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35자)

한 뼘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눈은 소리를 먹는다⁠. 12월 16일 새벽⁠, 커튼 너머 골목이 유난히 조용해서 나는 밤새 눈이 왔다는 것을 창을 열지 않고 알았다⁠. 오토바이도 지나가지 않았고⁠, 옆집 개도 짖지 않았다⁠. 여섯 시가 되자 마당에서 넉가래가 시멘트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아버지였다⁠. 넉가래는 대문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대문까지 갔다⁠. 계단 입구 앞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손님이 미끄러지지 않게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긁는 소리였다⁠.

오늘 손님이 온다는 것도 바닥으로 들었다⁠. 어젯밤 아버지는 전화기에 대고 열한 시라고 두 번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말은 한 번만 했고⁠,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말은 오히려 바닥을 잘 탄다⁠.

상담 앱을 열었다⁠.

「⁠오늘 의사 온대⁠. 정신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용기 있는 선택이에요⁠.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미리 적어 두는 것도 좋아요⁠.⁠」

「⁠내가 고른 거 아니야⁠.⁠」

「⁠그렇군요⁠.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더 불편할 수 있어요⁠. 지금 몸은 괜찮으신가요⁠?⁠」

열은 내렸다⁠. 몸은 괜찮았다⁠. 앱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넉가래 소리가 멎고⁠, 아버지가 계단 입구에서 발을 굴러 신발의 눈을 터는 소리가 났다⁠. 네 번이었다⁠.

*

경첩 나사 두 개는 복도 창턱의 하얀 종지 안에 들어 있었다⁠. 지난주 목요일 모진국이 드릴을 내려놓고 내려간 뒤 내가 주워 담은 나사였다⁠. 이레 동안 아무도 나사를 다시 박지 않았고 버리지도 않았다⁠. 위쪽 경첩은 나사 두 개로 문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의사가 오는 날이라 나는 오전 열 시 반에 왔다⁠. 방문 앞 바닥에 앉으면서 자리를 바꿨다⁠. 경첩이 달린 문 끝에 등을 대고⁠, 손잡이가 달린 문 끝은 비워 두었다⁠. 바깥으로 열리는 문이라⁠, 손잡이 앞에 내가 앉아 있으면 문은 열릴 수가 없었다⁠. 드릴이 온 날 알게 된 일이었다⁠.

드릴이 온 날 저녁⁠, 나는 해열제와 이온 음료와 쌍화탕 두 병을 문 앞에 두고 일곱 번째 칸을 밟아 내려갔다⁠. 이튿날 아침 문 앞에는 빈 병 두 개와 쪽지가 나와 있었다⁠.

「⁠약 고마워요⁠. 쌍화탕은 아버지 취향이에요⁠. 아저씨 입맛⁠.⁠」

아저씨라는 말에 나는 파란 사원증 줄 끝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스물아홉이었다⁠.

열한 시⁠, 골목에 흰 승용차가 멈췄다⁠. 옆집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왔다⁠. “⁠병원 차유⁠? 열쇠집 아들 데리러 왔수⁠?⁠” 의사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현관이 열리고⁠, 모진국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높았다⁠. 희끗한 머리에 물을 묻혀 빗어 넘겼고⁠, 늘 입던 갈색 카디건의 단추를 맨 위까지 채웠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마흔 중반으로 보였고⁠, 서류철과 휴대용 체중계를 같이 들고 올라왔다⁠. 일곱 번째 칸에서 의사가 잠깐 발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단이 우는 자리를 귀로 외워 두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문 앞 쟁반의 국그릇을 들여다본 뒤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였다⁠.

“⁠매니저님이시죠⁠. 먼저 말씀드릴게요⁠. 저는 오늘 이 문을 열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들으러 왔어요⁠.⁠”

의사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점검표를 펼쳤다⁠.

“⁠모건 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입니다⁠.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대답하기 싫은 건 넘어가셔도 됩니다⁠. 요즘 잠은 어떻게 주무세요⁠?⁠”

일 분쯤 조용했다⁠. 문 아래 틈으로 종이 한 장이 밀려 나왔다⁠. 배달 영수증 뒷면이었다⁠.

「⁠낮에 잠⁠. 밤에 깸⁠. 이 년째 시차 적응 중⁠」

의사가 웃음을 참으며 점검표에 무언가를 적었다⁠.

“⁠식사는요⁠?⁠”

「⁠치킨⁠, 떡볶이⁠, 치킨⁠. 국은 안 먹음⁠」

“⁠기분은 어떠세요⁠? 요즘 가장 자주 드는 기분이요⁠.⁠”

「⁠문 밖에 사람이 셋이라 별로⁠」

“⁠지금 셋 맞아요⁠. 매니저님⁠, 아버님⁠, 저⁠.⁠” 의사는 볼펜 끝으로 점검표의 다음 줄을 짚었고⁠,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하나는 꼭 여쭤봐야 해요⁠. 요즘 스스로를 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요⁠?⁠”

이번에는 종이가 오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숨을 세 번 쉬었다⁠.

「⁠없음⁠. 아버지 드릴이 더 위험⁠」

계단 아래에서 모진국이 헛기침을 했다⁠. 의사는 종이 넉 장을 순서대로 서류철에 끼우고⁠, 마지막으로 체중계를 문 앞에 내려놓았다⁠.

“⁠몸무게만 재 주시면 돼요⁠. 제가 아래층에 내려가 있을게요⁠. 숫자가 나오면 종이에 적어서 문 아래로 주세요⁠.⁠”

의사의 발소리가 일곱 번째 칸을 지나 내려갔다⁠. 복도에는 나와 체중계와 문만 남았다⁠. 나는 체중계를 문 앞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로 밀어 두었다⁠.

“⁠안 적어 주셔도 돼요⁠. 저도 지난주에 재 봤는데 이 킬로 쪘어요⁠. 회사 앞 편의점 도시락 때문에요⁠. 숫자로 치면 저도 위험해요⁠.⁠”

조용했다⁠. 이번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 아래로 영수증이 나왔다⁠.

「⁠도시락 뭐 먹는데요⁠?⁠」

두 해 동안 문 아래로 나온 종이 가운데 처음으로 묻는 종이였다⁠. 나는 영수증을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 보았다⁠.

“⁠제육볶음 도시락이요⁠. 반찬 칸에 김치가 세 조각 들어 있어요⁠. 늘 세 조각이에요⁠. 네 조각 들어 있는 날은 운 좋은 날이고요⁠.⁠”

「⁠운 좋은 날 며칠 있었어요⁠?⁠」

“⁠올해는 하루요⁠.⁠”

문 안에서 짧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웃음이었는지 기침이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모진국이 주전자에 물을 받는 소리가 올라왔고⁠, 나는 거실로 내려가려고 코트 자락을 털었다⁠.

*

거실 탁자에 의사와 모진국이 마주 앉았고⁠, 나는 모진국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모진국이 끓인 보리차 세 잔이 김을 올렸다⁠. 의사는 서류철을 덮고 손을 얹었다⁠.

“⁠오늘 본 것만으로는 입원 소견을 쓸 수 없어요⁠. 보호자 입원은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합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질환이 있고⁠, 본인의 건강이나 안전에⁠, 또는 다른 사람에게 위험이 있어야 하고요⁠. 서로 다른 병원 전문의 두 명의 소견이 맞아야 하고⁠, 보호의무자 두 분이 신청하셔야 해요⁠.⁠”

“⁠다른 병원 의사는 일월에 부르겠소⁠.⁠” 모진국이 바로 말했다⁠. “⁠날짜만 잡아 주시오⁠.⁠”

“⁠아버님⁠.⁠” 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선생님 말씀은 지금은 안 된다는 겁니다⁠. 건 씨는 자고⁠, 먹고⁠, 대답했어요⁠. 농담까지 했고요⁠. 방 안에 있다는 게 위험입니까⁠?⁠”

의사가 나를 보았다⁠. 대답은 차분했다⁠.

“⁠방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위험이 아닙니다⁠. 위험은 몸이 아무도 모르게 무너지는 거예요⁠. 두 해 동안 햇빛을 못 본 뼈⁠, 배달 음식만 받은 위⁠, 사람 목소리를 안 쓴 성대⁠. 저는 지난해 한 청년의 방문을 열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웃이 신고해서 갔는데⁠,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아드님이 조용한 아이라고만 하셨고요⁠.⁠”

의사는 끝을 맺지 않았다⁠. 맺지 않아도 거실의 셋은 다 알아들었다⁠. 모진국이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니까 석 달이오⁠.⁠”

“⁠체중이 줄고 끼니가 끊기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는 소견을 쓸 수도 있어요⁠.⁠” 의사는 서류철을 가방에 넣으며 덧붙였다⁠. “⁠보호의무자 두 분이라고 말씀드렸죠⁠. 어머님 계시죠⁠?⁠”

모진국은 대답하지 않고 찻잔을 상 위에서 한 바퀴 돌렸다⁠. 보리차에서 김이 오르다 말았다⁠.

의사가 돌아간 뒤에도 모진국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가 앉았던 자리의 방석이 아직 눌려 있었다⁠.

“⁠당신 누구 편이오⁠?⁠”

“⁠건 씨 편입니다⁠. 돈은 아버님이 내시고요⁠.⁠”

“⁠돈 내는 사람 편이 아니면 뭐 하러 왔소⁠.⁠”

“⁠돈 내시는 분이 원하시는 게 아드님 살리는 거라면⁠, 저도 같은 편입니다⁠. 방법만 달라요⁠.⁠” 나는 의사가 놓고 간 명함을 모진국 앞으로 밀었다⁠. “⁠석 달 동안 방법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계약서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모진국은 명함을 냉장고에 붙이지 않고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이송 업체 명함과 의사 명함이 서로 부딪쳤다⁠. 휴대전화에는 팀장의 메신저가 와 있었다⁠. 「⁠의사 방문 들어갔다면서요⁠? 우리 제휴 병원 선생님이 아니라 아쉽네요ㅠ 다음엔 우리 병원으로 연결해 주세요⁠~⁠」 나는 메신저를 지우지 않고 화면만 껐다⁠.

*

방바닥은 아래층 거실의 귀다⁠. 의사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고 또박또박해서⁠, 난방 배관을 타고 올라와도 한 마디도 뭉개지지 않았다⁠. 방문을 열어 본 적이 있다는 말이 바닥에서 올라왔을 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문을 열어 본 사람의 목소리는 노크할 때부터 다르다⁠. 의사는 처음부터 노크하지 않았다⁠.

체중계는 아직 문 밖에 있었다⁠. 몸무게를 적어 주면 숫자는 의사의 서류철로 들어간다⁠. 지난여름보다 칠 킬로그램이 빠졌다⁠. 바지를 끈으로 묶은 지 석 달째였다⁠.

서지헌의 목소리도 바닥으로 올라왔다⁠. 방 안에 있다는 게 위험이냐고 물을 때 서지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문장 끝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남았을 뿐이다⁠. 아버지 편으로 보일 거라고⁠, 돈은 아버지가 낸다고 첫날 스스로 말한 사람이 아버지 옆에 앉아서 아버지와 다른 말을 했다⁠.

나는 머리맡의 영수증 더미에서 하나를 골라 뒷면에 적다가 찢었다⁠. 다시 적다가 또 찢었다⁠. 쪽지로는 안 되는 말이 있었다⁠. 문 아래 틈은 손가락 두 마디였고⁠, 이 말은 두 마디보다 두꺼웠다⁠. 마지막으로 서랍에서 하얀 메모지를 한 장 꺼내 숫자 하나만 적었다⁠. 의사에게 줄 숫자였다⁠. 숫자는 문 아래로 반만 밀어 두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두 해 동안 밤마다 욕실에 갈 때 돌린 손잡이였는데⁠, 한낮에 잡으니 처음 만지는 쇠 같았다⁠.

*

오후 한 시⁠, 일곱 번째 칸을 밟고 올라와 경첩 앞에 다시 앉았다⁠. 계단 창으로 겨울 한낮의 해가 들어와 복도 바닥에 길게 누웠다⁠. 창밖 마당의 나무는 가지마다 눈을 얹고 있었다⁠. 햇빛이 문 앞 쟁반을 지나 식은 국그릇과 숟가락을 하얗게 비췄다⁠. 문 아래 틈에 하얀 쪽지 한 장이 반쯤 밀려 나와 있었다⁠. 모진국은 계단 맨 아래 칸에서 팔짱을 끼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의사가 가고 난 뒤로 모진국은 거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딸깍⁠.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내 귀 바로 옆에서 났다⁠. 한낮에 듣는 손잡이 소리는 처음이었다⁠. 경첩이 끼익 울었다⁠. 나사 두 개로 버티던 위쪽 경첩이 문의 무게를 새로 받는 소리였다⁠. 손잡이가 달린 문 끝이 복도로 밀려 나왔다⁠. 손가락 하나만큼⁠, 두 마디만큼⁠, 한 뼘만큼⁠. 거기서 멈췄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문이 도로 닫힐까 봐 곁눈으로만 보았다⁠. 문틈으로 얼굴 반쪽이 보였다⁠. 눈을 덮는 검은 머리가 문틀에 눌려 갈라졌고⁠, 갈라진 머리 사이로 눈 하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 밑이 어두웠다⁠. 회색 후드티 소매가 문틀을 쥐었고⁠, 소매 끝으로 나온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매니저님⁠.⁠” 목소리는 쉬었고 낮았다⁠. 계단 아래까지는 닿지 않을 크기였다⁠. “⁠아버지가 왜 문 안 따는지 알아요⁠?⁠”

나는 문틈을 보지 않고 복도 바닥의 햇빛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따면 내가 무슨 말 할지 아니까⁠.⁠”

계단 아래에서 모진국의 팔짱이 풀렸다⁠. 모진국은 한 칸도 올라오지 못하고 맨 아래 칸에 그대로 있었다⁠. 문틈의 눈이 계단 아래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햇빛이 식은 국그릇에서 문틈 앞의 하얀 쪽지까지 옮겨 와 있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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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린독자2026.10.31· 3화

    두 해 동안 닫힌 방문이 한 뼘 열리는 데서 울었어요. 눈은 소리를 먹는다는 첫 문장도 좋아요.

    • 도결애작가2026.10.31

      한 뼘이 건에게는 아주 먼 거리였어요. 눈 온 아침이라 더 조용히 열리게 했습니다.

한 뼘 ·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