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16자)

삑사리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칫솔을 문 채 작게 불렀다⁠.

“⁠저기요⁠. 듣고 있으면 대답 좀 해 봐요⁠.⁠”

거울 속 막내는 칫솔을 문 채 나를 봤다⁠. 대답은 없었다⁠. 어젯밤 꿈속 거울에서는 막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아침 거울은 그냥 거울이었다⁠. 나는 칫솔을 빼고 목소리를 낮췄다⁠.

“⁠망치려는 거 아니에요⁠. 지키려는 거예요⁠. 그쪽 자리를요⁠.⁠”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초록 머리가 들이밀어졌다⁠.

“⁠막내 니 거울하고 싸우나⁠?⁠”

“⁠표정 연습이에요⁠.⁠”

“⁠칫솔 물고⁠?⁠”

“⁠칫솔 물고 웃는 연습이요⁠. 팬 사인회 때 입에 뭐 물고 있어도 웃어야 되잖아요⁠.⁠”

랩 담당은 한참 나를 보다가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랩 담당이 맏형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형⁠, 막내 진짜 머리 박았다⁠.

*

옥상 연습은 해가 가장 높을 때 시작했다⁠. 고추 모종 화분을 한쪽에 몰아 두고⁠, 빨래 건조대에 수건을 널어 햇빛 가리개로 썼다⁠. 몸은 어제보다 말을 잘 들었다⁠. 나는 입속으로 응원법을 웅얼거리는 대신 발끝으로 박자만 짚었고⁠, 몸은 응원법이 없어도 반쯤은 따라왔다⁠.

「⁠손전등⁠」에는 브리지가 있다⁠. 2절 후렴이 끝나면 반주가 빠지고⁠, 메인보컬이 혼자 높은 음을 끌어 올리는 여덟 마디다⁠. 데뷔 쇼케이스에서 메인보컬의 목소리는 이 여덟 마디 중 여섯 번째 마디에서 갈라졌다⁠. 누군가 객석에서 찍은 여섯 번째 마디가 짤이 되어 돌았다⁠. 「⁠삑사리 아이돌⁠」 오버턴이라는 이름보다 짤의 제목이 먼저 퍼졌고⁠, 조회수는 뮤직비디오의 열 배였다⁠.

옥상에서 메인보컬은 여섯 번째 마디를 한 옥타브 내려 불렀다⁠. 낮게 부르니 갈라질 일이 없었다⁠. 갈라질 일이 없으니 브리지가 브리지가 아니었다⁠. 노래가 언덕을 오르다 말고 옆길로 새는 소리였다⁠.

리더도⁠, 맏형도 말하지 않았다⁠. 다들 몇 달째 이 소리를 듣고 있었고⁠, 다들 모른 척하는 데 익숙했다⁠. 나는 무대 앞에서 이 소리를 열 번 넘게 들었다⁠. 들을 때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형⁠, 원래 키로 한 번만 불러 봐요⁠.⁠”

메인보컬이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붉은 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원래 키로 부르면 갈라져⁠.⁠”

“⁠안 갈라져요⁠.⁠”

“⁠니가 내 목을 알아⁠?⁠”

메인보컬은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따라 내려갔다⁠. 옥상 계단참에 메인보컬이 주저앉았고⁠, 나는 두 칸 아래 계단에 걸터앉았다⁠. 계단 벽에 누가 붙여 놓은 전단지가 반쯤 찢겨 펄럭였다⁠.

“⁠짤 하나만 찍어요⁠. 그 소절⁠, 그 자리에서⁠, 원래 키로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짤 볼 때마다 다음 짤도 같이 보게요⁠.⁠”

“⁠니가 그 짤 밑에 달린 댓글 다 읽어 봤냐⁠?⁠”

“⁠다 읽었어요⁠. 신고도 했어요⁠. 이백 개 넘게⁠…⁠…⁠.⁠”

말이 먼저 나갔다⁠. 메인보컬이 고개를 들었다⁠.

“⁠니가 왜 신고를 해⁠?⁠”

“⁠형이니까요⁠.⁠”

“⁠막내 니가 그런 거 하는 애였나⁠?⁠”

“⁠하는 애였어요⁠. 몰래⁠.⁠”

메인보컬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엄지손톱 자국이 손바닥 한가운데 반달 모양으로 붉게 패여 있었다⁠. 고음 앞에서 엄지손톱으로 손바닥을 누르는 버릇을 나는 직캠으로 알았다⁠. 쇼케이스 영상에서 메인보컬은 여섯 번째 마디 직전에 손을 쥐었다가 폈고⁠, 펴자마자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날 형 인이어 꺼졌잖아요⁠.⁠”

메인보컬의 손이 멈췄다⁠.

“⁠다섯 번째 마디에서 무대 왼쪽 스피커가 삐 하고 울렸어요⁠. 음향 스태프가 콘솔로 뛰어갔고요⁠. 형은 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상태로 여섯 번째 마디를 지른 거예요⁠. 반주도 자기 목소리도 없이요⁠. 그건 형 목이 갈라진 게 아니라 귀가 꺼진 거예요⁠.⁠”

“⁠…니 그때 내 옆에 있었잖아⁠. 무대 위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막내는 무대 위에 있었다⁠. 왼쪽 스피커의 삐 소리와 콘솔로 뛰어가던 스태프를 본 사람은 객석 맨 앞줄의 노란 우비였다⁠.

“⁠옆에서 봤어요⁠. 형 귀에서 인이어 줄이 덜렁거리는 거⁠.⁠”

메인보컬은 한참 나를 봤다⁠. 그러다 고개를 떨구고 웃었다⁠. 웃는 소리에 바람이 섞였다⁠.

“⁠대표님한테 말했었어⁠. 인이어 꺼졌다고⁠. 대표님이 그랬어⁠. 프로는 핑계 안 댄다고⁠. 그래서 그다음부터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낮게 부르면 핑계 댈 일도 없으니까⁠.⁠” 메인보컬이 손바닥의 손톱자국을 문질렀다⁠. “⁠근데 막내야⁠. 원래 키로 불렀다가 또 갈라지면⁠?⁠”

“⁠또 갈라지면 또 찍어요⁠. 갈라질 때까지 찍어요⁠. 형 목은 안 갈라져요⁠. 제가 알아요⁠.⁠”

*

오후에 나는 빌라 앞 편의점에 내려갔다⁠. 목캔디 두 통과 생수⁠, 그리고 계산대 옆 걸이에 매달린 일회용 노란 우비 하나를 집었다⁠. 어제 랩 담당이 한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노란 걸로 사라⁠.

계산대의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다가 내 얼굴을 봤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듯한 대학생이었다⁠. 은빛 머리와 귀걸이를 번갈아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어⁠, 혹시⁠…⁠…⁠.⁠”

나는 모자를 눌러썼다⁠. 세 해 동안 남의 얼굴을 알아보기만 했다⁠. 누가 내 얼굴을 알아보는 일이 이렇게 등에 땀이 나는 일인 줄 몰랐다⁠.

“⁠혹시 그 삑사리 아이돌 그룹 아니에요⁠? 짤에서 옆에 있던 분 같은데⁠.⁠”

“⁠…맞아요⁠.⁠”

“⁠와⁠. 그 짤 진짜 웃겼는데⁠.⁠” 알바생이 우비를 봉지에 넣으며 해맑게 웃었다⁠. “⁠그룹 이름이 뭐였더라⁠.⁠”

“⁠오버턴이요⁠.⁠”

“⁠아⁠, 오버턴⁠. 노래는 모르는데 짤은 알아요⁠. 힘내세요⁠.⁠”

봉지를 받아 들고 나왔다⁠. 편의점 유리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은빛 머리⁠, 오른쪽 귀의 작은 은 고리 귀걸이⁠. 이 나라에서 오버턴은 노래보다 짤로 먼저 알려진 그룹이었다⁠. 짤 이름 옆에 노래 제목이 붙게 만들려면⁠, 짤은 그대로 두고 짤 위에 무언가를 덮어야 했다⁠. 나는 목캔디 한 통을 뜯어 하나를 입에 넣었다⁠. 박하 맛이 혀를 찔렀다⁠. 남은 한 통은 메인보컬 몫이었다⁠.

*

해가 빌라 지붕들 너머로 넘어갈 무렵 다시 옥상에 올라갔다⁠. 리더가 휴대전화를 빨래집게로 난간에 집었고⁠, 맏형이 수건을 걷어 건조대를 치웠다⁠. 랩 담당은 고추 모종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화분마다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댔다⁠.

메인보컬이 옥상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노을이 붉은 머리 위에서 한 번 더 붉어졌다⁠. 나는 카메라 옆⁠, 메인보컬의 정면에 자리를 잡았다⁠.

“⁠형⁠, 저만 보고 하세요⁠. 관객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요⁠.⁠”

“⁠관객 한 명이면 우비 형이네⁠.⁠”

“⁠네⁠. 우비 형이라고 생각하세요⁠.⁠”

반주가 브리지로 넘어갔다⁠. 메인보컬이 첫 마디를 열었다⁠. 둘째⁠, 셋째 마디로 넘어가며 목소리가 언덕을 올랐다⁠. 다섯 번째 마디에서 메인보컬의 오른손이 주먹을 쥐었다⁠. 엄지손톱이 손바닥을 눌렀다⁠. 나는 메인보컬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쇼케이스 날 객석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귀가 꺼진 사람에게는 눈으로 박자를 줘야 한다⁠.

여섯 번째 마디⁠.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옥상 위로 높게 올라가⁠, 빌라 사이 좁은 하늘에 닿고 나서야 내려왔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마디가 같은 높이에서 길게 이어졌다⁠.

반주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건너편 빌라 3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집주인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박수를 쳤다⁠.

“⁠잘한다⁠, 총각⁠! 근데 고추 밟지 마⁠!⁠”

맏형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랩 담당이 바닥을 굴렀다⁠. 메인보컬은 웃다가 손바닥을 펴서 들여다봤다⁠. 손톱자국 위로 땀이 번들거렸다⁠.

랩 담당이 영상 첫머리에 자막을 달았다⁠. 「⁠삑사리 아이돌 근황⁠」 리더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제목 괜찮겠어⁠? 놀림 받는 짤 이름인데⁠.⁠”

“⁠놀림 받는 짤 이름이라서 붙이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사람들이 그 짤을 검색하면 이 영상이 같이 떠요⁠. 놀림이 길 안내가 되는 거예요⁠.⁠”

메인보컬이 휴대전화를 받아 직접 올리기 버튼을 눌렀다⁠.

*

밤 열한 시⁠, 「⁠조회수 3⁠.4만⁠」 자정⁠, 「⁠조회수 21만⁠」 새벽 한 시가 넘자 숫자가 너무 빨리 올라가서 새로 고칠 때마다 다섯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아래층에서 벽을 두드렸다⁠. 다섯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댓글이 쏟아졌다⁠. 「⁠이 형 원래 이렇게 불렀어⁠?⁠?⁠」 「⁠삑사리 짤만 백 번 본 사람 반성합니다⁠」 「⁠할머니 박수에서 울었음⁠」 영어와 타갈로그어와 포르투갈어가 섞였다⁠. 마닐라에서 온 댓글이 번역기를 거쳐 한 줄로 떴다⁠. 「⁠인이어가 꺼졌었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진짜였나요⁠?⁠」

세 시⁠. 차트가 새로 고쳐지는 시각이었다⁠. 다섯이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리더의 휴대전화 하나를 들여다봤다⁠. 리더가 새로 고침을 눌렀다⁠. 화면이 하얗게 비었다가 다시 채워졌다⁠.

「⁠94위 · 손전등 · 오버턴⁠」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아래층 벽 때문이 아니었다⁠. 맏형이 말없이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고⁠, 랩 담당은 휴대전화를 빼앗아 화면을 캡처하고 또 캡처했다⁠. 메인보컬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봤다⁠. 리더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귀가 나를 향했다⁠.

“⁠막내야⁠. 너 어제부터 좀 이상하다⁠.⁠”

“⁠좋게요⁠?⁠”

“⁠모르겠어⁠. 그래서 이상하다고⁠.⁠”

막내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처음 보는 번호의 문자였다⁠. 「⁠아까 전화하신 이도 회사 분이죠⁠. 이도는 아직이에요⁠. 그래도 손가락이 조금 따뜻해졌어요⁠」 나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한 시간 전 영상 댓글 가운데 하나가 떠올랐다⁠. 「⁠옛날에 맨 앞에서 노란 우비 입고 혼자 응원하던 분 계셨는데 그분도 이거 보고 계시려나⁠」

*

아침 아홉 시⁠, 실장이 숙소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이 막내 혼자 올라오래⁠.

4층 대표실 문을 열자 모성곤은 책상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화면에 메인보컬이 떠 있었다⁠. 노을 아래 붉은 머리⁠, 여섯 번째 마디⁠.

“⁠내려⁠.⁠”

“⁠왜요⁠?⁠”

“⁠삑사리 아이돌⁠. 니들이 니들 이마에 그 글자를 새겼다⁠. 유통사가 막내 솔로를 받는 건 막내 얼굴이 깨끗해서다⁠. 망한 그룹⁠, 놀림 받는 그룹 막내를 누가 솔로로 사냐⁠?⁠” 모성곤이 휴대전화를 책상에 엎었다⁠. “⁠어제 맏형 영상도⁠. 바깥 안무가랑 계약서에 이름 쓴 거 있다⁠. 니 손가락 하나로 회사가 계약 위반을 했어⁠.⁠”

“⁠내리면 다시 백 위 밖이에요⁠.⁠”

“⁠백 위 안에 하루 있으면 얼마 들어오는지 아냐⁠?⁠” 모성곤이 계산기 앱을 켜지도 않고 말했다⁠. “⁠니들 한 달 월세의 반이다⁠. 다음 달은⁠? 다음 달에도 누가 노을 아래서 고음 질러 줄 거냐⁠? 짤은 한 번 터지고 끝난다⁠. 빚은 안 끝나⁠.⁠”

나는 대답할 말을 찾았다⁠. 팬 시절의 나는 숫자를 좋아했다⁠. 조회수⁠, 순위⁠, 좋아요⁠. 올라가는 숫자는 다 응원이었다⁠. 모성곤의 숫자는 올라가도 응원이 아니었다⁠. 월세 앞에서 깎이는 숫자였다⁠.

“⁠대표님⁠. 이 영상 내리라고 하시면⁠, 메인보컬 형한테 직접 말씀하세요⁠. 저 말고요⁠. 쇼케이스 날 인이어 꺼졌다고 했을 때 핑계라고 하신 것까지요⁠.⁠”

모성곤의 턱이 굳었다⁠. 처음으로 모성곤이 숫자가 아닌 말 앞에서 멈췄다⁠.

대표실 안쪽 소파에서 누가 웃었다⁠. 나는 그제야 소파를 봤다⁠. 마흔 남짓한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회색 정장에 무선 이어폰 한쪽만 끼고 있었다⁠. 탁자 위 명함에 성수동 대형 음원 유통사 이름이 박혀 있었다⁠.

“⁠영상 잘 봤어요⁠. 저는 좋던데요⁠.⁠” 유통사 이사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화면이 멈춰 있는 자리는 메인보컬이 아니라⁠, 카메라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내 옆얼굴이었다⁠. 화면 가장자리에 반쯤 걸친 은빛 머리와 은 고리 귀걸이⁠. “⁠근데 저는 막내 씨만 보이던데⁠. 월요일에 성수동으로 와요⁠. 혼자 다시 찍죠⁠.⁠”

등 뒤에서 대표실 문이 삐걱 열렸다가 멈췄다⁠. 문틈에 붉은 머리가 보였다⁠. 메인보컬이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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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10.31· 3화

    옥상에서 다시 지른 고음 영상이 퍼지는 장면, 진짜 덕질하는 기분이었어요. 「손전등」 94위 뭉클해요.

    • 윤솔채작가2026.10.31

      차트 숫자 하나에 다 같이 웃는 순간을 꼭 쓰고 싶었어요. 유통사 이사가 들고 온 제안은 다음 화에서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