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87자)

호랑이 마을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호단은 굴 위 하늘에서 처음 듣는 소리를 들었다⁠. 벌보다 크고 매보다 작은 것이 쉬지 않고 앵앵거렸다⁠. 날갯짓 소리가 아니었다⁠. 날개를 치지 않고 한 자리에 떠 있었다⁠. 냄새도 없었다⁠. 냄새 없는 것이 하늘에 떠서 굴 입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호단은 굴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마른 잎이 바스락거렸다⁠. 앵앵거리는 소리가 내려왔다가 올라갔다가⁠, 해가 한 뼘 움직일 동안 그치지 않았다⁠. 소리가 그치자 이번에는 비탈 아래에서 사람 냄새가 올라왔다⁠. 땀 냄새와 단 음식 냄새와 꽃 냄새 비슷한 것을 뿌린 냄새였다⁠. 사람들의 높은 소리가 바위에 부딪혀 굴 안까지 울렸다⁠. 한 무리가 가면 다른 무리가 왔다⁠.

호단은 낮에 잠들지 못했다⁠. 잠들려고 하면 앵앵거렸고⁠, 앵앵거림이 그치면 사람 소리가 났다⁠. 배 속의 것들도 잠들지 않았다⁠. 배가 단단하게 당겼다가 풀렸고⁠, 당길 때마다 호단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산이 조용해졌다⁠. 호단은 굴을 나와 비탈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옆으로 돌았다⁠. 사람 냄새가 묻지 않은 골짜기를 찾았다⁠. 골짜기마다 사람 냄새가 묻어 있었다⁠. 낮에 다녀간 냄새였다⁠. 호단은 가장 옅은 골짜기 바위틈에 엎드려 밤을 보냈다⁠. 동틀 녘⁠, 사람들이 다시 오기 전에 굴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송아지 냄새를 맡았다⁠. 동쪽 빈터의 냄새가 아니었다⁠. 굴로 오르는 길 바로 옆⁠, 낙엽 밑에서 올라오는 냄새였다⁠. 새 냄새였고⁠, 쇠기름 냄새와 철사 냄새가 함께 났다⁠. 호단은 낙엽 밑의 냄새를 크게 돌아 굴로 올라갔다⁠.

*

11월 2일 토요일 오전 열 시⁠, 무내골 들머리에 관광버스 두 대가 멈춰 있었다⁠. 육한담은 센터 조끼를 벗고 회색 등산 점퍼를 입고 버스 사이를 지나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출입 금지 합판은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대신 같은 자리에 새 합판이 서 있었다⁠.

「⁠호랑이 마을 무내골 · 주차 오천 원 · 호랑이 막걸리 있음⁠」

회관 앞마당에 천막이 쳐져 있었다⁠. 장관 행사 때 센터 마당에 섰던 천막과 똑같은 하얀 천막이었다⁠. 천막 아래 탁자에 막걸리 병이 줄지어 있었다⁠. 병마다 크레파스로 그린 범 얼굴 상표가 붙어 있었다⁠. 범 얼굴은 웃고 있었고⁠, 수염이 여섯 가닥이었다⁠. 주영길의 손자가 그렸다고 했다⁠.

“⁠아아⁠, 이장입니다⁠. 호랑이 막걸리 한 병 팔천 원⁠. 범 선생이 마신 막걸리는 아니고⁠, 범 선생 사는 산의 물로 담근 막걸리⁠.⁠”

주영길은 메가폰을 들고 천막 앞을 오갔다⁠. 관광객들이 웃으며 병을 샀다⁠. 머리에 호랑이 귀 머리띠를 쓴 젊은 여자 둘이 막걸리 병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등산복 차림의 중년 부부는 주영길에게 범을 직접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볼 수는 있소⁠. 저 위 범바위에 사시니께⁠. 근디 보믄 큰일 나제⁠.⁠”

“⁠보면 왜 큰일 나요⁠?⁠”

“⁠범이 사람을 봤다고 소문내믄 큰일 나지라⁠.⁠”

부부는 웃었고⁠, 막걸리를 두 병 샀다⁠.

천막 끝에서는 외국 방송사 촬영팀이 주영길의 손자를 붙잡고 있었다⁠. 통역하는 사람이 범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손자는 막걸리 상표를 가리켰다⁠. 자기가 그린 범이라고 했다⁠. 촬영팀이 상표를 크게 찍었다⁠. 주영길이 메가폰을 내려놓고 달려와 손자 옆에 붙었다가⁠, 카메라를 보고 머리를 쓸어 넘기고⁠, 아는 영어를 다 꺼냈다⁠.

“⁠타이거⁠, 굿⁠. 카우⁠, 노 굿⁠. 막걸리⁠, 베리 굿⁠.⁠”

촬영팀이 박수를 쳤다⁠. 통역하는 사람은 마지막 말을 옮기지 않았다⁠. 한담은 준호에게서 온 문자를 읽었다⁠. 「⁠센터장님 오늘 세종에서 감사 받으세요⁠. 재포획팀 대기⁠. 저는 마을 순찰 보조래요 ㅠ⁠」 한담은 천막 옆을 지나 칠구의 외양간으로 올라갔다⁠. 외양간 앞 개울가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휴대전화를 높이 들고 외양간 안을 찍었다⁠. 외양간 기둥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칠구의 글씨였다⁠.

「⁠사진 찍으면 사료 한 포대 값 내시오 · 이만 원 · 점박이는 안 됨⁠」

칠구는 외양간 문간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지폐 몇 장이 접혀 있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이만 원을 내밀자 칠구는 지폐를 받고 턱으로 외양간 안을 가리켰다⁠. 남자가 들어가 송아지들을 찍었다⁠. 다른 관광객이 저 끝의 소가 송아지 잃은 어미냐고 물었다⁠.

“⁠점박이는 안 된다고 써 놨소⁠.⁠”

“⁠이만 원 더 드릴게요⁠.⁠”

“⁠점박이는 돈 받고 안 보여 줘⁠.⁠”

한담은 개울 건너에서 칠구를 보았다⁠. 칠구가 고개를 들어 한담을 보았다⁠. 칠구는 등산 점퍼를 위아래로 훑더니 손짓으로 불렀다⁠. 한담이 개울을 건너가자 칠구는 지폐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아가씨⁠, 조끼 벗으니께 관광객 같네⁠. 이만 원⁠.⁠”

“⁠구경 온 거 아니에요⁠.⁠”

“⁠여기 온 사람 다 구경 왔다고 안 혀⁠.⁠” 칠구는 회관을 턱으로 가리켰다⁠. “⁠총회에서 어제 정했어⁠. 막걸리 판 돈으로 곽 대장을 마을 순찰대장으로 들이기로⁠. 밤마다 마을을 돈다고⁠. 관광객들 쓰레기도 줍고⁠.⁠”

“⁠곽 대장님 쓰레기 안 주우실 거예요⁠.⁠”

“⁠그건 나도 알아⁠.⁠”

칠구는 뜻밖에 웃었다⁠. 웃음은 짧았다⁠. 칠구는 외양간 안의 점박이를 돌아보았다⁠. 점박이는 관광객들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여물통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이만 원씩 받으믄 하루에 사료 열 포대여⁠. 범 덕에 사료값 버는 놈이 되니께 기분이 이상혀⁠. 그래도 받어⁠. 받을 것은 받어⁠. 이장 형님 말이 그 말 하나는 맞아⁠.⁠”

*

정오⁠, 회관 마당에서 생방송이 시작됐다⁠. 곽두식이 얼룩무늬 조끼에 「⁠무내골 마을 순찰대장⁠」 완장을 차고 휴대전화 앞에 자리를 잡았다⁠. 휴대전화는 셀카봉 끝에 달려 있었다⁠. 화면 위쪽에 글씨가 떴다⁠. 「⁠곽포수TV · 생방송 · 시청 3⁠,812⁠」⁠.

“⁠여러분⁠, 함양 곽포수입니더⁠. 오늘은 호랑이 마을 무내골에 나와 있심더⁠. 저는 오늘부터 이 마을 순찰대장입니더⁠. 범을 잡으러 온 게 아니고예⁠, 마을을 지키러 왔심더⁠. 범도 지키고 마을도 지키고⁠. 둘 다⁠.⁠”

화면 오른쪽으로 시청자들의 글이 빠르게 올라갔다⁠. 「⁠포수님 범 보여 주세요⁠」 「⁠범 쏘면 구독 취소⁠」 「⁠범 쏘면 구독함⁠」⁠. 곽두식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웃었다⁠.

“⁠범 쏘면 구독한다는 분⁠, 그라믄 안 됩니더⁠. 범은 우리 국민 재산입니더⁠.⁠”

한담은 회관 마당 가장자리에서 방송을 지켜보았다⁠. 준호가 막걸리 천막 뒤에서 나타나 한담 옆에 붙었다⁠. 준호는 주황 조끼를 입고 있었다⁠. 장관 행사 이후 준호는 재포획팀 막내가 되어 있었다⁠. 표정훈이 맡긴 수신기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선배⁠, 오늘 범바위 길 둘러보래요⁠. 재포획할 때 다닐 길이요⁠. 혼자 가기 싫어요⁠.⁠”

“⁠나는 추적에서 빠졌어⁠.⁠”

“⁠추적 말고 산책이요⁠. 산책은 아무나 해요⁠.⁠”

*

범바위로 오르는 길은 칠구의 외양간 뒤 비탈에서 시작됐다⁠. 억새밭을 지나고 너덜겅을 건너면 참나무 숲이 나왔고⁠, 숲 끝에서 벼랑이 솟았다⁠. 숲길에는 낙엽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낙엽 밑에 관광객들이 버린 귤껍질과 초코바 포장이 섞여 있었다⁠. 준호가 초코바 포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제 거 아니에요⁠.⁠”

“⁠알아⁠.⁠”

“⁠제가 먹는 거랑 똑같은 거라서 주운 거예요⁠.⁠”

너덜겅을 건널 때 준호가 돌 하나를 잘못 밟아 휘청거렸다⁠. 준호는 산에서 넘어지는 일이 없었다⁠. 한담이 돌아보자 준호는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

“⁠어젯밤에 아부지가 처음으로 주무셨어요⁠. 관광객한테 받은 이만 원짜리를 세다가 외양간 의자에서요⁠. 엄마가 담요를 덮어 드렸는데⁠, 손에 돈을 쥐고 코를 고셨대요⁠. 그 얘기 듣다가 저도 못 잤어요⁠.⁠”

“⁠왜⁠?⁠”

“⁠아부지가 범 덕에 처음으로 주무셨잖아요⁠. 그게 웃기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요⁠.⁠”

참나무 숲 중간쯤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곽두식이었다⁠. 생방송을 끝내고 먼저 올라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등에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배낭에서 쇠기름 냄새와 함께 시큼하게 썩은 고기 냄새가 났다⁠. 한담은 썩은 냄새를 알았다⁠. 아이스박스에서 김이 오르던 누런 털의 냄새였다⁠.

“⁠아이고⁠, 센터 동생님하고 선생님⁠. 산책 나오셨습니꺼⁠?⁠”

준호가 길 가운데에 멈췄다⁠. 곽두식이 내려오는 길을 막는 자리였다⁠.

“⁠대장님⁠, 이 길은 재포획팀만 다녀요⁠. 순찰은 마을 안에서만 하시기로 했잖아요⁠.⁠”

“⁠마을 안이 어디고 밖이 어딥니꺼⁠? 범이 마을 안에서 송아지 묵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순찰을 마을 안에서만 하면 범은 누가 봅니꺼⁠?⁠” 곽두식이 웃었다⁠. 금니가 빛났다⁠. “⁠동생님⁠, 비키소⁠. 저 배낭 무겁심더⁠.⁠”

“⁠배낭에 뭐 들었어요⁠?⁠”

“⁠점심이지예⁠.⁠”

“⁠점심에서 썩은 냄새가 올라와요⁠.⁠”

곽두식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웃는 얼굴 그대로 곽두식이 준호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준호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준호가 고개를 들어야 곽두식의 얼굴이 보였다⁠.

“⁠동생님은 칠구 형님 아들이지예⁠? 형님이 동생님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예⁠. 소 안 키우고 범 따라다닌다고⁠. 형님 속 좀 그만 썩이소⁠. 형님 요새 잠 못 잡니더⁠.⁠”

준호의 귀가 빨개졌다⁠. 준호는 비키지 않았다⁠. 한담이 준호 옆으로 다가갔다⁠.

“⁠대장님⁠, 피해방지단 허가는 멧돼지 허가예요⁠. 범바위 근처에 틀을 놓으시면 신고하겠습니다⁠.⁠”

“⁠틀 안 놓았심더⁠. 가 보이소⁠. 틀 하나도 없심더⁠.⁠” 곽두식은 준호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옆으로 지나갔다⁠. 밀린 준호가 낙엽 위에서 한 걸음 미끄러졌다⁠. “⁠틀은 없심더⁠, 선생님⁠. 틀은⁠.⁠”

곽두식의 발소리가 숲 아래로 멀어졌다⁠. 썩은 고기 냄새도 함께 멀어졌다⁠. 준호는 어깨를 털며 곽두식이 내려간 길을 노려보았다⁠.

“⁠틀은 없대요⁠. 틀은⁠.⁠”

“⁠틀 말고 다른 거⁠.⁠”

한담은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낙엽을 보고⁠, 길가 나무 밑동을 보았다⁠. 썩은 고기 냄새가 길에서 조금 벗어난 자리에 아직 남아 있었다⁠.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불었고⁠, 냄새는 바람을 거슬러 길 오른편 덤불에서 났다⁠. 한담은 덤불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낙엽 위에 손바닥만 한 살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런 털이 붙어 있었다⁠. 살점 둘레의 낙엽이 이상하게 고르게 덮여 있었다⁠.

“⁠준호야⁠, 막대기⁠.⁠”

준호가 마른 가지를 꺾어 건넸다⁠. 한담은 가지 끝으로 살점 앞 낙엽을 살살 걷었다⁠. 낙엽 밑에서 은빛 철사가 드러났다⁠. 철사는 둥근 고리를 이루어 낙엽 밑에 누워 있었고⁠, 한쪽 끝이 근처 참나무 밑동에 여러 번 감겨 있었다⁠. 한담은 가지 끝을 고리 안에 넣고 살짝 들었다⁠. 고리가 쉭 소리를 내며 조여들어 가지를 물었다⁠. 가지가 뚝 부러졌다⁠.

준호가 뒤로 물러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담은 부러진 가지를 철사에서 빼내지 않고 들어 올렸다⁠. 고리가 조여든 자리를 손가락으로 쟀다⁠. 고리는 조이기 전에 한담의 두 팔로 만든 원만 했다⁠. 낙엽에서 들린 높이는 한담의 무릎보다 조금 위였다⁠.

“⁠멧돼지 올무가 아니야⁠.⁠”

한담의 목소리는 낮았다⁠.

“⁠멧돼지는 머리가 땅에 붙어 다녀⁠. 고리를 낮게 작게 놓지⁠. 이건 높고 커⁠. 앞발이 들어가는 높이야⁠.⁠”

준호가 낙엽 위에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범바위 벼랑이 참나무 가지 사이로 보였다⁠. 벼랑까지 오백 미터가 남아 있었다⁠. 한담은 부러진 가지를 문 철사를 낙엽 위에 내려놓고⁠, 참나무 밑동에 감긴 철사 끝을 손으로 따라갔다⁠. 철사는 밑동을 세 번 감고 땅속 말뚝으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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