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523자)

하모니카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도⁠, 도⁠. 아니⁠, 그건 레요⁠.⁠”

능곡 경로당 마루에 하모니카 여덟 개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들이켜는 소리와 내쉬는 소리가 다른 음을 내는 악기라서⁠, 여덟 명이 한꺼번에 숨을 쉬면 마루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오학주가 마루 앞에 서서 이발소 빗을 지휘봉 삼아 흔들었다⁠.

“⁠다시⁠. 하나⁠, 둘⁠.⁠”

하모니카 동아리는 할머니 여섯⁠, 할아버지 둘이었다⁠. 십 년째 금요일 오후마다 모여 「⁠고향의 봄⁠」만 불었다⁠. 트로트는 처음이었다⁠. 첫 연습 날 회장 할머니가 말했다⁠. 「⁠고향의 봄⁠」은 동요라 숨을 쉬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트로트는 숨 쉬는 자리를 가수가 정하니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가수 양반⁠, 꺾을 때 우리한테 미리 눈짓 좀 주시오⁠.⁠”

“⁠눈짓 주믄 꺾기가 아이고 예고지예⁠.⁠”

“⁠그럼 예고하고 꺾으시오⁠. 우리는 예고가 있어야 숨을 쉬오⁠.⁠”

마루가 웃음으로 흔들렸다⁠. 할아버지 하나가 웃다가 틀니가 빠질 뻔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막은 손 사이로 하모니카가 삑 소리를 냈다⁠. 다들 더 웃었다⁠.

말희는 은순이를 들고 마루 끝에 서서 여덟 사람의 숨을 들었다⁠. 옥배의 오르간은 반 박자를 기다려 주었다⁠. 하모니카 여덟 개는 한 박자를 기다려 주었다⁠. 기다림이 길어서 노래가 자꾸 늘어졌다⁠. 늘어지는 노래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동네 잔칫상 앞에서 다 같이 부르는 노래 같았다⁠.

“⁠한 박자는 너무 기다린다⁠. 반 박자만 기다리이소⁠.⁠”

“⁠반 박자가 어디요⁠?⁠”

회장 할머니가 물었다⁠. 말희는 할머니 손을 잡고 박자를 짚어 주었다⁠. 손등이 얇고 따뜻했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모니카를 입에 댔다⁠. 이번에는 반 박자에서 들어왔다⁠.

경로당 기둥 옆에서 저승사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하모니카가 틀릴 때마다 저승사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도 박자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학주가 빗을 흔들다가 기둥을 향해 슬쩍 말했다⁠.

“⁠갓 선생⁠, 하모니카 불 줄 아오⁠?⁠”

“⁠트럼펫을 불었소⁠. 하모니카는 입이 작아 안 맞소⁠.⁠”

“⁠갓 선생 입이 크다는 말이오⁠?⁠”

“⁠트럼펫 부는 입이라는 말이오⁠.⁠”

저승사자가 처음으로 제 생전 이야기를 꺼냈다⁠. 말희는 노래를 고르다 고개를 들었다⁠. 트럼펫⁠. 1968년 악극단⁠. 박자 지적⁠. 저승사자의 손가락이 도포 소매 안에서 피스톤 누르듯 움직이고 있었다⁠.

연습이 끝나자 학주가 경로당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의자를 하나 놓았다⁠. 가방에서 꺼낸 것은 가죽 주머니였다⁠. 주머니를 펼치자 가위 세 자루와 빗 두 개⁠, 면도솔이 나왔다⁠.

“⁠텔레비전 나가는데 머리가 이래서야 되겠소⁠. 한 사람씩 앉으시오⁠.⁠”

하모니카 할아버지 둘이 서로 먼저 앉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결국 틀니 할아버지가 먼저 앉았다⁠. 학주가 보자기를 목에 둘렀다⁠. 가위가 사각사각 울기 시작했다⁠. 이발소를 닫은 지 열두 해⁠, 학주의 손은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 가위 끝이 귀 뒤를 돌 때 학주의 등이 꼿꼿해졌다⁠. 이발소 의자 뒤에 서 있던 서른 해의 자세였다⁠.

“⁠할멈들도 앞머리 다듬어 드리리까⁠?⁠”

할머니들이 손사래를 치다가 하나둘 줄을 지었다⁠. 말희도 줄 끝에 붙었다⁠. 학주가 말희의 갈색 파마머리를 보더니 가위를 내려놓았다⁠.

“⁠가수 양반 머리는 못 건드리오⁠. 그 머리는 노래하는 머리요⁠. 손대면 노래가 달라지오⁠.⁠”

“⁠어르신⁠, 그런 법이 어딨어예⁠.⁠”

“⁠능곡 이발관 법이오⁠.⁠”

학주가 빗으로 말희의 앞머리만 한 번 빗어 넘겨 주었다⁠. 빗살이 두피를 지나가는 감촉이 시원했다⁠. 기둥 옆의 저승사자가 갓을 벗을 듯 말 듯 만지작거렸다⁠. 학주가 가위를 들어 보였다⁠.

“⁠갓 선생도 앉으시오⁠.⁠”

“⁠사자는 머리를 깎지 않소⁠.⁠”

“⁠쉰여섯 해 안 깎았으면 갓 속이 볼만하겠소⁠.⁠”

저승사자가 갓을 꾹 눌러썼다⁠. 할머니들이 영문도 모르고 학주를 따라 웃었다⁠.

*

본선 2라운드 날 아침⁠, 일산 별관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권채란이었다⁠. 수원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정장 재킷을 팔에 걸고⁠, 손에는 파주 병원에서 받아 온 면회 기록지가 들려 있었다⁠.

“⁠엄마⁠.⁠”

“⁠채란아⁠, 아빠는 봤나⁠?⁠”

“⁠봤어⁠. 어젯밤에⁠. 엄마 없을 때⁠.⁠”

채란이 면회 기록지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밤 아홉 시 반부터 열 시 반까지⁠, 채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빠가 아홉 시 반부터 엄마 찾더라⁠. 엄마 오늘 리허설이라 못 온다고 했더니⁠, 나보고 휴대전화로 엄마 노래 틀어 달래⁠. 그래서 영상 틀어 줬어⁠. 지난주 본선 영상⁠.⁠”

말희의 손에서 립스틱이 미끄러졌다⁠. 녹화 영상이었다⁠. 녹화는 덮지 못했다⁠. 어젯밤 말희는 리허설 무대 뒤에서 열 시 일 분 전에 영상 통화를 걸었다⁠. 무대 감독이 리허설 중에 어디 가느냐고 소리쳤고⁠, 말희는 비상구 계단에 쪼그려 앉아 노래했다⁠. 일 분만 늦었어도 종이 울리는 자리에 녹화된 목소리만 남을 뻔했다⁠. 말희는 이 이야기를 딸에게 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영상 틀었는데 그거 말고 진짜 엄마 목소리 듣고 싶다고 울었어⁠. 아빠 우는 거 처음 봤어⁠. 엄마는 여기서 하모니카 할머니들이랑 놀고 있고⁠.⁠”

“⁠놀고 있는 거 아이다⁠.⁠”

“⁠그럼 뭔데⁠? 아빠 아픈데 무대에 매달리는 거잖아⁠.⁠”

“⁠아빠가 결승 보고 싶다 캤다⁠.⁠”

“⁠엄마가 보고 싶은 거잖아⁠!⁠”

채란의 목소리가 대기실을 울렸다⁠. 다른 참가자들이 눈길을 피했다⁠. 차온이 대기실 문간에서 들어오다 멈추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말희는 딸의 얼굴을 보았다⁠. 우갑을 닮은 눈썹이 화가 나서 한쪽만 올라가 있었다⁠. 우갑도 화가 나면 한쪽 눈썹만 올렸다⁠. 말희는 저승사자 이야기를 할까 망설였다⁠. 열 시의 종⁠, 두 번의 부름⁠, 백중 자정⁠. 말하면 채란은 엄마가 미쳤다고 하거나⁠, 아니면 믿고 더 아파할 것이었다⁠.

“⁠둘 다 맞다⁠.⁠”

말희가 말했다⁠.

“⁠아빠도 보고 싶고⁠, 내도 하고 싶다⁠. 둘 다 맞으니까 하는 기다⁠.⁠”

“⁠그럼 나는⁠? 나는 아빠 옆에 있고 싶은데 엄마 때문에 맨날 전화로만 봐⁠.⁠”

채란이 재킷을 집어 들었다⁠. 대기실을 나가다가 문간에서 돌아보았다⁠.

“⁠오늘 지면 그만해⁠. 약속해⁠.⁠”

말희는 약속하지 않았다⁠. 채란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탁자 위에 면회 기록지가 남았다⁠. 열 시 반 칸에 채란의 글씨로 작게 적혀 있었다⁠. 「⁠아빠 잠듦⁠. 엄마 노래 듣고⁠」

*

본선 2라운드는 일대일 세대 대결이었다⁠. 대진표가 화면에 뜨자 방청석이 술렁였다⁠. 금말희 대 차온⁠. 유준이 짠 판이었다⁠. 패자 부활 1위와 예선 1위⁠, 예순둘과 스물여섯⁠.

차온이 먼저 불렀다⁠. 전주가 흐르자 말희는 귀를 세웠다⁠. 반 박자를 기다려 주는 손⁠. 무대 옆 밴드석에 옥배가 앉아 있었다⁠. 방송국 밴드 대신 옥배의 전자 오르간이 반주를 맡았다⁠. 자막이 화면 아래로 지나갔다⁠. 「⁠편곡 주옥배⁠」 글씨가 컸다⁠.

차온의 숨이 길어져 있었다⁠. 옥배가 숨 쉴 자리를 노래 사이사이에 만들어 두었다⁠. 차온은 옥배가 만든 자리에서 숨을 쉬고⁠, 숨을 아낀 만큼 꺾기를 한 번 더 감았다⁠. 말희의 꺾기였다⁠. 옥배의 편곡이 말희의 꺾기를 말희보다 더 오래 끌고 갔다⁠.

노래가 끝나자 방청석이 일어났다⁠. 심사위원 셋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객석 맨 뒤 기둥 옆에서 저승사자가 팔짱을 풀었다⁠. 손뼉은 치지 않았다⁠. 대신 오래 고개를 갸웃했다⁠.

“⁠숨은 길어졌소⁠. 그런데 저건 저 청년 숨이 아니오⁠. 반주자 숨이오⁠.⁠”

말희의 차례였다⁠. 하모니카 동아리 여덟 명이 무대 뒤편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노란 티셔츠 대신 경로당에서 맞춘 하늘색 조끼를 입었다⁠. 회장 할머니가 하모니카를 입에 대기 전에 말희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예고였다⁠.

말희는 노래했다⁠. 하모니카 여덟 개가 반 박자를 기다리다가 가끔 한 박자를 기다렸다⁠. 노래가 늘어질 때마다 말희는 늘어진 자리를 웃음으로 메웠다⁠. 2절에서 할아버지 하나가 삑 소리를 냈고⁠, 말희는 노래 사이에 「⁠괜찮십니더⁠」라고 넣었다⁠. 방청석이 웃었다⁠. 웃음 뒤로 하모니카 여덟 개가 한꺼번에 숨을 들이켰다⁠. 마루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스튜디오에도 지나갔다⁠.

조정실에서 유준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어머니였다⁠. 유준은 받지 않으려다 받았다⁠.

“⁠하모니카 할머니들 얼굴 왜 안 비춰⁠? 저 맨 끝 할아버지 삑 할 때 얼굴 잡아야지⁠!⁠”

“⁠엄마⁠, 지금 생방 아니에요⁠. 녹화예요⁠.⁠”

“⁠그럼 편집할 때 넣어⁠!⁠”

유준이 전화를 끊고 카메라 감독에게 말했다⁠. 하모니카 클로즈업⁠, 맨 끝 할아버지⁠.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가 렌즈를 돌렸다⁠.

결과는 차온이었다⁠.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말희는 일대일 대결에서 졌고⁠, 진 사람 가운데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 둘이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는 규칙 덕에 살아남았다⁠. 두 번째 자리였다⁠. 무대 위에서 차온이 말희에게 허리를 숙였다⁠. 말희는 차온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2박자였다⁠.

무대 뒤 복도에서 차온이 말희를 따라왔다⁠. 이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선생님⁠, 제 노래 어땠어요⁠?⁠”

“⁠숨이 길어졌더라⁠.⁠”

“⁠옥배 선생님 숨이에요⁠. 저도 알아요⁠.⁠”

차온이 금색 넥타이를 풀었다⁠. 영천에서처럼 손에 감았다⁠.

“⁠PD님이 저를 결승까지 밀어 주시겠대요⁠. 그림이 좋다고요⁠. 아이돌이 트로트 원조 할머니를 이기는 그림⁠. 저 그 말 듣고 기뻤어요⁠. 기뻐서 싫었어요⁠.⁠”

“⁠기쁘믄 기뻐해라⁠. 니는 니 위약금 갚아야 된다⁠.⁠”

“⁠선생님은 왜 화를 안 내세요⁠?⁠”

말희는 차온의 넥타이를 손으로 펴 주었다⁠. 감긴 자국이 쭈글쭈글했다⁠.

“⁠화는 영천에서 다 냈다⁠. 그라고 니가 내 꺾기로 이기는 거 보이 좋더라⁠. 내 꺾기가 안 늙었다는 기니까⁠.⁠”

차온이 웃으려다 울상이 되었다⁠. 말희는 차온의 등을 떠밀어 대기실로 보냈다⁠.

밴드석의 옥배는 오르간 덮개를 씌우다가 말희를 보았다⁠. 말희도 보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배가 오르간 덮개 끈을 묶다가 손을 멈추고 하모니카 회장 할머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회장 할머니가 하모니카를 들어 답했다⁠.

*

뒤풀이는 능곡 경로당 마당 평상에서 했다⁠. 수박과 막걸리와 콩떡⁠. 하모니카 동아리 여덟 명은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말에 들떠서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다⁠. 학주는 평상 끝에 앉아 단톡방 공지를 쳤다⁠. 손가락 하나로 한 글자씩⁠.

「⁠본선2라운드통과⁠!⁠!⁠!⁠!⁠!하모니카만세⁠!⁠!⁠!⁠!⁠!다음은준결승⁠!⁠!⁠!⁠!⁠!⁠」

느낌표를 누르다가 학주가 기침을 했다⁠. 기침이 길었다⁠. 말희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학주는 손을 저으며 웃었다⁠.

“⁠덤이 너무 길어져서 목이 놀랐나 보오⁠.⁠”

기둥 옆⁠, 아니 평상 옆 감나무 아래에서 저승사자가 수박 냄새를 맡고 있었다⁠. 말희는 저승사자에게 콩떡을 내밀려다 멈췄다⁠.

저승사자의 허리춤에서 종이 떨었다⁠.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손바닥 위에서 매미가 날개를 비비는 것처럼⁠, 짧게 한 번 떨었다⁠. 말희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저승사자가 종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감싼 손등이 하얬다⁠.

“⁠무슨 소리고⁠, 그거⁠?⁠”

저승사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말희는 저승사자의 얼굴을 보았다⁠. 쉰여섯 해 동안 무언가를 기다려 온 얼굴이⁠, 처음으로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놓친 넋의 새 때가 정해지면 종이 한 번 떠오⁠. 떠는 소리를 들으면 사자는 이름과 날을 아오⁠.⁠”

“⁠누군데⁠?⁠”

저승사자의 눈이 평상 끝으로 갔다⁠. 단톡방 공지를 다 치고 휴대전화를 높이 들어 「⁠전송⁠」을 누르는 오학주에게⁠.

학주가 고개를 들었다⁠. 저승사자와 눈이 마주쳤다⁠. 학주는 휴대전화를 무릎에 내려놓고⁠, 콩떡 하나를 집어 천천히 입에 넣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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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11.01· 9화

    하모니카 여덟 개가 숨 쉬면 바람 소리가 난다는 문장 너무 좋아요. 경로당 무대 꼭 보고 싶네요.

    • 지백솔작가2026.11.01

      들숨과 날숨이 다른 음을 내는 악기라 여럿이 불면 정말 마루에 바람이 지나가요. 무대는 곧 열립니다.