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68자)

올무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밤 아홉 시⁠, 육한담은 머리에 전등을 쓰고 범바위 아래 참나무 숲에 엎드려 있었다⁠. 손에는 철사 절단기가 들려 있었다⁠. 준호가 뒤에서 무릎으로 기어 왔다⁠. 전등 불빛에 낙엽이 노랗게 떴다가 꺼졌다⁠. 둘은 낮에 찾은 첫 번째 올무 자리에서 출발해 범바위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올무를 찾는 법은 하나였다⁠. 냄새였다⁠. 바람이 바뀔 때마다 한담은 멈추어 숨을 들이쉬었다⁠. 참나무 잎 썩는 냄새⁠, 젖은 흙냄새⁠, 오소리가 지나간 냄새 사이로 썩은 고기 냄새가 가늘게 끼어들면 냄새 나는 자리로 갔다⁠. 살점은 언제나 덤불 앞이나 쓰러진 나무 옆⁠, 범이 몸을 숨기며 지나갈 자리에 놓여 있었다⁠. 살점 앞 낙엽 밑에는 언제나 고리가 있었다⁠. 한담이 가지로 고리를 건드려 조이게 하면 준호가 절단기로 참나무 밑동의 철사를 끊었다⁠. 끊긴 철사는 둘둘 감아 준호의 배낭에 넣었다⁠.

네 번째 올무를 끊고 나서 준호가 속삭였다⁠.

“⁠선배⁠, 누나 지금 어디 있어요⁠?⁠”

준호는 허리의 수신기를 껐다 켰다 하고 있었다⁠. 수신기 소리가 나면 범이 알까 봐 소리를 죽여 두었다⁠. 화면에 가까운 신호의 방향만 화살표로 떴다⁠.

“⁠위⁠. 이백 미터⁠.⁠”

“⁠이백 미터면 누나한테는 몇 걸음이에요⁠?⁠”

“⁠이장님 말로는 담배 한 대 참⁠.⁠”

준호가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범바위를 향해 낮게 말했다⁠.

“⁠누나⁠, 저예요⁠. 삼촌이요⁠. 쇠 냄새 치우러 왔어요⁠. 초코바 냄새 나는 게 저예요⁠.⁠”

“⁠범은 초코바 몰라⁠.⁠”

“⁠그래도 냄새는 맡잖아요⁠. 제 냄새는 단 냄새로 외워 두라고요⁠.⁠”

다섯 번째는 바위 틈에 있었다⁠. 여섯 번째는 개울 건너⁠, 범바위에서 칠구의 외양간으로 내려가는 비탈 한가운데 있었다⁠. 호단이 외양간으로 내려간다면 지나갈 길이었다⁠. 일곱 번째를 끊었을 때는 자정이 넘어 있었다⁠. 준호의 배낭이 철사 뭉치로 묵직했다⁠. 한담은 끊은 자리마다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 지도에 점을 찍었다⁠. 일곱 개의 점이 범바위를 반달 모양으로 둘러쌌다⁠. 반달의 터진 자리는 굴 입구였다⁠.

돌아 내려가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 한담의 머리 전등이 벼랑 아래 바위를 스쳤다⁠. 바위 그늘에서 호박색 불빛 두 개가 떠올랐다⁠. 전등 빛을 받아 되비치는 눈이었다⁠. 눈은 깜박이지 않았다⁠. 준호가 숨을 멈추었다⁠. 한담은 전등을 바로 껐다⁠. 어둠 속에서 둘은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전등을 켰을 때 바위 그늘은 비어 있었다⁠. 낙엽 위에 둥글게 눌린 자리만 남아 있었다⁠.

“⁠봤어요⁠?⁠”

“⁠봤어⁠.⁠”

“⁠누나가 저 봤어요⁠?⁠”

“⁠우리 둘 다 봤어⁠. 한참 봤어⁠.⁠”

준호는 한담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내려오는 길 내내 준호는 초코바를 씹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사람이 굴을 알고 놨어⁠.⁠”

한담이 말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배낭 끈을 고쳐 메는 손이 떨렸다⁠.

*

호단은 밤 내내 굴 아래 숲에서 약 냄새와 단내가 움직이는 것을 맡았다⁠. 둘은 숲을 천천히 돌았다⁠. 멈추었다가⁠, 쇠 소리를 내고⁠, 또 움직였다⁠. 쇠 소리는 짧고 날카로웠다⁠. 쇠 소리가 날 때마다 송아지 냄새 하나가 숲에서 옅어졌다⁠.

약 냄새가 멀어진 뒤 호단은 굴을 나왔다⁠. 배가 고팠다⁠. 흑염소를 먹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숲에는 아직 송아지 냄새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약 냄새가 지나가지 않은 자리⁠, 굴 바로 아래의 바위 비탈이었다⁠.

호단은 냄새를 따라 내려갔다⁠. 바위 비탈 끝⁠, 쓰러진 소나무 밑에 살점이 있었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혀 밑에 침이 고였다⁠. 쓰러진 소나무 둘레에는 쇠기름 냄새가 묻어 있었고⁠, 낙엽 밑에서 차가운 쇠 냄새가 났다⁠. 동쪽 빈터의 쇠창살과는 다른 냄새였다⁠. 더 가늘고 더 날카로웠다⁠.

호단은 앞발을 들어 낙엽 위에 올렸다⁠. 수염이 낙엽 밑의 무언가에 닿았다⁠. 차갑고 가늘었다⁠. 호단이 앞발을 내리려는 순간 발밑의 낙엽이 쉭 하고 솟았다⁠. 가는 것이 허공을 휘감으며 조여들었다⁠. 호단의 앞발이 닿기 한 뼘 전이었다⁠. 가는 것은 아무것도 물지 못하고 제 몸을 감은 채 쇳소리를 내며 떨었다⁠.

호단은 뒤로 뛰었다⁠. 등의 털이 바짝 일어났다⁠. 쓰러진 소나무에 감긴 가는 쇠가 오래 떨다가 멈추었다⁠. 호단은 멀리서 오래 엎드려 그것을 보았다⁠. 송아지 냄새는 그대로였다⁠. 쇠 냄새도 그대로였다⁠. 호단은 두 냄새를 한 번에 코로 들이켰다⁠. 두 냄새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땅이 문다는 것을⁠, 호단은 머리보다 앞발로 먼저 알았다⁠.

호단은 살점을 두고 굴로 올라갔다⁠. 굴 앞에서 혀로 앞발을 오래 핥았다⁠. 앞발은 다치지 않았다⁠. 그래도 핥았다⁠. 핥는 동안 배 속의 둘이 번갈아 밀었다⁠. 굴 밖에서 바람이 바뀌었고⁠, 송아지 냄새가 다시 굴 안으로 들어왔다⁠. 호단은 코를 앞발 사이에 묻고 냄새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

이튿날 아침 열 시⁠, 한담은 칠구의 외양간 뒤 사료 창고 앞에 트럭을 세웠다⁠. 준호가 조수석에서 내리지 않았다⁠.

“⁠선배도 들어와 주세요⁠.⁠”

“⁠집안일이야⁠.⁠”

“⁠증인이요⁠. 아부지는 제 말만 들으면 제가 범 편이라 그런다고 하세요⁠. 선배가 있으면 범 편이 둘이라서 그나마 공평해요⁠.⁠”

사료 창고 안에서 칠구가 사료 포대를 쌓고 있었다⁠. 이십 킬로 포대를 어깨에 메고 쌓은 더미 위로 던졌다⁠. 포대가 떨어질 때마다 먼지가 일었고⁠, 곡물을 볶은 고소한 냄새가 창고 안에 퍼졌다⁠. 칠구는 아들과 한담을 보고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준호가 배낭을 열고 철사 뭉치를 꺼내 쌓인 포대 위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일곱 개였다⁠. 철사마다 끊긴 끝이 반짝였다⁠.

“⁠아부지⁠, 이거 범바위 둘레에서 걷은 거예요⁠. 어젯밤에요⁠.⁠”

칠구는 포대 하나를 더 던지고 나서 몸을 돌렸다⁠.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았다⁠. 철사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곽 대장이 멧돼지 잡는 거라 혔다⁠.⁠”

“⁠멧돼지가 무릎 높이로 다녀요⁠?⁠” 준호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부지는 소 키우시잖아요⁠. 송아지 목 높이가 어디인지 아시잖아요⁠. 멧돼지 목은 그보다 훨씬 낮아요⁠. 이건 범 앞발 높이예요⁠.⁠”

“⁠그래서⁠.⁠”

“⁠고리마다 송아지가 붙어 있었어요⁠. 아부지 송아지요⁠.⁠”

칠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철사 뭉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끊긴 끝에 엄지를 대 보았다⁠. 날카로운 끝이 굳은살에 닿았다⁠.

“⁠알았어⁠.⁠”

“⁠네⁠?⁠”

“⁠곽 대장이 송아지 미끼로 쓴다는 거⁠, 알고 줬다고⁠.⁠” 칠구는 철사를 포대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냉동고에서 꺼내 줄 적에 곽 대장이 말혔어⁠. 범이 미끼 묵으러 오믄 그것도 피해 아니냐고⁠. 마을 바깥에서 송아지 묵어도 송아지는 송아지니께⁠. 그라믄 세 번째가 되고⁠, 세 번째믄 잡아간다고⁠. 나는 그 말 듣고 줬어⁠.⁠”

“⁠올무는요⁠?⁠”

“⁠올무까지는 몰랐어⁠.⁠” 칠구가 아들을 보았다⁠. “⁠몰랐다고 하믄 니는 안 믿을 것이고⁠. 그래도 몰랐어⁠. 나는 범이 죽으라고 한 적 없다⁠. 잡혀가라고 했제⁠. 잡혀가서 철창 안에서 살든가 말든가⁠, 내 송아지 앞에만 안 나타나믄 돼⁠.⁠”

“⁠올무에 앞발 걸린 범은 다리를 잃어요⁠. 끊고 도망가면 철사가 살을 파고들어서 썩어요⁠. 그러면 사냥을 못 해요⁠. 사냥 못 하는 범이 어디로 내려오는지 아세요⁠?⁠”

준호가 창고 문을 가리켰다⁠. 문 너머로 외양간의 함석지붕이 보였다⁠.

“⁠여기요⁠. 여기로 내려와요⁠. 매일요⁠. 아부지가 준 송아지 때문에 범이 다리를 절면⁠, 아부지 외양간이 범 밥상이 돼요⁠.⁠”

칠구의 손이 멈추었다⁠. 칠구는 한참 아들을 보다가 한담을 보았다⁠. 한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의 말에 덧붙일 것이 없었다⁠.

창고 문간에 나미자가 와 있었다⁠.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미자는 포대 위의 철사 뭉치를 보고 남편을 보았다⁠.

“⁠당신 그거 알고 줬어⁠?⁠”

“⁠알고 줬어⁠.⁠”

나미자는 고무장갑을 벗어 포대 위에 놓았다⁠. 철사 뭉치 바로 옆이었다⁠.

“⁠준호야⁠, 니 방 짐 마저 챙겨 가라⁠. 겨울옷 장롱 둘째 칸에 있다⁠.⁠”

“⁠엄마⁠.⁠”

“⁠니 아부지가 알고 했으믄⁠, 니도 알고 해⁠. 알고 하는 사람끼리 한집에 있으믄 싸움밖에 안 나⁠.⁠”

준호는 창고 문을 나갔다⁠. 칠구는 철사 뭉치를 내려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미자가 남편 곁에 와서 포대 하나를 같이 들었다⁠. 둘이 포대를 더미 위로 던졌다⁠. 먼지가 일었다⁠.

*

한담은 오후에 경찰서에 올무 일곱 개와 사진과 지도를 넘겼다⁠. 생활안전계장은 철사 뭉치를 봉지에 담아 번호를 매겼다⁠. 누가 놓았는지는 철사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곽두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곽두식은 멧돼지 틀 두 개 말고는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고 했다고 했다⁠. 피해방지단원 열 명이 같은 산에 다니니 누가 놓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송아지 살점에 냉동고 비닐이 붙어 있었어요⁠. 무내골 회관 냉동고요⁠.⁠”

“⁠회관 냉동고는 마을 사람 누구나 열지요⁠.⁠”

계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한담은 경찰서를 나왔다⁠. 주차장에 낯익은 사륜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곽두식이 운전석에서 내려 총기 보관실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담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손에 총 가방을 들고 있었다⁠. 밤 순찰을 나가려면 날마다 경찰서에서 총을 꺼내고 아침에 도로 맡겨야 했다⁠.

“⁠선생님⁠, 신고하러 오셨습니꺼⁠?⁠”

“⁠올무 일곱 개요⁠.⁠”

“⁠아이고⁠. 제 덫 끊은 것도 신고하셨습니꺼⁠? 남의 덫 끊는 것도 재물 손괴라 카던데예⁠.⁠” 곽두식이 웃었다⁠. “⁠저는 신고 안 할낍니더⁠. 선생님 고생하시는데⁠. 대신 하나만 여쭙시다⁠. 범 다리에 올무 걸리면⁠, 선생님이 마취총 쏴서 풀어 주실낍니꺼⁠? 새끼 밴 범한테 마취총 쏘면 새끼는 괜찮습니꺼⁠?⁠”

한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곽두식은 총 가방을 고쳐 들었다⁠.

“⁠모르시는구나⁠. 저도 모릅니더⁠. 그래서 여쭤본 거라예⁠.⁠”

곽두식은 보관실 문으로 들어갔다⁠. 한담은 트럭에 앉았다⁠. 휴대전화에 표정훈의 문자가 와 있었다⁠. 「⁠감사 일차 결과⁠. 센터 보고 누락 인정⁠. 재포획 결정권 환경부로 넘어감⁠. 세 번째 피해 시 즉시 재포획⁠. 육 선생은 계속 대기⁠.⁠」 한담은 「⁠올무 일곱 개 신고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준호가 짐칸에 실린 이삿짐 상자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겨울옷 상자 셋이었다⁠. 상자 하나에 나미자의 글씨로 「⁠준호 겨울⁠」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상자에는 「⁠준호 초코바 숨긴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준호는 초코바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 웃다가⁠, 웃음을 그치고 상자를 끌어안았다⁠.

밤 열 시⁠, 관사 툇마루에서 준호가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생방송이 돌아가고 있었다⁠. 「⁠곽포수TV · 생방송 · 시청 9⁠,441⁠」⁠. 곽두식이 어두운 임도 위에서 전등을 얼굴 밑에 대고 있었다⁠. 금니가 전등 불빛에 빛났다⁠.

“⁠여러분⁠, 오늘 누가 제 멧돼지 덫을 다 끊어 놨심더⁠. 센터 사람들이라 카데예⁠. 범 지킨다꼬⁠. 좋습니더⁠. 범 지키는 거 좋지예⁠.⁠”

화면 오른쪽으로 글이 빠르게 올라갔다⁠. 곽두식이 전등을 얼굴에서 떼고 카메라를 보았다⁠.

“⁠그래도 여러분⁠, 재포획팀은 범 굴이 어딘지도 모릅니더⁠. 저는 압니더⁠. 마을 사람들 지키는 순찰대장이 그것도 모르면 되겠습니꺼⁠? 세 번째 송아지 죽기 전에 제가 먼저 갑니더⁠.⁠”

준호가 화면을 껐다⁠. 툇마루가 어두워졌다⁠. 범바위 위 산등성이에는 달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덮고 있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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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11.01· 9화

    곽두식 생방송에서 「저는 압니더」 할 때 소름. 준호랑 한담 선배 둘이서 올무 끊는 장면 응원했어요!

    • 하윤슬작가2026.11.01

      준호는 아버지와 선배 사이에서 늘 초코바를 하나씩 챙기는 아이입니다. 범 굴을 먼저 찾는 사람이 누가 될지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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