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71자) · 12월 4일 군산

연차

십이 년 전 내가 보낸 고백이 반송돼 돌아왔다 · 유하람

십이월 사일 금요일. 선우는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연차를 냈다. 오병철 주임이 신청서를 받아 들고 삼 초쯤 그것을 봤다. 종이를 보는 얼굴이 아니라 처음 보는 동물을 보는 얼굴이었다.

“선우 씨가 연차를.”

“네.”

“어디 아파요?”

“아니요.”

“그럼 어디 가요?”

“군산이요.”

오 주임은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대신 달걀 하나를 내밀었다. 선우는 그것을 받았다. 껍데기째. 주머니에 넣었다. 그 달걀은 군산까지 갔다가 저녁에 서울로 돌아왔다. 먹을 틈이 없어서였다.

은비가 찾아 준 것이었다. 군산 서해초등학교, 삼학년 이반 담임, 서윤혁. 학교 홈페이지 교직원 소개에 사진 없이 이름만 있었다. 은비는 그것을 찾는 데 사 분이 걸렸다고 했다. 십이 년 걸릴 일을 사 분에 해 놓고 은비는 자기가 뭘 했는지 몰랐다. 선우는 고맙다고 했고 은비는 뭐가요, 라고 했다.

용산에서 익산까지 한 시간 반, 익산에서 군산까지 버스로 사십 분. 기차에서 그는 잤다. 밤을 새운 몸이라 앉자마자 잠이 왔고, 천안쯤에서 깼다. 깨서 처음 한 것은 조끼 안주머니를 만지는 일이었다. 한 장. 있었다. 옆자리 사람이 김밥을 먹고 있었다. 참기름 냄새. 그 냄새로 지금이 낮이라는 것을 알았다. 군산은 바람이 서울과 다른 방향에서 불었다. 바다 쪽에서. 냄새에 소금이 섞여 있었다. 선우는 코트 안에 조끼를 입고 있었다. 벗고 올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벗는 것을 잊었다. 십이 년 동안 밤에 입고 아침에 걸었다. 낮에 입고 밖에 나온 것은 이번 주가 처음이었다.

학교는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데 있었다. 이 층 건물, 운동장, 운동장 끝에 철봉 셋. 교문 옆 화단에 눈이 조금 남아 있었다. 두 시 오십 분. 종례가 끝나기 이십 분 전이었다. 그는 교문 앞에 서 있지 않았다. 교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초등학교는 좋아하지 않는다. 길 건너 문구점 앞에 섰다. 문구점 주인이 유리 안에서 그를 두 번 봤다.

세 시 십 분에 아이들이 나왔다. 한꺼번에가 아니라 무더기로, 무더기 사이에 틈을 두고. 노란 가방, 파란 가방. 그다음에 어른이 나왔다. 셋. 그 가운데 하나가 교문 앞에서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손을 흔들면 흔들고, 안 흔들면 안 흔들었다. 아이들이 다 갈 때까지 거기 서 있었다.

십이 년이었다. 그런데 선우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자세로 알았다. 한쪽 발에 무게를 두고 다른 발은 조금 뒤에. 스물넷의 서윤혁도 그렇게 서 있었다.

그 사람이 길 건너를 봤다. 문구점 앞을. 서 있던 자세가 풀렸다. 두 발에 무게가 갔다.

선우는 길을 건넜다. 건너는 동안 손이 조끼 안주머니로 갔다가 도로 나왔다. 아직이었다.

“선우.”

“…네.”

“네, 가 뭐야.”

윤혁은 그렇게 말하고 선우 목에 걸린 명찰을 봤다. 코트 앞이 열려 있어서 조끼와 명찰이 보였다. 윤혁의 눈이 명찰에서 얼굴로 올라왔다.

“우체국 조끼네.”

“네.”

“또 네야.”

교문 안쪽에서 다른 교사가 윤혁을 불렀다. 윤혁은 잠깐만요, 라고 하고 선우한테는 운동장 스탠드를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앉아 있으라는 말이었다. 선우는 갔다. 스탠드는 시멘트였고 얼어 있었다. 앉으니 우체국 뒷계단과 같은 차가움이 올라왔다. 그 찬 것이 이번에도 도움이 됐다.

기다리는 십 분 동안 그는 교사동 일 층 창을 봤다. 창 안에서 윤혁이 아이 하나에게 목도리를 건네고 있었다. 두고 간 것인지 아이 것이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받았고, 윤혁이 아이 목에 그것을 한 번 둘러 줬고, 아이가 뛰어 나갔다. 손에서 손으로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이번 주에 세 번째였다. 그것을 세는 자기를 선우는 알아챘다. 세지 않던 사람이 세기 시작하면 무언가가 바뀐 것이다.

십 분 뒤에 윤혁이 왔다. 종이컵을 두 개 들고. 교무실 자판기 커피. 선우는 그것을 받았다. 두 손으로. 이번 주에 두 번째로 두 손으로 받는 커피였다. 윤혁은 옆에 앉지 않고 한 칸 아래 앉았다. 그래서 선우는 윤혁의 뒤통수와 옆얼굴을 봤다.

“왜 왔어.”

“편지가 왔어요.”

“…편지.”

“십이 년 전에 서윤혁 씨가 쓴 거요.”

윤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철봉 셋이 하늘을 등지고 서 있었다.

“씨, 라고 하네.”

“……”

“그거 내가 쓴 거 맞아. 십이월 구일. 이사 상자 위에서. 그리고 부쳤어. 네 봉투로. 네 이름이 보낸 사람 칸에 있으니까 너한테 갈 거라고 생각했어. 우체국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알 거라고.”

“갔어요. 우체국까지.”

“그런데.”

“거기서 멈췄어요. 십이 년.”

선우는 봉투를 꺼냈다. 그 사람 어깨 너머로 내밀었다. 윤혁이 그것을 받았다. 한 손으로 받다가 두 손이 됐다. 이번 주에 세 번째 보는 손이었다. 박순례 할머니의 손, 강 선배의 손, 그리고 이 손. 봉투를 두 손으로 받는 사람은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윤혁은 봉투 옆면을 봤다. 자기가 뜯은 자리. 그다음에 안을 봤다. 종이 한 장. 자기 글씨. 그다음에 봉투 바닥에 붙은 노란 것을 봤다.

“보관. 폐기하지 말 것.”

읽는 목소리가 낮았다.

“이게 뭐야.”

“저희 선반에 삼십 년 동안 편지를 모은 사람이 있어요. 배달 안 되고 돌아온 것들을. 그 사람이 이걸 반송함에서 봤어요. 십이 년 전에. 뜯긴 자리를 봤고, 두 장 무게라는 걸 알았고, 그리고 제 얼굴을 봤대요. 막 들어와서 웃고 다니는 얼굴. 반송 도장을 주면 그 얼굴이 끝난다고 생각했대요. 한 달만 두려고 했대요.”

“한 달이 십이 년이 됐고.”

“네.”

윤혁은 종이를 꺼내지 않았다. 봉투째 무릎에 놓았다.

“나는 십이 년 동안 답이 없어서.”

거기서 그 사람 목소리가 한 번 끊겼다. 끊긴 자리에 바다 쪽에서 온 바람이 지나갔다.

“답이 없어서, 그게 답인 줄 알았어. 네가 받았고, 읽었고, 안 쓰기로 한 줄 알았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네가 마지막 줄에 그렇게 썼으니까. 답장 안 해도 된다고. 그럼 나도 답장 안 받아도 되는 거라고. 그렇게 열두 번 생각하고 열세 번째에 그만뒀어.”

“저도요.”

“뭐가?”

“답이 없어서 그게 답인 줄 알았어요.”

윤혁이 그제야 돌아봤다. 한 칸 아래에서 위로. 얼굴이 십이 년 전과 같지 않았다. 같은 것은 눈이 사람을 볼 때 안 피하는 것뿐이었다.

“그럼 너는 십이 년 동안 뭘 했어.”

“분류했어요.”

“편지를.”

“네. 하루에 이천 통. 밤에요. 생각 안 해도 되는 일이라서요.”

윤혁은 웃지 않았다. 웃을 자리였는데 안 웃었다. 대신 봉투를 들어 무게를 재는 것처럼 손바닥에 얹었다.

“그래서 지금 답은.”

선우는 종이컵을 봤다. 커피가 반쯤 남아 있었다. 김이 안 났다. 대답할 말이 있었다. 십이 년 동안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은 늘 다음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답장 안 해도 돼. 그 한 줄을 쓴 사람은 답을 상대한테 넘긴 것이다. 넘기고 나면 자기는 아플 일이 없다. 그것을 서른다섯은 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

“또 그러네.”

윤혁이 말했다.

“답장 안 해도 돼. 너 그 줄 아직도 쓰는구나. 말로.”

그 사람은 봉투를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선우가 넣었던 자리, 강 선배가 넣었던 자리. 그것을 보는데 선우 손이 앞으로 나가려다 멈췄다.

“이건 내 거야. 내가 쓴 거고, 너한테 안 갔으니까 아직 내 거야. 답이 오면 그때 다시 줄게. 이번엔 손으로.”

“……”

“그리고 나 이월에 가. 자카르타. 한국학교 파견. 이 년. 그러니까 답을 할 거면 이월 전에 해. 안 할 거면 안 해도 되고. 그건 네가 쓴 줄이니까 지켜 줄게.”

윤혁은 일어섰다. 종이컵을 들고. 두 칸 올라와서 선우 옆에 섰다. 앉지는 않았다.

“그거 알아? 네 편지 첫 줄.”

“……”

“윤혁아, 나는 사람한테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어서 이게 편지가 맞는지 모르겠다.”

선우는 고개를 들었다.

“여섯 번 읽으면 외워져. 열두 줄 다. 마지막 줄까지. 마지막 줄이 제일 잘 외워져. 제일 화가 나서.”

윤혁은 그 말을 하고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한쪽 발에 무게를 두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교문에서 다른 교사가 뭐라고 했고 윤혁이 뭐라고 대답했고 둘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에는 다시 아무도 없었다. 철봉 셋.

선우는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손이 비었다. 조끼 안주머니에 봉투가 하나 있었다. 자기 것. 한 장 무게. 십이 년 동안 두 장이던 것이 이번 주에 한 장이 됐고, 오늘 그 한 장마저 자기 것만 남았다. 손바닥이 그것을 쟀다. 한 장. 그런데 지금까지 든 것 가운데 제일 무거웠다.

교문을 나서는데 노란 가방이 하나 되돌아왔다. 삼학년쯤 되는 아이가 뛰어와서 화단 옆에서 뭘 주웠다. 장갑 한 짝. 아이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서 선우를 올려다봤다. 명찰을 봤다.

“아저씨 우체부예요?”

“우체국 사람이에요.”

“그럼 편지 줘요.”

“…무슨 편지요.”

“몰라요. 우체부는 편지 주는 사람이잖아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뛰어갔다. 선우는 교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편지 주는 사람. 십이 년 동안 그는 편지를 옮기는 사람이었다. 홈에서 바구니로, 바구니에서 자루로. 주는 것과 옮기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아홉 살은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군산 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버스는 다섯 시 십 분이었다. 대합실 의자에서 그는 주머니의 달걀을 발견했다. 오 주임 것. 깨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까지 않았다. 까면 먹어야 하고, 먹으면 이 하루가 끝난다. 버스가 올 때까지 그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버스 안은 어두웠다. 창밖으로 서해안 고속도로의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그는 조끼 안주머니에서 자기 봉투를 꺼냈다. 십이 년 만에 처음 펴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썼는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첫 줄을 보자 모르는 글씨였다. 획이 길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 스물셋은 볼펜을 세게 눌렀다. 열두 줄. 그는 열한 줄을 읽고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답장 안 해도 돼. 그 여섯 글자가 지금 보니 배려가 아니라 문을 닫는 소리였다. 열어 놓고 닫는 소리. 그는 종이를 접었다. 가로등 하나가 지나갔다. 그다음 하나도. 삶은 달걀은 종이보다 무겁고 봉투보다 가볍다. 그 사이 어디쯤의 무게였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일곱줄2026.06.09· 4화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유하람작가2026.06.10

      설정은 장면이 필요로 할 때만 꺼내려고 했어요. 편하게 읽혔다니 다행입니다.

연차 · 십이 년 전 내가 보낸 고백이 반송돼 돌아왔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