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7자)

미끼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호단은 엿새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낮에는 하늘에서 냄새 없는 것이 앵앵거렸고⁠, 비탈마다 사람 냄새가 올라왔다⁠. 밤에는 송아지 냄새가 숲 여기저기에서 피어올랐다⁠. 송아지 냄새 곁에는 늘 쇠 냄새가 있었다⁠. 호단은 송아지 냄새가 나는 자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크게 돌았다⁠. 땅이 무는 자리였다⁠.

밤마다 더 멀리 갔다⁠. 반야봉 어깨를 넘어 뱀사골 위까지 갔다가⁠, 동이 트기 전에 굴로 돌아왔다⁠. 배가 무거워 오르막에서 숨이 찼다⁠. 몇 걸음 오르고 엎드려 쉬었다가 다시 올랐다⁠. 뱀사골 위에는 오래된 냄새가 하나 있었다⁠. 여름에 함께 철창을 나온 수컷의 냄새였다⁠. 수컷과 호단은 여름 내내 같은 골짜기를 돌았고⁠, 사흘 동안 한 바위 밑에서 함께 잤다⁠. 수컷의 냄새는 어느 날부터 새로 묻지 않았다⁠. 뱀사골 위 소나무 밑동에는 수컷이 마지막으로 뿌린 냄새가 비에 씻긴 채 남아 있었고⁠, 소나무 밑 흙에는 쇠기름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호단은 소나무 밑동에 오래 코를 대고 있다가 굴로 돌아왔다⁠.

엿새째 밤⁠, 굴 아래 비탈에서 짐승 우는 소리가 올라왔다⁠.

메에⁠. 메에에⁠.

흑염소였다⁠. 서쪽 골짜기 쇠그물 안에서 뼈까지 씹은 짐승의 소리였다⁠. 소리는 한 마리였다⁠. 쇠그물 안의 여러 마리가 아니었다⁠. 한 마리가 비탈 한가운데에서 쉬지 않고 울었다⁠. 울음 끝이 떨렸다⁠. 호단의 혀 밑에 침이 고였다⁠.

호단은 굴을 나왔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불었다⁠. 흑염소 냄새가 짙었다⁠. 맵고 노린 냄새⁠, 똥 냄새⁠, 겁먹은 짐승의 오줌 냄새⁠. 송아지 냄새는 없었다⁠. 호단은 바람을 거슬러 천천히 내려갔다⁠. 걸음마다 코를 땅에 댔다⁠. 쇠 냄새를 찾았다⁠. 쇠기름 냄새가 비탈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지만 낮에 사람이 지나간 냄새와 섞여 흐렸다⁠. 차가운 쇠의 날카로운 냄새는 맡아지지 않았다⁠. 흑염소가 서 있는 자리 둘레에는 염소 똥이 흩어져 있었고⁠, 흙을 새로 뒤집은 냄새가 났다⁠.

흑염소는 작은 나무에 매여 있었다⁠. 목에 끈이 감겨 있었고⁠, 끈 길이만큼만 뱅뱅 돌며 울었다⁠. 호단은 흑염소가 보이는 바위 뒤에 엎드렸다⁠. 바위와 흑염소 사이에 쓰러진 참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몸을 숨기고 다가가기 좋은 자리였다⁠. 호단은 배를 땅에 붙이고 쓰러진 참나무 밑으로 앞발을 밀어 넣었다⁠.

땅이 물었다⁠.

왼 앞발 발목 위로 가는 것이 감겨 들었다⁠. 쉭 하는 소리 다음에 살을 파고드는 아픔이 왔다⁠. 호단은 뒤로 몸을 젖혔다⁠. 가는 것이 더 조여들었다⁠. 아픔이 발목에서 어깨까지 치솟았다⁠. 흑염소가 미친 듯이 울었다⁠. 호단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를 드러내고 뒤로⁠, 옆으로⁠, 다시 뒤로 몸을 던졌다⁠. 가는 것이 땅속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땅이 놓아주지 않았다⁠.

호단은 몸무게를 다 실어 뒤로 당겼다⁠. 배 속의 것들이 놀라 마구 움직였다⁠. 땅속에서 무언가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한 번 더 당기자 흙이 터지며 나무 막대 하나가 땅에서 뽑혀 나왔다⁠. 막대는 가는 것에 매달려 호단의 앞발을 따라왔다⁠.

호단은 세 다리로 달렸다⁠. 왼 앞발을 디딜 때마다 아픔이 번쩍했고⁠, 뒤에서 막대가 돌과 나무뿌리에 부딪히며 덜그럭거렸다⁠. 비탈을 반쯤 올랐을 때 막대가 바위 두 개 사이에 끼었다⁠. 호단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호단은 바위를 향해 돌아서서 앞발을 힘껏 끌어당겼다⁠. 막대와 가는 것이 이어진 자리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막대가 바위틈에 남고⁠, 호단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는 것은 발목에 감긴 채 남았다⁠. 끊긴 끝이 털 밖으로 삐져나와 걸을 때마다 땅을 긁었다⁠. 자기 피 냄새가 코에 닿았다⁠. 호단은 세 다리로 굴까지 올라갔다⁠. 굴에 들어가서야 왼 앞발을 핥았다⁠. 핥으면 가는 것이 혀를 찔렀다⁠. 그래도 핥았다⁠. 피 맛이 났다⁠. 흑염소 울음이 오래 비탈을 타고 올라왔다⁠.

호단은 이빨로 가는 것을 물어 보았다⁠. 송곳니가 쇠에 닿자 이빨 뿌리까지 시렸다⁠. 어금니로 씹어 보았다⁠. 가는 것은 씹히지 않고 미끄러져 살을 더 깊이 눌렀다⁠. 호단은 물기를 그만두고 앞발을 배 밑에 감추었다⁠. 배 속의 것들이 앞발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호단은 둥글게 몸을 말아 아픈 앞발과 배를 한꺼번에 감쌌다⁠. 굴 바닥의 마른 잎이 피에 젖어 눅눅해졌다⁠.

*

새벽 두 시 십 분⁠, 육한담은 관사 방에서 준호의 전화를 받았다⁠.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선배⁠, 마을 경보 떴어요⁠. 범바위 아래⁠, 외양간 위 일 킬로 안이요⁠. 점이 이상해요⁠. 한 시 점하고 두 시 점 사이에 삼백 미터를 왔다 갔다 했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 문자 다 받았어요⁠. 단톡방 난리 났어요⁠.⁠”

준호가 화면 글씨를 읽었다⁠.

「⁠주영길⁠: 아아 이장입니다 염소 소리 남 누구 염소요⁠」

「⁠윗집 할매⁠: 이장 염소 아니여⁠?⁠」

「⁠주영길⁠: 우리 염소는 다 우리에 있음 서른 마리 아니 스물아홉 마리 아니 잠깐만⁠」

「⁠주영길⁠: 십삼번이 없음⁠」

「⁠주영길⁠: 아 십삼번은 어제 팔았음⁠. 순찰대장한테⁠. 아차⁠」

「⁠방칠구⁠: 형님 염소를 왜 순찰대장한테 파요⁠」

「⁠주영길⁠: 순찰 도는 데 쓴다 해서⁠. 염소가 순찰을 도는 줄 알았지⁠」

한담은 작업복을 입었다⁠. 노트북과 안테나는 표정훈에게 반납했지만⁠, 구급 가방은 수의사 몫이라 관사에 있었다⁠. 가방 안에 진통제와 소독약과 붕대가 들어 있었다⁠. 마취총은 사육장 금고에 있었고⁠, 금고 열쇠는 표정훈이 가지고 있었다⁠.

“⁠선배⁠, 센터장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는데요⁠.⁠”

“⁠말씀드려⁠. 나는 올라갈 거야⁠.⁠”

“⁠선배 대기잖아요⁠.⁠”

“⁠나는 수의사야⁠. 범이 다쳤으면 수의사가 가야지⁠.⁠”

“⁠다쳤는지 아직 몰라요⁠.⁠”

“⁠점이 삼백 미터를 왔다 갔다 했다며⁠. 범은 사냥할 때 그렇게 안 움직여⁠. 뭔가에 묶였을 때 그렇게 움직여⁠.⁠”

*

새벽 세 시⁠, 한담과 준호는 칠구의 외양간 뒤 비탈을 올랐다⁠. 외양간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칠구가 문간에 서서 둘을 보았다⁠. 총은 메지 않았다⁠. 한담과 눈이 마주쳤지만 칠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이 억새밭으로 올라갈 때까지 칠구는 문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외양간 안에서 점박이가 한 번 길게 울었고⁠, 칠구는 돌아보지 않고 혀를 두 번 찼다⁠.

흑염소 울음은 억새밭 위 참나무 숲에서 들렸다⁠. 울음이 쉬어 있었다⁠. 한담은 머리 전등을 비추며 숲으로 들어갔다⁠. 작은 물푸레나무에 흑염소 한 마리가 매여 있었다⁠. 목에 묶인 끈이 나무를 수십 바퀴 감아 흑염소는 나무에 머리를 붙인 채 떨고 있었다⁠. 귀에 노란 귀표가 달려 있었다⁠. 「⁠13⁠」⁠.

준호가 흑염소에게 달려가 끈을 풀었다⁠. 흑염소는 준호의 무릎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십삼번아⁠, 괜찮아⁠. 이장님한테 데려다줄게⁠.⁠”

한담은 흑염소가 매여 있던 나무와 쓰러진 참나무 사이를 비추었다⁠. 낙엽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쓰러진 참나무 밑에 흙이 터진 구덩이가 있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굵은 털이 뭉텅이로 묻어 있었다⁠. 연한 주황 털과 흰 털이었다⁠. 피가 낙엽에 점점이 떨어져 비탈 위로 이어졌다⁠. 한담은 피를 따라 올라갔다⁠. 바위 둘 사이에 나무 말뚝 하나가 끼어 있었다⁠. 말뚝 머리에 끊긴 철사가 감겨 있었고⁠, 끊긴 끝에 피와 털이 엉겨 있었다⁠.

한담은 쪼그려 앉아 철사의 끊긴 끝을 보았다⁠. 끊긴 자리가 고르지 않았다⁠. 당겨서 끊긴 자리였다⁠. 고리 쪽 철사는 범과 함께 갔다⁠.

등 뒤에서 전등 하나가 더 다가왔다⁠. 무거운 발소리였다⁠. 쇠기름 냄새가 먼저 왔다⁠.

“⁠아이고⁠, 선생님⁠. 벌써 와 계시네예⁠.⁠”

곽두식이었다⁠. 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무내골 마을 순찰대장⁠」 완장이 전등 불빛에 하얗게 떴다⁠. 곽두식은 한담 옆으로 와서 바위틈에 낀 말뚝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누가 놨습니꺼⁠? 큰일 날 사람이네⁠.⁠”

“⁠대장님 염소예요⁠. 이장님한테 십삼번 사 가셨잖아요⁠. 어제 오후에⁠.⁠”

한담이 말했다⁠. 오후에 회관 앞을 지나다가 주영길이 염소를 판 돈으로 막걸리를 한 상자 더 샀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다⁠.

“⁠염소는 제가 샀지예⁠.⁠” 곽두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대 경보지예⁠. 범이 내려오면 염소가 먼저 압니더⁠. 울어서 마을 사람들 깨우라꼬⁠. 덕분에 오늘 다 깼잖습니꺼⁠. 경보 문자보다 염소가 빨랐다 카데예⁠.⁠”

“⁠염소 앞에 올무가 있었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예⁠. 이 산에 피해방지단만 열 명입니더⁠.⁠”

준호가 십삼번을 끌어안은 채 곽두식을 노려보았다⁠.

“⁠대장님 발자국이 올무 자리까지 나 있어요⁠. 등산화 바닥이 톱니 모양이잖아요⁠. 저 어제 범바위 길에서 대장님 발자국 다 외웠어요⁠.⁠”

곽두식이 준호를 보았다⁠. 웃음은 그대로였다⁠. 금니가 전등 불빛에 빛났다⁠.

“⁠동생님⁠, 등산화는 다 톱니입니더⁠. 칠구 형님 장화만 빼고⁠.⁠”

곽두식은 허리를 굽혀 바위틈의 말뚝을 붙잡았다⁠. 한 번 비틀어 뽑아 들었다⁠. 말뚝 머리의 철사가 흔들렸고⁠, 엉긴 털이 전등 빛에 반짝였다⁠. 곽두식은 말뚝을 눈높이로 들어 올려 끊긴 철사 끝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선생님⁠, 이거 하나는 알겠네예⁠.⁠”

곽두식은 말뚝을 한담 앞에 내밀었다⁠. 피 냄새가 한담의 코에 닿았다⁠.

“⁠고리가 다리에 남았네예⁠. 이 철사⁠, 시간 지나면 살 속으로 파고듭니더⁠. 다리 하나 절면 멀리 못 갑니더⁠. 굴 근처에서 맴돌겠지예⁠. 배도 부르고⁠.⁠”

한담은 말뚝을 받지 않았다⁠. 곽두식은 말뚝을 거두어 배낭 옆구리에 꽂았다⁠.

“⁠증거품이니까 제가 경찰서에 갖다 드리지예⁠. 순찰대장이 할 일이라예⁠.⁠”

곽두식은 총을 고쳐 메고 비탈을 내려갔다⁠. 준호가 따라가려 하자 한담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곽두식의 전등이 억새밭 아래로 사라졌다⁠. 준호는 십삼번의 끈을 손목에 감은 채 이를 악물었다⁠.

한담은 피가 이어진 비탈 위를 비추었다⁠. 범바위가 어둠 속에 검게 솟아 있었다⁠. 바위틈에서 무언가가 한 번 움직였다⁠. 전등 빛이 닿지 않는 높이였다⁠. 한담은 휴대전화를 꺼내 표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네 시였다⁠. 신호가 일곱 번 가고 나서 표정훈이 받았다⁠. 잠긴 목소리였다⁠.

“⁠센터장님⁠, 호단이 올무에 걸렸어요⁠. 왼 앞발이에요⁠. 말뚝은 뽑았는데 고리가 다리에 남았어요⁠. 금고 열쇠 주세요⁠. 마취총 가지고 올라가야 해요⁠.⁠”

전화 너머가 한참 조용했다⁠.

“⁠육 선생⁠, 지금 몇 주예요⁠?⁠”

“⁠열네 주요⁠. 일주일 안팎에 낳아요⁠.⁠”

“⁠출산 일주일 전 범한테 마취총을 쏘면 어떻게 되는지 육 선생이 나보다 잘 알잖아요⁠. 약이 새끼한테도 갑니다⁠. 그리고 마취해서 다가가는 건 재포획이에요⁠. 재포획 결정권은 이제 환경부에 있어요⁠. 나한테도 없어요⁠.⁠”

“⁠기다리면 다리를 잃어요⁠. 철사가 뼈까지 먹어 들어가요⁠. 다리 잃은 범은 외양간으로 내려와요⁠.⁠”

“⁠그럼 세 번째가 나고⁠, 환경부가 잡겠지요⁠.⁠” 표정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육 선생⁠, 나도 이렇게 말하기 싫어요⁠. 그런데 육 선생이 마취총 들고 올라가서 새끼가 잘못되면⁠, 그건 육 선생 혼자 지는 일이 아니에요⁠. 지리산 범 복원 전체가 지는 일이에요⁠. 아침에 환경부에 보고할게요⁠. 기다려요⁠.⁠”

전화가 끊겼다⁠. 한담은 전등을 끄고 구급 가방의 끈을 어깨에 다시 걸었다⁠. 가방 안에서 소독약 병들이 부딪쳤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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