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816자)
팔았다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7월 8일 목요일 아침 여덟 시 오십구 분, 사무실은 키보드 소리로 가득했다. 아홉 시가 되자 소리가 한꺼번에 줄었다. 장이 열리는 순간 회사 사람들의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휴대전화로 옮겨 갔다. 백 명이 동시에 화면을 넘기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마른 나뭇잎 한 무더기가 바람에 한 번 뒤집히는 정도였다.
나는 증권 앱을 열고 가진 종목 두 개를 전부 팔았다. 「도톰로보틱스 매도 체결」, 「결정바이오 매도 체결」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화면 아래에 숫자가 떴다. 「실현 손익 +4,012만 원」
지금 돌아보면 무향실에서 근호의 말을 들은 밤부터 아침까지 나는 줄곧 이 일 분을 준비했다. 백 명에게 먼저 알릴 수도 있었고 주찬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돈을 먼저 뺐고, 뺀 다음에는 입을 닫았다. 하루 동안이었다. 지금 와서 하루가 짧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루 사이에 회사 식구방에는 「총알 장전 완료」 인증 화면이 열여섯 장 올라왔다.
팔고 나서야 나는 넉 달 치 거래 내역을 처음부터 훑었다. 방이 「오늘 아침 담으세요」라고 한 종목은 하나같이 공지 전날 오후부터 거래량이 부풀어 있었다. 아무 소식도 없는 날이었다. 공지가 뜨는 아침에 값이 치솟았고, 내가 산 자리는 매번 공지 당일 그래프의 꼭대기 언저리였다. 십여 분 뒤에는 큰 덩어리의 매도가 쏟아졌다. 누군가 먼저 사 두고, 사라고 말하고, 우리가 사는 동안 판 것이었다. 리딩방 사람들이 ‘선취매’라고 부르는 일을 나는 당하는 자리에서 그래프로 보았다. 그래도 넉 달 동안 수익이 난 것은 이후로 값이 한동안 더 올라 주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왜 올려 주었는지는 당시에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안다. 석 달 동안의 수익은 미끼였다.
열 시가 조금 넘어 구매팀 탁 대리가 품질팀 자리로 왔다. 손에 떡 상자를 들고 있었다. 탁 대리는 내 책상에 떡을 한 팩 놓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오래된 빌라 거실 사진이 있었다. 벽지는 누렇고 창틀은 낡았지만, 바닥에 깔린 매트 위로 아이 둘이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과장님, 저 지난달에 이거 샀어요. 이십 년 된 빌라요. 전세 아니고 제 거예요.” 탁 대리는 사진을 확대해서 창밖을 보여 주었다. 옆 건물 벽이 한 뼘 앞에 붙어 있었다. “뷰는 옆집 벽 뷰예요. 근데 제 벽이에요. 다음 달에 집들이하니까 꼭 오세요. 팀장님도 오신대요.”
탁 대리의 목소리는 떠 있었다. 사람이 처음 제 것을 가졌을 때 목소리가 반 음쯤 높아진다는 것을 나는 목요일 아침에 들었다. 근호가 석 달 동안 한 일은 이 반 음이었다. 떡을 받으면서 나는 고맙다고 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내 돈은 이미 빠져 있었고, 빠진 사람은 남의 집들이 떡을 받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
열 시 반, 나는 시험실에서 어제 받은 클레임을 붙잡았다. 저속으로 멈출 때 끼익 소리가 난다는 차였다. 브레이크 시험대에 부품을 물리고 바퀴 대신 원판을 돌렸다. 속도를 시속 오 킬로미터까지 떨어뜨리자 패드가 디스크에 닿는 순간 가는 소리가 났다. 사람 귀에는 짧은 비명처럼 들리지만 화면에서는 한 줄의 가는 선이었다. 패드 뒤에 붙이는 얇은 판 하나가 덜 눌려 떨리고 있었다.
일하는 손은 차분했다. 원인을 찾으면 소리는 멈춘다.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는 원인을 찾아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7월 8일 처음 생각했다.
휘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과장님, 어제 내기 아아요. 팀 전체 열두 잔 시켰어요. 과장님 카드로.”
“나는 한 잔 내기로 했는데.”
“한 잔은 내기고 열한 잔은 과장님 인망이죠. 팀장님은 아이스 바닐라 라테 드신대요. 영포티는 단 걸 좋아해요.”
“팀장님은 마흔아홉이야.”
“그러니까요. 영포티 졸업반이시잖아요.” 휘람은 시험대에서 울리는 끼익 소리에 귀를 막았다. “근데 과장님, 오늘 왜 아침부터 표정이 그래요? 주식 다 팔아 버린 사람처럼.”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원판을 한 번 더 돌렸다. 휘람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정확한 말이 농담으로 오면 대답할 길이 없다.
*
점심시간, 옥상 흡연 구역에서 주찬이 포도향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 오늘은 반바지가 아니라 통 넓은 바지에 이니셜 캡을 거꾸로 쓰고 있었다. 주찬은 나를 보자마자 캡을 바로 고쳐 썼다.
“동기야, 얼굴이 왜 그래.”
“너, 팀장님인 거 알았냐.”
주찬이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포도 냄새가 났다. 대답이 오기까지 사 초쯤 흘렀다. 사 초면 거짓말을 지을 시간으로 충분했지만, 주찬은 짓지 않았다.
“한 달 됐다. 내가 식구방 방장이야. 회사 백 명 내가 다 모았어. 너도 내가 데려왔고.”
“방장은 돈 받냐.”
“한 사람 데려오면 회비 일부를 돌려준대. 근데 그건 푼돈이고.” 주찬은 옥상 난간에 팔을 걸쳤다. “나 이번에 2억 넣는다. 마이너스 통장 오천, 저축은행 일억 오천. 다음 주 목요일 한 방이면 집 계약금은 나와. 희서가 둘째 낳고 원룸 투룸 전전하는 거, 너도 봤잖아.”
주찬의 아내 이름을 오랜만에 들었다. 결혼식 날 내가 사회를 봤다.
“다음 주 목요일은 하지 마.”
“왜?”
“종목을 당일에 공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누가 미리 사 두고 기다리는 거야.”
주찬이 나를 한참 보았다. 그러다 웃었다. 큰 웃음이었고, 옥상 문까지 울렸다.
“너 팔았구나. 얼굴에 다 써 있다.” 주찬이 전자담배로 내 가슴을 툭 쳤다. “얼마 벌었냐.”
“4천.”
“4천이면 내 이자 이 년 치다.” 주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진심일 때 주찬은 목소리가 작아진다. “너는 먼저 내리고, 나보고는 타지 말래? 동기야, 그거 브레이크가 아니야. 혼자 내린 사람이 버스 문 닫는 거지.”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잖아.”
“알아. 집으로 가.” 주찬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서 주찬과 아내와 아이 둘이 웃고 있었다. 큰애는 모델하우스에서 받은 풍선을 들고 있었다. “계약금 넣을 데까지 다 봐 놨어. 너는 4천 벌었으니까 이제 남의 버스 걱정하는 거야. 4천 없을 때 너도 이 버스 탔어. 내가 태워 줬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넉 달 전 나를 공개방에 넣어 준 사람이 주찬이었고, 첫 수익이 났을 때 나는 주찬에게 소고기를 샀다.
주찬이 하품을 크게 했다. 눈이 빨갰다.
“잠은 자냐.”
“어젯밤에 일산 갔다 왔어.”
“일산은 왜.”
“친구 집.” 주찬은 캡을 다시 거꾸로 돌려 쓰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주찬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화면에 뜬 글자가 언뜻 보였다. 「대리 호출 — 강남역 11번 출구」
*
저녁, 독산동 빌라의 에어컨이 24도에 맞춰져 있었다. 소휘가 리모컨을 들고 26도로 올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소휘가 먼저 말했다.
“지금 24도 해 놓은 거 당신이지?”
“단미가 덥대서.”
“단미는 자.” 소휘가 리모컨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24도랑 26도랑 전기요금 차이 알아? 한 달에 이만 원 넘어. 이사 비용 견적서 세 장 냉장고에 붙어 있는 거 봤지? 제일 싼 데가 백팔십이야.”
“2도로 이만 원은 너무 크게 잡았어.”
“그래서 얼마?”
“만 오천쯤.”
“만 오천이면 단미 수영 강습 한 번이야.” 소휘의 계산은 빨랐다. 빠른 계산은 늘 화보다 먼저 입에 닿았다. “그리고 내일까지 예금 잔고 화면 찍어서 보내. 새 집주인이 월요일에 계약서 쓰재.”
“주말에 보낼게.”
“내일.”
“주말.”
“왜 주말인데?”
나는 이유를 대지 못했다. 예금 계좌에는 1억 7천이 비어 있었고 증권 계좌에는 2억 1천이 있었다. 돈이 줄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늘어 있으면 설명해야 한다. 줄어든 돈보다 늘어난 돈 앞에서 거짓말이 더 어렵다는 것을 나는 목요일 밤에 알았다.
방문이 열리고 단미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엄마 아빠 싸워?”
“아니, 에어컨 얘기 해.”
단미가 에어컨을 올려다보았다. 바람구멍 아래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엄마 아빠 싸우면 에어컨이 땀 흘려.” 단미는 할 말만 하고 도로 들어갔다. 소휘가 26도를 25도로 내렸다. 우리 집에서 그것은 휴전이었다.
*
금요일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나는 다시 지하 2층 주차장에 있었다. 이번에는 내 차 안에서 이어폰을 두 쪽 다 꽂았다. 세 칸 건너 회색 세단 안에서 근호의 입이 움직였다.
“자, 귀 열고. 흠, 흠. 어제 아침 혼자 먼저 내린 분이 있습니다.”
나는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괜찮습니다. 내릴 사람은 내리는 겁니다. 버스는 갑니다. 대신 내린 분은 정류장에서 손 흔들지 마세요. 남은 사람들 멀미 납니다. 깔끔하게.”
공개방 창에 웃음 표시가 줄줄이 달렸다. 「ㅋㅋㅋ 정류장에서 손 흔들지 마세요」 「역시 능선 선생님 비유 미쳤다」 「내린 사람 누구냐 ㅋㅋ」 숫자가 올라갔다. 공개방 사람은 이천 명이 넘었다.
근호가 차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내 차를 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근호가 경비 아저씨에게 바닐라 라테 한 잔을 건넸고, 경비 아저씨가 웃으며 받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이천 명 앞에서 근호는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경고였다.
*
금요일 밤 아홉 시, 회사 뒤 편의점 앞 파라솔에 근호가 앉아 있었다. 캔맥주 두 개와 메로나 하나가 탁자에 놓여 있었다. 편의점 안 텔레비전에서 국회가 불법 리딩방 처벌을 무겁게 하는 법안을 논의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근호는 화면을 등지고 앉았다.
“메로나는 단미 거다. 단미는 메로나지?”
“어떻게 아십니까?”
“작년 가족 야유회 때 세 개 먹고 배탈 났잖아.” 근호가 캔을 따서 내 앞으로 밀었다. “주찬이가 그러더라. 너 오늘 아침에 다 팔았다고. 얼굴 보고 알았대.”
“팔았습니다.”
“잘했다.” 근호는 진심으로 말했다. 헛기침이 없었다. “너는 빠져도 돼. 보증금은 집 사는 데 쓰는 거지 노는 데 쓰는 게 아니야. 대신 입은 닫아.”
“백 명한테 말하겠습니다.”
“해 봐.” 근호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혼자 4천 벌고 나온 사람이 남은 사람들한테 타지 말라고 하면, 누가 듣겠냐. 사람들은 말을 안 들어. 누가 말하는지를 듣지.”
“팀장님 말은 왜 듣습니까?”
“내가 석 달 동안 벌게 해 줬으니까.” 근호는 대답이 빨랐다. “탁 대리 떡 받았지? 그 떡이 내 말이야. 너는 무슨 떡을 돌릴 건데? 4천 번 떡?”
“아침 방송에서 정류장 얘기 하셨죠.”
“들었냐?” 근호가 웃었다. 금니가 편의점 불빛에 반짝였다. “이천 명 앞에서 네 이름 안 불렀다. 그게 내 의리야. 다음엔 의리가 아니라 버릇대로 할 수도 있고.” “오 과장, 소리 듣는 사람이 귀만 쓰면 안 돼.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도 봐야지. 토요일 오후 두 시, 역삼동으로 와. 운영진 모임이다. 내가 뭘 믿고 백 명을 데리고 가는지, 와서 직접 들어.”
“운영진은 누굽니까?”
“나, 주찬이, 그리고 우리한테 정보 주는 분들.” 근호가 빈 캔을 손으로 찌그러뜨렸다. 알루미늄이 구겨지는 소리가 짧고 높았다. “투자자문 하는 회사야. 거기 대표님이 반년 전에 나를 찾아왔어. 이십오 년 혼자 주식 한 개미를 알아보더라. 너도 만나 봐. 말씨가 아주 점잖아.”
“그분들이 종목을 정합니까?”
“종목은 같이 정하고, 목소리는 내가 내지.” 근호는 제 목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흠, 흠. 이번에는 기침이 붙었다. 확신이 없을 때 나오는 소리였다.
근호가 일어나 메로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비닐 너머로 찬 기운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한 줄이 떴다.
「‘팔부능선 운영진(7)’ 방에 초대되었습니다.」
석 달 동안 나는 공개방과 회사 식구방, 두 개의 방만 알았다. 문 하나가 더 열렸다. 메로나가 손안에서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