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05자)

문턱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배달 앱의 요청 사항에는 글자 수 제한이 있다⁠. 오십 자⁠. 두 해 동안 나는 오십 자를 거의 다 채워 썼다⁠. 벨 누르지 마세요⁠, 노크 세 번만요⁠, 계단 위 방문 앞에 두세요⁠, 말 걸지 마세요⁠. 12월 24일 오후 세 시⁠, 떡볶이 두 인분을 담고 결제 단추를 누르기 전에 나는 오십 자 가운데 열한 자만 썼다⁠.

「⁠문 앞 남자분한테도 주세요⁠.⁠」

결제 문자는 아래층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갈 것이다⁠. 아버지는 두 인분이라는 글자를 오래 볼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서지헌이 오는 날이 아니었다⁠. 월요일과 목요일 두 시라고 첫날 스스로 정해 놓고⁠, 어제 목요일 회기가 끝날 때 서지헌은 문틈에 대고 말했다⁠. “⁠내일은 근무가 아니라서⁠, 그냥 놀러 와도 돼요⁠?⁠” 나는 한 뼘 열린 문 안에서 대답하지 않았고⁠, 서지헌은 대답하지 않은 것을 대답으로 쳤다⁠. 서지헌은 늘 그랬다⁠. 등받이 소리도 대답으로 치는 사람이었다⁠.

세 시 이십 분에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걸음은 아버지보다 가볍고 배달 기사보다 느렸다⁠. 경첩 앞에 앉는 소리⁠, 코트 자락을 접어 까는 소리가 차례로 났다⁠. 나는 문을 한 뼘 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뼘을 넘겼다⁠.

문을 반쯤 열어 두고 문턱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몸은 방 안에 있었고 발끝만 복도로 나갔다⁠. 회색 후드티 소매 밖으로 나온 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복도 바닥은 방바닥보다 두 칸쯤 차가웠다⁠. 나는 두 해 만에 복도 공기를 맨발로 밟았다⁠.

열린 문짝이 우리 사이를 반쯤 가렸다⁠. 서지헌은 경첩 앞에 그대로 앉아 문짝 너머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나도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문짝 끝으로 서지헌의 회색 코트 자락과 남색 니트 소매⁠, 무릎 위에 올린 손이 보였다⁠. 손가락이 길었고 엄지 손톱 옆에 거스러미가 일어 있었다⁠.

“⁠발 시리죠⁠.⁠” 서지헌이 말했다⁠. “⁠양말 신으세요⁠. 오늘 영하 칠 도예요⁠.⁠”

“⁠알아요⁠. 창밖 소리로 알아요⁠. 추운 날은 골목 오토바이 시동이 늦게 걸려요⁠.⁠”

떡볶이가 왔다⁠. 아버지가 봉지를 들고 올라와 우리 사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갈색 카디건 소매가 문짝 끝으로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버지는 노크하지 않았다⁠. 문이 열려 있으면 노크할 데가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두 해 만에 알았다⁠. 일곱 번째 칸이 아주 천천히 울었다⁠.

서지헌이 용기 뚜껑을 열었다⁠. 고추장 냄새와 어묵 국물 냄새가 복도에 확 퍼졌다⁠.

“⁠이 집 맵기 몇 단계로 시켰어요⁠?⁠”

“⁠삼 단계요⁠.⁠”

“⁠저 일 단계 먹는 사람인데요⁠.⁠”

“⁠알아요⁠. 그래서 삼 단계 시켰어요⁠.⁠”

서지헌이 떡 하나를 먹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 들이쉬는 소리가 세 번 연달아 났다⁠. 나는 문짝 뒤에서 웃음을 참다가 결국 소리를 냈다⁠. 두 해 동안 쓰지 않은 웃음이라 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졌다⁠. 문짝 너머의 사람도 맵다고 헉헉거리면서 따라 웃었다⁠.

떡볶이가 바닥을 보일 무렵 서지헌이 일어났다⁠. 문짝 끝으로 무릎이 펴지고 코트 자락이 올라갔다⁠. 일곱 번째 칸이 울고⁠, 대문이 닫혔다⁠. 나는 문을 닫으려다가 문턱 앞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회색 털양말 한 켤레가 비닐째 놓여 있었고⁠, 비닐 위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서지헌의 글씨는 반듯했고 끝이 조금 뭉툭했다⁠.

「⁠영하 칠 도⁠. 오늘 오토바이 시동 늦게 걸렸어요⁠.⁠」

양말은 내 발보다 한 치수 컸다⁠. 나는 양말을 신고 문을 닫았다⁠. 닫힌 문 안에서 발바닥이 처음으로 따뜻했다⁠.

*

대문을 닫고 골목으로 나오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팀장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네 시에 팀장이 직접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다⁠.

“⁠서 매니저님⁠, 오늘 응암동 가셨어요⁠? 앱에 위치 기록이 떴던데요⁠.⁠”

“⁠근무는 아니었습니다⁠. 잠깐 들렀어요⁠.⁠”

“⁠그러니까요⁠.⁠” 팀장의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근무 아닌 날 방문하시면 보험 처리가 안 돼요⁠. 무슨 일 생기면 우리 회사가 다 떠안아요⁠. 매니저님 마음은 알아요⁠. 그런데 우리 매니저 서른 명이 다 마음대로 다니면 회사가 못 버텨요⁠.⁠”

“⁠문이 열렸습니다⁠. 반쯤이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팀장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다⁠.

“⁠어머⁠, 그거 중간 보고서에 꼭 넣어 주세요⁠. 사진 있으세요⁠? 열린 문 사진이면 투자 미팅 때 너무 좋겠다⁠.⁠”

나는 사진이 없다고 했다⁠. 사진은 있었다⁠. 떡볶이를 먹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문짝 끝으로 보이던 맨발 두 짝을 찍으려다가⁠, 찍지 않고 도로 넣었다⁠. 골목 끝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두 번 만에 시동을 걸었다⁠.

*

크리스마스이브 밤 열한 시⁠, 나는 수색동 원룸 바닥에 앉아 내 노트북을 열었다⁠. 파란 사원증 줄은 현관 못에 걸어 두었다⁠. 건이 떡볶이 용기를 치우며 말했다⁠. 밤에 게임 하나 깔아 보라고⁠, 음성 채팅으로 하면 문 없이도 말할 수 있다고⁠. 원룸은 조용했다⁠. 냉장고 모터가 돌다 멎었고⁠, 인공지능 스피커가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라고 혼자 물었다⁠. 이 방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스피커 하나였다⁠.

헤드셋에서 건의 목소리가 났다⁠. 문을 사이에 두지 않은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았고⁠, 숨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들려요⁠?⁠”

“⁠잘 들려요⁠.⁠”

“⁠매니저님 캐릭터 지금 벽 보고 뛰고 있어요⁠.⁠”

나는 열네 번 죽었다⁠. 첫 번째는 다리에서 떨어졌고⁠, 다섯 번째는 우리 편 폭탄을 주웠고⁠, 열 번째쯤부터 건은 내가 죽을 때마다 숫자를 셌다⁠. 「⁠열한 번⁠」 「⁠열두 번⁠」 화면 아래 채팅창에 숫자가 올라왔다⁠. 열네 번째에 건이 헤드셋 너머에서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낮에 문짝 뒤에서 갈라지던 웃음보다 한결 매끄러웠다⁠. 귀에 닿는 웃음소리 때문에 나는 열다섯 번째도 죽을 뻔했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 건이 게임 캐릭터를 언덕 위에 세워 두고 말했다⁠. 화면 속 언덕 아래로 가짜 바다가 출렁였다⁠.

“⁠매니저님⁠. 우리 아버지가 문 안 따는 거⁠, 궁금하죠⁠?⁠”

“⁠궁금해요⁠. 안 물어볼 거예요⁠.⁠”

“⁠동네 커뮤니티에 응암동 열쇠집 검색해 봐요⁠. 물어보는 것보다 그게 빨라요⁠.⁠”

건은 접속을 끊었다⁠. 헤드셋 안에 숨소리 대신 게임 배경 음악만 남았다⁠.

동네 커뮤니티 앱은 회사 교육 때 깔아 둔 것이었다⁠. 의뢰인이 사는 동네의 분위기를 알아 두라고 했다⁠. 검색창에 열쇠집이라고 넣자 두 해 전 11월의 글이 맨 위에 떴다⁠.

「⁠응암동 시장 열쇠집 아들이 신분증도 안 보고 문 따 줬대요⁠. 빌라 사는 여자분 전 남친이 그걸로 들어가서 기다렸다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했어요⁠. 혼자 사시는 분들 출장 열쇠 부를 때 조심하세요⁠.⁠」

댓글이 이백 개 넘게 달려 있었다⁠. 「⁠그 집 아들 얼굴 아는데 순해 보이던데⁠」 「⁠순한 게 더 무섭지⁠」 「⁠사장님이 경찰에 아들이 확인 빼먹었다고 직접 말했대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말 다 했네⁠」 「⁠아들은 어디 갔어요⁠? 요즘 안 보이던데⁠」 마지막 댓글은 지난봄 것이었다⁠. 「⁠그 집 아들 아직 방에서 안 나온대요⁠. 벌 받는 거지⁠」

나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다시 혼자 켜졌다⁠. 「⁠잘 자요⁠! 내일도 좋은 하루 되세요⁠!⁠」

*

게임을 끄고 나서도 헤드셋을 한참 벗지 않았다⁠. 귀에 남은 사람 목소리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새벽 한 시 반⁠,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밤에 계단을 올라오는 것은 두 해 동안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문 앞에 서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룻장이 발뒤꿈치 무게로 내려앉았다가⁠, 아버지가 몸무게를 옮길 때마다 조금씩 소리를 냈다⁠.

“⁠두 인분 시켰더라⁠.⁠”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대답할 생각은 없었는데 목이 먼저 움직였다⁠.

“⁠삼 단계요⁠. 그 사람이 맵대요⁠.⁠”

문 밖에서 아버지가 코로 짧게 웃었다⁠. 아버지의 웃음은 늘 코로 나온다⁠. 웃음 끝에 무슨 말이 더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려갔다⁠. 일곱 번째 칸이 울고⁠, 일 층 안방 문이 닫혔다⁠. 나는 서지헌이 두고 간 양말을 신은 발을 이불 밖으로 꺼내 놓고 잠들었다⁠.

*

12월 27일 월요일 오전 열 시⁠, 응암동 시장 골목은 생선 비린내와 기름 냄새로 차 있었다⁠. 열쇠 가게는 정육점과 떡집 사이에 끼어 있는⁠, 어른 둘이 서면 꽉 차는 가게였다⁠. 유리문에 「⁠열쇠 · 도어락 · 금고 · 출장⁠」이라는 붉은 글씨가 바래 있었다⁠. 안에서 열쇠 복사기가 날카롭게 울었다⁠. 쇠를 깎는 소리가 유리문을 흔들었다⁠.

모진국은 갈색 카디건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열쇠를 깎고 있었다⁠. 내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구석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흘렀다⁠. 혼자 사는 청년이 두 명 가운데 한 명꼴이라는 조사였다⁠. 모진국이 라디오를 껐다⁠.

“⁠회기는 두 시 아니오⁠.⁠”

“⁠가게로 찾아뵌 건 회기가 아니라서요⁠.⁠”

모진국이 깎은 열쇠를 손님 열쇠 옆에 대 보고⁠, 줄로 끝을 두 번 갈았다⁠. 쇳가루가 작업대 위에 반짝였다⁠.

“⁠글 읽었구먼⁠.⁠”

“⁠건 씨가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줄질이 멈췄다⁠. 모진국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희끗한 눈썹 아래 눈이 빨갰다⁠.

“⁠그럼 다 아는 거 아니오⁠. 동네가 다 아는 걸 당신도 알게 된 거고⁠.⁠”

“⁠동네가 아는 건 아버님이 경찰에 하신 말씀까지예요⁠. 건 씨는 그다음을 안다고 했고요⁠.⁠”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왜 손잡이를 안 따시는지⁠, 건 씨가 알더라고요⁠.⁠”

모진국이 줄을 작업대에 내려놓았다⁠. 쇠가 쇠에 닿는 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계약서에 뭐라고 쓰여 있었소⁠. 왜 들어갔는지는 묻지 말라고 했지⁠.⁠”

“⁠제가 묻지 않았습니다⁠. 건 씨가 말했어요⁠.⁠”

“⁠그 녀석 입에서 나온 말이든 당신 입에서 나온 말이든 같소⁠.⁠” 모진국은 작업대 서랍을 열어 영수증 묶음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그 여자분 병원비⁠, 가게 보험으로 안 되는 건 내 돈으로 다 냈소⁠. 동네가 뭐라 하든 나는 할 거 했소⁠. 두 해 동안 아침마다 국도 올렸고⁠.⁠”

“⁠건 씨는 국을 안 드셨고요⁠.⁠”

“⁠안 먹어도 올렸소⁠.⁠”

모진국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도로 넣었다⁠. “⁠내 아들 일 들쑤시면 오늘로 끝이오⁠. 남은 돈은 돌려줄 테니 회사에 그렇게 말하시오⁠.⁠”

“⁠끝내시면 삼월 육일까지 아무도 그 문 앞에 안 앉습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님은 국을 올리시고⁠, 국은 식고⁠, 삼월 육일에 차가 오겠죠⁠. 문이 한 뼘 열린 걸 보신 날⁠, 아버님 계단 아래서 팔짱 푸셨잖아요⁠.⁠”

모진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열쇠 복사기 앞에 놓인 손님 열쇠 두 개를 비닐봉지에 넣고 봉지 입구를 두 번 꼬았다⁠. 정육점 사장이 유리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형님⁠, 오늘 셔터 열쇠 되나⁠?⁠” 모진국은 봉지를 내밀고⁠, 정육점 사장이 돌아가자 가게 밖으로 나가 셔터 고리를 잡았다⁠. 오전 열 시 반이었다⁠.

“⁠오늘은 닫소⁠.⁠”

셔터가 내려오며 녹슨 쇠가 비명을 질렀다⁠. 반쯤 내렸을 때 모진국이 손을 멈췄다⁠. 셔터 아래로 모진국의 갈색 카디건과 앞치마 끈만 보였다⁠.

“⁠새해 첫날 저 녀석 어미가 오오⁠. 열 해 만이오⁠. 의사가 보호자 둘이라고 했으니까⁠, 서명하러 오는 거요⁠.⁠”

셔터가 마저 내려왔다⁠. 시장 골목에서 떡집 기계가 떡을 뽑는 소리가 났다⁠. 길고 하얀 떡이 끊기지 않고 나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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