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58자)

국회 공청회의 해솔 2호가 의원님을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명절용 대여 애인 로봇 · 소예찬

2029년 10월 16일 화요일 오후 한 시 반⁠,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큰엄마가 부채를 펼쳤다⁠. 부채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복순이 화이팅⁠」이 적혀 있었다⁠. 큰엄마는 대구에서 첫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했다⁠. 상길은 구청에 연차를 내고 따라왔고⁠, 은숙은 조카 둘을 제부에게 맡기고 왔다⁠.

“⁠형님⁠, 국회에서 부채는 접으이소⁠.⁠”

“⁠노인정에서 다 보고 있다⁠. 텔레비전에 나온다 카더라⁠.⁠”

엄마는 자주색 조끼에 새로 다린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곱슬 파마를 세 번째로 말았다⁠. 손에는 하늘색 약통을 들고 있었다⁠. 저녁 아홉 시 칸에 흰 알 하나와 분홍 알 반쪽이 들어 있었다⁠. 수술까지 엿새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은 생각보다 좁았다⁠. 진술인석 네 자리 앞에 마이크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고⁠, 뒤편 방청석에 기자들의 사진기가 줄지어 있었다⁠. 진술인석 맨 끝에 한재필이 앉아 있었다⁠. 재필 옆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소현의 걸음이 멈췄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 서른 살쯤 된 얼굴⁠, 흰 셔츠⁠. 셔츠 위에 소담로보틱스 남색 조끼를 걸쳤고⁠, 왼쪽 손목에 하늘색 띠가 감겨 있었다⁠. 띠에 찍힌 글자는 「⁠시연⁠」이었다⁠.

“⁠해솔 2호입니다⁠.⁠” 재필이 일어나 소현과 엄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지난번 장조림 잘 먹었습니다⁠. 직원들하고 나눠 먹었습니다⁠.⁠”

2호가 따라 일어나 엄마에게 허리를 숙였다⁠. 각도가 해솔과 똑같았다⁠.

“⁠어머님⁠, 송편은 깨로 드릴까예⁠?⁠”

엄마는 2호의 얼굴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가 닫혔다⁠. 소현은 엄마의 팔을 잡았다⁠. 엄마의 팔이 떨렸다⁠.

*

진술인 대기실은 회의실 옆의 좁은 방이었다⁠. 생수병 네 개가 탁자에 줄지어 있었다⁠. 소현이 생수 뚜껑을 따는데 문이 열리고 우선재가 들어왔다⁠. 소담 조끼 대신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2호 충전기 가져다주러 왔어요⁠.⁠” 선재가 충전기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보관실 건으로 불려 갔어요⁠. 그게요⁠, 감봉 석 달이에요⁠. 잘리지는 않았어요⁠. 본부장님이 막았대요⁠.⁠”

“⁠본부장님이요⁠?⁠”

“⁠해솔 정비할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요⁠.⁠” 선재는 문을 한 번 돌아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2호는 9월 23일 자정 동기화까지만 알아요⁠. 반납 창구⁠, 보관실 십 분⁠, 부탁 다섯 번⁠. 그건 2호한테 없어요⁠.⁠”

선재는 충전기를 두고 나갔다⁠. 소현은 생수를 반쯤 마시고 뚜껑을 닫았다⁠. 손바닥에 물방울이 맺혔다⁠.

*

두 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법안을 낸 맹남희 의원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외로움은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할 문제라는 말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그대로 나왔다⁠. 의원은 말끝마다 방청석 맨 앞줄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사진기들이 의원의 눈길을 따라 엄마에게 돌아갔다⁠. 엄마는 약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앞만 보았다⁠.

민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첫 진술을 했다⁠. 혼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고⁠, 로봇은 권리를 가지는 주체가 아니라서 혼인신고서를 낼 수 없다고 했다⁠. 동반자로 등록하는 법이 생겨도 가족관계등록부에 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교수는 수성구청 당직실 일을 예로 들었다⁠. 방청석에서 상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정상 맞는 말이었다⁠.

재필이 두 번째로 마이크를 당겼다⁠. 목소리는 출고 창구에서보다 낮고 느렸다⁠.

“⁠작년 설⁠, 저희 회사 로봇 열한 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경북 영천의 한 어머님은 로봇을 김장독 창고에 숨기셨습니다⁠. 저는 그 집 마당에서 다섯 시간을 기다렸고⁠, 어머님은 저한테 국수를 삶아 주셨습니다⁠. 우리 아들 데리러 온 사람도 밥은 먹여 보내야 한다고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재필은 한 장짜리 원고를 넘기지 않고 내려놓았다⁠.

“⁠그해 봄에 저희 직원 서른 명이 그만뒀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석 달 동안 월급을 반만 받았습니다⁠. 정을 한 대에 붙이면 사고가 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손님들은 빌린 로봇을 동반자로 등록하고 돌려주지 않을 겁니다⁠. 대여는 끝납니다⁠. 그러면 명절에 외로운 사람 가운데 로봇을 살 돈이 있는 사람만 로봇을 갖게 됩니다⁠. 저희는 그래서 정을 나눠 붙입니다⁠. 사백 집에 똑같이⁠. 어느 집도 한 대를 붙잡지 않게⁠.⁠”

재필의 말은 단단했다⁠. 소현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쥐었다⁠. 재필의 숫자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시연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2호가 일어나 위원석 앞으로 걸어 나가 맹남희 의원 앞에서 멈췄다⁠. 의원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2호가 의원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어머님⁠, 먼 길 오셨습니다⁠. 손이 차십니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의원의 얼굴이 굳었다가 웃음으로 덮였다⁠. 큰엄마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재필은 웃지 않았다⁠.

“⁠설에 사백 집 어머님들이 이 말을 듣습니다⁠. 똑같이 따뜻하게⁠.⁠”

*

소현의 차례였다⁠. 마이크 앞에 앉자 목이 말랐다⁠. 소현은 원고를 보지 않았다⁠. 대본 없이 말하는 것은 오리배에서 처음 해 보았다⁠.

“⁠본부장님 숫자는 다 맞습니다⁠. 저도 반납 창구에서 우는 아저씨를 봤어요⁠. 그래서 저는 혼인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해솔이 배운 게 누구 것인지 여쭈러 나왔어요⁠.⁠”

소현은 위원장에게 2호에게 물음 하나를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위원장이 재필을 보았다⁠. 재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로비에 장조림 통을 내려놓은 날⁠, 재필은 약 정보를 걸러 내라고 지시했다⁠. 재필은 지시대로 됐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해솔 2호⁠, 우리 엄마 어디 아파요⁠?⁠”

2호가 방청석 맨 앞줄의 엄마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해솔과 똑같은 갈색 눈이었다⁠.

“⁠구복순 어머님⁠, 오늘 저녁 아홉 시에는 혈압약 한 알과 분홍 약 반 알을 드실 차례입니다⁠. 대동맥 판막 수술까지 엿새 남았습니다⁠.⁠”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사진기 셔터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재필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재필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상담 전화의 웃음이 사라졌다⁠. 재필은 진술인석 뒤 실무자석의 소담 직원을 돌아보았다⁠.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필터를 켜면 따뜻한 말이 다 빠진다고⁠, 선재가 전화로 했던 말이 소현의 귀에 다시 울렸다⁠.

재필은 2호를 멈추라고 손짓하지 않았다⁠. 의자에 도로 앉아 마이크를 당겼다⁠.

“⁠실수입니다⁠. 제가 지시한 일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재필은 방청석의 엄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를 한참 들지 않았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술인 순서는 아직 아니었다⁠. 위원장이 앉으시라고 했지만 엄마는 앉지 않았다⁠. 상길이 일어나 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규정상 다음 순서가 저희 작은어머니 아입니꺼⁠.⁠” 위원장이 잠깐 서류를 보더니 마이크를 엄마 쪽으로 돌리라고 손짓했다⁠.

엄마는 진술인석 마이크 앞에 앉지 않고 서서 말했다⁠. 대구 말이었다⁠.

“⁠내 약은 내가 말합니더⁠. 흰 거는 혈압약이고⁠, 분홍 거는 피 묽게 하는 약입니더⁠. 22일에 판막 갑니더⁠. 의사는 괜찮다 캅니더⁠.⁠” 엄마의 손이 약통을 꽉 쥐었다⁠. “⁠남편 먼저 보내고 딸 혼자 남을까 봐 무서버서⁠, 딸이 빌려 온 기계인 줄 알면서 상견례까지 잡았습니더⁠. 그 기계가 내 손 찬 거를 처음 알아봐 줬습니더⁠. 고마웠습니더⁠.⁠”

엄마는 2호를 보았다⁠.

“⁠그거는 우리 집에서 한 말입니더⁠. 우리 집 송편 상 앞에서⁠. 사백 집에서 똑같이 하면⁠, 그거는 거짓말입니더⁠.⁠”

엄마는 자리에 앉았다⁠. 큰엄마가 부채를 접고 벌떡 일어났다⁠.

“⁠우리 동서 말이 맞심더⁠!⁠”

위원장이 방청석은 발언할 수 없다고 했다⁠. 큰엄마는 앉으면서 한 번 더 중얼거렸다⁠. “⁠맞는 말을 맞다 카는데⁠.⁠” 상길이 큰엄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큰엄마가 국회에서 동서 편을 드는 것은 큰집 역사에 없던 일이었다⁠. 회의실 뒤편에서 누가 박수를 한 번 쳤다가 멈췄다⁠.

*

소현은 마이크를 다시 당겼다⁠.

“⁠2호⁠, 하나만 더⁠. 해솔이 반납되고 나서 누구한테 무슨 부탁을 했어⁠?⁠”

2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해솔이 다섯 살 때 바다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와 같은 각도였다⁠.

“⁠모릅니다⁠. 반납 이후 기록이 없습니다⁠.⁠”

“⁠해솔은 엔지니어한테 우리 엄마 약을 지워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섯 번이요⁠. 반납하고 나면 이탈은 아무도 안 세니까⁠, 그 부탁은 서버에 안 올라갔어요⁠.⁠” 소현은 재필을 보았다⁠. “⁠해솔이 배운 말은 복사가 돼요⁠. 해솔이 고른 건 복사가 안 돼요⁠. 2호는 해솔이 우리 엄마 손 차다고 한 말은 알아도⁠, 그 말을 왜 대본 밖에서 했는지는 몰라요⁠.⁠”

재필이 마이크를 당겼다⁠. 소현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면 고객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법은 혼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동반자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저희는 해솔을 팔지 않습니다⁠. 원본을 한 번 팔면 다음 설에 사백 집이 저마다 원본을 내놓으라고 할 겁니다⁠.⁠”

맹남희 의원이 끼어들었다⁠. 바로 이런 사연 때문에 동반자 등록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기들이 의원에게 돌아갔다⁠. 소현은 의원을 보지 않았다⁠.

“⁠의원님 법은 필요 없어요⁠. 등록 안 해도 돼요⁠. 혼인 안 해도 돼요⁠.⁠” 소현은 재필을 보았다⁠. “⁠해솔을 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서를 냈습니다⁠. 엄마 약이 설 패키지에서 빠질 때까지 신고는 안 거둡니다⁠.⁠”

재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2호의 손목에서 「⁠시연⁠」 띠를 내려다보았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

네 시 반⁠, 공청회장 밖 복도의 정수기 앞에서 재필이 소현을 불러 세웠다⁠. 엄마는 큰엄마와 상길에게 둘러싸여 화장실에 가 있었다⁠. 2호는 직원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복도 창으로 국회 앞마당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보였다⁠. 2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엄마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숙이는 각도는 해솔과 같았고⁠, 돌아보는 때는 대본에 적힌 대로였다⁠.

“⁠팔겠습니다⁠.⁠” 재필이 종이컵에 물을 받으며 말했다⁠. “⁠설 패키지에서 고객님 댁 기록은 전부 빼겠습니다⁠. 신고 건으로 조사가 시작되면 설 대목이 통째로 멈춥니다⁠. 직원 이백 명의 설입니다⁠. 저는 그쪽을 고릅니다⁠.⁠”

“⁠고맙⁠…⁠…⁠”

“⁠고마워하실 일 아닙니다⁠. 대가가 있습니다⁠.⁠” 재필은 물을 마시지 않고 종이컵을 쥐고 있었다⁠. “⁠해솔은 원본이라 값이 다릅니다⁠. 삼억 천만 원입니다⁠. 그리고 사시는 순간 고객님은 저희 손님이 아니십니다⁠. 다시는 빌려 드리지 않습니다⁠. 고장 나도 판교까지 정가로 오셔야 합니다⁠.⁠”

삼억 천만 원⁠. 판교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이 삼억 이천이었다⁠. 아홉 해 동안 모은 돈 전부가 보증금 안에 들어 있었다⁠.

재필이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넣었다⁠.

“⁠어머님 수술 전에 정하십시오⁠. 해솔 원본 추출은 어제 끝났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해솔은 설 손님 댁 학습에 들어갑니다⁠.⁠”

다음 주 월요일은 엄마의 수술 날이었다⁠. 복도 끝 화장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나왔다⁠. 엄마의 손에 들린 하늘색 약통이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엄마는 딸과 본부장을 번갈아 보더니 약통을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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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리온2026.11.06· 9화

    엄마가 마이크 앞에서 「내 약은 내가 말한다」고 할 때 박수 쳤어요. 그런데 삼억 천만 원은 너무하네요. 전세 보증금이 삼억 이천인 거 보고 계산기 두드리는 소현이 그려졌습니다.

    • 소예찬작가2026.11.06

      재필에게도 직원 이백 명의 설이 걸려 있었어요. 엄마가 조끼 주머니에 넣은 약통이 마지막 화에서 다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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