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39자)

응원법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숙소는 논현동 빌라 3층 투룸이었고⁠, 방 두 칸에 이층 침대가 셋 들어차 있었다⁠. 첫날 밤 나는 어느 침대가 막내 것인지 몰라 아래 칸에 누웠다가 맏형에게 발목을 잡혀 끌려 나왔다⁠.

“⁠거기 내 자리다⁠. 너 위⁠.⁠”

위 칸 매트리스에서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났다⁠. 천장이 코앞이었다⁠. 화면으로 본 숙소는 늘 넓고 환했는데⁠, 실제 숙소는 다섯 사람의 숨소리가 한 칸에 꽉 찼다⁠. 맏형은 이를 갈았고⁠, 랩 담당은 잠꼬대로 사투리 랩을 했고⁠, 리더는 왼쪽으로 돌아누워 오른쪽 귀를 천장에 두고 잤다⁠. 나는 밤새 숨소리를 하나씩 가려 들으며 잠들지 못했다⁠.

아침 일곱 시⁠, 화장실 앞에 줄이 생겼을 때 나는 베란다로 나가 막내의 휴대전화를 열었다⁠. 열한 자리 숫자를 하나씩 눌렀다⁠. 스물셋 해 동안 남에게 불러 주기만 하던 번호였다⁠. 신호가 일곱 번 갔다⁠.

“⁠여보세요⁠?⁠”

전주 말씨가 섞인 목소리였다⁠. 콜센터에서 하루 백 통씩 전화를 받는 사람도 엄마 목소리 앞에서는 첫마디를 놓친다⁠.

“⁠여보세요⁠? 이도 전화인디⁠, 누구세요⁠?⁠”

“⁠아⁠, 저⁠, 이도 씨 회사 동료인데요⁠. 같은 팀이요⁠.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서⁠…⁠…⁠.⁠”

“⁠아이고⁠.⁠” 엄마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 이도가 눈을 안 떠요⁠. 원룸 주인 아주머니가 알람이 하루 종일 울린다고 문을 따 봤더니⁠, 이어폰 낀 채로 누워 있었대요⁠. 구로 대학병원이요⁠. 의사 선생님도 이유를 모르겄대요⁠. 숨은 쉬는디 눈을 안 떠요⁠.⁠”

나는 베란다 난간을 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막내의 것이었다⁠.

“⁠회사 분 목소리가 왜 이렇게 어려요⁠?⁠”

“⁠막내라서요⁠. 팀에서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난간을 쥐고 있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랩 담당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베란다를 내다봤다⁠.

“⁠막내 니 아침부터 누구랑 통화하는데 표정이 그렇노⁠? 빚쟁이가⁠?⁠”

“⁠엄마요⁠.⁠”

“⁠니 엄마랑 존댓말 쓰나⁠?⁠”

*

열 시에 실장이 김밥 다섯 줄을 들고 숙소에 왔다⁠. 서른 중반쯤 된 실장은 다섯의 매니저이자 운전기사이자 김밥 배달부였다⁠. 실장은 김밥을 식탁에 내려놓고 한참 은박지만 만지작거렸다⁠.

“⁠대표님이 연습실 임대 끊으셨대⁠. 오늘 안으로 스피커랑 매트 빼래⁠.⁠”

“⁠그럼 저희 어디서 연습해요⁠?⁠”

리더가 물었다⁠. 실장이 천장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옥상을 향했다⁠.

*

오후에 다섯이 4층 연습실로 가서 짐을 쌌다⁠. 거울은 벽에 붙어 있어서 가져갈 수 없었다⁠. 스피커 두 대와 매트 여섯 장⁠, 구석에 쌓인 생수 상자⁠, 벽에 붙은 안무 동선 그림을 떼어 냈다⁠. 동선 그림의 테이프 자국이 벽지에 네모로 남았다⁠. 리더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안고 문을 나서다 말고 거울을 돌아봤다⁠.

“⁠여기서 삼 년 췄는데⁠.⁠”

“⁠이 년 열한 달⁠.⁠” 메인보컬이 말했다⁠. 오늘 처음 들은 메인보컬의 목소리였다⁠.

복도 끝 대표실 문이 열리고 모성곤이 나왔다⁠. 검은 양복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모성곤은 짐을 든 다섯을 차례로 보다가 내 앞에서 멈췄다⁠.

“⁠막내는 이거 안 들어도 된다⁠. 유통사가 솔로 연습실 따로 잡아 준대⁠. 성수동이다⁠. 거울이 두 면이야⁠.⁠”

넷의 숨소리가 한꺼번에 낮아졌다⁠. 나는 매트를 고쳐 안았다⁠.

“⁠저는 옥상에서 할게요⁠. 형들이랑⁠.⁠”

“⁠옥상은 공짜라서 좋지⁠. 비 오면⁠?⁠”

“⁠비 오면 우비 입고요⁠.⁠”

모성곤이 나를 빤히 봤다⁠. 휴대전화를 꺼내 계산기 앱을 열었다가 닫았다⁠.

“⁠연습실 하나 끊으면 한 달에 삼백이 준다⁠. 삼백이면 니들 넷이 석 달 먹는 쌀값이다⁠. 나는 쌀을 남기는 쪽을 고른다⁠.⁠” 모성곤은 대표실 문고리를 잡은 채로 덧붙였다⁠. “⁠막내 니가 고집부릴수록 형들 쌀이 준다⁠. 그것도 계산에 넣어⁠.⁠”

대표실 문이 닫혔다⁠. 경리 이모가 사무실 칸막이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쏙 집어넣었다⁠. 칸막이 위 작은 텔레비전에서 아침 연예 뉴스가 소리 없이 돌았다⁠. 「⁠중소 기획사 신인 그룹⁠, 데뷔 앨범 뒤 해체 잇따라⁠」 자막 밑으로 낯선 그룹의 단체 사진이 스쳐 지나갔다⁠. 다섯 명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랩 담당이 생수 상자를 고쳐 들었다⁠.

“⁠막내 니 아까 우비 입고 한다 했나⁠? 니 우비 있나⁠?⁠”

“⁠사면 되죠⁠.⁠”

“⁠노란 걸로 사라⁠. 우비 형처럼⁠.⁠” 랩 담당이 혼자 웃었다⁠. “⁠그 형 요새 왜 안 보이노⁠. 앨범 나오고 팬 사인회 한 번도 안 빠지던 형이⁠.⁠”

나는 계단 손잡이를 쥐었다⁠. 구로의 병원 침대 위에⁠, 우비 형이 누워 있었다⁠.

옥상에는 집주인 할머니의 고추 모종 화분이 줄지어 있었고⁠, 빨래 건조대에 누군가의 내복이 널려 있었다⁠. 다섯이 건조대를 한쪽으로 밀고 화분을 하나씩 옮겼다⁠. 화분은 열두 개였다⁠. 랩 담당이 화분마다 고개를 숙였다⁠.

“⁠할매요⁠, 잠깐만 비키 주이소⁠. 저희가 망해서 그래요⁠.⁠”

리더가 휴대전화를 빨래집게로 난간에 집어 세웠다⁠. 화면에 다섯이 들어오는지 보더니 「⁠손전등⁠」을 틀었다⁠.

나는 또 엉켰다⁠. 어제 연습실에서처럼 머리로 동작을 떠올릴수록 팔다리가 거꾸로 갔다⁠. 맏형이 한숨을 쉬고 노래를 다시 틀었다⁠. 전주가 흐르는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 세 해 동안 무대 앞에서 했던 일을 떠올렸다⁠. 전주 여덟 박이 지나면 팬은 응원법을 외친다⁠. 팬카페 공지에 딱 한 번 올라온 응원법을 나는 혼자 외웠고⁠, 혼자 외쳤다⁠.

나는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오버턴⁠, 하나 둘 셋 넷 다섯⁠.

몸이 움직였다⁠. 팔이 먼저 올라가고 발이 박자를 짚었다⁠.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 몸이 알았다⁠. 막내의 몸은 세 해 동안 이 노래를 수천 번 췄고⁠, 몸은 머리가 비켜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후렴의 손전등 동작에서 손바닥이 정확히 눈썹 높이로 올라갔다⁠. 나는 응원법을 계속 웅얼거렸다⁠. 메인보컬 파트에서는 이름 대신 「⁠고음⁠!⁠」을⁠, 리더 파트에서는 「⁠리더⁠!⁠」를⁠, 랩 파트에서는 「⁠부산⁠!⁠」을 넣는 부분까지⁠.

노래가 끝났다⁠. 다섯이 숨을 몰아쉬었다⁠. 랩 담당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니 방금 응원법 했제⁠?⁠”

“⁠아뇨⁠.⁠”

“⁠했다⁠. 랩 파트에서 부산 했다⁠. 그거 우리 팬카페 공지에만 있던 거다⁠. 그 공지 조회수가 열한 개였다⁠.⁠”

맏형이 수건으로 목을 닦으며 거들었다⁠.

“⁠그거 외워서 외친 사람⁠, 우비 형 하나밖에 없었는데⁠.⁠”

“⁠저도 팬카페 가입했어요⁠.⁠”

“⁠니가 왜⁠?⁠”

“⁠형들이 뭐 하고 사나 궁금해서요⁠.⁠”

랩 담당이 박장대소했고⁠, 리더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했다⁠. 메인보컬만 웃지 않고 나를 오래 봤다⁠.

*

밤 열한 시⁠, 다들 씻으러 내려간 뒤에도 맏형은 옥상 난간에 기대 있었다⁠. 손에 흰 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제 점퍼 안주머니를 불룩하게 하던 봉투였다⁠. 가로등 불빛에 봉투 겉면의 글자가 비쳤다⁠. 「⁠입영 통지서⁠」

“⁠6월이다⁠.⁠” 맏형이 봉투를 흔들었다⁠. “⁠스물일곱이라 더 못 미뤄⁠.⁠”

나는 맏형 옆으로 가서 난간에 팔을 얹었다⁠. 옥상 바닥에 고추 모종 흙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나 해체에 손 든다⁠.⁠”

“⁠형⁠.⁠”

“⁠생각해 봐⁠. 나 가면 넷이서 일 년 반을 버텨야 돼⁠. 그동안 한 달에 이천씩 빚이 는다⁠. 나 제대하고 오면 회사가 있겠냐⁠? 없지⁠. 그럼 넷은 빚만 지고 흩어진다⁠.⁠” 맏형이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대표님 말이 맞아⁠. 지금 끝내면 위약금이라도 없다⁠.⁠”

맏형의 목소리는 고르게 낮았다⁠. 오래 생각한 말은 높낮이가 없다⁠. 상담 전화에서도 해지하겠다는 고객 가운데 목소리가 평평한 사람은 붙잡히지 않는다⁠. 나는 붙잡을 말을 찾다가⁠, 말 대신 막내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내 클라우드 계정에 로그인했다⁠. 막내의 휴대전화에 내 계정을 여는 것은 남의 집 거실에 내 일기장을 펴 놓는 일이었다⁠. 사진첩 맨 아래⁠, 세 해 전 날짜가 찍힌 동영상 하나를 찾아 눌렀다⁠.

화면 속에서 스물넷의 맏형이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맏형은 손바닥을 눈썹에 대고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앞을 훑었다⁠. 손전등 불빛이 어두운 객석을 쓸고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맏형이 화면을 향해 머쓱하게 웃었다⁠. “⁠이거 어때⁠? 후렴에 넣을까 하는데⁠.⁠”

「⁠손전등⁠」 뮤직비디오 끝 자막에는 안무가로 바깥의 유명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대표가 홍보에 쓰려고 이름값을 산 이름이었다⁠. 맏형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맏형이 화면을 쳐다보다가 내 손에서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이거 어디서 났어⁠?⁠”

“⁠…⁠…⁠.⁠”

“⁠이거 내 개인 계정에 올렸다가 사십 분 만에 지운 거다⁠. 대표님이 내리라고 해서⁠. 그 사이에 본 사람⁠, 좋아요 누른 사람 한 명이었어⁠. 우비 형⁠.⁠” 맏형이 나를 내려다봤다⁠. “⁠니가 이걸 왜 갖고 있어⁠?⁠”

“⁠우비 형이 보내 줬어요⁠.⁠”

“⁠우비 형이 너한테⁠?⁠”

“⁠DM으로요⁠. 가끔 연락해요⁠.⁠”

“⁠니가 우비 형이랑 DM을 해⁠?⁠”

“⁠…가끔이요⁠. 아주 가끔⁠.⁠”

맏형은 휴대전화를 든 채 한참 말이 없었다⁠. 화면에서는 스물넷의 맏형이 손바닥을 눈썹에 대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옥상 아래 골목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형이 만든 동작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이거 형 이름으로 다시 올려요⁠. 형 가기 전에⁠, 이 동작 형 거라고 사람들이 알게⁠.⁠”

“⁠대표님이 가만있겠냐⁠?⁠”

“⁠가만 안 있겠죠⁠. 그래도 올려요⁠.⁠”

맏형이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봉투가 든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투표는 그날 가서 정한다⁠. 그 전까지는 춘다⁠.⁠” 맏형이 계단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췄다⁠. “⁠우비 형한테 고맙다고 전해라⁠. 형이 그거 지웠을 때⁠, 좋아요 하나가 남아 있어서 덜 쪽팔렸다고⁠.⁠”

맏형이 내려간 뒤 나는 옥상에 혼자 남아 맏형의 옛 영상을 오버턴 공식 숏폼 계정에 올렸다⁠. 「⁠후렴 손전등 동작 — 맏형이 만들었습니다⁠」 한 줄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열두 시 반⁠, 첫 댓글이 달렸다⁠. 영어였다⁠. 「⁠Wait⁠, the oldest made this⁠? Respect from Manila⁠」

한 시 십 분⁠, 숙소로 내려와 위 칸 침대에 누웠을 때 단톡방이 울렸다⁠. 실장이었다⁠. 「⁠대표님 전화 옴⁠. 공식 계정에 맏형 영상 누가 올렸냐고⁠」 랩 담당이 곧바로 「⁠저 아님 저 자고 있음⁠」을 달았고⁠, 메인보컬은 읽기만 했다⁠. 리더가 「⁠누구야⁠」라고 물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한참 화면 위에 띄워 두었다가 썼다⁠. 「⁠저요⁠. 대표님한테 내일 제가 말씀드릴게요⁠」

맏형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대신 영상 밑에 하트 하나가 새로 붙었다⁠. 세 해 전 사십 분 동안 남아 있던 좋아요 하나처럼⁠, 이번에도 하나였다⁠. 계정 이름을 눌러 보니 맏형의 개인 계정이었다⁠. 나는 화면을 끄고 천장을 봤다⁠. 아래 칸에서 맏형이 이를 갈기 시작했다⁠.

*

휴대전화를 베개 밑에 넣고 눈을 감았다⁠.

나는 4층 연습실에 서 있었다⁠. 불이 꺼져 있었고⁠, 통유리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마루를 반만 덮었다⁠. 내 몸은 내 몸이었다⁠. 스물셋 채이도의 마른 팔에 노란 우비를 걸치고 있었다⁠. 우비 자락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거울 앞에 누가 앉아 있었다⁠. 은빛 짧은 머리⁠, 오른쪽 귀의 작은 은 고리 귀걸이⁠, 헐렁한 흰 후드티⁠. 거울 밖이 아니라 거울 안이었다⁠. 원래 막내가 거울 안쪽 마루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거울 밖의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비 형⁠?⁠”

목소리가 낮고 맑았다⁠. 어제 아침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와 같았다⁠. 원래 막내는 내 우비를 오래 보다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봤다⁠.

“⁠내 자리를 망치지 마⁠.⁠”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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