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29자)
소금 길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화운은 닭이 울기 전에 부엌 솥에 불을 넣었다. 찹쌀과 멥쌀을 섞어 쪄서 떡메로 친 이괴가 서른 덩이 남아 있었다. 이괴는 대리 사람들이 아침마다 구워 먹는 쌀떡이었다. 화운은 이괴를 숯불에 굽고, 하나하나 반으로 갈라 장을 바르고, 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 살을 얇게 저며 끼웠다. 서른 덩이를 대바구니 둘에 나눠 담았다. 국자는 허리띠에 꽂았다.
청매는 아직 이 층에서 자고 있었다. 화운은 대바구니를 지게에 얹으면서 이 층 계단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 일은 의논할 일이 아니었다. 의논하면 청매가 이길 일이었다.
부엌 뒷문을 나서는데 아묵이 장독대 뒤에서 튀어나왔다.
“사부님, 어디 가십니까?”
“산책 가오.”
“지게 지고요?”
“산책할 때 등이 허전하면 쓰러지오. 나이 들면 등에 뭘 얹고 걸어야 바로 서오.”
아묵은 대바구니에서 새어 나오는 장 냄새를 맡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님한테는 산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마님한테는 아무 말 마시오.”
“그럼 산책값은요?”
화운은 이괴 하나를 꺼내 아묵의 입에 물렸다.
고개를 반쯤 내려가자 비탈 아래 골짜기에 천막이 보였다. 거적과 기름 먹인 천을 나뭇가지에 걸쳐 지은 천막들이 개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연기가 서너 군데서만 올랐다. 삼백 명이 사는 골짜기에 솥은 서너 개였다. 화운은 연기 개수를 세다가 걸음을 빨리했다.
천막 어귀에서 아이들이 먼저 화운을 보았다. 맨발이었다. 한 아이가 지게의 대바구니를 보고 다른 아이의 소매를 당겼다. 아이들은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 따라왔다. 다가와도 되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 걸음이었다.
가장 큰 솥 앞에 방칠이 앉아 있었다. 가면은 그대로였다. 솥 안에는 물과 산나물과 보리 한 줌이 끓고 있었다. 방칠이 나뭇가지로 솥을 젓다가 가면을 들었다.
“국자 영감이 무슨 일이오?”
“산책 왔소.”
화운은 지게를 내리고 대바구니를 솥 옆에 놓았다. 아이들이 그제야 우르르 몰려왔다. 방칠이 손을 들자 아이들이 멈췄다. 방칠이 손을 내리자 아이들이 줄을 지었다. 화운은 국자를 뽑아 들고 아이들에게 이괴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국자로 떡을 집는 솜씨에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이걸로 우리 식구 삼백이 배부르겠소?” 방칠이 물었다.
“서른 덩이요. 열 명이 한 덩이씩 나눠 먹으면 삼백이 한 입씩은 먹소.”
“한 입 주고 땅을 지키겠다는 거요?”
“한 입 주고 얘기를 들으러 왔소.” 화운이 솥 앞에 쭈그려 앉았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방칠의 가면이 무릎 쪽으로 기울었다. 화운은 못 들은 척했다.
방칠은 한참 솥을 젓다가 입을 열었다. 지난가을 장마 끝에 흑수곡 산비탈이 무너졌다고 했다. 골짜기 마을 세 곳이 흙에 묻혔고, 살아 나온 사람들이 방칠을 따라 이 골짜기까지 왔다. 흑수곡 사람들은 원래 낙등 염정에서 소금을 지어 나르던 짐꾼이었다. 낙등은 대리 서쪽 산속의 소금 우물 마을이었다. 우물물을 끓여 소금을 굽고, 소금을 지고 산을 넘었다.
“올봄에 사계 상단이 낙등에서 사계로 바로 가는 새 길을 냈소. 운령을 넘는 길이오. 옛길보다 사흘이 짧소. 이 고갯마루에 역참 하나만 있으면 소금 짐꾼 삼백이 먹고살 수 있소. 쉬는 자리를 쥔 사람이 짐꾼을 부리오. 상단도 관도 그걸 아오. 그래서 내가 먼저 왔소.”
“역참을 하려면 밥을 지어야 하오.” 화운이 솥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밥이 아니오.”
“그러니 영감 솥이 필요하오.”
“솥은 우리 집 마님과 반씩이오. 솥 이야기를 하려면 마님한테 먼저 가시오.”
“어제 칼집도 못 뽑은 분한테 말이오?”
“그러니까 더 조심하시오. 칼집 못 뽑은 날 밤에 우리 마님은 잠을 안 자오. 칼을 닦소.”
화운은 웃지 않았다. 방칠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화운은 틀린 데가 없어서 싫었다.
“어제 그 휘파람.” 화운이 말했다. “어디서 배웠소?”
솥 젓던 나뭇가지가 멈췄다. “흑수곡에 뱃사람이 하나 있었소. 산이 무너질 때 죽었소.”
“이름이 뭐요?”
“묻힌 사람 이름은 묻어 두는 것이 흑수곡 법이오.”
화운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지게에서 빈 대바구니를 내리고 일어났다. 등 뒤에서 아이 하나가 화운의 옷자락을 잡았다. 열 살쯤 된 계집아이였다. 손등이 터서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밤에 추워요.”
화운은 방칠을 보았다. 방칠은 솥을 보고 있었다.
*
청매는 해가 창산 봉우리에 걸린 무렵 객잔 뒷산 대숲으로 올라갔다. 뜨거운 물에 밤새 담가 둔 칼집에서 검이 마침내 빠졌다. 칼날에 녹은 없었다. 유선 기름이 칼날을 서른 해 동안 지켜 준 꼴이었다. 청매는 기름때 묻은 칼집을 보다가 혼자 웃었다. 웃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창산 열아홉 봉우리를 딴 점창의 검법은 북쪽 운롱봉에서 시작해 남쪽 사양봉에서 끝났다. 청매는 첫 초식부터 차례로 그었다. 운롱봉, 창랑봉, 오대봉. 다섯 초식까지는 손이 앞서 갔다. 여섯 번째 초식에서 몸을 뒤로 꺾어야 했다. 젊어서는 허리를 활처럼 휘어 등 뒤의 적을 찔렀다.
허리가 휘다가 중간에서 딱 멈췄다. 멈춘 자리에서 무언가가 찌릿 지나갔다. 청매는 검을 쥔 채 대나무 하나를 붙잡았다. 대나무가 휘청하며 잎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청매의 흰머리 위로 댓잎이 쌓였다.
“마님!”
대숲 아래에서 아묵이 올라왔다. 청매는 대나무를 놓지 않고 아묵을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못 봤소.”
“예,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마님 머리에 댓잎이 그렇게 예쁘게 앉은 것도 못 봤습니다.”
“아묵.”
“허리 짚어 드릴까요?”
“검객의 허리는 남이 짚는 게 아니오.”
아묵이 청매의 허리를 짚었다. 청매는 이를 악물고 막지 않았다. 아묵의 손바닥이 따뜻했다. 다섯 살짜리가 문 앞에서 울던 날, 청매는 아묵을 업어서 안으로 들였다. 아묵은 울다 지쳐 청매의 등에서 잠이 들었다. 이제는 아묵의 손이 청매의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
“사부님은 어디 갔소?” 청매가 물었다.
“산책 가셨습니다.”
“지게 지고?”
아묵의 손이 멈췄다. 청매는 다 알았다.
*
밤이 되자 바람이 고개 위로 올라왔다. 아묵은 대청에 등잔 하나만 켜 두고 계산대 밑에서 졸았다. 토번 사내들은 낮에 떠났다. 세관이 서기 전에 사계를 지나가야 한다며 노새를 몰았다. 객잔에는 손님이 없었다.
돌이 대청 창살을 때리는 소리에 아묵이 깼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마당에서 낮은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젊은 목소리들이었다.
“귀신 객잔이다! 삼월가 끝나면 우리 거다!”
“솥 내놔라, 국자 영감!”
아묵이 계산대에서 기어 나와 마당을 내다보았다. 횃불 셋이 담장 밖에서 흔들렸고, 그림자 대여섯이 담을 넘고 있었다. 몽둥이를 든 그림자도 있었다.
이 층에서 문이 두 번 열렸다. 하나는 안방 문이었고 하나는 복도 끝 창이었다. 아묵은 어느 문이 누구 문인지 몰랐다. 두 노인은 각자 따로 내려왔다. 하나는 부엌 뒷문으로, 하나는 대청 옆 쪽문으로.
마당은 캄캄했다. 화운은 국자를 들고 장독대 그늘을 따라 마구간으로 갔다. 청매는 검을 들고 우물가를 돌아 담장 밑으로 갔다. 둘 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둘 다 상대를 찾지 않았다.
담을 넘은 그림자 하나가 우물가로 뛰었다. 청매가 검등으로 정강이를 쳤다. 그림자가 비명을 지르며 굴렀다. 다른 그림자가 장독대로 뛰었다. 화운이 국자로 손목을 쳤다. 몽둥이가 떨어졌다.
몽둥이를 놓친 젊은이가 마당 한가운데로 달아났다. 화운이 국자를 들고 쫓았다. 같은 젊은이를 청매도 쫓았다. 젊은이가 몸을 숙이고 빠져나간 자리로, 국자와 검이 동시에 들어왔다.
쨍.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국자 바닥이 검의 옆면을 쳤고, 검끝이 국자 손잡이를 긁었다. 화운이 한 걸음 물러났다. 청매도 한 걸음 물러났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알아들었다.
“영감이오?”
“임자요?”
“내 반에서 뭐 하는 거요?”
“여기가 왜 임자 반이오? 우물부터는 내 반이라고 했소.”
“우물까지가 내 반이오. 우물부터가 영감 반이오.”
“까지와 부터가 같은 자리 아니오?”
담장 위에 걸터앉아 있던 젊은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두 노인이 동시에 담장을 돌아보았다. 웃음이 뚝 그쳤다. 국자와 검이 함께 담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횃불을 놓고 담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정강이를 맞은 녀석과 손목을 맞은 녀석이 서로를 부축하며 비탈을 내려갔다. 다들 몸이 가벼웠다. 굶은 사람의 가벼움이었다.
*
청매는 떨어진 횃불을 주워 들었다. 담장 밖에서 아직 연기가 피어올랐다. 횃불을 들고 돌아서다가 뒤뜰 마구간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먹보가 아니었다. 노새는 마구간 맨 끝 칸에서 콩 자루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었다. 움직인 것은 짚더미 위의 작은 몸들이었다. 아이들이 넷, 다섯, 여섯. 화운의 헌 솜이불을 덮고 몸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맨 앞의 계집아이가 횃불 빛에 눈을 뜨고 손등을 이불 속으로 감췄다. 손등에 피딱지가 있었다.
청매는 횃불을 마구간 기둥에 꽂았다. 횃불 아래에 화운이 왔다. 국자를 허리띠에 꽂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언제부터요?” 청매가 물었다.
“해 질 녘부터.”
“나한테는?”
“말 안 했소.”
“왜?”
“말하면 임자가 이기니까.”
청매는 마구간 안을 다시 보았다. 아이 하나가 잠결에 화운의 솜이불을 끌어당겼다. 솜이불은 화운이 혼례 날 덮던 이불이었다. 청매가 서른 해 동안 꿰매 덮은 이불이었다.
“뒤뜰은 영감 반이니 영감 마음대로 하시오.” 청매가 말했다. “아까 그 젊은 놈들도 저 아이들의 아비들이오. 영감 반에 아이를 들이면 아비들이 따라오오. 아비들이 들어오면 방칠이 들어오오.”
“알고 있소.”
“알면서 들였소?”
“아이 손등이 텄소.”
청매는 대꾸할 말을 찾았다. 찾지 못했다. 서른 해 동안 화운은 이런 식으로 이겼다. 의논 없이 밥을 퍼 주고, 퍼 준 다음에야 말을 했다. 청매는 화운이 퍼 준 밥 때문에 진 적이 서른 번도 넘었다.
“좋소.” 청매가 말했다. “영감 반은 영감이 알아서 하시오. 대신 내 반에는 저 아이들의 아비든 방칠이든 한 발도 못 들이오. 우물부터 대청까지, 부엌까지 내 반이오.”
“부엌은 내 반이오.”
“솥은?”
둘 다 또 입을 다물었다. 솥은 부엌 한가운데, 둘이 그은 적 없는 경계 위에 있었다.
마구간 안에서 계집아이가 몸을 일으켰다. 두 노인을 번갈아 보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저희 나가야 돼요?”
청매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의 눈이 화운의 얼굴보다 청매의 검을 먼저 보고 있었다. 청매는 검을 등 뒤로 감췄다.
“자라.” 청매가 말했다. “여기는 할아버지 땅이다. 할아버지가 코를 골아도 참아라.”
아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청매는 돌아서서 우물가로 갔다. 다섯 걸음쯤 가다가 허리를 짚었다. 대숲에서 삐끗한 자리가 이제야 화끈거렸다. 뒤에서 화운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청매는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 화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등을 보인 채 걸었다. 서른 해 만에 처음이었다. 화가 나서 그런 것뿐이라고, 청매는 우물가에 닿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