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26자)

아저씨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수요일 저녁 일곱 시 반에 경모의 문자가 왔다⁠. 예리가 소리 내어 읽었다⁠.

“⁠「⁠오늘 야근⁠. 늦어⁠. 먼저 자⁠.⁠」⁠”

예리는 휴대전화를 식탁에 엎어 놓고 신발장 서랍에서 비닐 주머니를 꺼냈다⁠. 지퍼를 열자 경모의 양말 냄새가 거실에 퍼졌다⁠. 예리는 휴대전화로 영상 하나를 틀어 놓고 따라 했다⁠. 영상 속 남자가 셰퍼드에게 냄새를 맡기고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찾아⁠.

“⁠범돌⁠, 맡아⁠. 맡았어⁠? 찾아⁠!⁠”

나는 앉았다⁠. 찾아는 내가 아는 소리가 아니다⁠. 안다고 해도 시키는 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 종은 그렇게 생겨 먹지 않았다⁠. 예리가 다시 손을 뻗었다⁠.

“⁠찾아⁠! 범돌⁠, 찾아⁠!⁠”

나는 하품을 했다⁠. 예리가 이마를 짚었다⁠.

“⁠셰퍼드는 저렇게 잘하는데⁠.⁠”

셰퍼드는 셰퍼드다⁠. 나는 일어나서 현관으로 걸어가 문 앞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예리를 보았다⁠. 가자는 뜻이다⁠. 찾으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어서 간다⁠. 예리는 몰라도 된다⁠. 예리가 가슴줄을 채우는 동안 나는 꼬리를 한 번 크게 흔들었다⁠.

*

경모의 냄새는 아파트 정문 버스 정류장에 없었다⁠. 큰길 건너 한 정거장 앞에서 시작했다⁠. 경모는 집에 오는 버스에서 한 정거장 일찍 내렸다⁠. 정류장 의자에 엉덩이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앉아서 한참 기다리다 일어난 자리였다⁠.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냄새가 말해 주지 않았다⁠. 사람은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고 마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냄새는 정류장에서 편의점으로 이어졌다⁠. 편의점 문 앞에서 나는 멈췄다⁠. 경모 냄새보다 훨씬 큰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기름에 구운 어묵⁠, 꼬챙이에 꽂힌 소시지⁠. 핫바다⁠. 나는 편의점 문에 코를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범돌⁠. 지금 그거 아니야⁠.⁠”

예리가 줄을 당겼다⁠. 나는 브레이크를 걸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유리문 너머에서 우리를 보며 웃었다⁠. 예리는 결국 안으로 들어가 핫바 하나를 사 왔다⁠. 껍질을 벗겨 작게 잘라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다 먹었으면 일해⁠.⁠”

일했다⁠. 편의점 앞 쓰레기통 옆에서 경모 냄새를 다시 찾았다⁠. 경모는 여기서 딸기우유와 육포를 샀고⁠, 빨대 비닐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딸기우유는 경모가 마시지 않는다⁠. 경모는 단 것을 싫어한다⁠. 단 것을 마시는 것은 작은 사람이다⁠.

큰길을 건너고 오래된 동네로 들어갔다⁠. 냄새는 골목 입구 전봇대를 지나 안쪽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오늘은 전봇대에 경모 냄새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늙은 개가 방금 누고 간 오줌이었다⁠. 따뜻했다⁠.

*

가로등 밑에 셋이 있었다⁠.

경모가 늙은 개의 줄을 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늙은 개는 오른쪽 뒷다리를 끌었고⁠, 경모는 개 걸음에 맞춰 두 걸음마다 한 번씩 멈췄다⁠. 경모 옆에서 작은 사람이 킥보드를 탔다⁠. 키는 경모의 허리에 닿을락 말락 했고⁠, 얼굴 절반을 하늘색 마스크로 가렸다⁠. 킥보드 바퀴가 시멘트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덜컥 소리가 났다⁠. 아이가 깔깔 웃었다⁠.

“⁠아저씨⁠, 할매 또 쉬 한다⁠!⁠”

늙은 개가 담장 밑에 쪼그려 앉았다⁠. 경모가 줄을 느슨하게 풀고 기다렸다⁠. 개가 일어나자 경모가 입술을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늙은 개가 늘어진 귀를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휘파람 한 번에 개가 돌아보는 사이는 짧은 사이가 아니다⁠. 경모는 집에서도 나를 부를 때 저 휘파람을 분다⁠. 나는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다⁠. 오늘 알았다⁠. 저 휘파람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예리의 손에서 줄이 빠졌다⁠. 놓친 것인지 놓은 것인지 모른다⁠. 나는 달렸다⁠.

늙은 개가 먼저 움직였다⁠. 뒷다리를 끌면서도 아이와 나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늘어진 귀가 뒤로 붙고 입술이 들렸다⁠. 짖지 않았다⁠. 이빨만 보였다⁠. 나는 네 발로 시멘트를 긁으며 멈췄다⁠. 늙은 개 뒤에서 아이가 킥보드를 붙들고 나를 내다보았다⁠. 아이의 숨에서 쌕쌕 소리가 났다⁠. 좁은 관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였다⁠.

“⁠여우다⁠! 아저씨⁠, 여우⁠!⁠”

“⁠범돌⁠?⁠”

경모가 나를 보았다⁠. 경모가 고개를 들어 골목 입구를 보았다⁠. 예리가 가로등 불빛 끝에 서 있었다⁠.

경모의 몸에서 냄새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귀 뒤⁠, 겨드랑이⁠, 손바닥⁠. 겁이 났을 때의 땀이었고⁠, 거짓말이 다 쓰였을 때의 땀이었다⁠. 경모는 늙은 개의 줄을 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예리가 걸어왔다⁠. 예리의 걸음은 느렸다⁠. 예리의 숨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야근이라며⁠.⁠”

“⁠예리야⁠.⁠”

“⁠누구야⁠?⁠”

아이가 킥보드에서 내려 경모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아저씨⁠, 이 언니 누구야⁠? 여우 엄마야⁠?⁠”

“⁠어⁠, 아저씨 아는 사람⁠.⁠”

경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예리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 얼굴과 경모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예리의 눈이 두 얼굴 사이를 세 번 오갔다⁠. 개는 사람 얼굴을 잘 가리지 못한다⁠. 대신 냄새를 가린다⁠. 아이의 머리카락 밑바닥에서 경모의 밑바닥과 같은 냄새가 났다⁠. 땀이 마르는 냄새의 결이 같았다⁠. 같은 피가 흐르는 개끼리 나는 냄새가 사람에게도 있었다⁠.

파란 대문이 열렸다⁠. 버터 냄새가 났다⁠. 골목 끝 집 여자가 앞치마를 입은 채 뛰어나왔다⁠.

“⁠강아지⁠! 들어와⁠. 숨차잖아⁠. 흡입기 안 했지⁠?⁠”

강아지라는 소리에 나는 귀를 세웠다⁠. 여자는 나를 보지 않았다⁠. 아이에게 달려가 아이를 안았다⁠. 사람 무리에서는 새끼를 강아지라고 부른다⁠. 처음 알았다⁠. 그러면 나는 이 집에서 무엇으로 불리는지⁠, 잠깐 헷갈렸다⁠.

여자가 경모를 보았다⁠. 예리를 보았다⁠. 여자의 목덜미에서 찬 땀이 솟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애 앞에서는 안 돼요⁠. 약속했잖아요⁠.⁠”

“⁠알아⁠.⁠”

“⁠할매 줄 주세요⁠.⁠”

경모가 늙은 개의 줄을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한 손에 아이를⁠, 한 손에 개를 끌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늙은 개가 문턱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경모를 보았고⁠, 나를 보았다⁠. 나는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늙은 개도 귀를 세우지 않았다⁠. 대문이 닫혔다⁠.

대문 안에서 아이가 기침을 했고⁠, 칙 하고 무언가를 뿌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여자가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넷에서 아이의 숨이 조금 길어졌다⁠. 이어서 대문 바로 안쪽 바닥에 무거운 몸이 눕는 소리가 났다⁠. 늙은 개였다⁠. 지키는 개는 문 뒤에 눕는다⁠. 나도 안다⁠. 예리가 늦게 들어오는 밤이면 나는 현관 매트 위에 눕는다⁠.

*

골목에는 셋이 남았다⁠. 경모와 예리와 나⁠.

“⁠말해⁠.⁠”

예리가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내 아들이야⁠.⁠”

경모가 말했다⁠. 예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예리의 손가락 끝이 떨렸다⁠. 나는 예리의 다리에 옆구리를 붙였다⁠.

“⁠여덟 살이야⁠. 결혼 전에 낳은 애야⁠. 나는 이 년 전에 알았어⁠. 애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 생긴 줄 몰랐어⁠. 우연히 호수공원에서 마주쳤어⁠.⁠”

애 엄마⁠. 경모가 골목 끝 집 여자를 그렇게 불렀다⁠. 나도 이제부터 골목 끝 집 여자를 애 엄마라고 부른다⁠. 버터 냄새 나는 여자라고 부르는 것보다 맞는 말이었다⁠. 여자에게서 가장 진하게 나는 냄새는 버터보다 아이였다⁠.

“⁠이 년⁠.⁠”

예리가 숫자를 되풀이했다⁠.

“⁠우리 만난 게 일 년 반이야⁠. 그럼 나 만나기 전부터 알았네⁠.⁠”

“⁠응⁠.⁠”

“⁠결혼식 할 때도 알았고⁠.⁠”

“⁠응⁠.⁠”

“⁠결혼식에서 자기 어머님이 나한테 우리 집에 비밀 같은 거 없다고 했어⁠. 그때도 알았네⁠.⁠”

경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리가 웃었다⁠. 웃음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인지 신고는 했어⁠? 법적으로 아빠로 올리는 거⁠.⁠”

“⁠안 했어⁠. 애 엄마가 싫대⁠. 애한테는 아빠 없다고 했대⁠. 아빠가 멀리 일하러 가서 못 온다고⁠. 나는 개 산책시키는 아저씨로만 오래⁠. 그게 조건이었어⁠.⁠”

“⁠그래서 우리 집 개는 산책 한 번을 못 시키면서 남의 집 개는 밤마다 시켰어⁠?⁠”

경모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는 경모의 눈을 보았다⁠. 경모는 예리 대신 또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개가 눈을 피하지 않으면 사람은 개가 화났다는 것을 안다⁠. 경모는 알았다⁠. 경모가 먼저 눈을 피했다⁠.

*

집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편의점 앞에서 나는 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런 밤에도 핫바 냄새는 핫바 냄새였다⁠. 경모가 나를 안아 올리려고 허리를 굽혔고⁠, 예리가 경모의 손을 쳐 냈다⁠. 예리는 편의점에 들어가 핫바를 두 개 사 왔다⁠. 하나는 잘게 잘라 내 입에 넣어 주었고⁠, 하나는 껍질째 들고 길에 선 채로 먹었다⁠. 경모는 예리가 먹는 것을 보기만 했다⁠. 예리는 경모 몫을 사지 않았다⁠. 무리에서 밥을 나눠 받지 못하는 무리원이 어디에 서 있는지 경모도 알았다⁠. 나는 핫바를 씹으며 경모의 발등에 일부러 기름 묻은 주둥이를 닦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경모가 예리의 손을 잡으려 했고⁠, 예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경모의 손이 또 혼자 남았다⁠.

현관에서 예리가 내 가슴줄을 풀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예리 무릎에 턱을 얹었다⁠. 예리의 바지에서 골목의 시멘트 냄새가 났다⁠.

“⁠우리 아빠도 그랬어⁠.⁠”

예리가 말했다⁠. 경모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경모는 현관에 선 채 신발도 벗지 않았다⁠.

“⁠집이 둘이었어⁠. 엄마는 내가 열두 살 때 알았어⁠. 아빠가 출장 간다던 날마다 다른 동네에서 다른 애를 학교에 데려다줬대⁠. 엄마는 이혼 안 했어⁠. 나 때문에⁠. 대신 삼십 년 동안 아빠 와이셔츠에서 남의 집 냄새를 맡았어⁠. 그게 어떤 건지 알아⁠?⁠”

“⁠알아⁠. 그래서 말 못 했어⁠.⁠”

“⁠그래서 말했어야지⁠.⁠”

예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나는 귀를 눕혔다⁠. 경모가 신발을 벗고 한 걸음 들어왔다⁠.

“⁠예리야⁠, 나는 둘 다 지키려고⁠…⁠.⁠”

“⁠둘 다⁠?⁠”

“⁠애는 아빠가 갑자기 생기면 안 되는 애야⁠. 숨이 약해서 놀라면 발작이 와⁠. 애 엄마는 혼자 다 키웠어⁠. 내가 끼어들 자격 없어⁠. 그리고 너는⁠… 너는 그런 집에서 자랐잖아⁠. 너한테 이 얘기를 하면 네가 또 그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그 집으로 돌아갈 일을 자기가 만들었네⁠.⁠”

경모가 한 걸음 더 왔다⁠. 예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일어났다⁠. 앞발을 예리 무릎 앞에 딛고 경모를 향해 입술을 들었다⁠. 목 안쪽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아침마다 가슴줄 앞에서 지르던 비명과는 다른 소리였다⁠. 낮고⁠, 길고⁠,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 이 집에 들어온 뒤 다섯 달 동안 나는 경모에게 이 소리를 낸 적이 없다⁠. 경모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범돌⁠…⁠.⁠”

나는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서열은 오늘 밤 정해졌다⁠. 경모는 이 무리의 맨 아래다⁠. 맨 아래에서도 문 밖이다⁠.

경모가 손을 거두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예리는 거실 소파에서 잤다⁠. 나는 소파 발치에 몸을 말고 누웠다⁠. 문 안에 들어가는 무리원과 문 밖에 남는 무리원이 오늘은 바뀌었다⁠.

새벽 두 시에 안방에서 경모의 전화기가 진동했다⁠. 문틈으로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알았다고⁠? 예리가⁠? 그 여자가 다 말했어⁠?⁠”

경모가 낮게 대답했다⁠.

“⁠엄마⁠, 내가 말했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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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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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가자리2026.10.31· 3화

    찾아 시키는데 하품하는 범돌 최고예요. 셰퍼드는 잘하는데라는 말에 범돌이 서운했을 것 같아요.

    • 윤새벽작가2026.10.31

      서운했죠. 범돌은 셰퍼드랑 비교당하는 걸 제일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