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58자)

대표실 문틈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대표실 문을 닫고 나오자 계단참에 메인보컬이 서 있었다⁠. 손에 목캔디 통을 쥐고 있었다⁠. 아침에 내가 식탁에 올려 둔 통이었다⁠.

“⁠들었어⁠. 막내 씨만 보이던데⁠.⁠” 메인보컬이 유통사 이사의 말투를 흉내 냈다⁠. 흉내가 서툴러서 웃겨야 하는데 웃기지 않았다⁠. “⁠가⁠. 니가 솔로 하면 나는 OST 가이드 녹음이나 하면 돼⁠. 대표님이 그런 일 있다고 했어⁠.⁠”

“⁠형⁠, 저 안 가요⁠.⁠”

“⁠니가 안 가도 대표님은 너를 보내⁠.⁠” 메인보컬은 목캔디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어제 고마웠어⁠. 진짜로⁠. 근데 고음 한 번 지른다고 내 빚이 없어지진 않아⁠.⁠”

메인보컬은 계단을 내려갔다⁠. 목캔디 통이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렸다⁠. 나는 빚이라는 말을 혀끝에서 굴렸다⁠. 메인보컬의 빚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팬카페 공지에는 그런 것이 올라오지 않는다⁠.

*

같은 날 오전⁠, 모아엔터 4층 사무실은 전화벨 소리로 꽉 차 있었다⁠. 칸막이 너머에서 경리 이모가 수화기를 들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네⁠, 모아엔터입니다⁠. 대표님 지금 회의 중이세요⁠. 네⁠, 꼭 전해 드릴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곧바로 다른 전화가 울었다⁠. 은행⁠, 건물 관리실⁠, 뮤직비디오 촬영 장비 업체⁠. 이모의 목소리는 전화마다 조금씩 낮아졌다⁠. 콜센터에서 독촉 전화를 받는 사람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나도 두 해 동안 이런 목소리로 하루를 버텼다⁠.

실장이 복도 의자에 다섯을 앉혔다⁠.

“⁠대표님이 한 명씩 들어오래⁠. 맏형부터⁠.⁠”

맏형이 일어나 대표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대표실 문은 아래가 손가락 하나만큼 떠 있었고⁠, 복도 의자는 문 바로 옆이었다⁠. 막내의 귀는 내 귀보다 밝았다⁠. 문 아래 틈으로 새어 나오는 말이 한 글자씩 또렷하게 들어왔다⁠.

“⁠어머니 가게 대출 보증⁠, 회사 이름으로 선 거 있지⁠. 해체하면 그거 내가 풀어 준다⁠. 위약금도 없고⁠. 너는 홀가분하게 군대 가⁠.⁠”

맏형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만 들렸다⁠.

맏형이 나오고 메인보컬이 들어갔다⁠.

“⁠OST 가이드 녹음⁠, 한 곡에 얼마 받는지 아냐⁠? 내가 아는 감독 셋한테 니 이름 넣어 놨다⁠. 소속이 없어야 일이 들어온다⁠. 그룹 이름 달고 있으면 아무도 안 불러⁠.⁠”

메인보컬이 나오고 랩 담당이 들어갔다⁠. 랩 담당은 들어가기 전에 나를 돌아보며 혀를 쏙 내밀었다⁠. 문이 닫히자 모성곤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방송사 래퍼 서바이벌 지원 마감이 이번 주라며⁠. 소속사 있는 애는 회사 동의서가 필요하다⁠. 나는 동의서 못 써 준다⁠. 그룹이 있으니까⁠. 그룹이 없으면 너는 자유야⁠. 동의서도 필요 없어⁠.⁠”

“⁠대표님⁠, 그럼 해체 투표에서 제가⁠…⁠…⁠.⁠”

“⁠니 표는 니가 정해⁠. 나는 갈 데를 말해 주는 거다⁠.⁠”

마지막으로 리더가 들어갔다⁠. 이번에는 문이 끝까지 닫혔다⁠. 문 아래 틈으로 아무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벽 너머에서 피아노 소리가 났다⁠. 휴대전화 스피커로 트는 데모 녹음이었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 느리고⁠, 여덟 마디째에서 반음이 내려갔다⁠. 피아노가 멈추고 한참 동안 조용했다⁠.

옆자리에서 경리 이모가 내게 그릇을 내밀었다⁠. 뽀얀 누룽지가 담겨 있었다⁠.

“⁠막내는 누룽지 싫어하지⁠? 그래도 먹어⁠. 아침 굶었잖아⁠.⁠”

나는 그릇을 받아 들고 한 숟갈 떴다⁠. 구수했다⁠. 두 숟갈⁠, 세 숟갈⁠. 신림 원룸에서는 아침마다 편의점 컵누룽지로 버텼다⁠. 그릇 바닥이 보일 무렵 이모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막내가 누룽지를 다 먹네⁠.⁠”

맏형과 메인보컬과 랩 담당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굳었다⁠. 팬카페에는 막내가 참치마요를 좋아한다는 공지만 있었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입맛이 바뀌었어요⁠. 어른이 돼서요⁠.⁠”

“⁠스물한 살이 어른이면 나는 화석이다⁠.⁠” 이모가 그릇을 거둬 가며 혀를 찼다⁠.

*

랩 담당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비상계단으로 갔다⁠. 나는 따라 들어갔다⁠. 철문이 등 뒤에서 쿵 닫히자 바깥 전화벨 소리가 뚝 끊겼다⁠. 계단 벽이 소리를 되돌려 보냈다⁠. 운동화 밑창이 계단을 밟는 소리가 두 번씩 울렸다⁠.

“⁠막내 니 나 따라왔제⁠?⁠”

“⁠네⁠.⁠”

“⁠말리러 왔제⁠?⁠”

“⁠네⁠.⁠”

“⁠말리지 마라⁠.⁠” 랩 담당이 계단에 털썩 앉았다⁠. 초록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넘겼다⁠. “⁠형들은 갈 데라도 있다⁠. 맏형은 군대 가고⁠, 형은 OST 하고⁠, 리더 형은 곡 쓰고⁠. 나는⁠? 나는 이번이 막차다⁠. 스물셋에 래퍼 서바이벌 못 나가면⁠, 스물넷에는 나이 많다고 안 뽑아 준다⁠.⁠”

랩 담당의 목소리에서 사투리가 사라져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쓰는 서울말이었다⁠. 랩 담당은 진지해지면 서울말을 썼다⁠. 팬 시절에는 몰랐다⁠. 영상 속 랩 담당은 늘 카메라 앞이었으니까⁠.

“⁠형⁠, 서바이벌 나가면 사투리로 할 거예요⁠?⁠”

“⁠미쳤나⁠. 사투리 쓰는 래퍼는 안 팔린다⁠.⁠” 랩 담당이 계단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열아홉에 큰 회사 연습생이었다⁠. 데뷔조까지 갔는데 잘렸다⁠. 이사가 그러더라⁠. 니 랩은 좋은데 사투리가 촌스럽다고⁠. 서울말로 하면 반만 살고⁠, 사투리로 하면 아무도 안 산다고⁠.⁠”

나는 막내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또 내 클라우드 계정을 열었다⁠. 계정을 열 때마다 손가락이 조금씩 덜 망설였다⁠. 그것이 무서웠다⁠. 녹음 폴더 맨 아래⁠, 세 해 전 4월의 날짜가 붙은 파일을 찾아 눌렀다⁠.

빗소리가 먼저 나왔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 빗소리 아래로 앰프가 지직거리다 꺼지는 소리⁠. 잠시 조용하다가⁠, 젖은 목소리 하나가 마이크 없이 랩을 시작했다⁠.

부산 사투리였다⁠. 랩 담당이 스피커가 죽은 골목에서⁠, 관객 한 명 앞에서 즉석으로 지은 벌스였다⁠. 비가 오면 바다 냄새가 난다고⁠, 서울 골목에도 바다 냄새가 난다고⁠, 우산 하나 없는 저 형한테 바다를 빌려주고 싶다고⁠. 마지막 마디에서 랩 담당이 목소리를 낮췄다⁠. 「⁠행님 감기 걸리지 마이소⁠.⁠」

계단에 앉은 랩 담당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녹음이 끝나도 한참 들지 않았다⁠.

“⁠이거 어디서 났노⁠.⁠”

사투리가 돌아와 있었다⁠.

“⁠이거 찍은 사람 우비 형밖에 없다⁠. 그 형이 우산도 없이 우비 하나 쓰고 이거 찍고 있었다⁠. 니 이거 어디서 났노⁠?⁠”

“⁠우비 형이 보내 줬어요⁠. DM으로⁠.⁠”

“⁠니는 우비 형이랑 뭐 그렇게 친하노⁠? 맏형한테도 뭐 보내 줬다 하던데⁠.⁠”

“⁠…저희 둘이 잘 맞아요⁠.⁠”

“⁠우비 형이 니랑 잘 맞는다꼬⁠?⁠” 랩 담당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빨갰는데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 형은 맨날 내 파트에서 부산⁠! 하고 외치던 사람이다⁠. 니는 내 파트에서 맨날 하품하던 놈이고⁠.⁠”

“⁠그러니까 이제 저도 외칠게요⁠. 부산⁠.⁠”

랩 담당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상계단 벽이 웃음소리를 두 번씩 돌려줬다⁠.

“⁠형 사투리로 할 때가 제일 형 같아요⁠. 반만 사는 서울말 말고⁠, 아무도 안 산다는 사투리로 한 번만 해요⁠. 여기서요⁠. 계단 소리 좋잖아요⁠.⁠”

랩 담당은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손전등⁠」 반주를 틀었다⁠. 2절의 랩 파트를 비워 둔 반주였다⁠. 계단 벽에 휴대전화를 기대 세우고 녹음을 눌렀다⁠. 첫 마디는 서울말로 들어갔다가⁠, 두 번째 마디에서 랩 담당이 혀를 차고 처음부터 다시 했다⁠. 이번에는 첫 음절부터 사투리였다⁠. 철문과 시멘트 벽이 목소리를 받아 위층과 아래층으로 길게 끌고 갔다⁠.

녹음을 마친 랩 담당이 숨을 몰아쉬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이거 올리면 서바이벌은 끝이다⁠. 사투리로 랩하는 애를 누가 뽑노⁠.⁠”

“⁠그럼 사투리로 뽑아 주는 데를 만들면 되죠⁠.⁠”

“⁠니가⁠?⁠”

“⁠형이요⁠. 저희가요⁠.⁠”

*

세 시 반⁠, 건물 앞 골목에 견인차 한 대가 들어왔다⁠. 실장이 담배도 안 피우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처럼 골목에 서서 승합차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은색 승합차였다⁠. 옆문 손잡이 밑에 데뷔 전 랩 담당이 매직으로 그려 놓은 작은 해가 아직 남아 있었다⁠.

“⁠팔았어⁠. 아까 오전에⁠.⁠” 실장이 열쇠를 견인차 기사에게 건넸다⁠. “⁠대표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차피 오늘 가져가니까⁠.⁠”

다섯이 골목에 나란히 서서 승합차가 견인차 뒤에 묶이는 것을 봤다⁠. 맏형이 옆문을 한 번 두드렸다⁠. 메인보컬은 조수석 창에 붙은 주차 스티커를 손톱으로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리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랩 담당이 견인차 기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기사님⁠, 얘 뒷좌석 왼쪽 안전벨트 잘 안 빠집니더⁠. 새 주인한테 말해 주이소⁠.⁠”

“⁠그런 걸 왜 나한테 말해⁠?⁠”

“⁠얘가 삼 년 동안 저희를 실어 날랐거든요⁠. 마지막으로 하나라도 챙겨 주고 싶어서요⁠.⁠”

견인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실장이 빈 주차 자리에 떨어진 김밥 은박지 하나를 주워 들고 한참 들여다봤다⁠. 세 해 전 비 오던 홍대 앞 골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이 승합차의 뒷모습이었다⁠. 귀걸이를 쥔 손을 들고 뛰어갔을 때⁠, 승합차는 이미 골목을 돌고 있었다⁠. 오늘은 견인차에 묶인 채로 골목을 돌았다⁠. 나는 주머니 속 막내의 휴대전화를 쥐었다⁠. 서랍 속 지퍼백은 아직 신림에 있었다⁠.

맏형이 실장의 어깨를 툭 쳤다⁠.

“⁠실장님⁠, 이제 김밥은 지하철로 배달하세요⁠.⁠”

“⁠지하철에서 김밥 냄새 피우면 욕먹어⁠.⁠” 실장이 코를 훌쩍였다⁠. “⁠니들 이제 진짜 큰일이다⁠.⁠”

*

대표실에 다시 불려 들어간 것은 오후 네 시였다⁠. 모성곤은 창가에 서서 청담동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서류 한 묶음이 놓여 있었다⁠. 맨 위 장에 굵은 글씨로 「⁠솔로 음반 계약 조건⁠」이라고 쓰여 있었다⁠.

“⁠앉아⁠.⁠”

나는 앉지 않았다⁠.

“⁠형들한테 하나씩 따로 미끼 던지셨잖아요⁠.⁠”

“⁠미끼⁠?⁠” 모성곤이 창을 등지고 나를 봤다⁠. “⁠갈 데다⁠. 해체하면 애들이 갈 데가 있어야지⁠. 니 맏형 어머니 국밥집 대출에 회사가 보증을 섰다⁠. 회사가 망하면 그 빚이 어머니한테 간다⁠. 내가 그걸 풀어 주겠다는 게 미끼냐⁠?⁠”

“⁠형들한테 직접 물어보신 적 있어요⁠? 남고 싶은지⁠?⁠”

“⁠물으면 다 남는다고 하지⁠. 그러다 서른 넘어서 빚만 들고 나가⁠.⁠” 모성곤이 계약 조건 서류를 내 쪽으로 밀었다⁠. “⁠니 서명 하나면 이 층 전화가 다 조용해진다⁠. 이모가 누룽지 끓이면서 은행에 굽실거릴 일도 없어⁠.⁠”

나는 서류를 밀어 돌려보냈다⁠. 모성곤이 서류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승합차 봤지⁠? 월요일부터 지하철 타고 다녀⁠. 유통사 미팅도 지하철로 가⁠.⁠”

“⁠네⁠.⁠”

“⁠네⁠?⁠”

“⁠지하철 좋아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노래가 더 잘 들려요⁠.⁠”

모성곤이 이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책상 서랍을 열어 손가락 한 마디만 한 USB 하나를 꺼냈다⁠.

“⁠막내 니가 지난달에 나한테 보낸 녹음이다⁠. 니가 직접 녹음해서 보냈어⁠. 니 목소리로⁠.⁠” 모성곤이 USB를 내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들어 보고 다시 와라⁠. 그래도 니가 해체 안 한다고 하면⁠, 그때는 나도 할 말이 없다⁠.⁠”

대표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앉았다⁠. 랩 담당에게서 단톡방 알림이 왔다⁠. 「⁠비상계단 벌스 올림 ㅋㅋ 서바이벌 지원서 안 냄⁠」 밑에 맏형이 엄지손가락 하나를 달았다⁠. 영상 첫 댓글은 부산에서⁠, 두 번째는 마닐라에서 왔다⁠. 「⁠What language is this⁠? I don‘⁠t understand but I⁠’m crying⁠」

나는 손바닥의 USB를 내려다봤다⁠. 원래 막내의 목소리가 이 손가락 한 마디 안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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