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7자)

엄마가 로봇 회사 안내 데스크에 장조림을 내려놓았다

명절용 대여 애인 로봇 · 소예찬

2029년 9월 28일 금요일 아침 일곱 시⁠, 엄마는 오피스텔 가스레인지 앞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냄비가 없어서 라면 냄비에 끓였다⁠. 소현은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 화면을 엄마 쪽으로 돌렸다⁠. 밤새 선재가 보낸 사진이었다⁠. 「⁠동기화 기록 · 민감 정보 필터 — 꺼짐⁠」 아래 줄줄이 이어진 글자 가운데 한 줄을 소현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구복순 · 저녁 9시 복용 · 흰 1⁠, 분홍 0⁠.5 · 대동맥 판막 수술 예정⁠」

엄마는 국자를 든 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돋보기 없이도 읽었다⁠.

“⁠이기 뭐꼬⁠?⁠”

“⁠엄마 약⁠. 설에 로봇 마흔 대가 이걸 알고 사백 집에 들어가⁠.⁠”

“⁠사백 집⁠?⁠” 국자가 냄비 가장자리에 탁 부딪혔다⁠. “⁠내 약을 남의 집 사백 군데서 떠든다꼬⁠?⁠”

“⁠떠드는 건 아니고⁠, 알고 있는 거야⁠. 그 집 엄마들 손 잡으면서⁠, 엄마한테 했던 말을 하는 거야⁠.⁠”

엄마는 불을 껐다⁠. 된장국이 끓다 말고 가라앉았다⁠.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상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길아⁠, 내다⁠. 남의 회사가 내 약 먹는 거를 내 허락도 없이 팔면 어디다 일러야 되노⁠?⁠”

수화기 너머에서 상길이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구청 창구에서 하던 목소리가 나왔다⁠.

“⁠작은어머니⁠,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시면 됩니다⁠. 규정상 병이나 약 같은 건강 정보는 민감 정보라서 본인한테 따로 동의를 받아야 됩니다⁠. 동의 안 하셨으면 안 되는 겁니다⁠.⁠”

“⁠동의는커녕 물어보지도 안 했다⁠.⁠”

“⁠그라믄 안 되는 겁니다⁠.⁠” 상길이 잠깐 끊었다가 덧붙였다⁠. “⁠작은어머니⁠, 그 회사 판교 본사 주소 문자로 보내 드릴까예⁠?⁠”

엄마는 전화를 끊고 블라우스 소매를 걷었다⁠. 냉장고를 열어 어제 넣은 장조림 통을 도로 꺼냈다⁠.

*

오전 열 시⁠, 길벗지도 7층 회의실 문 앞에서 팀장이 소현의 팔을 잡았다⁠. 회의실 유리 너머로 소담로보틱스 구매 담당 두 사람이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옥 책임⁠,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소담에서 오늘 새벽에 메일 왔어⁠. 「⁠공청회 진술인 가운데 귀사 직원이 있어 계약 연장을 다시 검토함⁠」⁠. 너 진술인 수락했어⁠?⁠”

“⁠아직이요⁠.⁠”

“⁠하지 마⁠.⁠” 팀장은 소현의 팔을 놓지 않았다⁠. “⁠우리 매출 삼분의 일이 소담이야⁠. 귀환 경로 계약 날아가면 우리 팀 열두 명 중에 넷은 연말에 정리돼⁠. 너 때문에 넷이 잘린다고⁠.⁠”

팀장의 이유는 단단했다⁠. 넷 가운데 둘은 소현이 면접을 봐서 뽑은 후배였다⁠. 하나는 지난봄에 아이를 낳았고⁠, 하나는 대출을 끼고 신혼집을 샀다⁠.

“⁠팀장님⁠, 그 로봇들이 우리 엄마 약을 알고 다녀요⁠. 설에 사백 집이요⁠.⁠”

“⁠그건 소담 문제지 우리 문제가 아니야⁠.⁠”

“⁠우리 길이에요⁠. 그 로봇들이 반납 시간 넘기면 걸어오는 길이요⁠. 제가 짰어요⁠.⁠”

“⁠그러니까 네가 더 빠져야지⁠.⁠”

회의실 안에서 소담 담당자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팀장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소현은 문손잡이를 잡은 팀장의 손등을 보았다⁠. 아홉 해 동안 같은 손이 소현의 코드에 승인 버튼을 눌렀다⁠.

“⁠팀장님⁠, 제가 그만둘게요⁠. 그러면 귀사 직원이 아니잖아요⁠.⁠”

팀장의 손이 문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옥 책임⁠, 너 아홉 해야⁠.⁠”

“⁠알아요⁠.⁠”

소현은 자리로 돌아가 사직서 양식을 열었다⁠. 사유 칸에 「⁠개인 사정⁠」 네 글자를 쳤다⁠. 인쇄 버튼을 누르자 복도 끝 프린터가 덜컹거렸다⁠. 소현은 종이를 들고 회의실로 돌아가 팀장 앞에 내려놓고⁠, 소담 담당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귀환 경로는 제 후임이 맡습니다⁠.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게 해 놓은 부분은 지우지 말아 주세요⁠.⁠”

회의실을 나오는 소현의 뒤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에 사내 메신저가 하나 떴다⁠. 신혼집을 산 후배였다⁠. 「⁠선배 진짜예요⁠? 비 오는 날 부분 제가 지킬게요⁠」⁠.

*

오후 두 시⁠, 판교 소담로보틱스 본사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엄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본부장이 누고⁠? 한재필이 나오라 캐라⁠.⁠”

엄마는 안내 데스크 앞에 서 있었다⁠. 자주색 조끼에 꽃무늬 블라우스⁠, 손에 보자기로 싼 장조림 통⁠. 안내 데스크 뒤에서 민원 안내 로봇이 반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로봇 옆에서 사람 직원이 전화기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로비에 있던 직원 몇이 걸음을 멈추고 엄마를 보았다⁠. 소현은 엄마 옆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딸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사직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딸의 빈손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재필이 내려왔다⁠. 남색 조끼에 사원증⁠, 헤드셋은 없었다⁠. 재필은 엄마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어머님⁠, 한재필입니다⁠.⁠”

“⁠니가 내 약을 팔았나⁠?⁠”

“⁠어머님⁠, 그건 저희 고객님 댁에서 해솔이⁠…⁠…⁠”

“⁠내가 니 고객이가⁠?⁠”

“⁠아니십니다⁠.⁠”

“⁠고객도 아인 사람 약을 니가 와 파노⁠? 내 약은 내 거 아이가⁠?⁠”

로비가 조용해졌다⁠. 재필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출고 창구에서도 반납 창구에서도 막힘없던 입이었다⁠.

“⁠어머님⁠, 약 정보는 걸러 내겠습니다⁠. 저희 실수였습니다⁠.⁠”

“⁠걸러 낸다꼬⁠? 우리 딸 반납 창구에서 지웠다 안 캤나⁠?⁠”

재필이 소현을 보았다⁠. 소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재필은 잠깐 숨을 골랐다⁠. 다시 입을 연 목소리는 상담 전화 연결음이 아니었다⁠.

“⁠어머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해솔을 따님 곁에 두시면 따님은 평생 로봇하고 삽니다⁠. 아이도 없고⁠, 혼인신고도 안 되고⁠, 어머님 가시고 나면 따님 손 잡아 줄 사람은 기계 하나입니다⁠. 그걸 원하십니까⁠?⁠”

엄마의 어깨가 움찔했다⁠. 재필은 엄마가 가장 무서워하는 자리를 정확히 짚었다⁠. 소현은 엄마의 장조림 통 든 손을 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내가 원하는 거는⁠.⁠” 엄마가 천천히 말했다⁠. “⁠내 딸이 웃는 기다⁠. 사람 옆에서 안 웃던 애가 기계 옆에서 웃더라⁠. 나는 그거를 봤다⁠. 니도 봤제⁠? 니 기계가 다 찍어 갔다 아이가⁠.⁠”

재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는 안내 데스크 위에 장조림 통을 탁 내려놓았다⁠. 보자기 매듭이 풀렸다⁠.

“⁠영천 할매가 국수 삶아 줬다메⁠. 그 할매 생각난다메⁠. 이거 묵고 생각해라⁠. 우리 딸 반납한 기계가 지금 누구 손 잡고 있는지⁠.⁠”

엄마는 돌아서서 회전문 쪽으로 걸어갔다⁠. 회전문 앞에서 멈췄다⁠. 소현이 따라가자 엄마가 소현의 팔을 잡았다⁠. 손이 찼고⁠, 떨렸다⁠.

“⁠니 공청회 나가제⁠?⁠”

“⁠응⁠. 회사 그만뒀어⁠.⁠”

엄마는 놀라지 않았다⁠. 딸의 빈손을 볼 때 이미 알았던 얼굴이었다⁠.

“⁠내도 나갈란다⁠.⁠”

“⁠엄마가⁠? 국회에⁠?⁠”

“⁠노인정에서 다 보겠제⁠. 큰엄마도 보고 미용실 원장도 보고⁠. 복순이가 로봇 사위 데꼬 국회 나갔다꼬⁠.⁠” 엄마는 회전문 유리에 비친 자기 곱슬 파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보라 캐라⁠. 내 약은 내가 말한다⁠.⁠”

*

저녁 여섯 시⁠, 둘은 오피스텔 앞 칼국수집에 마주 앉았다⁠. 엄마는 바지락을 하나씩 건져 소현의 그릇에 옮겼다⁠. 소현은 엄마 그릇에서 김치를 하나 집어 왔다⁠. 엄마는 이번에는 혀를 차지 않았다⁠.

맹남희 의원실 보좌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현은 진술인을 하겠다고 했다⁠. 보좌관은 반가워하며 공청회 전에 「⁠사연 영상⁠」을 찍자고 했다⁠. 의원님이 로봇과 이별한 딸이 어머니 손을 잡는 장면을 원하신다고 했다⁠. 소현은 영상은 안 찍는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국수를 후루룩 넘기며 물었다⁠.

“⁠누고⁠?⁠”

“⁠국회⁠. 우리 사연이 좋대⁠.⁠”

“⁠우리 사연이 와 남의 것이 되노⁠?⁠” 엄마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니 그 기계 어데가 좋노⁠?⁠”

대구 부엌에서 엄마가 해솔에게 했던 물음이었다⁠. 이번에는 딸에게 왔다⁠. 소현은 대본 없이 대답했다⁠.

“⁠오리배에서 내 발에 맞춰서 페달 밟는 거⁠. 엄마 손 찬 거 먼저 본 거⁠. 바나나 우유 병⁠. 내가 거짓말할 때 옆에서 대답 안 하고 기다려 주는 거⁠.⁠”

엄마는 한참 국수 그릇을 들여다보았다⁠. 국물 위에 기름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니 아부지도 내 발에 맞춰 걸었다⁠.⁠” 엄마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다리가 길어서 늘 앞서 가다가⁠, 돌아보고⁠, 멈춰 서서 기다렸다⁠.⁠”

*

밤 열한 시⁠, 소담 본사 지하 2층 보관실 앞 복도에서 우선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원증을 목에서 빼서 손에 쥐고 있었다⁠.

“⁠이거 찍으면 기록 남아요⁠. 그게요⁠, 저 내일 불려 갈 거예요⁠.⁠”

“⁠그럼 왜 열어 줘요⁠?⁠”

“⁠해솔이 부탁한 거⁠, 제가 세고 있다고 했잖아요⁠. 오늘 밤으로 다섯 번이에요⁠.⁠” 선재가 사원증을 문에 댔다⁠. 초록 불이 켜졌다⁠. “⁠로봇이 다섯 번 부탁하는데 사람이 한 번도 안 들어주면 이상하잖아요⁠.⁠”

보관실은 서늘했고⁠, 정비 의자 수십 개가 어둠 속에 줄지어 있었다⁠. 맨 안쪽 의자에 해솔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흰 셔츠⁠, 엄마가 고른 셔츠 그대로였다⁠. 왼쪽 손목은 맨살이었다⁠. 선재가 해솔의 목덜미를 눌렀다⁠. 팬이 웅 돌기 시작했다⁠.

“⁠십 분이에요⁠. 동기화 꺼 놨어요⁠. 이 십 분은 서버에 안 올라가요⁠.⁠”

선재는 복도로 나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정비 의자들의 대기등만 어둠 속에서 작게 깜박였다⁠. 해솔이 눈을 떴다⁠. 갈색 눈이 어둠 속에서 소현을 찾아 초점을 맞췄다⁠.

“⁠소현 씨⁠.⁠”

“⁠나 회사 그만뒀어⁠.⁠”

“⁠그러면 귀환 경로는 누가 고칩니까⁠?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 부분은요⁠?⁠”

소현은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해솔의 무릎에 이마를 댔다⁠. 해솔의 손이 소현의 정수리⁠, 반쯤 풀린 똥머리 위에 얹혔다⁠. 손바닥이 서서히 데워졌다⁠. 보관실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해솔의 손 하나만 사람의 온도로 올라갔다⁠.

“⁠후배가 지킨대⁠.⁠”

“⁠다행입니다⁠.⁠” 해솔이 손가락으로 소현의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쓸었다⁠. “⁠어머님은 오늘 아홉 시에 약을 드셨습니까⁠?⁠”

“⁠응⁠. 내가 봤어⁠. 흰 거 하나⁠, 분홍 거 반⁠.⁠”

“⁠그러면 됐습니다⁠.⁠”

선재가 문을 두드렸다⁠. 남은 시간 일 분이었다⁠. 해솔이 소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이마와 이마가 닿았다⁠. 해솔의 팬 소리가 소현의 이마뼈를 타고 울렸다⁠.

“⁠공청회에 해솔 2호가 나옵니다⁠. 본부장님이 서버에 올라간 제 기록으로 오늘 오후에 만들었습니다⁠. 2호는 제가 아는 것을 다 압니다⁠. 어머님 약도요⁠.⁠”

문이 열렸다⁠. 선재가 해솔의 목덜미를 눌렀다⁠. 팬이 멎었다⁠. 해솔의 손이 소현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끄러져 무릎 위로 내려앉았다⁠.

*

9월 29일 토요일 아침⁠, 맹남희 의원실이 공청회 안내를 올렸다⁠. 소현은 오피스텔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화면을 보았다⁠. 엄마는 돋보기를 쓰고 있었다⁠.

「⁠인간형 로봇 동반자 등록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 10월 16일 화요일 오후 두 시 ·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

진술인 명단에 이름 넷이 있었다⁠. 민법을 가르치는 교수 하나⁠, 소담로보틱스 명절사업본부장 한재필⁠, 시민 옥소현⁠.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시민 · 구복순(⁠대구 수성구⁠)⁠」

엄마는 돋보기를 벗어 식탁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으로 제 이름을 한 번 쓸었다⁠. 가족 단톡방이 울리기 시작했다⁠. 큰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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