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51자)

등을 맞대다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관군은 해가 중천에 오를 때 올라왔다⁠. 아묵은 대청 창으로 고갯길을 내려다보다가 창틀을 붙잡았다⁠. 붉은 깃발 하나⁠, 창을 든 병사 스무 명⁠, 말 탄 장수 하나⁠. 장수 뒤로 비단 휘장을 친 가마 하나와⁠, 푸른 옷에 가는 검을 찬 젊은 검객 여섯이 따라왔다⁠. 가마 앞뒤에는 소금 짐을 진 노새가 열 마리 넘게 방울을 울렸다⁠.

“⁠마님⁠, 사부님⁠! 관군입니다⁠!⁠”

이 층에서 마님 목소리가 내려왔다⁠. “⁠몇이오⁠?⁠”

“⁠스물하나요⁠. 그리고 가마가 하나 있습니다⁠.⁠”

“⁠가마에는 누가 탔소⁠?⁠”

“⁠휘장을 쳐서 모르겠습니다⁠.⁠”

부엌에서 사부님 목소리가 올라왔다⁠. “⁠스물하나면 국수 스물한 그릇이오⁠. 가마는 따로 차려야 하니 한 그릇 더⁠. 아묵⁠, 물 올려라⁠.⁠”

“⁠사부님⁠, 잡으러 온 사람들한테도 국수를 삶습니까⁠?⁠”

“⁠잡으러 왔는지 먹으러 왔는지는 먹여 보면 아오⁠.⁠”

장수가 말에서 내렸다⁠. 쉰 줄의 사내로⁠, 투구를 벗자 이마에 투구 자국이 붉게 남았다⁠. 허리에 공문을 넣은 대나무 통을 차고 있었다⁠. 장수는 돌계단 아래 굴러다니는 반쪽 간판 「⁠객잔⁠」을 발끝으로 밀어 놓고 계단을 올라왔다⁠.

“⁠대리부 천총 마득곤이오⁠. 주인을 보러 왔소⁠.⁠”

아묵은 삼도차를 냈다⁠. 백족의 손님 대접은 차 세 잔이었다⁠. 첫 잔은 쓰게⁠, 두 번째 잔은 꿀과 호두를 넣어 달게⁠, 세 번째 잔은 생강과 산초를 넣어 뒷맛이 남게⁠. 아묵은 첫 잔을 마득곤 앞에 놓았다⁠. 마득곤이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쓰구려⁠.⁠”

“⁠첫 잔이 원래 씁니다⁠. 두 번째 잔은 달고⁠, 세 번째 잔은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잔을 바로 주시오⁠.⁠”

“⁠순서가 있습니다⁠, 나리⁠.⁠”

사부님이 부엌에서 국자를 들고 나왔다⁠. 마님이 계단을 내려왔다⁠. 둘은 대청 양 끝에 하나씩 앉았다⁠. 마득곤은 두 노인을 번갈아 보다가 가운데 탁자에 공문을 폈다⁠.

“⁠대리부의 명이오⁠. 낙등에서 사계로 가는 새 소금 길에 세관을 둔다⁠. 자리는 운령 고갯마루⁠. 이 객잔이 선 자리요⁠. 객잔은 관에서 사들인다⁠. 값은 관에서 정한다⁠. 고개 아래 흑수곡 유민 무리는 비적이니 삼월가 첫날까지 흩어지지 않으면 관군이 친다⁠.⁠”

“⁠아이들도 비적이오⁠?⁠” 사부님이 물었다⁠.

“⁠비적 무리에 섞인 자는 비적이오⁠.⁠”

“⁠어제 내 마구간에서 자고 간 아이가 여섯이오⁠. 그럼 내 마구간도 비적이오⁠?⁠”

마득곤의 이마의 투구 자국이 더 붉어졌다⁠. “⁠영감⁠, 관의 공문에 말장난을 하면⁠…⁠.⁠”

“⁠말장난이 아니오⁠. 마구간 짚도 내가 깔았으니 나도 비적이오⁠. 잡아가시오⁠. 대신 국수는 드시고 가시오⁠. 다 삶았소⁠.⁠”

아묵은 두 번째 잔을 얼른 마득곤 앞에 놓았다⁠. 꿀 냄새가 났다⁠. 마득곤이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

청매는 대청 문 너머 마당의 가마를 보고 있었다⁠. 휘장은 걷히지 않았다⁠. 가마 옆의 푸른 옷 검객들은 하나같이 왼발을 반 치 앞에 두고 있었다⁠. 점창의 서는 법이었다⁠. 서른 해 전에는 청매도 그렇게 발을 두었다⁠. 청매는 대청 문턱 안에서 왼발을 뒤로 뺐다⁠.

휘장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낮고 부드러웠고⁠, 말끝을 깎았다⁠.

“⁠천총 나리⁠, 관이 정하는 값에 상단이 반을 얹겠습니다⁠. 객잔 주인 내외분은 그 돈으로 대리 성안에 집을 사시면 됩니다⁠. 고갯마루는 관의 세관과 상단의 역참이 나눠 쓰고요⁠. 소금이 사계로 내려가면 운령촌에도 몫이 떨어지지요⁠.⁠”

청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귀 뒤가 서늘해졌다⁠. 서른 해 전 창산 밑 사당에서 들은 목소리였다⁠. 사당에서 이 목소리가 명을 전했다⁠. 어떤 명이었는지 청매는 서른 해 동안 꺼내 보지 않았다⁠.

“⁠상단의 행수 되시오⁠?⁠” 청매가 물었다⁠.

“⁠사계 상단 행수 단가입니다⁠.⁠” 휘장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안주인께서 검을 차셨군요⁠. 객잔 안주인이 검을 차는 고장은 처음 봅니다⁠.⁠”

“⁠유선 자르는 칼이오⁠.⁠”

“⁠유선을 검으로 자르면 맛이 납니까⁠?⁠”

“⁠사람 자를 때보다는 나오⁠.⁠”

마득곤이 사레들려 기침을 했다⁠. 휘장 안은 조용했다⁠.

화운이 국자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어차피 나가는 사람들이오⁠. 그러니 누구한테도 안 파오⁠.⁠”

마득곤이 눈을 껌벅였다⁠. “⁠나가는 사람이 왜 안 파오⁠?⁠”

“⁠나가는 사람이 뭘 팔면 남은 사람이 욕하오⁠. 서른 해 욕 안 먹고 살았는데 나가는 날 욕먹기 싫소⁠.⁠”

청매는 화운의 옆얼굴을 보았다⁠. 거짓말이었다⁠. 화운은 서른 해 동안 운령촌 사람들한테 욕을 먹을 만큼 먹었다⁠. 국수에 소금을 너무 친다고⁠, 외상을 너무 쉽게 준다고⁠. 화운이 안 파는 까닭은 마구간의 여섯 아이였다⁠. 청매는 화운의 속을 알았고⁠, 화운도 청매가 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안 파오⁠.⁠” 청매가 말했다⁠.

“⁠안주인은 왜요⁠?⁠” 휘장 안의 목소리가 물었다⁠.

“⁠영감이 안 판다는데 내가 팔면⁠, 영감이 이기오⁠.⁠”

마득곤은 공문을 말아 대나무 통에 넣었다⁠. “⁠삼월가 첫날까지요⁠. 그날 관군이 흑수곡 무리를 치고⁠, 객잔은 관이 거두오⁠. 국수는 잘 먹었소⁠.⁠” 마득곤의 그릇은 비어 있었다⁠. 국물까지 비었다⁠.

아묵이 세 번째 잔을 들고 쫓아 나왔다⁠. 마득곤은 계단 중간에서 잔을 받아 단숨에 비우고⁠, 생강 맛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무슨 맛이오⁠?⁠”

“⁠지난 두 잔을 생각하게 하는 맛입니다⁠.⁠”

“⁠관리는 지난 일을 생각하면 일을 못 하오⁠.⁠” 마득곤이 빈 잔을 아묵에게 돌려주었다⁠. “⁠다음에는 두 번째 잔만 주시오⁠.⁠”

“⁠다음에도 오십니까⁠?⁠”

“⁠삼월가 첫날에 오오⁠. 그날은 차를 안 마실 거요⁠.⁠”

*

화운은 밤에 잠들지 않았다⁠. 마구간 옆 장작더미에 등을 기대고 앉아 국자를 무릎에 얹었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짚더미 위에서 일찍 잠들었다⁠. 피딱지 앉은 손의 계집아이는 이름이 소추라고 했다⁠. 소추는 잠들기 전에 화운의 국자를 한 번만 들어 보자고 졸랐다⁠. 들어 보고는 무겁다며 웃었다⁠.

관군은 고개 아래로 물러갔지만⁠, 가마와 푸른 옷 검객들은 객잔 아래 첫 굽이에 천막을 쳤다⁠. 화운은 천막을 볼 때마다 속이 편치 않았다⁠. 상단이 사들이려는 땅에 비적의 아이들이 자고 있으면⁠, 상단은 아이들부터 치울 것이었다⁠.

자정이 넘어 담장 위로 그림자가 올라왔다⁠. 푸른 옷이었다⁠. 셋⁠, 넷⁠, 여섯⁠. 검을 칼집째 들고 소리 없이 마당에 내렸다⁠. 한 놈이 마구간 쪽으로 손짓했다⁠. 화운이 장작더미에서 일어나는데⁠, 반대편 비탈에서 다른 그림자들이 담을 넘었다⁠. 지게 작대기와 몽둥이였다⁠. 어젯밤 담을 넘었던 젊은이들이었다⁠. 정강이를 절뚝이는 녀석도 있었다⁠. 아이들의 아비들이었다⁠.

“⁠애들 건드리지 마라⁠!⁠”

푸른 옷들이 돌아섰고⁠, 작대기들이 뛰었다⁠. 마당 한가운데서 양쪽이 붙었다⁠. 칼집과 작대기가 부딪히고⁠, 장독 하나가 깨졌다⁠. 된장 냄새가 마당에 퍼졌다⁠.

“⁠내 된장⁠!⁠” 이 층 창에서 청매의 목소리가 터졌다⁠.

화운은 국자를 들고 마당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작대기 하나를 국자로 받아 흘렸다⁠. 푸른 옷의 칼집 하나를 국자 등으로 눌렀다⁠. 받아 흘리고 누르며 마당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갔다⁠. 양쪽이 모두 화운을 노렸다⁠. 객잔 주인이 어느 편인지 양쪽 다 몰랐기 때문이었다⁠.

청매가 대청 문을 박차고 나왔다⁠. 검이 이번에는 단번에 뽑혔다⁠. 청매도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작대기와 칼집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다 보니 화운과 같은 자리로 밀려왔다⁠.

화운이 한 걸음 물러났다⁠. 청매도 한 걸음 물러났다⁠.

등이 닿았다⁠.

*

청매는 등에 닿은 것이 화운의 등이라는 것을 알았다⁠. 넓고 뜨겁고⁠, 숨 쉴 때마다 들썩였다⁠.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자리였다⁠. 청매의 몸이 먼저 굳었다⁠. 등 뒤에 사람이 있으면 돌아서 찔러야 한다고 몸이 배웠다⁠. 청매는 손목을 잡아 검끝을 돌리지 않았다⁠.

등 뒤의 화운도 굳어 있었다⁠. 화운의 등이 반 치 물러났다가⁠, 다시 와서 붙었다⁠.

“⁠임자⁠.⁠”

“⁠말하지 마시오⁠. 등이 울리오⁠.⁠”

청매 앞에는 작대기를 든 아비들이 있었다⁠. 청매의 검은 작대기에 강했다⁠. 금사방 장대를 막으려고 다듬은 검이었다⁠. 그런데 아비들의 작대기가 이상했다⁠. 낮게 휘두르고⁠, 끝을 비틀어 올리고⁠, 물러설 때 뒤꿈치로 땅을 찼다⁠. 금사강 뱃사람들이 장대로 배를 밀던 몸놀림이었다⁠. 청매는 서른 해 전 나룻배 위에서 이 몸놀림을 수없이 보았다⁠.

화운의 앞에는 푸른 옷들이 있었다⁠. 왼발을 반 치 앞에 둔 점창의 검⁠. 화운의 칼은 점창을 깨려고 다듬은 칼이었다⁠. 국자로도 길은 보였다⁠. 다만 등 뒤가 보이지 않았다⁠.

“⁠영감⁠.⁠” 청매가 낮게 말했다⁠. “⁠이 사람들⁠, 금사방 작대기를 쓰오⁠.⁠”

“⁠이 녀석들은 점창 검을 쓰오⁠.⁠”

“⁠바꿉시다⁠.⁠”

“⁠뭘⁠?⁠”

“⁠자리를⁠.⁠”

화운이 먼저 돌았다⁠. 청매가 뒤따라 돌았다⁠. 등은 떨어지지 않았다⁠. 등을 붙인 채 반 바퀴⁠, 둘이 서로의 자리로 갔다⁠. 서른 해 전 나룻배 위에서 서로 칼을 겨누며 돌던 걸음이었다⁠. 나룻배 위에서는 등이 아니라 칼끝으로 돌았다⁠.

청매 앞에 푸른 옷이 왔다⁠. 점창의 운롱 초식으로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청매는 운롱을 만든 사람들에게서 운롱을 배웠다⁠. 젊은 검객의 검이 어디서 꺾일지 청매는 먼저 알았다⁠. 검등으로 손목을 눌러 검을 떨어뜨렸다⁠.

화운 앞에 작대기가 왔다⁠. 금사강 여울을 건널 때 장대를 비틀어 바위를 밀어내던 수였다⁠. 화운은 국자로 작대기 끝을 걸어 비틀린 방향으로 한 번 더 비틀었다⁠. 작대기를 쥔 젊은이가 제 힘에 넘어가 장독대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 장독⁠!⁠” 청매가 등 뒤로 외쳤다⁠.

“⁠임자 장독은 아까 깨졌소⁠. 이건 내 장독이오⁠.⁠”

“⁠영감 장독이 어디 있소⁠?⁠”

“⁠지금 생겼소⁠.⁠”

등이 붙은 채로 둘은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푸른 옷이 들어오면 청매가 받았고⁠, 작대기가 들어오면 화운이 받았다⁠. 화운이 왼쪽으로 기울면 청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무게를 받쳤다⁠. 청매의 허리가 찌릿할 때 화운의 등이 반 치 더 밀어 주었다⁠. 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등이 울렸다⁠.

푸른 옷들이 먼저 담을 넘어 물러갔다⁠. 작대기들도 뒤따라 비탈로 흩어졌다⁠. 마당에는 깨진 장독과 된장과 숨 가쁜 두 노인만 남았다⁠. 마구간 문틈에서 소추의 눈이 반짝였다⁠.

등은 아직 붙어 있었다⁠. 화운이 먼저 떨어지지 않았고⁠, 청매도 먼저 떨어지지 않았다⁠.

“⁠삼월가 끝날 때까지요⁠.⁠” 청매가 등 뒤에 대고 말했다⁠. “⁠화리서는 촌장 할멈이 갖고 있소⁠. 갈라서는 건 삼월가가 끝나고 하겠소⁠. 그때까지는 객잔을 둘이 지키오⁠.⁠”

“⁠아이들도요⁠.⁠”

“⁠영감 반이니 영감이 알아서 하시오⁠.⁠” 청매가 잠깐 쉬었다⁠. “⁠내 반에 된장 새로 담글 때 영감이 콩을 삶으시오⁠.⁠”

“⁠좋소⁠.⁠”

담장 밖 비탈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방칠이 어둠 속 소나무 밑에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면이 횃불 빛을 받아 붉게 번들거렸다⁠. 방칠은 두 노인이 등을 맞대고 도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방칠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비탈을 내려갔다⁠.

대신 대문에서 비단 끌리는 소리가 났다⁠. 가마의 휘장이 걷혀 있었다⁠. 은빛 머리를 높이 틀어 올린 노부인이 대문 기둥에 손을 짚고 서 있었다⁠. 비단 소매에 소금 짐 매듭 모양을 수놓았다⁠. 노부인은 청매의 검을 보고⁠, 청매의 얼굴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서른 해 만이에요⁠, 사저⁠. 검이 녹슬었다고 들었는데⁠, 등은 안 녹슬었네요⁠.⁠”

청매의 등이 화운의 등에서 떨어졌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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