를 보고, 보내는 사람을 보고, 다리미를 내려놓았다. 어머니 글씨라고 했다. 시골에서 서울 온 아들 세탁소로 부친 편지였고, 그때 아버지가 급하게 가게를 옮겨서 못 받은 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 다음 해에 갔다고 했다.

“이게 마지막 편지네.”

아들은 봉투를 다리미판 위에 놓았다. 뜯지 않았다. 손님 옷 위에. 그러고는 다리미를 다시 들었다.

“이따 밤에 읽을게요. 지금 읽으면 일을 못 해서.”

선우는 그 세탁소를 나오면서 봉투를 놓은 자리를 생각했다. 다리미판 위. 뜨거운 것 옆에. 그 사람은 그것을 밤까지 거기 둘 것이다. 뜯지 않은 채로. 그러면 그 종이는 밤까지 무거운 채로 있을 것이다. 무거운 것을 옆에 두고 일하는 법을 그 사람도 아는 것이다.

수요일에 선우는 서초로 갔다. 서울 편지 백 통 가운데 강남 쪽은 열두 통이었고 그 가운데 제일 오래된 것. 1995년. 받는 사람 남자. 보내는 사람 여자. 봉투 뒷면에 같은 성이 두 번 있었다. 부부였거나 부부였던 사람. 주소는 아파트였고 아파트는 그대로 있었다. 삼십 년 된 아파트는 재건축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복도식. 십일 층.

초인종을 누르니 안에서 바로 열렸다. 기다리던 것처럼. 예순쯤 된 남자였다. 러닝셔츠 위에 조끼. 문을 연 채로 선우 명찰을 봤다.

“뭡니까?”

“우체국입니다. 배달이 늦은 것이 있어서.”

선우는 봉투를 내밀었다. 두 손으로. 남자는 받지 않았다. 봉투 앞면을 봤다. 보내는 사람 이름을 봤다. 얼굴이 열리지 않았다. 닫혔다. 박순례 할머니와 반대였다.

“1995년.”

“네.”

“이 사람이 나한테 편지를 썼다고.”

“네. 배달이 안 되고 돌아와서 저희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보관.”

남자는 그 말을 씹는 것처럼 말했다.

“삼십 년을 보관했다. 우체국이.”

“…네.”

“그때 왔으면 뭐가 달라졌겠지. 지금 오면 뭐가 달라지나. 그 사람 죽었어. 십 년 전에. 그 전에 우리는 헤어졌고. 헤어질 때 이 사람이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안 들었어. 그게 이건가 보네.”

남자는 봉투를 봤다.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안 받아.”

“……”

“안 받는다고. 삼십 년 전에 안 온 게 지금 와서 뭐 하자는 거야. 내가 그때 안 들은 거 지금 들으라고? 그 사람 없는데? 없는 사람 말을 내가 왜 들어.”

선우는 봉투를 든 채 서 있었다. 복도식 아파트 십일 층 복도는 바람이 통했다. 바람이 봉투를 흔들었다. 종이 한 장 무게. 그것도 흔들렸다.

“받으시든 안 받으시든 이건 선생님 것입니다.”

“내 거 아니야. 내 거였으면 그때 왔어야지.”

남자는 문을 닫았다. 세게 닫지 않았다. 세게 닫으면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마음이 없는 것처럼 닫았다. 선우는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 십일 층 복도 끝 창으로 삼십 년 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나무들이 건물보다 높았다.

그는 봉투를 조끼에 넣었다. 자기 것 옆에. 두 장 무게. 오랜만이었다.

그날 밤 열 시. 반송함이 아니라 선반에 그 봉투를 도로 꽂았다. 강 선배가 부전지를 붙였다.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빨리.

“안 받는 사람도 있어.”

“……”

“삼십 년 동안 그런 사람 여덟 명 봤어. 내가 직접 간 게 아니라 편지가 두 번 돌아온 거. 수취 거절 도장. 그건 따로 꽂아 뒀어. 넷째 단 왼쪽. 그건 그 사람들 거니까 나는 안 태워.”

“……”

“그 사람 안 받은 게 아니야. 못 받은 거야. 받으면 그때 안 들은 게 지금 들리니까.”

목요일 새벽 세 시에 센터장이 내려왔다. 야간에, 목도리를 두른 채로, 손에 종이를 들고. 이번에는 종이가 야간조 전원 것이었다. 여덟 장. 컨베이어가 돌고 있었고 센터장은 그것을 끄지 않았다. 기계 소리 위로 말했다.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서초구 거주자. 우체국 직원이 근무 외 시간에 삼십 년 전 개인 편지를 들고 집에 찾아와 수령을 강요했다. 개인정보 침해로 본부 감사실에 넣겠다고 합니다.”

선우 손이 멈췄다. 이번에는 강 선배 손이 안 멈췄다. 그 사람은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바구니를 옮겼다.

“오늘부로 근무 외 미배달 우편물 반출을 금합니다. 이 방 밖으로 봉투 한 통이라도 나가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봅니다. 이건 제 규정이 아니라 법입니다.”

오 주임이 앞으로 나왔다. 달걀 없이.

“센터장님. 이번 주에 서른여덟 통 나갔습니다. 서른다섯은 받았습니다. 둘은 주소가 없어졌고 하나가 거절이고요. 서른다섯 명이 삼십 년 만에 편지를 받았는데 한 명 때문에 나머지를 태웁니까?”

“서른다섯 명이 받았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오 주임님 말로만요. 서초 분은 문서로 왔습니다. 문서가 남는 쪽이 이깁니다. 그게 이 조직입니다.”

“그럼 저희도 문서로 남기겠습니다.”

은비였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받은 분들 사진 찍었어요. 서른다섯 명 다요. 봉투 들고. 동의 받고요.”

센터장이 은비를 봤다. 은비는 눈을 안 피했다. 입이 빠른 사람은 눈도 빠르다.

“그 사진이 또 개인정보입니다. 고은비 씨.”

은비 입이 닫혔다.

선우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손이 비었다.

“센터장님. 서초 분 편지는 선반에 도로 있습니다. 반출이 아닙니다. 배달을 시도했고 거절돼서 돌아온 겁니다. 규정에 있는 절차입니다.”

“배달은 배달원이 합니다. 분류 직원이 하는 건 규정에 없습니다.”

“그럼 배달원한테 넘기겠습니다.”

“삼십 년 전 주소를요. 어느 배달원이 받습니까?”

선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었다. 그 차이를 그는 알았다. 센터장도 아는 얼굴이었다.

“선우 씨. 열심인 건 압니다. 그런데 열심이 규정을 이기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저는 봤습니다. 오 년 전에요.”

그 사람은 거기서 말을 끊었다. 끊은 자리에 뭔가가 있었다. 선우는 그것을 들었는데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안다.

센터장은 종이 여덟 장을 오 주임한테 주고 올라갔다. 계단 문이 닫히고 컨베이어 소리만 남았다. 선우는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반출 금지. 위반 시. 그 아래 서명란. 그는 서명하지 않았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 종이 여덟 장이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서른여덟 통이 나갔고 서른다섯이 받았고 셋이 돌아왔다. 선반에 삼백칠십육 통. 삼십일일까지 스무 날.

여섯 시 반에 강 선배가 커피를 두 잔 뽑았다. 선우는 받았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삼십 년 동안 반출 금지 공문을 세 번 받았다는 것을 선우는 나중에 은비한테서 들었다. 세 번 다 서명하지 않았다고.

첫차가 지나갔다. 여섯 시 사십 분. 선우는 뒷계단에 앉아 있었다. 조끼 안주머니에 봉투 하나. 한 장. 이번 주에 그 봉투가 무거운 것을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삼십일일까지 스무 날, 이월까지 두 달. 어느 쪽이 먼저 오는지 그는 세지 않았다. 세면 하기 싫어질 것 같아서였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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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06.10· 5화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 유하람작가2026.06.11

      찾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반송된 편지」도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 겨울차2026.06.11

      이 댓글 보고 다시 읽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