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12자)

두고 간 개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목요일 오후 한 시⁠, 예리는 파란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아침에 경모가 현관에서 구두를 신다 말고 돌아서서 가지 말라고 했다⁠. 예리는 대답 대신 내 가슴줄을 꺼냈다⁠. 경모는 출근했고⁠, 우리는 왔다⁠.

대문 안에서 늘어진 귀가 흔들리는 소리가 먼저 났다⁠. 늙은 개는 짖지 않고 대문 아래 틈에 코를 댔다⁠. 나도 틈에 코를 댔다⁠. 코끝과 코끝 사이에 철판 한 장이 있었다⁠. 늙은 개의 숨은 따뜻하고 느렸다⁠. 간밤에 문 뒤에 누워 있던 몸의 냄새였다⁠.

대문이 열렸다⁠. 애 엄마는 새벽 일을 끝내고 막 씻은 얼굴이었다⁠. 버터 냄새는 옅어지고 비누 냄새가 났다⁠. 머리끝이 아직 젖어 있었다⁠. 애 엄마는 예리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았어요⁠. 들어오세요⁠. 개도요⁠. 마당까지만⁠.⁠”

마당은 좁았다⁠. 평상 하나⁠, 빨랫줄 하나⁠, 감나무 한 그루⁠. 평상 밑에 늙은 개의 방석이 있었다⁠. 납작하게 눌린 방석에서 몇 해 치 늙은 개 냄새가 겹겹이 났다⁠. 애 엄마가 평상 다리에 내 줄을 묶었다⁠. 줄이 길어서 마당 절반은 내 땅이 되었다⁠.

늙은 개가 내 앞으로 왔다⁠. 어제 골목에서 이빨을 보이던 개였다⁠. 오늘은 입술을 내렸다⁠. 내 얼굴에 코를 대고 주둥이 옆을 맡았다⁠. 나도 늙은 개의 주둥이 옆을 맡았다⁠. 세어 버린 흰 털 사이로 잇몸 냄새가 났고⁠, 연어 간식 냄새가 났고⁠, 맨 밑에 경모가 있었다⁠. 경모의 손 냄새가 늙은 개의 얼굴에 배어 있었다⁠. 몇 년 동안 쓰다듬은 손이 아니면 배지 않는 깊이였다⁠.

늙은 개가 몸을 돌려 마당을 가로질렀다⁠. 뒷다리를 끌며 마루 끝으로 가서 미닫이문 앞에 엎드렸다⁠. 문 너머에서 아이 냄새가 가장 짙게 났다⁠. 이불과 크레파스와 딸기 치약⁠. 아이가 자는 방이었다⁠. 늙은 개는 엎드린 채 나를 보았다⁠. 나는 알아들었다⁠. 여기가 이 무리의 한가운데라는 말이었다⁠. 늙은 개는 문 앞에 눕는 개다⁠. 이 무리에서 늙은 개의 자리는 문 앞이다⁠.

나는 줄이 허락하는 데까지 가서 마당에 엎드렸다⁠. 늙은 개와 나 사이에 세 걸음이 남았다⁠. 늙은 개는 세 걸음을 좁히지도 넓히지도 않았다⁠.

*

애 엄마가 믹스커피 두 잔을 평상에 놓았다⁠. 예리는 잔을 들지 않았다⁠.

“⁠먼저 말할게요⁠. 저 사람한테 아빠 노릇 하라고 한 적 없어요⁠.⁠”

“⁠알아요⁠. 들었어요⁠.⁠”

“⁠우리 할매 산책만 시키라고 했어요⁠. 할매가 원래 저 사람 개였으니까⁠.⁠”

예리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귀를 세웠다⁠.

“⁠저 사람이 대학 때 시장에서 데려온 개예요⁠. 열네 살이에요⁠. 우리 같이 살 때 셋이 살았어요⁠. 헤어질 때 저 사람이 원룸으로 들어간다고 개를 두고 갔어요⁠. 할매가 나를 더 따른다고요⁠. 넉 달 뒤에 애가 생긴 걸 알았어요⁠. 전화했더니 번호가 바뀌어 있었고요⁠.⁠”

“⁠그럼 지금까지 혼자⁠…⁠.⁠”

“⁠할매랑 둘이요⁠. 애 낳는 날도 할매가 대문 앞에서 밤새 짖어서 옆집 할머니가 구급차 불러 줬어요⁠.⁠”

애 엄마는 늙은 개를 보며 웃었다⁠. 늙은 개는 미닫이문 앞에서 늘어진 귀 한쪽만 들썩였다⁠.

“⁠이 년 전에 호수공원에서 할매가 목줄을 끊고 뛰어갔어요⁠. 열두 살 먹은 개가요⁠. 다리도 안 좋은 개가⁠. 가 보니까 저 사람 다리에 매달려 있더라고요⁠. 그날 저 사람이 애를 처음 봤어요⁠.⁠”

예리가 커피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잔 바닥이 평상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예리의 손가락이 잔 손잡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돈은요⁠. 받으세요⁠?⁠”

“⁠한 달에 오십이요⁠. 처음엔 안 받는다고 했어요⁠. 애 흡입기 약값이 비싸서 받았어요⁠. 왜요⁠?⁠”

“⁠경모 씨가 다달이 오십씩 빠져나가는 걸 어머님 가게 대출 갚는 거라고 했거든요⁠.⁠”

애 엄마가 잠깐 말을 멈췄다⁠. 애 엄마의 목덜미에서 땀 냄새가 올라왔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화난 사람의 땀이었다⁠. 애 엄마는 화를 오래 붙들고 있지 않았다⁠.

“⁠저 사람 원래 그래요⁠. 둘 다 안 다치게 하려다가 둘 다 다치게 하는 사람⁠.⁠”

“⁠그래서 앞으로는요⁠?⁠”

“⁠앞으로도 똑같이요⁠. 애한테는 아빠 없어요⁠. 저 사람은 할매 산책시키는 아저씨예요⁠. 언니한테는 미안한데⁠, 저 사람이 우리 애 아빠라고 나서지 못하게 해 주세요⁠. 애는 아빠 없이도 잘 컸어요⁠.⁠”

“⁠애가 크면 알게 돼요⁠.⁠”

예리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저는 열두 살 때 알았어요⁠. 아빠한테 다른 집이 있다는 거⁠. 엄마가 감추고 있었다는 거⁠. 아빠가 다른 집 있는 것보다 엄마가 감춘 게 더 오래 아팠어요⁠. 숨기면 지켜지는 게 아니에요⁠. 숨긴 사람이 나중에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예요⁠.⁠”

“⁠언니네 아빠 얘기랑 우리 애 얘기는 달라요⁠.⁠”

“⁠어디가요⁠?⁠”

“⁠우리 애는 숨이 약해요⁠. 놀라면 발작이 와요⁠. 작년 겨울에 응급실 세 번 갔어요⁠. 갑자기 아빠가 생기고⁠, 그 아빠한테 새 아내가 있고⁠, 그 집에 개도 있고⁠. 그걸 여덟 살짜리가 한 번에 받아요⁠?⁠”

예리가 입을 다물었다⁠. 애 엄마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커피 두 잔이 식어 갔다⁠. 감나무에서 잎 하나가 평상 위로 떨어졌다⁠. 늙은 개가 미닫이문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개의 한숨은 코로 길게 나온다⁠. 사람들은 개의 한숨을 못 듣는 척한다⁠.

*

대문이 덜컥 열렸다⁠. 하늘색 마스크를 쓴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뛰어 들어왔다⁠. 뒤에 옆집 할머니가 서 있었다⁠.

“⁠엄마⁠! 여우 왔어⁠? 어제 그 여우⁠?⁠”

“⁠뛰지 마⁠. 숨차⁠.⁠”

아이가 나를 보고 멈췄다⁠. 두 걸음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손을 뻗지는 않았다⁠. 누가 가르쳤는지 아는 아이였다⁠. 개한테 손을 먼저 내밀면 안 된다는 것⁠. 나는 아이의 운동화 끈에 코를 댔다⁠. 학교 운동장의 흙과 급식 카레와 딸기우유⁠.

“⁠여우야⁠, 이름이 뭐야⁠?⁠”

“⁠범돌이야⁠.⁠”

예리가 대답했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범은 호랑인데⁠! 여우가 호랑이래⁠!⁠”

아이가 웃었다⁠. 웃음 끝에 쌕쌕 소리가 섞였다⁠. 애 엄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들고 기다렸다⁠. 아이는 웃음을 멈추고 숨을 두 번 길게 쉬었다⁠. 흡입기는 쓰지 않았다⁠.

“⁠엄마⁠, 범돌은 털 만지면 안 돼⁠?⁠”

“⁠안 돼⁠. 할매 털도 엄마가 마당에서만 만지게 하잖아⁠.⁠”

“⁠그럼 냄새만 맡아도 돼⁠?⁠”

“⁠냄새는 돼⁠.⁠”

아이가 내 쪽으로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렸다⁠. 사람이 개처럼 냄새를 맡는 모습을 나는 이번 가을에 두 번 보았다⁠. 예리와 아이⁠. 아이는 짧게 끊어서 맡았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했다⁠. 경모의 코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경모는 냄새를 맡지 않는다⁠. 경모는 냄새를 숨긴다⁠.

아이가 책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엄마에게 내밀었다⁠. 크레파스 냄새가 진했다⁠. 예리가 고개를 기울여 보았다⁠. 회색 개 한 마리와 키 큰 사람 하나와 작은 사람 하나⁠. 키 큰 사람 머리 위에 아이가 삐뚤게 써 놓은 글자가 있었다⁠. 예리가 작은 소리로 읽었다⁠.

“⁠「⁠강아지 아저씨⁠」⁠”

아이가 평상에 올라가 신발을 벗는 동안 나는 평상 위 접시를 보았다⁠. 식빵 테두리가 접시에 수북했다⁠. 빵 굽는 집의 빵 테두리는 버터 냄새가 다르다⁠. 나는 줄 끝까지 몸을 늘여 테두리 하나를 물었다⁠. 예리가 나를 불렀다⁠. 나는 이미 씹고 있었다⁠.

“⁠범돌⁠!⁠”

“⁠괜찮아요⁠. 남는 거예요⁠.⁠”

애 엄마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늙은 개가 미닫이문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빵 테두리를 나눠 먹는 일은 무리 밖의 개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늙은 개가 다시 턱을 내렸다⁠. 허락이었다⁠.

애 엄마의 휴대전화가 평상 위에서 울렸다⁠. 애 엄마는 화면을 보고 받지 않았다⁠. 전화는 오래 울다 끊겼고⁠, 곧 다시 울렸다⁠.

“⁠어젯밤부터 계속 와요⁠. 팔 년 만에 처음이에요⁠.⁠”

“⁠누구요⁠?⁠”

“⁠저 사람 어머니요⁠.⁠”

애 엄마는 전화기를 뒤집어 놓았다⁠. 늙은 개가 미닫이문 앞에서 일어나 평상까지 걸어왔다⁠. 예리의 발목에 코를 대고 오래 맡았다⁠. 예리는 경모와 한 이불을 덮고 자니 예리 발목에도 경모가 묻어 있다⁠. 늙은 개는 경모 냄새를 한참 맡다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예리가 놀라서 발을 들었고⁠, 아이가 깔깔 웃었다⁠. 늙은 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문 앞으로 돌아가 다시 엎드렸다⁠. 경모 냄새에 다른 여자 냄새가 섞인 것이 늙은 개의 코에도 낯설었다⁠. 예리의 숨이 짧아졌다⁠.

“⁠법률구조공단에서는 양육비 소송하라고 해요⁠. 법으로 하면 더 받는다고요⁠. 안 해요⁠. 법원 가면 애 이름이 서류에 오르내려요⁠. 그 집 어머니가 그걸 알면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

밤 아홉 시⁠, 경모가 집에 왔다⁠. 오늘은 외투에서 라벤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골목에 들르지 않고 곧장 왔다⁠. 나는 현관에서 경모의 구두를 맡고 몸을 돌렸다⁠. 오늘의 경모는 냄새가 하나뿐이었다⁠. 골판지와 지게차 기름⁠. 냄새가 하나뿐인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예리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 통장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한 달에 오십⁠. 어머님 가게 대출이라며⁠.⁠”

경모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경모의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애 약값이야⁠. 미안해⁠.⁠”

“⁠할매가 자기 개였다며⁠.⁠”

“⁠…응⁠.⁠”

“⁠두고 갔다며⁠. 원룸 들어간다고⁠.⁠”

“⁠응⁠.⁠”

“⁠나한테도 그럴 거야⁠? 힘들어지면 범돌이랑 나 두고 원룸 들어갈 거야⁠?⁠”

경모가 의자를 빼서 예리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나는 식탁 밑에서 경모의 발을 보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들지 않았다⁠. 경모의 발은 가만히 바닥을 딛고 있었다⁠.

“⁠안 그래⁠. 그때 나는 스물여섯이었고 빚이 있었어⁠. 개 한 마리 못 키울 만큼⁠. 지금은 아니야⁠. 두고 간 거 알아⁠. 그래서 이 년 동안 밤마다 갔어⁠. 할매한테도 애한테도⁠.⁠”

경모의 귀 뒤는 조용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경모도 거짓말이 아닌 말을 할 줄 알았다⁠.

“⁠어머님은 알아⁠?⁠”

예리가 물었다⁠. 경모가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몰라⁠.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경모의 귀 뒤가 젖었다⁠. 찬 땀이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내려왔다⁠. 오늘 밤 경모가 한 말 가운데 가장 짙은 냄새였다⁠. 나는 식탁 밑에서 나와 경모 앞에 앉았다⁠. 경모를 똑바로 보았다⁠. 개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는 것뿐이었다⁠. 짖으면 예리는 내가 경모를 싫어해서 짖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짖지 않고 보았다⁠.

예리는 내 얼굴을 보았다⁠. 경모의 얼굴을 보았다⁠. 예리는 경모의 귀 뒤 냄새를 맡지 못한다⁠. 대신 나를 오래 키웠다⁠.

예리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예리야⁠, 뭐 해⁠.⁠”

“⁠어머님한테 전화해⁠.⁠”

“⁠지금 열 시야⁠.⁠”

신호가 두 번 가고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받았다⁠. 예리가 스피커를 켰다⁠.

“⁠어머님⁠, 저 예리예요⁠. 늦게 죄송해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경모 씨한테 아들 있는 거 아세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조용함이 길었다⁠.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오래 조용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바로 되묻는다⁠. 뭐라고⁠? 무슨 아들⁠?

“⁠내일 내가 그 집으로 갈게⁠.⁠”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경모를 거느리는 여자⁠, 예리가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예리 어머니는 전화로 이 사람을 늘 너희 시어머니라고 부른다⁠. 나도 시어머니라고 부르기로 한다⁠. 시어머니가 한마디를 더 했다⁠.

“⁠너희 집 말고⁠. 그 여자 집으로⁠.⁠”

전화가 끊겼다⁠. 경모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경모의 손바닥 사이로 젖은 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경모의 무릎에 앞발을 올렸다⁠.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무릎 위의 손을 치우고 경모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거짓말이 다 떨어진 사람의 얼굴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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