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87자)
반으로 켠 간판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아묵은 돌계단 맨 아래 칸에 쪼그려 앉아 흰 돌과 검은 돌을 나눠 쥐고 있었다. 흰 돌은 사부님 몫, 검은 돌은 마님 몫이었다. 아침밥 먹고 나서 지금까지 흰 돌이 넷, 검은 돌이 다섯이었다. 톱은 아직 간판 한가운데까지도 내려가지 않았다.
“영감, 톱을 당길 때 같이 당기면 어쩌자는 거요? 영감이 당기면 나는 미는 거요.”
“삼십 년 동안 내가 당길 때 임자가 민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소?”
검은 돌 하나가 아묵의 왼손으로 넘어갔다. 마님이 이겼다. 대꾸가 짧을수록 마님이 이긴 판이었다.
운령 고갯마루의 운매객잔 문 앞, 열한 칸짜리 돌계단 위에서 두 노인이 간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간판은 서른 해 동안 문 위에 있던 느티나무 판이었다. 오늘 아침 둘이 함께 사다리에 올라 떼어 냈다. 떼어 낼 때만은 손발이 맞았다.
사부님 화운은 묶어 올린 흰머리가 톱질할 때마다 앞뒤로 까딱였다. 긴 눈썹 끝이 눈꺼풀 위로 늘어져서 눈을 가늘게 뜨면 눈썹이 눈을 덮었다. 짙은 갈색 객잔 주인 옷의 소매를 걷어 올렸고, 오른손에는 톱 손잡이, 허리띠에는 쇠 국자를 꽂았다. 국자는 사부님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측간에도 들고 갔다.
마님 청매는 은비녀로 쪽 진 흰머리 한 올 흐트러뜨리지 않고 톱 반대편 손잡이를 쥐었다. 연한 매화색 저고리 소매는 걷지 않았다. 허리춤의 가는 검이 톱질에 맞춰 돌계단을 톡톡 쳤다. 칼집 끝에 허연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어제저녁에도 마님은 이 검으로 유선을 잘랐다. 유선은 소젖을 얇게 펴서 말린 백족의 치즈였고, 마님은 서른 해 동안 유선을 부엌칼로 자른 적이 없었다.
“운매.” 사부님이 톱을 멈추고 간판의 글자를 국자 끝으로 짚었다. “운은 내 이름자요. 매는 임자 이름자요. 그러니까 운매 반은 내가 가지겠소. 임자는 객잔 반을 가지시오. 손님 받는 거 좋아하잖소.”
“운매 반은 내가 가지겠소. 영감이 객잔 반을 가지시오. 밥 퍼 주는 거 좋아하잖소.”
토번 마방 사내들이 계단 옆 말뚝에 노새를 매어 놓고 구경하다가 와 하고 웃었다. 토번에서 차를 받으러 내려온 털모자 우두머리가 아묵의 어깨를 툭 쳤다.
“점소이, 저 둘이 서로 이름 들어간 반을 갖겠다고 싸우는 거 맞지?”
“맞습니다.”
“그럼 왜 갈라서?”
“그걸 알면 제가 돌멩이를 안 세지요.”
털모자가 은전 한 닢을 아묵의 손바닥에 놓았다. “마님에게.” 털모자 뒤에 있던 젊은 마부가 동전 셋을 놓았다. “영감님에게. 저 국자 보니까 오래 버틸 손이야.”
아묵은 은전과 동전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왼쪽 허리춤에서 산다화를 수놓은 작은 주머니가 흔들렸다. 다섯 살 때 객잔 문 앞에 맡겨지면서 받은 주머니였다. 아묵은 열일곱 해 동안 두 노인이 싸우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듣고 컸다. 갈라서겠다는 말도 해마다 한 번씩은 들었다. 올해는 둘이 화리서를 써서 촌장 할멈에게 맡겨 두었다. 화리는 서로 뜻을 모아 부부의 연을 푸는 일이었다. 말로만 싸울 때와 종이에 손도장을 찍을 때는 달랐다.
*
화운은 톱을 놓고 허리를 폈다. 등뼈가 우두둑 소리를 냈다. 청매가 등뼈 소리를 듣고 눈썹 하나를 올렸다.
“영감 등뼈가 나보다 먼저 갈라서겠소.”
“임자 무릎은 어젯밤에 벌써 갈라섰소. 계단 내려가면서 딱 소리 나던데.”
“계단이 낸 소리요.”
“계단은 삼십 년째 소리 안 냈소.”
화운은 가운데 획까지 내려간 톱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운매와 객잔 사이에 한 치 남짓 남아 있었다. 두 손으로 눌러 꺾으면 꺾일 판이었다. 꺾지는 않았다. 판을 꺾는 일은 어쩐지 마지막에 남겨 두고 싶었다.
“차병은 내가 가지겠소.” 화운이 말했다.
“차병은 내가 샀소.”
“돈은 내가 냈소.”
“영감 돈이 어디 있소? 그해 영감은 국자 하나밖에 없었소.”
혼례 날 사계 장터에서 산 보이차 한 덩이가 부엌 들보 위 대바구니에 서른 해째 얹혀 있었다. 보이차는 묵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했고, 둘은 서른 해 동안 뜯지 않았다. 뜯는 날을 둘 다 정해 두지 않았다. 갈라서는 날 차병이 다툼거리가 될 줄도 몰랐다.
“노새는?” 청매가 물었다.
“먹보는 나를 따르오.”
“먹보는 콩을 주는 사람을 따르오. 콩은 내가 주오.”
“솥은?”
부엌의 큰 쇠솥 이야기가 나오자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서른 해 동안 불이 꺼진 적이 없는 솥이었다. 솥은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들고 갈 수 없는 것은 나눌 수도 없었다.
여태 웃던 토번 사내들이 웃음을 멈췄다. 화운은 사내들이 고개 아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챘다. 마방의 방울 소리가 끊겼고, 끊긴 자리로 발소리가 올라왔다. 말발굽이 아니었다. 사람 발이 스무 쌍쯤, 서로 박자를 맞추지 않고 오르막을 밟는 소리였다.
맨 앞의 사내는 얼굴에 나무 가면을 쓰고 있었다. 검게 칠한 바탕에 붉은 눈썹을 그린 귀신 얼굴이었다. 본주묘 제삿날에 아이들을 겁주려고 쓰는 가면과 비슷했지만, 칠이 벗겨진 자리마다 손때가 배어 있었다. 사내는 키가 크고 어깨가 좁았다. 등에 큰 칼을 메고 있었다. 뒤를 따르는 사내들은 칼 대신 몽둥이와 지게 작대기를 들었다. 다들 볼이 패어 있었다.
“귀면 방칠이다.” 털모자 우두머리가 낮게 말하고 노새 고삐를 풀었다. “고개 아래 흑수곡 유민들 우두머리야. 우리는 갑니다, 영감님. 내기는 무르겠소.”
“무르지 마시오.” 아묵이 은전을 꼭 쥐었다.
방칠은 돌계단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면 구멍으로 두 노인과 반쯤 켠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객잔 주인이 누구요?”
화운과 청매가 동시에 상대를 가리켰다. 화운은 국자로, 청매는 턱으로.
“이 땅을 사러 왔소.” 방칠이 허리춤에서 무명 자루를 꺼내 계단에 던졌다. 은덩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낙등 염정 소금이 이 고개를 넘어 사계로 간다는 말 들었을 거요. 새 길이 났소. 이 자리가 길목이오. 삼월가가 끝나는 날까지 비워 주시오.”
“땅은 반이 저 사람 거요.” 청매가 말했다.
“반은 저 사람 거요.” 화운이 말했다.
방칠의 가면이 기울었다. “그럼 반씩 사겠소.”
“내 반은 안 파오.” 둘이 한꺼번에 말했다.
토번 사내 하나가 노새 등에 올라타다 말고 킥 웃었다. 아묵은 흰 돌 하나와 검은 돌 하나를 같이 옮겼다.
*
청매는 방칠의 오른손이 등 뒤 칼자루로 가는 것을 보았다. 손이 칼자루에 닿기 전에 청매의 손이 먼저 허리춤으로 갔다. 서른 해 만이었지만 손은 길을 기억했다. 칼자루를 쥐고 뽑았다.
검이 칼집에서 반 치만 나오고 멈췄다.
유선 기름이었다. 어젯밤 검을 닦지 않고 꽂은 것이 칼집 안에서 굳었다. 청매가 한 번 더 당겼고, 칼집이 허리띠째 딸려 올라왔다.
청매가 칼집과 씨름하는 사이 방칠의 칼이 나왔다. 화운이 국자를 들고 한 걸음 내려갔다. 국자 끝이 방칠의 칼등을 향해 갔는데, 서른 해 전이었으면 칼등을 쳐서 칼날을 땅에 박았을 각이었다. 국자는 칼등에 닿기 한 뼘 전에 허공을 쳤다. 화운의 무릎이 반 박자 늦었다.
방칠의 칼은 두 노인 사이로 내려왔다. 노린 곳은 사람이 아니었다. 반쯤 켠 간판의 남은 한 치였다. 느티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운매가 왼쪽으로, 객잔이 오른쪽으로 계단을 굴렀다.
방칠은 칼을 도로 등에 꽂았다. “톱질을 도와 드렸소.”
청매는 검을 칼집째 쥔 채 서 있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강호에서 검을 못 뽑은 검객은 죽은 검객이었다. 청매는 죽지 않았고, 그래서 더 창피했다.
“다음에 오실 때는 미리 기별을 주시오.” 청매가 말했다. “칼집을 닦아 놓겠소.”
“다음에는 식구들을 데리고 오겠소. 삼백이오.”
“삼백이면 솥이 모자라오.” 화운이 말했다.
가면 뒤에서 방칠이 웃었는지 숨을 뱉었는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방칠은 돌아서서 고개를 내려가다가 계단 아래 두 번째 굽이에서 멈췄다.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끝을 올렸다.
화운의 손에서 국자가 미끄러졌다. 국자는 돌계단을 두 칸 굴러 객잔이라 쓰인 반쪽 간판 위에서 멈췄다.
청매는 화운을 보았다. 서른 해 동안 화운의 얼굴을 매일 아침 보았다. 국자를 떨어뜨리는 얼굴은 처음이었다.
“아는 소리요?”
“뱃사람 소리요.” 화운이 국자를 주우러 내려갔다. “금사강 뱃사람들은 다 저렇게 부오.”
화운은 국자를 주웠고, 운매 반쪽 간판도 같이 주웠다. 청매가 보는 앞에서였다.
*
해가 창산 너머로 넘어간 뒤 아묵은 대청 탁자를 닦으며 귀를 이 층으로 열어 두었다. 토번 사내들은 결국 하룻밤 묵기로 했다. 털모자가 내기를 무르지 않는 대신 술을 무르지 않았다. 대리부에서 방을 붙였다고 했다. 낙등에서 사계로 가는 새 소금 길에 관이 세관을 세운다는 방이었다. 털모자는 혀를 찼다. 차마고도는 차가 가는 길이라 소금에 세를 매기면 토번까지 소금값이 두 배가 된다고 했다.
“차 한 덩이 지고 가서 소금 한 줌 받아 오는 세상이 오겠어.” 털모자가 잔을 비웠다. “그런데 점소이, 오늘 내기는 누가 이긴 거야?”
“방칠이 이겼습니다.”
“그건 내기에 없었잖아.”
“그러니까 다들 잃은 거지요.”
이 층 안방에서 쿵 소리가 났다. 아묵은 행주를 내려놓고 계단 밑으로 갔다. 두 노인은 갈라서기로 한 뒤에도 한 방에서 잤다. 방이 여섯인데 손님방을 비워 둘 수 없다는 것이 마님의 말이었고, 손님이 들 때 방을 옮기면 이불을 두 번 개야 한다는 것이 사부님의 말이었다. 아묵이 보기에 둘 다 핑계였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묵은 계단 세 번째 칸에서 멈췄다. 네 번째 칸은 밟으면 소리가 났다.
*
청매는 이불 속에서 화운과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서른 해 동안 둘은 그렇게 잤다. 원수였던 시절에 든 버릇이었다. 혼례를 올린 첫날밤, 청매는 화운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고 화운도 청매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다. 둘 다 상대가 등 뒤에서 칼을 꽂을까 봐 그랬다. 다음 날도 그랬고, 서른 해가 지나도 그랬다. 덕분에 청매는 서른 해 동안 화운의 코 고는 소리를 정면으로 맞았다.
화운은 오늘 코를 골지 않았다. 눈을 뜨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운매 반쪽 간판의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쿵 소리는 화운이 간판을 침상 머리맡에 세우다 떨어뜨린 소리였다.
“영감, 그 판자 안고 잘 거요?”
“내 몫이오.”
“운매는 내 몫이라고 했소.”
“방칠이 갈랐으니 무효요. 판을 가른 사람이 나누는 법이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금사강에 있었소.”
청매는 휘파람 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끝을 올리는 소리. 서른 해 전 금사강 나루의 밤에 청매도 같은 휘파람을 들었다. 강가 갈대밭 너머에서 뱃사람들이 서로를 부르던 소리였다. 청매는 나루의 밤을 서른 해 동안 꺼내 본 적이 없었다. 꺼내지 않으려고 유선을 검으로 잘랐다.
“방칠이 삼월가 끝나는 날까지 비우라 했소.” 청매가 말했다. “보름이오.”
“알고 있소.”
“우리는 어차피 나가는 사람들이오. 은자 자루를 받고 나눠 가지면 영감은 창산 위에 차밭을 사고, 나는 이해 호숫가 고향에 갈 수 있소.”
화운이 천장에서 눈을 떼고 청매를 보았다. 긴 눈썹 밑에서 눈이 반짝였다. 서른 해 전 금사강 나룻배 위에서 청매의 검 끝을 보던 눈이었다.
“그럼 받으시오. 임자 반은.”
“영감은?”
“내 반은 안 파오.”
“왜?”
“방칠이 국자를 웃었소.”
청매는 이불 속에서 손을 뻗어 침상 머리맡의 검을 집었다. 칼집째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소매로 칼자루를 문질렀다. 칼집 안의 굳은 유선 기름은 내일 아침 뜨거운 물에 담가 녹일 생각이었다.
“나도 내 반은 안 파오.”
“왜?”
“방칠이 내 칼집을 봤소.”
계단 세 번째 칸에서 아묵이 소리 나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흰 돌 하나, 검은 돌 하나. 오늘 처음으로 둘이 같은 판을 이겼다.
방 안의 불이 꺼졌다. 두 노인은 어둠 속에서도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웠다. 화운이 먼저 말했다.
“내 반은 내가 지키오. 임자 반에는 손 안 대겠소.”
“내 반도 내가 지키오. 영감 반이 무너져도 나는 안 도와주오.”
“좋소.”
“좋소.”
한참 뒤 화운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청매는 눈을 감지 않았다. 화운의 코 고는 소리 사이로 아까의 휘파람이 자꾸 끼어들었다.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서른 해 전에는 휘파람이 끊긴 자리에서 불길이 올랐다. 청매는 칼집을 끌어안고 화운의 얼굴을 보았다. 화운이 국자를 떨어뜨린 까닭을 청매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