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56자)

막다른 골목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월요일부터 나는 산책길을 내가 정했다⁠.

후문을 나서서 큰길을 건너면 예리는 늘 호수공원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반대로 틀었다⁠. 예리가 줄을 당기면 엉덩이를 박았다⁠. 예리가 무릎을 꿇고 간식을 내밀면 간식은 먹고 엉덩이는 그대로 두었다⁠. 예리가 나를 들어 올리면 비명을 질렀다⁠. 사흘째 되는 아침에는 예리가 먼저 졌다⁠.

“⁠알았어⁠. 가⁠. 네가 앞장서⁠.⁠”

나는 일어나서 오래된 동네로 걸었다⁠. 걸음이 가벼웠다⁠. 예리가 뒤에서 한숨을 쉬었다⁠. 담장 위로 감이 주황색으로 익어 가고⁠, 대문마다 개들이 내 발소리를 듣고 짖었다⁠. 짖는 개들의 오줌은 다 읽어 두었다⁠. 철물점 집 늙은 수컷은 전립선이 좋지 않고⁠, 세탁소 집 푸들은 새끼를 가졌다⁠. 골목 입구 전봇대에서는 아무도 내 냄새를 덮지 못했다⁠. 내가 매일 와서 다시 덮었으니까⁠.

골목 끝 파란 철대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대문 앞 시멘트 바닥에 앉았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세모난 귀를 대문 쪽으로 세우고⁠, 말아 올린 꼬리를 등에 붙였다⁠. 이 자세로 기다리면 문이 열린다⁠. 아파트 현관에서 배운 것이다⁠.

“⁠범돌⁠, 남의 집 앞에서 뭐 해⁠. 민망하게⁠.⁠”

예리가 줄을 살살 당겼다⁠.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멈추고 웃었다⁠.

“⁠아가씨네 여우가 이 집 개한테 장가가고 싶은가 보네⁠.⁠”

“⁠여우 아니고 진돗개예요⁠.⁠”

“⁠그게 그거지⁠. 저 집 개는 할망구라 안 받아 줄 거여⁠.⁠”

할아버지는 웃으며 손수레를 끌고 갔다⁠. 대문 안에서 발톱이 시멘트를 긁는 소리가 났다⁠. 느리고 고르지 않은 발소리였다⁠. 뒷다리 하나가 다른 다리보다 늦게 땅을 짚었다⁠.

*

화요일 밤에 나는 작전을 바꿨다⁠. 경모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 나가 외투에 온몸을 비볐다⁠. 옆구리로 한 번⁠, 등으로 한 번⁠, 마지막에는 바닥에 드러누워 경모의 구두 위에서 몸을 뒤집었다⁠. 털갈이 철의 털이 뭉텅뭉텅 빠져 경모의 검은 외투가 붉은 갈색으로 얼룩졌다⁠. 라벤더를 덮는 데는 털이 오줌보다 낫다⁠. 집 안에서 다리를 들면 예리가 목욕을 시키니까⁠.

“⁠예리야⁠! 범돌이 나한테 안겼어⁠! 나한테 몸을 비볐어⁠!⁠”

경모는 구두도 벗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나를 찍었다⁠. 찍은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냈고⁠, 예리가 씻는 동안 답이 왔다⁠. 경모가 전화기를 귀에 대자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녹음해 보낸 목소리였다⁠.

“⁠개털 묻히고 그쪽 가지 마라⁠. 그 집 애 기관지 약한 거 잊었니⁠? 숨 막혀 병원 가면 또 너 탓이야⁠.⁠”

경모는 목소리를 끝까지 듣지 않고 지웠다⁠. 외투를 벗어 베란다에서 오래 털었다⁠. 내가 묻힌 털이 가을바람에 날려 갔다⁠. 나는 거실 유리문에 코를 대고 경모가 내 털을 버리는 것을 보았다⁠. 무리원이 같은 무리의 냄새를 털어 내는 것은 개들 사이에서 큰일이다⁠. 경모는 오늘 밤에도 골목 끝 집에 간다⁠. 내 털이 묻은 채로는 가지 않는다⁠.

*

수요일 아침에 대문이 열렸다⁠. 여자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 여자 몸에서는 버터와 이스트 냄새가 진하게 났다⁠. 새벽에 빵을 굽는 곳에서 막 돌아온 몸이었다⁠. 소매 끝에 밀가루가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고⁠, 빨래 바구니에서는 라벤더가 쏟아졌다⁠. 금요일 밤 경모의 외투에서 맡은 라벤더였다⁠.

여자 뒤로 늙은 개가 나왔다⁠.

가까이서 보니 늙은 개는 크지 않았다⁠. 흰빛 도는 회색 털은 군데군데 뭉쳐 있었고⁠, 늘어진 귀가 걸음마다 흔들렸다⁠. 주둥이 끝이 다른 데보다 더 하얗게 셌다⁠. 오른쪽 뒷다리가 늦게 따라 나왔다⁠. 나는 다리를 뻣뻣하게 펴고 꼬리를 등 위로 한껏 세웠다⁠. 우리 종의 꼬리는 원래 말려 있지만⁠, 힘을 주면 더 높이 말린다⁠. 목 안에서 그르렁 소리를 끌어올렸다⁠. 젊은 수컷이 남의 대문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인사였다⁠.

늙은 개는 짖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느린 걸음으로 내 옆까지 와서 내 엉덩이에 코를 대고 오래 맡았다⁠. 나는 맡게 두었다⁠. 개끼리는 이것이 순서다⁠. 이어서 늙은 개가 턱을 들어 내 어깨 위에 얹었다⁠. 턱 하나의 무게였다⁠. 그런데 몸이 굳었다⁠. 턱을 남의 어깨에 얹는 것은 위에 선 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르렁을 삼켰다⁠. 꼬리가 저절로 내려왔다⁠.

늙은 개는 턱을 거두고 대문 기둥으로 갔다⁠. 아침마다 내가 덮어 둔 골목 입구의 냄새가 아니라 대문 기둥⁠, 이 집의 기둥이었다⁠. 내가 방금 다리를 들고 남긴 자리 위에 늙은 개가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었다⁠. 내 냄새가 덮였다⁠. 덮이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어머⁠, 죄송해요⁠. 얘가 요즘 자꾸 이 집 앞으로만 와서요⁠.⁠”

예리가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예리의 얼굴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여자의 목덜미에서 찬 땀이 솟았다⁠. 겁날 때 나는 땀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겁나는 사람은 없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까⁠.

“⁠개 데리고 이 골목 오지 마세요⁠.⁠”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밤을 새운 목소리였다⁠.

“⁠우리 개 늙어서 예민해요⁠. 애도 있고요⁠.⁠”

“⁠아⁠, 네⁠. 근데 골목은 다 같이 쓰는 길이잖아요⁠. 저희가 대문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막다른 골목이에요⁠. 우리 집 앞이 끝이에요⁠.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우리 집 오는 사람밖에 없어요⁠.⁠”

예리가 입을 다물었다⁠. 예리의 숨이 짧아졌다⁠. 여자는 빨래를 털어 줄에 널기 시작했다⁠. 공룡이 그려진 작은 내복과 수건 두 장과 여자의 앞치마⁠. 나는 대문 안 마당을 들여다보았다⁠. 평상 위에 작은 신발 한 켤레와 비닐봉지 하나가 있었다⁠. 봉지에서 연어와 닭 연골과 바다 조개 가루 냄새가 났다⁠. 금요일 밤 경모의 주머니에서 내가 물어 낸 것과 같은 봉지였다⁠. 나는 마당 안으로 한 발을 들였다⁠.

“⁠범돌⁠!⁠”

예리가 줄을 당기다가 평상 위를 보았다⁠. 예리의 눈이 봉지에서 멈췄다⁠.

“⁠저 간식⁠, 동물병원에서만 파는 거죠⁠? 어디서 사셨어요⁠?⁠”

여자가 마당으로 들어가 봉지를 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여자의 손이 떨렸다⁠.

“⁠병원에서 샀겠죠⁠. 가세요⁠. 애 깰 시간이에요⁠.⁠”

파란 대문이 닫혔다⁠. 대문 안쪽에서 늙은 개가 한 번 낮게 짖었다⁠. 들어가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시 오라는 소리도 아니었다⁠. 여기는 내 무리라는 소리였다⁠.

*

“⁠그 골목 가지 마⁠.⁠”

경모는 저녁 밥상 앞에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예리가 산책 이야기를 꺼낸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식탁 밑에서 두 사람의 발을 보고 있었다⁠. 경모의 발가락이 양말 안에서 오그라들었다⁠.

“⁠왜⁠?⁠”

“⁠그 집 개가 사람 물어⁠. 작년에 지나가던 애를 물었대⁠.⁠”

“⁠누가 그래⁠?⁠”

“⁠경비 아저씨가⁠. 우리 단지 후문 경비 아저씨⁠.⁠”

“⁠그 집에 애 있던데⁠. 애 있는 집 개가 애를 물어⁠?⁠”

“⁠그러니까 위험하다는 거지⁠. 늙은 개는 예민해서 언제 물지 몰라⁠.⁠”

“⁠자기가 그 집 개를 어떻게 알아⁠? 토요일에는 지나가다 봤다며⁠.⁠”

경모가 물을 마셨다⁠.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컸다⁠. 경모의 귀 뒤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번 거짓말은 지난번 것보다 짙었다⁠. 예리가 국을 떠서 입에 넣지 않고 다시 그릇에 내려놓았다⁠.

“⁠그 집 여자도 똑같은 간식 갖고 있더라⁠. 동물병원에서만 파는 거⁠.⁠”

“⁠그 간식 흔해⁠.⁠”

“⁠흔한데 편의점엔 없어⁠.⁠”

“⁠예리야⁠.⁠”

“⁠응⁠.⁠”

“⁠가지 말라면 가지 마⁠. 범돌 물리면 어떡해⁠.⁠”

경모의 손이 식탁 위에서 예리 손 쪽으로 건너갔다⁠. 예리는 손을 무릎으로 내렸다⁠. 경모의 손이 식탁 한가운데 혼자 남았다⁠. 나는 식탁 밑에서 일어나 경모의 발등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내가 앉고 싶은 곳에 앉은 것이다⁠. 경모의 발이 따뜻했다⁠. 경모는 내가 편을 들어 주는 줄 알고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경모의 양말에 털을 잔뜩 묻혔다⁠. 붉은 갈색 털로 라벤더를 덮었다⁠. 한참을 문질러서야 라벤더가 내 냄새 밑으로 내려갔다⁠.

밤에 예리가 휴대전화로 누구와 통화했다⁠. 들기름과 파스 냄새가 전화기 너머로 올 리는 없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예리 어머니다⁠. 내가 강아지 때 두 해를 산 집의 우두머리다⁠.

“⁠엄마⁠, 사위는 잘해 줘⁠. 응⁠, 잘 먹어⁠. 범돌도 잘 있어⁠. 엄마는 별걱정을 다 해⁠.⁠”

예리 어머니의 목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예리는 대답하지 않고 듣기만 하다가 한마디 했다⁠.

“⁠아빠 얘기는 왜 해⁠. 경모 씨는 아빠랑 달라⁠.⁠”

*

목요일 아침⁠, 후문 경비실 앞을 지날 때 예리가 걸음을 멈췄다⁠. 경비실 안에서 작은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경비 아저씨는 커피믹스를 타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경비 아저씨 손에서는 늘 커피 가루와 담배 냄새가 났다⁠. 아저씨는 나를 여우라고 부른다⁠.

“⁠여우 왔네⁠. 오늘도 끝 골목 가나⁠?⁠”

“⁠아저씨⁠,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큰길 건너 끝 골목에 파란 대문 집 있잖아요⁠. 그 집 개가 작년에 애를 물었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그 집 귀 처진 할매 개⁠? 누가 그래요⁠? 걔 순해요⁠. 애 지키느라 짖기는 해도 사람 무는 건 못 봤는데⁠. 나 저 동네 산 지 이십 년이에요⁠.⁠”

예리의 숨이 멈췄다가 천천히 나왔다⁠.

“⁠누가 경비 아저씨한테 들었다고 해서요⁠.⁠”

“⁠나한테⁠?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가 말했다⁠. 개 물림 사고를 낸 개는 구청이 정한 곳에서 기질 평가라는 것을 받아야 하고⁠, 결과에 따라 입마개를 씌우거나 더 무거운 명령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기질 평가가 무엇인지 아나운서는 한 번 더 풀었다⁠. 개의 성질이 사람에게 위험한지 전문가들이 따져 보는 일이라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혀를 찼다⁠.

“⁠요새는 개도 재판받아⁠. 세상 참⁠.⁠”

예리는 고맙다고 하고 경비실을 나왔다⁠. 나는 경비실 앞 화단에 다리를 들었다⁠. 예리는 줄을 당기지 않았다⁠. 예리의 손이 줄 손잡이를 쥐었다 폈다 했다⁠.

*

밤 열한 시⁠, 경모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예리가 현관으로 갔다⁠. 옷걸이에 경모의 외투가 매달려 있었다⁠. 예리는 외투를 내려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냄새를 맡았다⁠.

사람이 냄새를 맡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예리는 코를 깃에 묻었다가⁠, 소매로 옮겼다가⁠, 주머니에 댔다⁠. 숨을 길게 한 번에 들이마셨다⁠. 그렇게 맡으면 냄새가 섞인다⁠. 짧게 끊어서 맡아야 층이 갈린다⁠.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개는 가르칠 수 없다⁠. 나는 예리 옆에 앉아 같이 소매에 코를 댔다⁠. 소매 끝에는 오늘도 작은 사람의 딸기 치약 냄새가 낮게 묻어 있었다⁠.

“⁠라벤더네⁠.⁠”

예리가 혼잣말을 했다⁠.

“⁠우리 집 거 아닌데⁠.⁠”

욕실에서 물소리가 그쳤다⁠. 예리는 외투를 옷걸이에 도로 걸고 신발장 서랍을 열었다⁠. 지퍼가 달린 비닐 주머니를 꺼내고⁠, 빨래 바구니에서 경모가 오늘 벗어 놓은 양말 한 짝을 집어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그러고는 쪼그려 앉아 주머니를 내 코앞에 내밀었다⁠. 골판지와 지게차 기름⁠, 라벤더⁠, 늙은 개⁠, 딸기 치약⁠. 경모의 하루가 한 짝에 다 들어 있었다⁠.

“⁠범돌⁠. 이 냄새 잘 기억해⁠.⁠”

예리가 낮게 말했다⁠. 예리의 손끝이 차가웠다⁠. 기억하라는 말을 나는 모른다⁠. 모르는 말이었지만 예리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았다⁠. 우두머리가 무리원의 냄새를 따로 떼어 내 코앞에 둘 때 바라는 것은 하나다⁠.

나는 주머니에 코를 대고 짧게⁠, 여러 번 끊어서 맡았다⁠. 층이 갈렸다⁠. 맨 아래에서 경모의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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