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836자)
쥐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역삼동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는 17층에 닿기 전에 한 번 덜컹했다. 줄이 감기는 소리에 쇳소리가 반 박자 섞였다. 나는 버릇대로 속으로 적어 두지 않고 귀에만 넣었다. 문이 열리자 공기청정기가 낮게 웅웅거리는 복도가 나왔고, 복도 끝 유리문에 은색 글씨가 붙어 있었다.
「뫼빛파트너스 투자자문」
토요일 오후 한 시 오십 분이었다. 주찬이 먼저 와 있었다. 스크린골프장에서 바로 왔다며 분홍 피케 셔츠에 흰 바지, 흰 벨트를 하고 있었다. 이니셜 캡은 손에 들려 있었다.
“동기야, 오늘은 캡 안 썼다. 대표님 앞이라.”
“바지가 너무 하얘.”
“흰 바지가 사람을 젊게 해. 마흔 넘으면 다들 흰 바지 입어.”
“우리 서른일곱이야.”
“그러니까 미리 입는 거지.” 주찬이 흰 바지 무릎을 손으로 털었다. 털 것이 없는 바지였다. 근호는 남색 피케 셔츠를 입고 유리문 안쪽 소파에 앉아 있었다. 회사에서 넥타이 맨 모습만 보던 사람이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으니 팔뚝이 낯설었다.
*
회의실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생수 일곱 병이 줄 맞춰 놓여 있었고, 벽에는 산 능선을 찍은 커다란 흑백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젊은 실장 하나가 태블릿을 들고 문 옆에 섰고, 표서걸 대표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표서걸은 앉기 전에 볼펜 끝으로 탁자를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박자가 고르고 소리가 작았다. 회의를 여는 버릇이었다. 근호가 “자, 귀 열고.”로 여는 것처럼.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표서걸은 근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목소리가 낮고 공손했다. 쉰 중반의 얼굴에 주름이 고르게 접혀 있었다. “오 과장님이시죠. 소리 하시는 분. 소리 하시는 분은 귀가 비싸죠.”
“브레이크 소리만 듣습니다.”
“브레이크가 제일 중요하죠. 멈출 때를 알아야 하니까.” 표서걸이 웃었다. 웃음에 바람 소리가 섞이지 않았다. 숨을 아끼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표서걸이 먼저 꺼낸 이야기는 마지막 한 방이 아니었다. 실장이 태블릿 화면을 우리 쪽으로 돌렸다. 「상장 전 비공개 주식 배정 — VIP 평생 회원 한정 / 내년 상반기 상장 확정 / 주당 5,000원」 이름이 처음 듣는 바이오 회사였다.
“8월 5일이 끝나면 식구분들께 이것도 열어 드릴 겁니다. 상장하면 열 배는 기본입니다.”
나는 화면의 ‘상장 확정’ 네 글자를 보았다. 상장은 거래소 심사를 통과해야 정해지고, 통과하기 전에는 누구도 확정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상장 전 주식은 시세가 없다. 값을 매기는 사람이 파는 사람 하나뿐이다. 오천 원이 오백 원짜리인지 오만 원짜리인지 사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주찬은 벌써 휴대전화로 화면을 찍고 있었다.
모임은 사십 분 남짓이었다. 표서걸은 다음 주 목요일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아홉 시 정각에 종목을 알리고, 열 시 정각에 식구분들 먼저 내리라는 신호를 드리고, 그다음은 다른 방 분들의 몫이라고 했다. 실장이 태블릿에 무언가를 쳤다. 표서걸이 한 번 말을 헛디뎠다.
“선생님 식구 물량은, 아, 식구분들은 저희가 꼭 먼저 챙깁니다.”
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찬은 흰 바지 무릎에 손을 얹고 받아 적는 시늉을 했다. 나는 ‘물량’이라는 낱말 하나를 귀에 넣었다. 사람을 셀 때 쓰는 말이 아니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표서걸이 나에게 물었다. “오 과장님, 브레이크 소리는 어떻게 잡으십니까? 저는 차를 몰면서 끼익 소리가 나도 그냥 다니는 사람이라서요.”
“소리가 나는 자리를 찾습니다. 패드인지, 디스크인지, 뒤에 붙은 얇은 판인지. 찾으면 그 자리만 고칩니다.”
“찾기 어렵지 않습니까? 소리는 여기저기서 나는데.”
“어렵습니다. 소리는 나는 자리보다 들리는 자리가 더 큽니다.”
표서걸이 볼펜으로 탁자를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저는 그 반대로 일합니다. 소리가 어디서 나든 상관없어요. 사람들은 듣고 싶은 소리를 듣거든요. 선생님 목소리가 좋은 건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셔서지, 목소리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표서걸은 근호를 보며 웃었다. “칭찬입니다, 선생님.”
근호도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사람을 칭찬하는 말과 물건을 평가하는 말은 소리가 다르다. 표서걸의 칭찬에는 물건의 소리가 났다.
*
화장실은 회의실과 대표실 사이에 있었다. 타일 벽 위쪽에 환풍기가 돌았고, 환풍기 소리 사이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끼어들었다. 나는 세면대 앞에서 손을 씻다가 물을 잠갔다.
환풍구로 사람 목소리가 들어왔다. 오피스텔 화장실 환기 통로는 옆방과 이어진 경우가 많다. 시험실에서 차체 떨림을 잡을 때도 소리는 늘 엉뚱한 통로로 샌다. 똑, 똑, 똑. 볼펜 소리가 먼저 왔다.
“목요일 열 시 신호는 없어.” 표서걸의 목소리였다. 회의실에서보다 반 음 낮았다. “우리 물량 아홉 시 반까지 다 넘기고, 열 시 전에 정리해. 식구 어쩌고는 선생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고. 능선 목소리는 다음 달에 대구 방으로 옮겨. 목소리는 이미 있으니까.”
나는 휴대전화 녹음 단추를 눌렀다. 남의 통화를 몰래 녹음하는 일이 법에 걸린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알고도 눌렀다. 지금 이 말을 숨길 생각은 없다. 녹음 단추를 누른 손을 움직인 것은 정의감이 아니었다. 다음 주 목요일 열 시에 주찬의 2억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판 것이 옳았다는 증거를 갖고 싶은 마음이었다.
통화는 일 분 남짓 이어졌다. 표서걸은 마지막에 “선생님한테는 열 시라고 해.”라고 말하고 끊었다. 환풍기가 계속 돌았다.
*
엘리베이터 안에는 근호와 주찬과 나 셋이었다. 문이 닫히자 나는 녹음을 틀었다. 좁은 상자 안에서 표서걸의 목소리가 쇠벽에 부딪혀 두 번씩 울렸다.
근호는 끝까지 들었다. ‘물량’에서 근호의 눈썹이 한 번 움직였다.
“우리 식구가 물량이냐.” 근호가 낮게 말했다. 그리고 금방 고개를 저었다. “표 대표가 원래 말을 그렇게 해. 증권가 사람들 말버릇이야. 사람을 숫자로 부르는 거. 나도 처음엔 불편했어.”
“열 시 신호는 없다고 했습니다.”
“나한테는 열 시라고 했다.”
“팀장님한테는 열 시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주찬이 끼어들었다. “잠깐, 동기야. 이거 남의 통화 몰래 딴 거야? 너 이거 불법이야. 대표님이 알면 고소당해.”
“고소는 대표님이 하는 거고, 2억은 네가 넣는 거야.”
“2억은 내가 넣는데 고소는 네가 당하지.” 주찬은 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팀장님, 이거 그냥 넘어가요. 오 과장 요즘 예민해서 그래요. 4천 벌고 나니까 잠이 안 오나 봐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았다. 근호가 먼저 내리며 말했다. “월요일 아침 회의 때 얘기하자. 팀원들 다 있는 데서. 너도 그게 좋잖아.”
근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월요일 회의가 함정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어야 했다. 브레이크 회사 사람이 멈출 때를 몰랐다.
*
일요일 오후, 나는 차를 회사 지하 주차장에 대고 노트북을 열었다. 시험실 분석 화면에 화장실 녹음을 띄웠다. 바닥에 깔린 낮은 웅웅거림은 환풍기 모터였다. 오피스텔 환풍기는 전기 사정상 같은 높이로 돈다. 물 떨어지는 소리의 간격은 일 초 남짓으로 고르게 이어졌고, 녹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중간을 잘라 이었다면 물방울 박자가 한 번은 어긋난다. 어긋난 자리가 없었다. 볼펜 세 번의 간격도 회의실에서 들은 것과 같았다.
나는 소리를 잘라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물방울과 환풍기가 증인이었다. 다만 물방울을 증인으로 믿어 줄 사람이 회사에 몇이나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주찬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일곱 번 가고 끊겼다. 잠시 뒤 문자가 왔다. 「운전 중. 나중에.」 일요일 오후 네 시에 주찬이 무엇을 운전하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
일요일 저녁, 소휘가 또 잔고 화면을 물었다. 나는 예금 계좌 화면을 찍어 보냈다. 「1억 7,000만 원」 나머지 1억 7천은 적금으로 묶여 있어서 풀려면 월요일에 은행에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휘의 답은 짧았다. 「적금 든 적 있어?」 나는 「있어」라고 보냈다. 소휘의 답이 한참 없다가 왔다. 「그래서 얼마?」 「1억 7천.」 「내일 은행 가면 사진.」
단미는 거실에서 메로나를 먹다가 막대를 내밀었다. “아빠, 이거 꽝이야. 당첨 아니래.” 막대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나는 꽝이 적힌 막대도 없는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것을 일요일 저녁에 처음 알았다. 막대만 남은 것을 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여섯 살 단미 하나였다.
*
월요일 여덟 시 반, 품질팀 회의실에는 팀원 열두 명과 생산관리팀 주찬까지 열세 명이 앉아 있었다. 근호가 화이트보드 앞에서 손을 털었다.
“자, 귀 열고. 흠, 흠. 오늘은 클레임 말고 오 과장이 할 말이 있대.”
휘람이 책상 밑에서 손가락을 펴다 말고 나를 보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회의실 스피커에 연결했다. 토요일 화장실 환풍구 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볼펜 세 번, 그리고 표서걸의 목소리. 열 시 신호는 없어. 우리 물량 아홉 시 반까지 다 넘기고.
녹음이 끝나자 회의실이 조용했다. 에어컨 소리만 남았다. 나는 팀원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숨이 멈춘 사람이 셋, 한숨을 쉰 사람이 둘이었다.
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오 과장, 지난주 목요일 아침에 혼자 다 팔았지?”
팀원들이 나를 보았다.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어?”
“4천입니다.”
누군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근호는 손바닥을 펴서 팀원들을 향해 내밀었다. “오 과장은 먼저 내렸어. 잘한 일이야. 근데 먼저 내린 사람이 버스 세우려고 하면 그건 좀 다른 얘기지.” 흠, 흠. “그리고 저 녹음. 저 목소리가 표 대표 목소리인지 누가 확인해? 오 과장이 소리 만지는 사람이잖아. 우리 회사에서 소리 제일 잘 만지는 사람.”
회의실에 웃음이 번졌다. 크지 않은 웃음이었다. 불편한 사람들이 숨을 내보내려고 웃는 소리였다.
“과장님이 그걸 왜 만들어요?” 휘람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과장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 휘람 씨, 주가가 떨어지면 누가 좋을까?” 설계팀에서 넘어온 고 차장이 팔짱을 꼈다. “판 사람은 싸게 다시 살 수 있지. 4천 벌고, 겁 줘서 떨어뜨리고, 싸게 또 사고.”
나는 주찬을 보았다. 주찬은 고개를 숙이고 이니셜 캡을 만지작거렸다. 근호가 물었다. “변 과장, 오 과장 팔았다는 거 맞지?”
주찬이 고개를 들었다. “네. 목요일 아침에요.” 목소리가 작았다. 진심이었다.
회의는 근호의 “깔끔하게.”로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나 의자를 밀었다. 나는 스피커에서 휴대전화를 뽑았다.
자리에 돌아와 앉은 지 오 분쯤 지나 내 휴대전화가 먼저 울렸다. 회사 식구방이었다. 누가 올렸는지 이름은 「익명의 식구」로 떠 있었다.
「품질팀 오승표 과장, 혼자 익절하고 겁주는 중. 녹음은 편집본. 목요일 흔들리지 맙시다.」
내 휴대전화 다음으로 옆자리가 울렸다. 그다음은 맞은편, 그다음은 창가, 복도 건너 구매팀, 유리벽 너머 생산관리팀. 알림음이 사무실 끝에서 끝으로 번졌다. 띠링, 띠링, 띠링. 나는 소리를 세다가 마흔을 넘기고 그만두었다.
휘람이 칸막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가가 빨갰다. “과장님, 저 지금 이 방 나갈까요? 근데 나가면 과장님 편인 게 티 나서요.”
“나가지 마.”
“왜요?”
“안에 있어야 들리는 게 있어.” 나는 휴대전화를 엎었다. “그리고 휘람 씨 VIP방 회비 아깝잖아.”
휘람의 입이 벌어졌다. “제가 VIP인 거 어떻게 아세요?”
“회의 때 휘람 씨 휴대전화에서 아침 방송이 공개방보다 십 초 먼저 끝났어.”
휘람은 한참 나를 보다가 칸막이 아래로 사라졌다. 칸막이 너머에서 작게 “아 소름.” 소리가 났다.
알림음은 그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울린 것은 회의실 화이트보드 앞에 놓인 근호의 휴대전화였다. 유리벽 너머에서 근호가 화면을 보지 않고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