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924자)
귀 열고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강남역에서 문이 닫히자 바퀴 아래에서 가늘고 높은 소리가 올라왔다. 브레이크 패드가 디스크를 문지를 때 나는 끼익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얼굴을 찡그렸고, 나는 높이부터 가늠했다. 삼천 헤르츠 언저리, 패드 끝이 조금 닳았다. 이런 소리를 듣고 원인을 찾아내는 일로 나는 월급을 받는다. 그래서 무선 이어폰은 오른쪽 귀에만 꽂는다. 왼쪽 귀는 열차에 내준다.
열차가 터널로 들어가자 창유리가 거울이 됐다. 짧고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 흰 반팔 와이셔츠에 회색 넥타이, 목에 걸린 사원증, 오른쪽 귀의 흰 이어폰. 서른일곱 살 남자 하나가 손잡이를 잡고 휴대전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초록 그래프가 떠 있었고, 그래프 위에 대화방 이름이 있었다.
「팔부능선 — 연 300% 수익방」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음성 방송이 시작됐다. 음성 변조를 거친 목소리는 물속에서 말하는 남자처럼 낮고 뭉툭했다. 석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들어 온 목소리였다.
“자, 귀 열고.”
헛기침이 두 번 따라왔다. 흠, 흠.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반 박자 늦었다.
“내일은 쉽니다. 현금 쥐고 기다리세요. 다음 주에 크게 한 번 갑니다. 깔끔하게.”
‘쉽니다’의 ‘ㅅ’에서 바람이 샜다. 휘파람이 되다 만 소리, 앞니 사이 금니 틈으로 숨이 빠지는 소리였다. 나는 이 소리를 팔 년 동안 아침마다 들었다. 품질팀 회의실 화이트보드 앞에서 팀장 맹근호가 “자, 귀 열고.”로 하루를 열 때마다. 변조기는 목소리의 높이를 바꾼다. 금니 틈의 바람과 헛기침 사이의 반 박자까지는 바꾸지 못한다.
나는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옆자리 대학생이 숏폼 영상을 소리 내어 넘기고 있었다. “출근룩에 무선 이어폰 한 짝, 이거 영포티 국룰입니다.” 나는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서른일곱은 아직 영포티에 들지 않는다고 속으로만 대꾸했다.
열차가 땅 위 구간으로 올라오자 창으로 햇빛이 들이쳤다. 거울이던 유리가 도로 유리가 되고, 내 얼굴이 있던 자리로 고가 도로와 아파트 지붕이 흘러갔다. 출입문 위 화면에서는 뉴스 자막이 지나갔다. 「금융 당국, 유료 리딩방 집중 점검… “고수 목소리 믿지 마세요”」 자막 아래로 미국 증시가 사흘째 내렸다는 줄이 이어졌다.
공개방 창은 쉬지 않고 위로 밀려 올라갔다. 「오늘도 +30% 감사합니다 선생님」, 「능선 선생님 덕에 아이 학원비 해결」, 「+4,812만 원 인증」 인증 사진이 한 장 올라올 때마다 「축하드려요」와 「부럽습니다」가 열 줄씩 붙었다. 석 달 동안 나는 이 창을 보며 마음을 놓았다. 오늘은 귀가 예민해진 김에 눈도 같이 예민해졌다. 「대구 김 사장」이 올린 인증 사진과 「동탄 워킹맘」이 올린 인증 사진은 잔고 끝자리가 같았다. 화면 위 시각도 오전 열 시 사십일 분, 배터리 표시도 37%로 같았다. 같은 화면을 두 사람이 가질 수는 없다. 감사 글도 그랬다. 「선생님 덕분에 처음으로 아내한테 큰소리쳤습니다」가 이름만 바꿔 세 번 올라와 있었다. 박수를 치는 사람 가운데 몇은 방이 미리 앉혀 둔 박수꾼이었다. 바람잡이라는 말을 나는 7월 6일 저녁에야 제 뜻으로 알아들었다.
나는 증권 앱을 열었다. 「평가 금액 1억 9,240만 원」 넣은 돈은 1억 7천이었다. 독산동 전셋집 보증금 3억 4천 가운데 절반, 지난 4월 집주인이 계약 끝났다고 돌려준 돈이었다. 새 전셋집 잔금은 8월 말이었고, 잔금까지 넉 달 동안 돈을 놀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는 모른다. 지금 말해 두는 것이 순서에 맞다. 나는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고, 이 거짓말로 2천만 원을 넘게 벌었다.
메신저가 울렸다. 품질팀 막내 나휘람이었다. 「과장님 내일 회의 때 팀장님 ‘자 귀 열고’ 몇 번 하나 내기해요. 저는 일곱 번에 아아 한 잔.」 나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내일 몇 번이 나오든 오늘부터는 세는 소리가 달라졌다.
*
독산동 빌라 3층 현관을 열자 에어컨 바람보다 빨간 펜 소리가 먼저 왔다. 아내 염소휘가 식탁에서 중학생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펜 끝이 종이를 짧게 긁고 지나갈 때마다 어느 집 아이 하나가 3점을 잃었다.
여섯 살 단미가 잠옷 차림으로 달려와 내 다리를 붙잡았다.
“아빠 귀에 또 콩나물 꽂았다.”
“이어폰이야.”
“콩나물처럼 생겼잖아.”
단미가 내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 제 귀에 꽂았다. 방송은 끝나 있었다. 단미는 한참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빠 콩나물 고장 났어.” 하고 돌려주었다.
“집주인한테 연락 왔어.” 소휘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잔금 날 8월 27일로 확정. 새 집주인이 계약서 쓰기 전에 잔고 한번 보여 달래. 우리 보증금, 예금에 그대로 있지?”
“있지.”
“그래서 얼마?”
“3억 4천.”
소휘는 계산 끝에 늘 “그래서 얼마?”를 붙였다.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하던 말이 십 년 사이 남편에게까지 번졌다. 나는 대답을 짧게 했다. 거짓말은 길어질수록 소리가 샌다. 부품도 사람도 그렇다.
소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유치원 햇살반 학부모 단톡방이었다. 소휘가 소리 내어 읽었다. “「내일 물놀이 날, 수영모 꼭 챙겨 주세요.」 그다음, 「저희 남편 아는 분이 하는 방인데 엄마들 반찬값은 나온대요. 링크.」 그 밑에 반장 어머님. 「광고 링크는 자제 부탁드려요^^」” 소휘가 웃었다. “요즘은 반찬도 주식으로 사.”
나는 웃지 않았다. 링크 주소 끝에 「palbu」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나는 회사 지하 2층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동을 껐다. 두루제동 강남 본사는 여덟 층짜리 건물이고, 지하 2층 절반은 주차장, 나머지 절반은 내가 일하는 소음진동 시험실이다. 근호 팀장의 회색 세단이 세 칸 건너에 있었다. 운전석에 근호가 앉아 있었다.
일곱 시 사십 분이 되자 근호가 휴대전화를 입 가까이 들었다. 내 오른쪽 귀에서 아침 방송이 시작됐다.
“자, 귀 열고.”
근호의 입술이 같은 박자로 움직였다. 흠, 흠. 근호의 어깨가 두 번 들썩였고 두 번째가 반 박자 늦었다. 앞 유리 두 장 너머의 입과 귓속의 소리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브레이크 끼익음을 재현할 때 소리와 영상을 맞추는 일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맞춰 볼 것도 없었다.
방송을 마친 근호가 차에서 내리다가 내 차를 보고 손을 들었다.
“오 과장, 일찍 왔네. 브레이크 회사 사람이 출근은 브레이크도 없이 하나 봐.”
근호는 제 농담에 먼저 웃었다. 금니가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
여덟 시 반 품질팀 회의실. 근호가 화이트보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자, 귀 열고.”
책상 밑에서 휘람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근호는 완성차 회사에서 들어온 클레임 두 건을 읽었다. 저속으로 멈출 때 끼익 소리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흠, 흠. 근호가 한 건을 나에게, 한 건을 휘람에게 넘겼다. “소리 잡는 건 오 과장이 제일 낫지. 깔끔하게.”
휘람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팀장님 저 말투 숏폼에 올리면 백만 각이에요. 제목은 ‘우리 팀장 귀 여는 법’.”
회의가 끝날 무렵 문이 열리고 생산관리팀 변주찬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입사 동기였다. 수요일은 반바지가 허용되는 날이었고, 주찬은 무릎 위 반바지에 흰 양말을 종아리 끝까지 올려 신고 이니셜 박힌 골프 벨트를 차고 있었다.
“변 과장님 오늘 착장, 영포티 도감 표지예요.” 휘람이 말했다.
“도감이 뭔데? 칭찬이지?”
“네, 칭찬으로 들으세요.” 휘람이 말하고 고개를 돌려 웃음을 삼켰다.
주찬은 내 충전기를 빌려 가면서 문간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다음 주 목요일이다. 총알 빼지 마, 동기야.” 화이트보드 앞에서 근호가 우리 둘을 보고 있었다. 흠, 흠.
*
점심시간, 나는 밥 대신 시험실 분석 화면 앞에 앉았다. 회의 때마다 녹음기를 켜 두는 것은 휘람이 들어오기 전부터 내 버릇이었다. 클레임 회의는 나중에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로 싸움이 난다. 오늘 아침 회의 녹음과 어젯밤 방송 녹음을 나란히 띄웠다. 화면에서 소리는 높이와 세기에 따라 초록 얼룩으로 번졌다.
변조된 방송의 얼룩은 아래로 한 칸 내려앉아 있었다. 목소리를 낮게 누른 자리였다. 높이를 맞춰 올리자 두 얼룩의 모양이 겹쳤다. ‘쉽니다’와 ‘깔끔하게’의 ‘ㅅ’마다 같은 높이에 가는 바늘 같은 줄이 솟았다. 금니 틈으로 새는 바람이었다. 헛기침 두 번 사이는 아침 회의에서도 방송에서도 반 박자씩 늘어졌다. 숨을 고르고 나서 말하는 사람의 버릇이었다.
“과장님, 밥 안 드세요?” 휘람이 컵라면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가 화면을 보고 멈췄다. “이거 팀장님 목소리 지문이에요? 와, 숏폼 각이다. ‘우리 팀장 목소리를 해부해 보았다’.”
“클레임 건이야.”
“클레임에 팀장님 헛기침이 왜 들어가요?”
나는 화면을 껐다. 휘람은 의자를 끌어와 컵라면 하나를 내 앞에 놓고 뚜껑 위에 나무젓가락을 얹었다. “아까 몇 번 나왔는지 아세요? 일곱 번이요. 제가 이겼으니까 아아는 과장님이 쏘세요.” 나는 지갑을 꺼냈다. 숫자가 맞은 내기에서 진 사람은 군말 없이 사야 한다.
라면이 불는 동안 휘람이 한마디를 더 했다. “근데 과장님, 팀장님 요즘 아침마다 주차장에서 혼잣말하신대요. 경비 아저씨가 그러는데, 차 안에서 매일 누구랑 통화를 그렇게 하신대요. 사모님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으신가.”
나는 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짜고 뜨거웠다. 사모님과 통화하는 사람은 “현금 쥐고 기다리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
밤 아홉 시, 나는 무향실 철망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벽과 천장과 발밑이 회색 쐐기 모양 흡음재로 덮인 방이다. 말을 하면 소리가 입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 앉아 있으면 제 심장 소리와 귓속 피 도는 소리가 들린다. 삼 년 전 나는 시험 기록을 남기려고 이 방의 측정 마이크를 손봐 두었다. 문이 닫히면 저절로 녹음이 시작된다. 천장 구석에서 작고 붉은 불이 깜빡였다.
근호에게는 「저속 끼익음 재현됐습니다. 무향실로 와 주세요.」라고 보냈다. 근호는 십 분 만에 내려왔다.
나는 시험용 스피커로 어제 저녁 방송을 틀었다. 물속 같은 목소리가 흡음재에 빨려 들어갔다. 자, 귀 열고. 흠, 흠. 내일은 쉽니다.
근호는 끝까지 들었다. 그러고는 철망 바닥에 쪼그려 앉아 스피커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재현은 잘됐네.”
“팀장님 목소리입니다.”
“그래, 내 목소리다.” 근호는 숨기지 않았다. “우리 팀 열두 명 중에 집 있는 사람 나 하나야. 나는 2006년에 샀어. 운이 좋았지. 너희는 운이 없고. 회사는 월급 3% 올려 주고 생색내. 내가 석 달 동안 회사 사람 백 명한테 평균 30% 벌게 해 줬다. 구매팀 탁 대리는 그 돈으로 빌라 샀어. 회사가 이십 년 동안 못 한 걸 내가 석 달 만에 했다.”
“백 명은 고수가 팀장님인 거 압니까?”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다음 주 목요일 종목은 뭡니까?”
“아홉 시 정각에 공개한다. 규칙이야. 새는 데가 없어야 깔끔하지.”
“백 명이 다 법니까? 다음 주 목요일에도요?”
“다 벌게 하려고 하는 거다.” 근호가 흡음재 쐐기 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가 놓았다. 쐐기는 천천히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오 과장, 너 처음 입사했을 때 고시원 살았지. 내가 보증 서 줘서 원룸 얻었고. 그때 내가 너한테 이자 받았냐? 나는 식구한테는 안 받아. 식구는 데리고 가는 거야.”
“이번에는 누가 데리고 갑니까?”
“내가.”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헛기침도 없었다. 근호는 확신할 때 기침을 하지 않는다. 팔 년 동안 클레임 회의에서 내가 배운 것 가운데 하나였다.
“새는 데는 벌써 있습니다. 팀장님 앞니요.”
근호가 소리 없이 웃었다. 무향실에서는 웃음도 돌아오지 않았다. 근호는 엄지로 제 금니를 한 번 두드리고 일어났다.
“너는 빼 줄게. 오늘 들은 건 이 방에 두고 나가.” 문손잡이를 잡은 근호가 돌아보았다. “아니다. 너는 이미 들어와 있지. 일억 칠천. 주찬이가 그러더라. 와이프는 모른다며?”
문이 닫혔다. 잠금쇠 소리마저 흡음재가 먹었다. 내 심장 소리가 귓속에서 커졌고, 천장 구석의 붉은 불은 계속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