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66자) · 12월 15일

참고인

반송된 편지 · 유하람

백오십 통.

십이월 십오일 화요일 아침 아홉 시, 선반에서 나간 봉투가 그 숫자가 됐다. 반출 금지 공문이 내려온 뒤로 닷새. 그 닷새 동안 야간조 여덟 사람은 서명하지 않은 종이를 탁자에 둔 채로 아침마다 정문으로 나갔다. 오 주임은 삼 킬로가 빠졌다. 은비는 은평에서 마포까지 걸어서 가는 길을 셋 만들었다. 강 선배는 나가지 않았다. 그 사람은 부전지를 뗐다. 백사십 장. 떼는 손이 처음보다 빨라졌다.

백오십에서 백사십삼이 받았다. 일곱이 돌아왔다. 거절 둘, 주소 없음 다섯. 넷째 단 왼쪽에 거절이 둘 늘었다. 강 선배는 그 자리를 손으로 한 번 쓸었다.

백오십 가운데 하나는 토요일 종로였다. 선우가 갔다. 1996년. 보내는 사람 주소가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이었고 받는 사람은 종로 익선동. 한옥이 남아 있는 골목. 문을 두드리니 일흔 넘은 부부가 같이 나왔다. 남편이 봉투를 봤다. 보내는 사람 칸의 이름이 자기 이름이었다.

“내가 이걸 썼다고?”

“1996년 십일월입니다.”

“담맘에서? 내가?”

아내가 옆에서 봉투를 뺏었다. 뺏어서 뜯었다. 옆면으로. 읽는 동안 남편은 자기가 삼십 년 전에 뭘 썼는지 몰라서 아내 얼굴만 봤다. 아내는 다 읽고 나서 남편 등을 한 대 쳤다. 세게. 그러고는 봉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대문 앞에서 선우한테 물었다.

“뭐라고 썼답니까?”

“저는 모릅니다.”

“맞은 걸 보면 좋은 말인가 본데.”

선우는 그 집을 나와서 골목에 잠깐 서 있었다. 웃을 자리였다. 웃지 않았는데 입이 조금 움직였다. 십이 년 동안 안 움직인 데가 움직이는 것은 아픈 일이다.

아홉 시 반에 오 주임이 선우를 불렀다. 달걀 없이.

“열한 시에 회의실. 감사실에서 사람 와. 강 선배랑 선우 씨. 참고인이래.”

“참고인이면 뭘 합니까?”

“말을 해. 물으면.”

선우는 열 시에 퇴근하지 않았다. 야간조 가운데 남은 것은 셋이었다. 강 선배, 선우, 그리고 은비. 은비는 참고인이 아닌데 안 갔다. 복도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사진 서른다섯 장. 그 뒤로 찍은 것까지 백 장 넘게. 은비는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복도에서 은비가 선우를 올려다봤다.

“선우 씨. 참고인이 뭐예요?”

“말하는 사람이요.”

“선우 씨가요?”

은비는 그 말을 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입을 다물었다. 선우는 화내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이 방에서 십이 년 동안 제일 말이 없던 사람이 오늘 말을 하러 올라간다. 은비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화면이 탁자에 닿게. 사진이 안 보이게. 그것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응원이었다.

회의실은 삼 층에 있었다. 야간조가 삼 층에 올라가는 일은 연말 회식 때뿐이었다. 창이 있는 방. 이 건물에서 두 번째 창이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아침 햇빛이 물에 닿아 있었다. 선우는 그것을 오래 보지 않았다. 낮에 이 건물 안에서 강을 보는 것이 이상했다.

긴 탁자 한쪽에 센터장이 앉아 있었다. 목도리 없이. 그 옆에 여자 하나. 마흔쯤. 검은 정장, 서류철 둘, 볼펜 하나. 서류철 하나는 두껍고 하나는 얇았다. 두꺼운 쪽이 사백열두 통의 목록이라는 것을 선우는 앉기 전에 알았다. 종이 무게는 앉기 전에도 보인다.

“우정사업본부 감사담당관실 임지현입니다.”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났다. 컨베이어 소리와 비슷했다. 멈추지 않고 일정하게 가는 소리.

“강태만 님. 선우 님. 앉으세요.”

강 선배는 앉았다. 선우도 앉았다. 탁자 건너편. 임지현은 두꺼운 서류철을 열었다.

“미배달 우편물 임의 보관 사백십이 건. 최초 보관 1994년 삼월. 최근 보관 작년 십일월. 삼십 년입니다. 규정 십사조는 삼 년입니다. 이건 확인된 사실이고 다툴 것이 없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강 선배였다.

“그리고 이달 삼일부터 어제까지 그 가운데 백오십 건이 근무 외 시간에 국 밖으로 반출됐고, 백사십삼 건이 수취인에게 전달됐고, 일곱 건이 회수됐습니다. 이 가운데 한 건이 민원. 이것도 맞습니까?”

“맞습니다.”

이번에는 선우였다. 강 선배가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임지현 볼펜이 멈췄다.

“서초 건. 수취인이 거절했는데 봉투를 문 앞에서 계속 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강요로 느꼈답니다. 맞습니까?”

“들고 있었습니다. 강요는 안 했습니다.”

“그 차이를 수취인이 압니까?”

“……모릅니다.”

“그러면 그 차이는 없는 겁니다. 감사에서는요.”

임지현은 그것을 적었다. 적는 손이 빠르지 않았다. 볼펜 끝이 종이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선우는 그 소리로 그 사람이 왼손잡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아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다.

“반출을 누가 결정했습니까?”

“제가요.”

“강태만 님이 아니라.”

“강 선배는 보관만 했습니다. 꺼낸 건 접니다. 처음 한 통도 제가 뽑았고, 야간조에 말한 것도 접니다. 서초도 제가 갔습니다.”

임지현이 선우를 봤다. 처음으로 서류가 아니라 사람을 봤다.

“선우 님. 참고인으로 부른 겁니다. 지금 말씀하시면 참고인이 아니라 대상자가 됩니다. 아십니까?”

“압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반출을 누가 결정했습니까?”

“제가요.”

옆에서 강 선배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컵을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가 아니라 손이 나무에 닿는 소리.

“아니야. 내 거야.”

“선배님.”

“삼십 년 동안 꽂아 둔 게 나야. 꽂아 둔 사람이 안 꺼낼 거면 왜 꽂아 둬. 꺼내려고 꽂아 둔 거야. 이 사람은 내가 못 한 걸 대신 한 거고. 그러니까 대상자는 나 하나로 하쇼. 열엿새 남았는데 이 사람은 이십칠 년 남았어.”

임지현 볼펜이 두 번 움직였다. 한 번은 강태만 줄에, 한 번은 선우 줄에. 그 사람은 어느 쪽도 지우지 않았다.

“두 분 다 적었습니다. 누가 먼저인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정하는 건 사실뿐입니다.”

센터장이 그때 처음 입을 열었다.

“사무관님. 저 선반은 삼십일일에 소각입니다. 이미 공고 나갔고 업체 계약 됐습니다. 남은 이백육십팔 건이 그날까지 있는 겁니다. 그 전에 또 반출이 있으면 저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야간조가 서명을 안 합니다.”

“그래서 봉인합니다.”

임지현이 얇은 서류철을 열었다. 종이 한 장. 붉은 관인.

“오늘 열두 시부로 미배달 선반은 감사 증거물로 봉인합니다. 봉인 테이프 뜯으면 그건 더 이상 우편 규정이 아니라 감사 방해입니다. 삼십일일 소각 절차는 감사실 입회하에 진행합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습니다.”

선우는 창을 봤다. 강이 있었다. 열두 시까지 두 시간 반. 이백육십팔 통. 두 시간 반에 되는 숫자가 아니었다.

“사무관님.”

“말씀하세요.”

“백사십삼 명이 받았습니다. 삼십 년 만에요. 그 사람들한테 그 편지가 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임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볼펜을 내려놓았다.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됩니다. 제가 알면 그건 제가 남의 편지를 읽은 겁니다. 선우 님은 백사십삼 명 얼굴을 보셨죠. 저는 못 봅니다. 그게 제 일입니다. 얼굴을 안 보는 게요. 얼굴을 보기 시작하면 규정이 얼굴마다 달라집니다. 그러면 백사십삼 명이 아니라 그다음 사람이 다칩니다.”

“……”

“그리고 하나 더. 고은비 님이 찍었다는 사진. 그거 오늘 안에 지우게 하세요. 그건 명백히 위반입니다. 명단은 남기셔도 됩니다. 이름과 날짜만. 그건 배달 기록이니까요.”

명단은 남기셔도 됩니다. 선우는 그 말을 들었다. 왜 남기라고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 규정에 없는 말을 한 자리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아직 몰랐다.

회의는 사십 분이었다. 끝에 임지현이 서류철 둘을 포개서 일어섰다. 두꺼운 것 위에 얇은 것. 문 앞에서 그 사람이 돌아섰다.

“강태만 님. 삼십 년 동안 목록을 손으로 쓰셨죠. 봉투마다 날짜, 보낸 곳, 사유.”

“썼습니다.”

“그 공책, 봉인 안에 넣지 마세요. 그건 우편물이 아니니까요.”

그러고 나갔다. 센터장이 뒤따라 나갔다. 나가면서 선우를 한 번 봤다. 그 얼굴에 뭐가 있었는데 선우는 읽지 못했다. 회의실에 둘이 남았다. 강이 창 밖에 있었다.

“왜 그랬냐.”

강 선배가 물었다.

“뭘요.”

“제가요, 그거.”

선우는 창을 봤다.

“십이 년 동안 제가요, 라고 말한 적이 없어서요.”

강 선배가 웃었다. 소리 없이. 이 사람이 웃는 것을 선우는 처음 봤다. 삼십 년 웃지 않은 사람이 웃으면 얼굴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된다.

“그 편지 마지막 줄. 답장 안 해도 돼. 그거 네가 쓴 거지.”

“…어떻게 아세요.”

“안 읽었어. 근데 너 같은 놈이 쓸 줄이잖아. 십이 년 봤는데 그걸 모르냐.”

열두 시에 감사실 직원 둘이 내려와서 선반에 테이프를 둘렀다. 젊은 직원 둘. 테이프를 두르는 손이 서툴렀다. 한 사람이 테이프를 잡고 한 사람이 당기는데, 당기는 쪽이 세게 당겨서 첫 줄이 비뚤어졌다. 다시 뗐다. 떼는 소리가 방에 울렸다. 컨베이어가 꺼진 낮의 분류실은 소리가 크다. 붉은 테이프. 가로로 세 번, 세로로 두 번. 야간조는 이미 퇴근했고 남은 것은 강 선배와 선우와 은비였다. 은비는 복도에서 휴대폰 사진을 지우고 있었다. 한 장씩. 백 장 넘는 것을 한꺼번에 지울 수 있는데 한 장씩 지웠다. 지우기 전에 한 번씩 봤다.

테이프가 다 둘러졌다. 이백육십팔 통이 붉은 것 안에 있었다. 강 선배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삼십 년 동안 매일 밤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뒤. 테이프 때문에 그만큼 물러선 것이다.

그 사람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공책을 꺼냈다. 얇고 낡은 것. 표지가 없었다. 첫 장부터 글씨가 있었다. 1994년 삼월. 그 사람은 그것을 선우한테 건넸다.

“이건 봉인 밖이야. 사무관이 그랬잖아.”

선우는 받았다. 두 손으로. 종이 스무 장쯤. 그런데 손바닥이 그것을 사백열두 통으로 쟀다.

“이걸 왜 저한테.”

“네가 명단 쓰라며. 이름이랑 날짜. 백사십삼 개. 여기 뒤에 써. 앞은 내가 쓴 거고 뒤는 네가 쓰는 거야.”

강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계단으로 갔다. 정년까지 열여섯 날. 선우는 공책을 펴지 않았다.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봉투 옆에. 봉투 한 장에 공책 스무 장. 그 무게가 이번 주 처음으로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남이 맡긴 무게였다. 맡긴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느리게, 한 단씩.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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