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6,486자) · 2024년 12월 7일~14일, 여의도
명패 195매
이재명의 삶 · 네오
2024년 12월 7일 오전 10시,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계엄을 선포하고 나흘 만이었다. 담화에서 대통령은 자기 거취를 한 문장으로 넘겼다.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습니다.”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올라와 있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담화 뒤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조기 퇴진은 피할 수 없다고 했고, 이 길로 한덕수 국무총리를 찾아가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마주 앉았다. 오후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탄핵안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표결하는 방법까지 정했는데, 이 방법은 본회의장에 남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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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3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열었다. 첫 안건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결이었다. 이 표결에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고 표를 넣었다. 의장이 결과를 읽었다.
“김건희 특검법 재의 건은 총투표수 300표 중 가 198표 부 102표로 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다음 안건이 탄핵소추안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줄지어 본회의장 문을 나섰다. 야당 의석에서 야유와 절규가 한꺼번에 터졌다. 나가려면 지금 나가라고, 비겁하게 머리를 굴리느냐고 누군가 소리쳤다.
여당 의석에 한 사람이 남았다. 안철수 의원은 표결 전에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어 둔 사람이었다. “표결 전까지 윤 대통령의 퇴진 일정이 수립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안철수는 텅 빈 의석 사이에 앉아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저녁 6시 20분쯤 투표가 시작됐다. 안철수 의원이 나가 표를 넣었다. 그러고는 텅 빈 여당 의석을 가로질러 본회의장을 나갔다. 투표가 시작된 뒤 김예지 의원이 돌아와 표를 넣었다. 저녁 7시쯤에는 김상욱 의원이 홀로 본회의장에 돌아왔다. 김상욱이 투표를 마치고 돌아서자 야당 의원들이 다가가 고맙다고 인사했다. 세 사람 말고 돌아오는 국민의힘 의원은 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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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분의 2, 200명이 투표해야 개표할 수 있었다. 범야권 의석은 192석이었다. 국민의힘에서 여덟 명이 더 와야 했고, 세 명이 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비어 있는 의석을 향해 부르고 또 불렀다. “참석해달라. 전세계가 본다 부탁드린다.” “조금이라도 부끄럽다면 참여해달라. 부끄럽지 않게 살아달라.” 전용기 의원은 나흘 전 이 밤을 꺼냈다.
“저희는 그날 총맞고 죽는 줄 알았다. 우리는 죽는 줄 알았다.”
고성이 오가는 사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이렇게 맞받았다. “알아서 할 테니까 조용히 하라.”
민주당 의원들은 세 시간 넘게 기다렸다. 밤 8시 50분쯤 우원식 의장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다시 말했다. “부결하더라도 투표를 진행해달라.” 대답이 없자 우원식은 시한을 걸었다. “9시 20분까지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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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담장 밖은 이 시각 다른 소리로 차 있었다. 「범국민촛불대행진」에 모인 사람은 집회 측 추산 100만 명, 경찰 추산 11만 명이었다. 형형색색의 야광봉과 아이돌 응원봉이 여의도를 물들였고, 에스파와 NCT와 여자아이들의 노래에 맞춰 20대들이 「탄핵」을 외쳤다. 이 밤의 국회 앞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밤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핫팩과 음료수, 김밥과 소시지가 끊임없이 건네졌다.
고3 이한결(18)은 팔도 아프고 목도 아프지만 집회는 계속 나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분노만으로 시위하면 못 뭉친다. 많은 시민이 같은 뜻으로 모였으니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여든여덟 살 최은식도 이 자리에 있었다.
“이 추위에 나서서 탄핵·체포·하야를 말하는 시민들 목소리를 듣는다면 즉시 국가가 정상화될 수 있게 뭐든 해야한다.”
9시 20분이 지나자 우원식 의장이 의사봉 앞에서 결과를 읽었다.
“명패 수를 확인한 바 총 195매로서 투표 하신 의원 수가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안건에 대한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
다섯 표가 모자랐다. 투표함은 열리지 않았고, 탄핵소추안은 개표도 없이 폐기됐다. 의장은 말을 이었다. “전 국민이 오늘 국회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절차도 몹시 중요하다.” 그리고 사과했다. “국회를 대표해 국민께 죄송하다.”
국회 앞의 응원봉 아래에서 사람들이 울었다. 열아홉 살 전희연은 차라리 반대표라도 던졌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울면서 분노했고, 탄핵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재명은 이 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송구하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역사의 퇴행을 막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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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후 국회에서 이재명이 기자들 앞에 섰다.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대표가 함께 국정을 챙기겠다고 밝힌 뒤였다. 이재명은 이 구상부터 겨눴다.
“여당 대표와 총리가 다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배후에 숨어 내란 공모 세력을 내세워 내란 상태를 이어 가려 한다고, 얼굴을 바꾼 2차 내란 행위라고 했다. 여당은 명백한 내란의 공범이라고 불렀다. 국민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지 여당을 대통령으로 뽑은 일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윤 대통령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갈 길을 하나로 좁혔다. “내란 주범, 군사 반란 주범 윤석열은 이른 시일 내에 자진해 사퇴하거나 탄핵돼야 한다.” 탄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주중에 발의하고 주말 본회의에서 표결하는 길을 민주당은 다시 걷기로 했다. 이재명은 날짜를 못 박았다.
“오는 14일 민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그를 탄핵하겠다.”
12일, 야 6당이 탄핵소추안을 다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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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오전, 이재명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말을 건넸다. “국민의힘 의원들께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헌법 기관으로서 역사적 관점과 국가적 관점에서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주길 바란다.” 오후 3시 30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헌법 조문을 들었다.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명시한 헌법 46조 2항에 따라 국민을 위해 표결해 달라.” 오후 4시 5분, 본회의가 열렸다. 우원식 의장이 말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길 위에 서 있다.”
이번에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당론은 반대였고, 투표는 무기명이었다. 재적의원 300명이 모두 명패와 투표용지를 넣었다. 오후 4시 59분쯤 의장이 숫자를 읽었다.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
일주일 전 195매에서 멈췄던 명패가 이날은 300매였다. 범야권 192석에 국민의힘에서 열두 명이 당론과 다른 표를 더했다. 민주당 의석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졌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말없이 본회의장을 나갔다. 대통령의 직무는 이 순간부터 멈췄고, 권한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행하게 됐다. 헌법재판소에는 180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9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63일이 걸렸다.
가결을 선포한 뒤 우원식 의장이 국민에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희망은, 국민 속에 있습니다.” “희망은 힘이 셉니다.” 그러고는 계엄 뒤 열하루를 거리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취소했던 송년회, 하십시오.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가결 직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반대한 의원들이 찬성한 의원들에게 거세게 항의했고, 한동훈 대표에게 물러나라는 말이 나왔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말했다. “제 거취를 여러분께 일임하겠다.” 장동혁 최고위원도 일어섰다. “탄핵을 막지 못하면 직을 걸겠다고 했는데, 오늘 탄핵안이 가결됐다.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드린 약속대로 입장을 곧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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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쯤 가결 소식이 국회 앞에 닿았다. 주최 측 추산 200만 명, 경찰 비공식 추산 20만 명이 모인 여의도에서 묵직한 함성이 올라왔다. 대형 스피커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장구와 꽹과리를 든 사물놀이패가 사람들 사이를 돌았고, 일곱 살 아이는 「윤석열 할아버지는 물러가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연신 흔들었다. 프랑스에 사는 한 교민이 국회 근처에 커피 1,000잔을 미리 결제해 두었다.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일 수 있는 「키즈버스」도 와 있었다.
응원봉을 흔들던 서른아홉 살 차연서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드디어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만 같아요.” 계엄 뒤 며칠 밤을 잠들지 못했던 차연서는 오늘 밤은 푹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세 가족이 함께 여의도에 왔다는 마흔아홉 살 정상원이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네 살 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했었는데 몇 년 안 돼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 대구 출신으로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여럿이 군인이었다는 마흔아홉 살 박재욱도 있었다. “군인을 희생자 삼은 대통령 행태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러고는 웃으며 덧붙였다. “이제 계엄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신명하게 술 한잔해야겠다.”
같은 날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는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와 자유통일당 등이 연 집회였고, 경찰 비공식 추산 4만 1,000명, 주최 측 추산 310만 명이었다. 가결 소식에 일부 참가자는 소리를 지르며 땅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연단에 선 장학일 자유마을 총재가 말했다. “윤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했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 예순여덟 살 정용호는 헌법재판소를 바라봤다. “헌법재판소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
본회의가 끝나고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앞 계단에 모여 사진을 찍고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어진 의원총회에서 이재명은 환호를 거뒀다. “이것이 승리는 아니다.” 분출된 광장의 에너지를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는 힘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신뢰를 주는 당과 국회의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재명은 국회 앞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대회」 무대에 올랐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증명하고 계십니다.”
응원봉의 물결 앞에서 이재명은 이어 말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이제 겨우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뿐입니다.” “우리 앞에 더 크고 험한 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엄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양심이 있다면 이 대명천지에 그 어처구니없는 계엄령을 선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무대 아래를 향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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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에 예순한 살 김인봉이 있었다. 1980년 계엄 때 김인봉은 병영 훈련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붙잡혀 갇혔다. 마흔네 해가 지나 다시 계엄이 선포됐고, 열하루 뒤 이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직무가 멈췄다. 이재명이 말했다.
“내가 겪은 끔찍한 세상이 다시 오지 않는,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와 안도감이 든다.”
이 말을 하며 이재명은 웃어 보였다.
출처 · 머니투데이, 2024년 12월 7일, 「윤 대통령 ‘백지위임장’ 받고 탄핵 막은 국민의힘...尹 운명 가른 10시간」 · 뉴스1, 2024년 12월 7일, 「계엄 막은 우원식, 3시간 기다렸지만…“국회 대표해 국민께 죄송”」 · 경향신문, 2024년 12월 7일, 「〔국회 풍경〕 국민의힘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윤석열 탄핵안’ 투표 참여…성립까지 ‘5표’」 · 연합뉴스, 2024년 12월 7일, 「〔2보〕 ‘尹대통령 탄핵안’ 표결 무산…與 불참에 ‘투표 불성립’」 · 미디어오늘, 2024년 12월 7일, 「〔속보〕 윤석열 탄핵안 투표불성립 폐기...국힘 105명 불참에 ‘분노’」 · 경향신문, 2024년 12월 8일, 「울며 나서고 웃으며 싸운 시민들 “탄핵될 때까지 국회 앞 지킨다”」 · 경향신문, 2025년 5월 29일, 「〔불법계엄의 밤 이후〕 이재명의 177일…」 · 연합뉴스, 2024년 12월 8일, 「이재명 “韓·韓, 헌정질서 파괴…14일 반드시 尹 탄핵할 것”(종합)」 · 서울신문, 2024년 12월 14일, 「이재명 “이것이 승리는 아니다”…탄핵 절박했던 민주당의 하루」 · 한겨레, 2024년 12월 14일, 「〔속보〕 윤석열 탄핵안 가결, 대통령 직무정지…찬성 204표」 · 뉴시스, 2024년 12월 14일, 「탄핵안 가결…야 잠시 ‘환호’, 여 말 없이 퇴장」 · 머니투데이, 2024년 12월 14일, 「〔전문〕우원식 “탄핵안 가결, 국민이 이끌어…탄핵 심판 충실히 임할 것”」 · 머니투데이, 2024년 12월 14일, 「‘탄핵 후폭풍’ 권성동 ‘제 거취 일임’…일부 의원 ‘한동훈 사퇴하라’」 · 한국일보, 2024년 12월 14일, 「〔현장〕 “우리가 해냈다” 외친 200만 시민들… ‘이젠 헌재가 응답하라’」 · 중앙일보, 2024년 12월 14일, 「〔속보〕 이재명 집회현장 찾아 “1차전 승리…이제 작은 산 하나 넘었다”」 · 이로운넷, 2024년 12월 14일, 「〔이로운넷현장〕이재명 대표, “위기를 구한 것은 언제나 국민”...빛의 혁명 보여준 국민의 승리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